0116 ----------------------------------------------
암천향(暗天鄕)
이광은 먼저 진소청을 바라보았다.
"네가 먼저 하거라."
"네."
진소청은 가타부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창 한 자루를 들고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투지라고 하기도 애매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진소청이 극도로 감정을 억제하고 있기에 나오는 표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
금의위 총령은 그에 맞서서 자신의 독문병기(獨門兵器)인 권(圈)을 들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오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도라고 했으니 무기까지 쓸 필요는 없겠지."
그의 말에 나는 그러려니 했으나, 이광과 진소청의 반응은 달랐다. 이광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진소청은 정말? 이라고 말하는 듯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대로 비무가 시작될 것 같자 이광이 끼어들어서 말했다.
"어이."
"왜 그러나."
"백호(白虎) 자네의 자부심이 큰 건 알겠지만 무기를 지금이라도 드는 게 어떤가?"
금의위 총령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런 애송이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란 말이냐? 나를 너무 얕보는구나 청룡."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이광은 말꼬리를 흐리며 관전석으로 되돌아왔다. 관전석에 앉아있던 나는 되돌아온 이광에게 질문했다.
"백호라면 저 자도 황궁사대고수 아닙니까? 괜한 지적이 아니었을지요."
"하하..."
이광이 쓴웃음을 지었다.
"보고 있어라. 오늘 잘못하면 송장 하나 치우겠구나."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금의위 총령!
전대 황궁 사대고수인 사신위(四神衛)의 일원이자 백호(白虎)!
명백히 구파일방 장문인급이거나 그 이상인 초절정고수이다. 나는 총령이 엄청나게 강한 고수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전생을 거듭하고 수련을 해서 힘을 쌓으려고 갈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광과 진소청의 반응이 되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때였다.
비무가 시작되고 정확하게 3초를 겨루었을 때였다.
슈쾅
"으아아악...!!"
폭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금의위 총령의 왼쪽 팔이 피투성이가 된 채 비무대 끝까지 몰려가 있었다. 팔을 덜덜 떨며 낭패스러워하는 그 모습은 명백히 절대적인 수세에 처한 모습이었다.
"......?!"
나는 깜짝 놀랐다.
방금 전의 3초에서 첫 초식은 진소청의 란(欄)과 금의위 총령의 백옥(白玉)같은 수공(手功)의 충돌이었다. 진소청의 창이 궤도를 틀며 움직임을 몇 번이나 표변하자 금의위 총령은 황급히 수공의 전개를 멈추고 자신의 몸을 방어하기 위해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초 째에서 진소청은 또 다시 란을 펼쳤다. 금의위 총령은 이상하게도 그 공격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허우적대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소청은 가만히 있는데 금의위 총령만 쳇바퀴를 도는 형상이었다.
마지막 3초 째에 또다시 진소청이 란을 펼치자 금의위 총령이 폭음과 함께 왼쪽 팔이 피투성이가 된 것이다.
' 뭐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소청이 사용한 것은 천뢰무극창의 특별한 초식이나 비기가 아니었고, 그저 창술의 기본기인 란(欄)을 세 번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금의위 총령이 영문 모를 반응을 보이면서 죽기 일보직전까지 몰리게 된 것이다.
비무대 위에 서 있던 진소청이 나직이 말했다.
"죽일까요?"
그러자 비무대 밑에 있던 이광이 대답했다.
"왜 안 죽이냐? 자업자득이거늘."
"......"
콰칭
금의위 총령이 악에 받쳐서 자신의 권(圈)을 꺼냈다. 권이란 손에 들고서 한손으로 들 수 있는 커다란 원형의 날붙이였으며 근접전과 투척에서 탁월한 위력을 보였다. 권에 강대한 기운이 스며들자 이윽고 희미한 기운이 권의 날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살인적인 위력을 지닌 듯 불길한 기운을 뿜어냈다.
금의위 총령이 말했다.
"청룡... 호랑이새끼를 키우고 있었군."
"경고했잖나? 무기를 들라고."
"세 초식을 손해봤으니 나 또한 세 초식으로 네 제자놈을 똑같은 꼴로 만들어주마!"
파밧
호언장담한 금의위 총령이 양 손에 들린 권을 전방으로 투척했다. 권에는 월아(月牙)라고 불리는 칼날이 붙어 있었는데, 이내 시꺼먼 강기를 뿜어내며 공간을 살육으로 가득 채웠다.
슈슈슈슉
끔찍할 정도로 권의 분영(分影)이 늘어나자 숨도 쉬기 힘들어 보였다. 천지상하를 메우며 전진하는 권의 궤도는 측정조차 불가능했다.
' 절초(絶招)다!'
나는 순간적으로 금의위 총령이 초절정에서도 상당한 경지에 진입한 고수이며 지금 펼쳐낸 게 독문무공의 필살절초라는 걸 알아챘다. 탐색전의 여유가 없을 정도로 몰려있어서 절초로 승부수를 띄우는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진소청의 위치에 있으면 뇌명을 쓰고 도망치는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진소청은 딱히 절초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세를 잡고는, 이번에는 나(拏)의 수법을 사용했다.
진소청의 창날이 권의 궤적을 끌어들였다. 진소청의 몸은 찰나지간에 더할 나위없이 유려하게 창과 한 몸이 되어서 움직이더니, 이내 자전(自轉)했다. 진소청이 제 자리에서 왼발을 축으로 다섯 바퀴를 도는 순간 살육공간은 창날에 빨려들어갔으며, 되려 권을 펼쳐낸 금의위 총령 쪽이 손해를 본 모습이었다.
타다당
총령은 포기하지 않고 튕겨나온 권을 어기지력(御氣之力)으로 재조종하는 듯 했다. 마치 실이라도 달린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이던 권은 이번에는 비무대 아래로 파고들었다. 땅을 두부처럼 파고들어간 권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형상이었다. 나는 총령이 펼쳐내는 초식 하나하나가 끔찍한 살인절초라는 걸 깨닫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진소청이 설핏 웃는 듯 했다. 그는 이번에는 칠성(七星)의 방위를 잡으며 유유자적하게 뇌영보 천주살을 펼쳤다. 그리고 칠성의 방위 중에서 4번째 방위를 밟는 순간, 땅 밑에서 진소청의 뇌와 심장을 노리고 권이 튀어나왔다.
카앙!
진소청은 그 짧은 순간에 찰(刹)을 다섯 번이나 시전한 듯 했다. 너무 빠른 속도라서 나는 진소청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놓쳤다. 그리고 내가 겨우 그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싶었을 때, 진소청은 금의위 총령의 코앞까지 쇄도해서는 권(圈)을 꿰어놓은 창날을 휘두르고 있었다.
쾅
"크윽..."
금의위 총령의 자세가 비틀거리며 무너졌다. 진소청은 육박전으로 들어가자 슬격(膝擊)을 가했고, 금의위 총령은 재빨리 목을 젖혀서 그 슬격을 피했다. 그러나 진소청의 연속공격은 곧장 뇌신권(雷神拳)의 권결에 따라 반회전해서 명치에 정권(正拳)을 때려넣고 있었다.
정권도 어떻게든 유려한 보법으로 피해 낸 금의위 총령이었으나 마지막으로 횡으로 날아온 진소청의 강철 창대는 피할 수가 없었다.
뻐억
"커헉!!"
금의위 총령은 옆으로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그리고 피투성이 왼팔을 부여잡고는 연신 피를 토해냈다. 방금 전의 공격으로 내상을 입은 듯 했다.
그는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었다.
"이... 이런 제길... 빌어먹을..."
땡그랑
진소청이 마치 자비라도 베풀듯 총령에게로 권을 날려 주었다. 지금까지 총령의 권은 월아가 창날에 걸린 상태로 진소청의 소유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관전석에서 보고 있던 이광이 이죽거렸다.
"그 동안 무공수련은 거의 하지 않았나 보군. 자신과 상대방의 실력을 알아보지도 못하다니 말이야."
"크아아아아!!"
스윽
금의위 총령이 발악을 하며 기운을 돋우어 달려들려 했으나 진소청이 창을 뻗어서 그의 살기를 순식간에 중화시켜 버렸다. 찬 물을 끼얹은 듯한 표정이 된 금의위 총령을 바라보던 진소청이 말했다.
"진정하시오. 거기서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죽여버리겠소."
"......"
진소청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금의위 총령은 권을 집어들고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내가 졌다..."
"좋은 승부였소."
나는 비무대 위에서 순식간에 결판나버린 비무를 보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내 상식과 전투력의 기준이 순식간에 뒤집혀버린 느낌이었다.
' 저럴 수가...'
아무리 금의위에게 포위당한 상태였다지만, 나는 과거 절정지경의 무공을 가지고도 금의위 총령에게 손도 발도 못대본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금의위 총령은 내게 있어서 언제고 넘어서야 할 거대한 산이었다. 하물며 자신의 독문병기와 독문무공을 사용하는 총령을 제대로 상대하는 건, 뇌명(雷鳴)을 쓰지 않는 한 지금의 내게도 무리였다.
그러나 진소청은 뇌신류의 비기나 뇌명은 커녕 그럴듯한 절초도 하나 쓰지 않고는 총령을 10초 내에 털어버린 것이다.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 난... 진소청의 힘을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지금까지도 진소청의 재능과 힘이 거대한 벽으로 느껴지긴 했었다. 그러나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몰라서 그저 [대단한 사람] 정도로만 치부해오고 있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진소청이 이맘때쯤 이미 20대 중반에 초절정의 경계를 돌파했으며, 그것도 전대 사대고수인 백호 금의위총령을 털어버릴 정도로 막강한 고수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10년 후의 진소청이 마도팔마 따위를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그 때의 진소청은 도대체 얼마나 강했던 걸까?
이광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말했다.
"자, 내 수제자의 지도편달은 끝났군."
"뭐라고?"
"그럼 이번에는 내 새로운 제자에게 지도편달을 해 주게."
비무대 위의 금의위 총령은 악에 잔뜩 받친 상태였다. 자신이 20대의 애송이인 진소청에게 당한 것도 억울한 상황인데 이제는 꼬마인 나를 상대하라는 것이다. 그는 살기를 엄청나게 머금은 눈으로 대답했다.
"알았다... 그 꼬맹이를 올려 보내라."
명백히 나를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놀란 눈으로 이광을 바라보자, 그가 전음(傳音)을 보내 왔다.
[ 잘 들어라. 저 놈을 불구로 만들어 버려라.]
이게 과거 같은 사신위이자 친구였던 자를 대우하는 방식인가?
[ 미친놈이 잘도 적진에 찾아왔으니 합법적으로 밟아버리란 말이다.]
나는 이광이 굉장히 무서운 인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이광과 원수를 지느니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나을거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매사에 무심무정하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지만, 한 번 적이 된 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짓밟고 없애버리는 철혈의 괴물이 바로 청룡 이광인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기회를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검을 잡고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비무대 위의 금의위 총령은 숨을 조절하며 자신의 상세와 체력을 회복시키는 듯 했다. 나는 아까 그의 주된 공격기술을 보았으므로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진소청처럼 여유를 부리며 상대하다가는 큰일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금의위 총령과 침묵한 채 대치하고 있자 비무대 밑에 있던 이광이 훈수를 뒀다.
"잘 들어라, 백웅. 저 놈의 독문무공은 보광진천신공(寶光盡天神功)이며 사용하는 무기는 권(圈)이다. 귀병팔보(鬼兵八步)를 이용해서 이형환위로 적의 빈틈을 노리는 걸 좋아하고, 중거리를 유지하며 권으로 상대를 견제하는 일에 능하다. 그러니 근접해서 싸우면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금의위 총령의 시선이 동시에 이광에게로 쏠렸다. 금의위 총령이 격앙해서 이광에게 분노를 토해냈다.
"청룡 개자식!! 네놈이 언제 내 무공연원을 알아냈단 말이냐?!"
"하하, 너만 내 뒷조사를 한줄 아느냐? 나도 할만큼 했다. 그리고 새파란 꼬맹이가 너를 상대하는데 이 정도 이득은 줘야하지 않겠나."
"크윽...!!"
나는 이 촌극을 보면서 황당했지만 여하튼 이광의 조언은 굉장히 큰 도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금의위 총령에게로 짓쳐들었다.
뇌영보 천주살로 빠르게 접근한 후 한 번의 베기(斬)를 시도했다. 단순히 한 번의 베기에 불과했으나 내가 펼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고 강한 검술공격이었다. 금의위 총령은 내 공격을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하려다가 결국 어깨에 한 칼을 맞아버리고 말았다.
푸콱
' 먹혔다!'
나는 금의위 총령이 몸을 추스릴 틈을 주지 않고 검에서 격렬하게 검염(劍炎)을 내뿜으며 만승검결을 시전했다. 금의위 총령은 이형환위를 시전해서 내 공격범위에서 벗어났지만, 예전과 달리 나는 이제 이형환위가 어떻게 흐르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곧장 그에게 달려들며 검격을 날리자 그는 낭패한 기색으로 연신 권으로 방어만 했다.
까강
까가강
그리고 나는 그렇게 근접거리에서 약 이십 초를 교환하는 동안에 그의 방어초식이 굉장히 정교하고 뛰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왼쪽 팔은 부상을 입고 진소청의 창대에 얻어맞고 내상까지 입은 상태인데도 내 공격을 큰 무리없이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방금 전에 진소청에게 털리긴 했으나 그는 분명히 뛰어난 초절정고수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부상은 부상이었다. 내가 압도적인 내공을 이용한 검격으로 연속으로 밀고 들어가자, 어느 순간 금의위 총령은 입에서 토혈(吐血)을 했다. 미처 힘을 흘려내지 못하자 그의 약지손가락이 힘 때문에 부러져 버렸다.
나는 찰나지간에 생겨난 빈틈을 놓치지 않고 기회를 보았다. 그리고 허벅지에 칼을 내리쳤다.
푸콰콱
"끄아아아악!!"
금의위 총령은 비명소리를 질렀다. 내 검염 때문에 그의 오른다리에서 허벅지 아래가 숭덩하고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참혹한 몰골이었으나 나는 전혀 동정심이 생기지 않았고 되려 기대감이 차올랐다.
' 죽이자!'
이 놈을 작살내면 복마전도 거의 끝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놈의 머리통에 검을 날릴 때였다.
파앗
어느 새 이광이 내 검극을 손가락으로 잡고 있었다. 찰나지간에 끼어들어서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이광은 다리가 잘린 채 꿈틀거리는 총령을 보며 이죽거렸다.
"어, 이럴수가... 내 어린 제자가 미숙해서 자네가 이런 꼴을 당하다니... 정말 유감일세."
"끄륵... 끄윽... 청룡...!!"
금의위 총령은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연신 토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즐기던 이광이 싱긋 웃었다.
"응급처치를 해 줄테니 편히 쉬다 가게."
"필요... 없다...!!"
금의위 총령은 이를 악물고는 급히 자신의 다리를 지혈했다. 그리고는 한쪽 다리만으로 경공을 시전해서 건물 위로 도약하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 오늘의 일은 결코 잊지 않겠...]
휘리릭 하고 뭔가가 금의위 총령에게로 날아갔다. 금의위 총령은 그 '선물'을 받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광이 껄껄 웃었다.
"다리 챙겨가게."
[ 빌어먹을!!!]
금의위 총령은 포효를 내지르더니 다리를 비무대에 던져버렸다.
파앗
그리고는 떠나 버렸다. 그가 빛살같은 경공으로 청룡무관을 나섬과 동시에, 어디에 그렇게 숨어 있었는지 금의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그를 따라가는 게 보였다. 적어도 수십 명이나 되는 숫자였기에 나는 소름돋는 걸 느꼈다.
일단의 소요가 끝나자 이광이 나와 진소청을 와룡전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말했다.
"뭔가 이상하구나. 너희는 싸우면서 그런 걸 느끼지 못했느냐?"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진소청이었다.
"네. 좀 이상했습니다."
"어떤 게?"
"그 자는 싸우면서 '뭔가'를 시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이 신경쓰여서 할 수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진소청의 대답은 나 또한 느낀 것이었다. 피를 토해내던 금의위 총령은 계속 눈을 번뜩이면서 '뭔가'의 기회를 노리는 듯 했다. 진소청의 말을 들은 이광이 말했다.
"그렇겠지. 놈은 뭔가 비장의 수를 가지고 있었다. 헌데 그게 무공(武功)은 아닌 것 같다 이 말이야."
"그 자는 반요(半妖)같은 걸까요?"
"황궁에 펼쳐진 결계는 보통 결계가 아니라서 요괴따위가 숨어들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오랜 세월 동료로 함께 활동하면서 놈이 인간이라는 건 확인을 했다."
이광이 손깍지를 꼈다.
"놈을 죽여버릴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일단은 후환이 두렵고, 두 번째로는 바로 대역죄(大逆罪)가 적용되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방금 말했던 이상한 기운 때문이다. 왠지 그 기운은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면 그대로 발동될 거 같더군."
"......"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이제 금의위에 대항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때였다.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아아악!!"
"저... 저게 뭐야?!"
우리 세 사람이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리!!
아까 내가 잘랐던 금의위 총령의 다리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다. 미친듯이 요동치더니 시퍼런 피를 뿜어내었고, 이윽고 꿈틀꿈틀대면서 보랏빛 촉수같은 걸 사방팔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자라난 다리는 마치 팔조어(八梢魚)같은 형상의 마물이 되어 있었다. 대머리처럼 보이는 맨들맨들한 머리통에 시꺼먼 눈알같은게 붙어있었다. 주변에 있던 제자들이 경악해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촉수는 제자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쒸익
카앙
뻗어나온 촉수가 제자 한 명의 심장을 노렸지만 내가 재빨리 달려들어서 쳐 냈다. 그 순간 진소청과 이광이 동시에 촉수화된 다리에 달려들어서 공격을 가했다.
퍼버버벅!!
강력한 기(氣)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지나가자 촉수는 산산조각 나서 흩어졌다. 그리고 주먹만한 부분이 남아서 꿈틀거리며 다시 촉수를 자라나게 하고 있었다. 이광은 기가 질린 눈으로 그 촉수를 바라보더니 밟아버렸다.
콰직...
"친구가 이제 해산물 취향이 되었군."
나는 그 말에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이 광경을 보는 순간 내 기억속에서 추리의 조각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 그랬군...'
금의위 총령이 갑작스럽게 조직을 통합하고 동창을 누른 강력한 제일고수로 우뚝 선 것.
그것은 본인의 무공이 가공할 지경에 이르러서가 아니었다.
그 자는 이족(異族)의 마(魔)를 몸 안에 받아들인 것이다.
아마도 황궁에 소환된 이계의 존재가 시술해 줬으리라 추측되었다.
이 자리에서는 이광과 진소청을 상대하다가 죽을 우려가 있어서 마를 발현시키지 않았으나, 만일 금의위 총령이 마를 발현시킨다면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잔해를 일일이 삼매진화로 불태운 이광이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낙양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군."
"낙양이요? 거기는 적의 본거지인데..."
"그러니까 가는 것이다. 저 놈이 이 정도로 약체화되었을 때가 절호의 기회지."
이광이 단호하게 말했다.
"대뢰옥을 뚫고 황연 대장군을 구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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