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5 ----------------------------------------------
암천향(暗天鄕)
이광은 금의위의 천호를 잡아놓고 그에게 즉시 팔괘봉인을 펼치기 시작했다. 뇌신류의 비전 고문술인 팔괘봉인은 굉장히 잔인한 고통을 상대방에게 먹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강철로 만들어진 인간이 아닌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푸콰악
"아아아아악!! 살려줘. 제발... 모두 말할게."
어찌나 고통이 심했는지 관자놀이의 혈관이 동시에 3개나 터지며 발광을 하는 금의위 천호였다. 이광은 팔괘봉인의 고통을 잠시 멈춰두고는 안쓰러운 듯 말했다.
"진작 말하지 그랬나. 하긴 금의위면 어쩔 수 없겠지만."
"으으으..."
나는 그 광경을 보자 혀를 내둘렀다. 나도 팔괘봉인을 써본 적이 있었지만 저기에 당한 자는 지옥의 고통을 겪는 듯 했다. 오죽했으면 온갖 고문에 대한 훈련을 다 받은 최정예인 금의위 천호가 반 각도 버티지 못하고 입을 열겠는가.
"진짜 황연은 어디있지?"
"헉... 허억... 아산홍에..."
콰직
이광은 망설이지 않고 천호의 오른쪽 눈알을 뽑아 버렸다. 수정체가 투명하게 흘러내리면서 천호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대충 거짓정보를 흘리면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군. 내가 정보기관의 고문부 일을 해보지 않은 줄 아나?"
"죄... 죄송... 살려주십... 제발..."
퍽
이광이 천호의 눈알을 밟아서 터뜨렸다. 그리고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잘 들어라. 나는 네 신체의 반응, 네가 통제할 수 없는 불수의근의 움직임, 심장의 떨림까지 감지해서 거짓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바로 알아."
"헉... 허억..."
"널 못 죽일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저기 널부러진 놈들 중에 한 놈 더 살려두었으니까."
금의위 천호가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진짜로 마음이 꺾인 것이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살려줄 거냐...?"
"네 정보에 달렸지."
금의위 천호는 그로부터 약 한 식경동안 정보를 읊었다. 간혹 이광이 질문한 것에는 열성적으로 대답했다. 심장소리까지 읽어낸다는 이광에게 위증이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그 정보에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럼 2차 심문이다."
이광은 대충 다 듣고 나서 그를 지혈해준 후, 다시 한 식경의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정보를 들었다. 재확인하는 작업에 가까워보였다. 금의위 천호의 체력이 거의 다 떨어져서 기절 직전이 되었을 때, 이광은 조용히 그의 사혈(死穴)을 짚었다.
투욱
천호의 목이 앞으로 꺾이자 이광이 중얼거렸다.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사부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광은 진소청의 물음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무관으로 돌아간다."
"네?"
"황연 대장군이 낙양의 대뇌옥(大牢獄)에 갇혔다면 무력으로 빼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더 이상 했다가는 반역죄가 되고."
나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황당해서 말했다.
"금의위를 이렇게나 몰살시킨 게 이미 반역죄 아닙니까?"
"보통이라면 그렇겠지. 그러나 나는 아니다."
"......?"
"자세한 설명을 할 시간이 없다. 흔적을 모두 불태우고 가자."
우리 셋은 다같이 반시진동안 시체와 잔해를 모았다. 그리고 한 곳에 모아서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서 태웠다.
화르륵
어차피 금의위에서 처리를 하려고 하겠지만 기왕이면 이 쪽에서 처리하는 편이 마음이 편한 것이다. 왜냐하면 금의위가 시체에 남은 무공상흔을 조작해서 누명을 씌울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 꽤 잔혹한 짓인 거 같은데 나도 참 무덤덤해졌군.'
이만큼 학살을 저지르고 시체를 불로 태우는 행위 자체가 사파스러운 것이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그런 걸 신경쓰지는 않았다. 시체 타는 냄새가 구수하게 흐르는 동안 이광이 말했다.
"저기서 기웃거리는 여자아이가 있는데 혹시 아는 사람이냐?"
"네?"
"아까부터 벨까말까 고민 중이다."
나는 이광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안력을 집중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수풀 속에서 빼꼼하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왠 소녀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녀가 미호라는 것을 요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에 급히 말했다.
"미호! 여기까지 따라왔어?"
"히잉..."
미호는 울먹거리며 걸어와서 내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그리고는 진짜 순진무구한 소녀처럼 울먹울먹거렸다.
"무서웠어..."
"아 그래 알겠어..."
무서울 리가 없을 것이다. 아마 구미호답게 깔깔대면서 어디선가 잘만 구경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태파악이 끝나자 합류하려고 이쪽에 들어오는 연기를 한 것이다. 나는 미호를 달래는 척 하면서도 이광이 갑자기 공격하지 않을까 싶어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심장소리가 크게 느껴져."
미호가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미호한테 흥분한 게 아니라, 삶과 죽음의 위협 때문에 긴장한 거였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광에게 미호를 소개했다.
"이 쪽은 저와 동행하는 미호입니다. 술법사 친구입니다."
"호오... 술법사라."
"수상한 아이가 아닙니다."
"믿겠다."
이광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식은땀이 흘렀다.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없었다. 이광에게 저렇게 쉽게 거짓말을 간파하는 안목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앞으로 그를 상대할 때는 좀 더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그닥 다그닥
그리고 나는 이광을 따라서 진소청과 함께 청룡무관으로 귀환했다. 며칠 전의 학살이 거짓말인 것처럼 관중은 평화로웠다.
청룡무관으로 되돌아오고 나서는 내 짐정리를 하고, 미호의 거취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광은 미호를 보고는 말했다.
"너도 청룡무관에 입관하고 싶으냐?"
"응! 하고 싶어!"
미호의 이번 변신주제는 '순진무구한 술법사 소녀'인 듯 했다. 어찌나 연기가 감쪽같은지 이광조차도 그 본질을 분간 못하는 듯 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이광이 말했다.
"그럼 삼선 수련생으로 들어가거라."
"알았어!"
"수련비는 공짜로 해 주마."
그렇게 대요괴 미호가 청룡무관에서 무공을 배우게 되었다.
"......"
나는 그 과정을 보고있다가 황당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날 늦은 밤에 미호의 방문을 받았다. 미호는 둔갑술을 이용해서 극히 은밀하게 숨어든 듯 했다. 이번에는 가슴이 풍만한 절세미녀의 모습으로 변한 미호가 내 턱선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낮에 왜 그렇게 긴장했어?"
"농담하지 마. 너는 요괴잖아? 무슨 생각으로 이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야? 들키면 어쩌려고!"
나는 강하게 항의했다. 그 동안은 이광의 눈치가 보여서 아무런 말도 못 꺼냈지만, 미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정말로 조마조마했다. 미호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걸고 이광과 싸울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였다.
그러자 미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척 하다가 살포시 웃었다.
"걱정 마. 요괴도 무공 잘 익히니까. 어차피 내공이란 것도 기(氣)의 흐름이니 내 내단(內丹)의 힘을 끌어쓰면 별다를게 없을걸?"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꺄하하, 알아 알아."
그러더니 미호가 갑자기 나를 꼭 껴안았다. 난데없는 포옹에 뭉클한 가슴이 느껴졌다. 미호는 내 귓볼을 살짝 빨았다.
"으읏."
전기가 흐른다.
나는 귓볼을 빨리자 등골에 소름이 끼치고, 하초가 갑작스럽게 팽팽하게 발기함을 느꼈다. 구미호의 색정이 내 몸을 강하게 자극한 것이다. 금새라도 하초가 젖을 것 같았다. 미호가 호호 웃었다.
"어머 선 거야?"
나는 급히 내공을 끌어올려서 성적 흥분을 억제하고는 말했다.
"윽, 장난치지 마."
미호가 자신의 은빛 꼬리로 내 팔목을 살며시 감더니 말했다.
"10년 동안 너를 지키는 게 나의 일이야. 가까이에 있지 않으면 힘든 게 분명하잖아? 본녀는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해서 인간소녀 '미호'로 살아가며 네 곁에 있을 것이다."
나는 신경질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조용히 좀 있어."
"흐~응, 맨입으로?"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데?"
"그야 물론 먹을 걸 사 줘야지."
나는 기가 막혔다.
"대요괴 구미호의 식탐이라니..."
미호가 새침해져서 말했다.
"흥, 모처럼 몇백 년 만에 다시 중원에 돌아왔다구. 맛있는 걸 먹고싶은 게 당연한 게 아니냐? 동영 땅은 너무 척박한 곳이라서 음식이 그리 다양하지 않았단 말이다."
"알았어."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몰래 숨겨두었던 금은보화 상자를 꺼냈다. 여기에는 해적두목의 비밀공간에서 얻어낸 수많은 금은보화가 들어 있었다. 나는 개 중 귀해보이는 귀금속과 목걸이를 한움큼 집어주며 말했다.
"이걸로 10년동안 네 멋대로 사먹어."
미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흐~응, 이걸로 퉁치시겠다?"
"으윽... 대체 뭘 더 원하는 거야."
"글쎄, 사랑?"
"뭐..."
쿠당탕
미호가 갑작스럽게 내게 달려들어서 넘어뜨렸다. 그리고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면서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미호가 마치 나를 덮치는 듯한 형상이었다. 나는 내공을 쓰면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황당해서 말했다.
"뭐 하자는 거야?"
매혹적인 향기가 흘러나왔다. 미호의 눈동자가 나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백웅. 본녀는 궁금하다. 천계에서 하계로 내려온 후, 수백 년 동안 본녀를 위해서 행동한 자는 없었어. 매혹술이 아닌데도 본녀를 위해서 무언가를 부탁하고, 도와준 존재는 네가 처음이니라."
"......"
"그리고 질투가 나느니라."
미호의 섬섬옥수가 내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갈망이 떠올라 있었다.
"네가 그토록 미안해하는 전생(轉生)에서의 나 자신을... 질투하게 되느니라."
미호도 나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나 호기심에 가깝다.
나는 아직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으나 그게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미호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미호의 이런 집착은 잘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 말대로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
"뭐라고?"
"어떤 마을에서 쉬어갈 때였지. 그 때도 너는 나를 유혹했지만 나는 너를 거부했어."
"왜지...?"
미호의 의문에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내게는 목표가 있으니까."
"복마전이란 자들을 쓰러뜨리는 것?"
"그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지 않느냐."
"그 때도 너는 그렇게 말했어. 내 대답도 이번에도 같아."
나는 일어서지 않고 깔린 채 천천히 대답했다.
"그걸 이루어내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
"네가 매혹술로 나를 원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백웅. 너는 너무 어렵게 사는게 아니냐?"
미호가 내 몸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늘씬한 절세미녀의 몸뚱이로 등을 돌리고 걸어가며 말했다.
"네가 괴로웠던 것은 [기억]에 불과하다. 네가 살아가고 있는 건 [현재]이다. 어차피 지나고 나면 과거일 뿐일진대 어째서 현재를 즐기려 하지 않느냐?"
"그렇게 살면 나는 반드시 후회하게 되니까."
"후회라?"
나는 몸을 반쯤 일으키고 말을 이었다.
"벌써 몇 번이나 후회했어. 더 이상 후회하고싶지 않을 뿐이다."
"흐응..."
미호는 갑자기 내 앞으로 전이술을 써서 순간이동했다.
"엇."
그러더니 내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팔으로 내 머리를 둘러 안았다. 이어서 강하게 입맞춤을 했다. 따뜻한 게 입 안에서 엉켰고 기분좋은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나는 미호의 매혹능력 때문에 계속해서 그녀의 농염한 육체에 손을 대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한참 후 기나긴 입맞춤이 끝나자 미호가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본녀의 자존심이 상했다."
"뭐라고?"
미호가 깔깔 웃었다.
"이렇게 된 이상, 10년 동안 네가 본녀에게 매달리게끔 해 주마, 오호호."
쉬이익!
미호는 벼락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 꿈결같아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끝까지 참아낸 건 좋은데, 어느새 내 하초는 진득하게 정액으로 젖어 있었다. 가능한한 자제심을 발휘해 버렸으나 진심을 다하는 구미호의 매혹력은 억지로 몸을 반응하게끔 만든 것이다.
"으아아아... 그자식."
나는 한탄을 하며 옷가지를 벗어서 야간에 옷을 갈아입고는 빨래를 하러 가야 했다. 창피해서 누군가에게 맡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탕탕탕탕
야간에 방망이로 옷을 두드리고 있자 황당할 지경이었다.
' 이런 빌어먹을...'
그리고 복마전에 대한 적개심이 한층 늘어났다.
다음 날부터 나는 이광에게 가서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광은 이미 내 수준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가타부타 긴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내게 말했다.
"너는 검(劍)의 길을 가라. 만승검결을 위주로 수련해라."
"네."
"그게 네 적성에 맞겠구나."
이광에게 보여주었던 초절정의 한 수가 그의 심정을 굳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저기, 질문이 있습니다만..."
"무엇이냐?"
"제 스승께 듣기로 저희 뇌신류는 풍신류와 숙적 관계라 했습니다."
"그렇지."
"헌데 동시에 뇌신류의 무공은 풍신류의 무공에 대해서 7할의 승률을 가진다고도 하셨습니다. 과거 스승님이 제대로 대답을 안 해주셨던 부분인데, 그러면 어째서 뇌신류는 풍신류에게 쫓겨난 것입니까?"
"......"
이광은 한 방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무척 복잡한 과거사가 있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풍신류에 비해 무예가 뒤져서 밀려난 건 아니라는 것이다."
"네..."
지금의 관계로는 아직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비사(秘事)인 듯 했다. 이광은 잠시 힘있게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너는 재능이라는 것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니, 나는 너에게 큰 강요는 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지도해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알려주겠다. 나 이광은 너라는 뇌신류의 새로운 제자가 생긴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나는 먼저 뇌영검법과 만승검결을 펼쳤다.
확실히 초절정의 경계를 뚫었기 때문인지, 내 검결은 하나도 막히지 않고 면면부절 확실하게 이어져서 흘렀다. 특히 2개 이상의 요결을 합치는 합결(合決)에 있어서도 무난하게 성공하였기에, 내 검술의 위력은 예전보다 두 배 이상 상승했다고 봐도 좋았다.
내 시연을 보던 이광이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뇌신류 본연의 수법만 쓰는 게 아니라 여러 개를 섞어서 무공을 보조하는군. 어떤 수법들이냐?"
"꿰뚫어보셨군요."
나는 쑥쓰럽게 머리를 긁은 후 대답했다. 속여봤자 별로 의미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천신공의 진기도인법을 이용해서 복잡한 흐름을 통제하고, 화씨백팔침의 뢰풍상박을 이용해서 자동으로 붙게끔 유도하고 있습니다. 너무 복잡한 검결일 경우에는 이 방법이 큰 도움이 됩니다."
"현천신공과 화씨침술...!! 뛰어난 일류무공을 배웠구나."
"기연이 있었습니다."
이광은 진정으로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광에게 현천신공과 화씨백팔침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이광은 잠시 듣고 나서 머릿속에서 곱씹더니 말했다.
"확실히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응용이군. 하지만 효과에 비해서 내공이 비효율적으로 소비되는 면이 있다."
"그렇습니까?"
"아마 네가 천령단급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기에 몰랐던 단점이겠지."
이광이 말했다.
"그 구결을 가르쳐 다오. 내가 조금 연구해 보겠다."
"네."
내가 이광에게 현천신공과 화씨백팔침의 요결을 알려주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딱 사흘째 되던 날 이광이 내게 말했다.
"이렇게 해 보아라."
그리고는 현천신공과 화씨백팔침을 응용한 듯한 새로운 구결을 내게 알려 주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이광이 가르쳐 준 방법대로 따라해 보았다.
슈슈슈슉!
"......!!"
나는 만승검결에서 뿜어져나오는 내공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걸 알고 경악했다. 어딘지 어설프게 도와주는 면이 있던 현천신공과 뢰풍상박이 체내에서 균형을 이루면서 차라리 하나의 새로운 무공으로 태어난 것이다.
실력이 이렇게 쉽게 늘어날 줄이야.
내가 깜짝 놀라서 가만히 서 있자 이광이 흡족한 듯 말했다.
"이건 뇌신류의 새로운 비기(秘技)로 만들자꾸나. 이름은 백웅결(白熊決) 어떠냐?"
정말 경악스럽다.
그냥 들은 것만으로, 사흘 만에 새로운 비기를 만들어 버리다니.
발안은 내가 했지만 완성시킨 건 이광이 되어버린 것이다.
눈 앞에 있는 건 진짜 무학의 천재였다.
나는 왠지 분한 마음이 들어서 떫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름이 너무나 구립니다..."
"......"
하지만 결국 이광의 주장에 의해 새로운 비기의 이름은 백웅결로 결정되었다. 이광은 백웅결을 진소청에게도 전수하고자 했고 내게 허락을 맡았다. 나는 선선히 허락을 해 주고는 내 나름대로 백웅결을 다시 연습했다.
실력이 부쩍부쩍 늘어난다. 백웅결을 도입하자 진기의 이동이 한결 수월해졌고, 예전에는 시도할 수 없었던 변초도 많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실력이 쉽게 늘어나는 느낌은 벽을 뚫은 추진력 덕분이리라.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였다.
이변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간만이군."
청룡무관의 현관 앞에 서 있다가 서서히 걸어들어오는 인물의 얼굴은 꿈에서도 잊지 못할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저 가면과 인상, 금의위 총대장의 복장 -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런 인물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금의위 총령!
"......!!"
나는 그를 보자마자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어서 피가 들끓어 올랐지만 나는 억지로 참았다. 금의위 총령은 와룡전 앞에 멈춰섰고, 그를 맞이하러 이광과 진소청이 나왔다.
"어이! 썩 들어가!!"
청룡무관의 사범들이 곳곳에서 우글거리며 이방인을 구경하는 문하제자들에게 호통을 치며 집어넣었고, 이윽고 이 자리에는 금의위 총령을 포함해서 4명만 서 있게 되었다. 대련장에서 서로 3장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휘이잉
차가운 바람이 흘렀다.
금의위 총령은 빙긋 웃으며 이광에게 인사를 했다.
"반갑네 친구. 15년 만인가?"
이광이 무미건조하게 맞받았다.
"그렇군."
"수병곡에서의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자네가 설마 직접 나설 줄은 몰랐어."
"그다지 움직일 생각은 없었네. 금의위에서 행하는 게 애국(愛國)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허나 내 기휘(忌諱)를 범한 게 자네들의 잘못이었지."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이광을 바라본 금의위 총령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참 후, 그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기휘라! 청룡 자네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금의위를 상대로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일세."
"되려 불쾌하더군. 고작 5개조 정도로 나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금의위 총령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네. 다시 말해두지만 우리는 자네가 올 것이라 예상치 못했어. 장경익 따위가 구원을 요청해봤자 기껏해야 정사파의 한두 문파일 거라고 생각했지. 설마 그 어리버리한 놈이 자네에게 직접 요청하는 모험을 감행할 줄이야."
"모험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 않은가?"
"크흐흐, 청룡시절의 악명을 전혀 생각지 못하는군. 장경익은 자네가 버럭 소리만 질러도 오줌을 지리고 기절할 놈이야."
"......"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던 중 이제야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즉, 금의위는 애초에 청룡 이광이 올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되려 가짜 황연장군을 미끼로, 어설프게 의협을 외치는 불순분자들을 없애기 위해서 금의위 5개조를 잠복시키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청룡 이광이 와서 모조리 때려부수는 바람에 그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듯 했다.
금의위 총령이 힐끔 나를 보더니 말했다.
"듣던 대로 새 제자가 생겼군."
"그렇게 되었네."
"자네 제자의 협명(俠名)이 사해에 떨치고 있더군. 좋은 제자를 두게 된 걸 축하하네."
"자네도 제자나 하나 두지 그러나?"
"제자를 두기에는 하는 일이 너무 은밀스러워서 말일세."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던 금의위 총령이 말했다.
"서로가 알다시피 우리는 자네를 못 건드려. 선제(先帝)께서 자네에게 내린 청룡위(靑龍位)의 권능은 아직도 유효하지. 그러나 자네도 자기방어 이상으로 나서게 된다면 피할 수 없는 역모죄를 뒤집어쓴다는 걸 명심해 두었으면 하네."
"자네, 아주 병신처럼 변했군. 여기까지 와서 하는 게 기껏 협박이란 말인가?"
이광이 툭 쏘자 금의위 총령이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과거의 친구에게 저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곧 냉정을 되찾고는 말했다.
"그럼 뭘 더 할까? 말해두지만 이번 일에 나선 게 자네가 아니라 다른 놈이었다면 십만 대군을 동원해서라도 구족을 멸했을 게야! 여기서 적당히 하고 서로의 길을 가자 그 말일세."
"이제 보니 아주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가 보군."
"뭐..."
능글능글하게 금의위 총령의 속을 긁던 이광이 차갑게 웃었다.
"정 그렇게 심심하다면 내 제자들에게 한 수 지도편달 해 주는게 어떤가?"
"지도편달?"
"아니 뭐, 황궁에서 너구리굴에 오래 있다 보면 신공절학이 심후해지나 궁금해서 말이지. 이 친구의 부탁 좀 들어주게나."
"......"
금의위 총령은 사납게 이광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좋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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