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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4화 (114/1,615)

0114 ----------------------------------------------

암천향(暗天鄕)

잠시 후 이광은 진소청을 불렀다. 진소청은 이광에게 나를 소개받자 흐뭇하게 웃었다.

"나는 진소청이라고 해. 잘 부탁하네, 사제."

"네."

내가 이광의 제자가 되기로 했으니 이제는 사형제지간이 성립하는 것이다. 진소청이 힐끔 바깥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방일은 사제가 제압한 건가?"

"네. 이야기가 맞지 않아서."

"살수를 쓰지 않았다면 상관 없겠지."

이광이 말했다.

"이리 와 봐라.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네."

이광은 좀 더 와룡전의 내밀한 공간으로 들어갔고, 나와 진소청은 그를 따라서 들어갔다. 나는 따라들어가면서 의외라는 생각이었다.

' 청룡무관에 적응할 시간 하루 정도는 줄 줄 알았는데 바로 얘기를 한다는 말인가?'

황연 대장군의 구출!

그것은 내 생각보다 훨씬 중대한 사태인 듯 했다. 외부와 격리된 별실에까지 들어간 이광은 탁자에 앉았고, 우리에게도 앉을 것을 권했다. 세 사람이 모두 의자에 앉자 이광이 이야기를 꺼냈다.

"황연 대장군께서 현재 금의위와 동창의 손에 감금되어 있다."

"......!!"

진소청은 흠칫하고 놀랐다. 그도 황연 대장군이 누군지 알고 있는 기색이었으며, 지금의 반응을 보면 단순히 알고 있다는 수준이 아닌 듯 했다. 아마도 진소청은 황연과 직접 친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여기 백웅이 가져와 준 정보다. 장경익이 의뢰했고."

"흐음..."

진소청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

"장경익은 산동성을 관장하는 숙장인데 그와 친분이 있으십니까?"

내 질문에 이광이 차갑게 웃었다.

"친분은 무슨... 내가 청룡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선을 잘 타서 그 위치까지 올라간 놈이라서 개인적으로 관심도 흥미도 없다."

"......"

산동성주에 버금가는 군권을 지닌 장경익을 이렇게 하류로 취급할 수 있는 이광의 전성기 시절이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광이 힐끔 지도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지도가 있으니 가서 구출하면 되겠지."

진소청이 나직이 말했다.

"이건 함정입니다."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정말로 금의위나 동창이 황연 대장군을 감금했다면 이렇게 보이는 지형에 놔뒀을 리가 없습니다. 적어도 황궁의 뇌옥에 투옥했겠지요."

"그렇겠지."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내심 놀라움을 느꼈다. 귀계에 익숙한 미호의 직감에 못지 않게 두 사제의 두뇌회전이 빨랐기 때문이다. 묵묵히 지도를 살펴보던 이광이 말했다.

"하지만 이 함정은 뛰어나다. 알면서도 안 갈 수가 없기 때문이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이렇게 친절하게 편지배달까지 시키는 걸 보면, 당장 황연 대장군의 목숨이 위험하지는 않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계책은 인질을 섣불리 다루지 않으니."

"그러나 황씨 일족은 갈수록 위험해질 겁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금의위가 신변을 확보했는데 누군들 안전하겠느냐."

이광의 말은 한 가지 전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즉 그는 황씨 일족보다 황연 대장군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자 이광의 말이 이어졌다.

"청류(淸流)계의 인사들을 통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게 가장 상책(上策)이다."

"청류계라면..."

"알고있는 놈이 몇 놈 있다. 적당히 움직여줄 수 있겠지."

그렇게 말한 이광이 힐끔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는 상책과 하책을 함께 쓰겠다."

"직접 쳐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후후.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놈들의 도발이 어이가 없구나. 그리고 새로운 제자가 이제 막 돈오의 경지에 올랐으니 실전을 통해서 향상시켜주고 싶다."

나는 이광의 말을 듣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 그랬던 거군.'

내가 장경익에게 편지배달을 받지 않았던 역사속에서도, 이광은 어떤 식으로든 황연의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광은 멍청이가 아니었기에 짜놓은 함정으로 직접 걸어들어가지 않았고 청류계 인사를 이용해서 압박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제자로 들어온데다가 내게 실전경험을 시켜주고 싶기에 굳이 함정에 제발로 걸어들어갈 생각인 듯 했다. 나는 이광의 그 발상에 기가 막혀서 말했다.

"무슨 소리십니까? 금의위의 수많은 고수들이 짜놓은 함정인데 거기를 제발로 들어가시겠다고요?"

지금의 나라고 해도 뇌명을 끌어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금의위 2개 조를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물며 그 곳에는 금의위가 있는대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 겨우 셋이서 가겠다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이광이 말했다.

"이 함정은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운 함정이다. 그래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겠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 되려 놈들을 좀 밟아주면 정신을 차리고 쓸데없는 계책을 걸어오지 않을 것이다."

"......"

"자, 그럼 당장 짐을 싸서 출발하자. 목표는 수병곡(水倂谷)이다."

이광의 행동은 전광석화같았다. 하루나절 정도 준비를 해도 모자랄텐데 그냥 닥치고 간다는 태도였다. 나는 별관으로 돌아와서, 옆에서 부지런히 짐을 싸고 있는 진소청에게 황당해서 말했다.

"사형께선 이게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어? 무모하다고? 왜?"

"......"

되려 당황한 듯 반문하는 진소청을 보자 할 말이 없어졌다. 진소청은 진심으로 그정도 함정쯤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아니 그럼 아까 왜 그렇게 무게잡은 거야?'

내 표정이 일그러지자 진소청이 껄껄 웃었다.

"하하, 사제. 걱정 마. 그냥 시원하게 한바탕 하는 거니까 부담감 갖지 말게."

"[한바탕] 말이죠..."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과거 진소청과 함께 구파일방 종남파 현판깨기를 했을 때 진소청이 말하는 [한바탕]이 얼마나 가공할만한 파괴를 불러오는지 옆에서 두 눈으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경험이 없었다면 진소청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 이 인간들은 파괴마(破壞魔) 기질이 있어.'

훗하고 웃은 진소청이 자신의 봇짐을 꽉 끌러매며 말했다.

"그리고 황연 어르신은 내게는 할아버지같은 분이야. 나는 이렇게 직접 구하러 가게 되어서 도리어 기쁘다."

"네?"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황연 어르신께서 어린 나와 놀아주었던 것 같아. 아마 내 부모님은 황연 어르신과 절친한 관계였겠지..."

"......"

나는 침묵했다. 진소청 사형과 함께 지낸지가 한두 해가 아니라서 그의 과거사는 잘 알고 있었다.

진소청의 부모는 알 수 없는 사고에 휘말려서 죽었고, 고아가 된 진소청을 데려다 키운 게 바로 이광이라고 들은 바가 있었다. 즉 이광은 진소청에게 있어서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이광에게 있어서도 진소청은 아들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진소청은 무(武)를 평생의 목표로 삼아서 정진하는 것에 모든 정신을 쏟을 수 있다고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사형. 만일에 정말로 거기에 황연 대장군이 있고, 그 자들이 대장군의 목숨으로 위협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응?"

"황연 대장군이 죽는 걸 보기 싫으면 무기를 버려라! 라고 한다던지."

"흐음..."

내 질문에 진소청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럼 뭐, 달려들어서 싸그리 죽여버리는 수밖에."

의외의 대답이었다.

"네? 황연 대장군은..."

"내가 잡히면 어차피 그 분도 죽겠지. 그럼 그냥 내게 복수를 맡기시라고 한마디 해 두고, 망설임없이 쓸어버리면 되는 거야."

"......"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게. 적이 금의위이며 그들이 작정하고 나섰다면 어차피 타협은 불가능하니까."

그렇군.

나는 진소청이 굉장히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서글서글하고 온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광만큼이나 무심무정한 인물인 것이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할 줄 알며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었다.

진소청이 봇짐을 다 챙기고는 말했다.

"사제와는 첫 대면이지만 왠지 마음이 잘 맞을 것 같군. 이번 일 함께 잘 해내자구."

"알겠습니다, 사형."

곧이어 이광, 진소청, 나로 이루어진 3인의 구출대는 청룡무관을 출발했다. 우리는 말을 타고 관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머지 않아서 함곡관을 지날 수가 있었다. 함곡관에서 잠시 쉬던 이광이 말했다.

"수병곡은 여기서 삼백 사십 리 떨어져 있다. 목적지에서 백 리를 남겨두고 도보로 전환하겠다."

"알겠습니다."

그 때였다. 머릿속에 영언(靈言)이 들려 왔다.

[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너 왜 그렇게 멀리 있어?]

미호가 술법으로 원거리에서 이야기를 걸어오는 중이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마땅치 않아서 망설였다. 아니, 그 전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것인가?

[ 그냥 머릿속으로 강하게 생각해. 시간 없으니까 빨리!]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까지의 경과를 빠르게 말했다. 그러자 미호가 말했다.

[ 알았다. 본녀는 수병곡이란 곳에 먼저 가 있을테니 거기서 보자.]

그리고 영언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영적으로 생성된 가느다란 실을 통해서 짧은 시간 유지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호가 있으면 심문에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미호를 말리지 않았다.

다그닥 다그닥

말을 타고 대략 하루나절을 달리자 목표로 한 수병곡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이광은 예고했던 대로 백 리 떨어진 곳에서 말을 버렸고, 그때부터는 도보로 가기 시작했다. 갈대밭 근처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쳐라!!"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흑의를 입은 자들이 튀어나왔다. 갈대밭의 사방팔방에서 칼이나 창, 기문병기, 혹은 화살따위를 쓰는 놈들이 어마어마하게 달려들었다. 대충 일견하기에 그 숫자가 기백 명은 되어보였다.

이광이 귀찮은 듯 말했다.

"너희가 처리해라."

"네."

나는 북쪽, 진소청은 남쪽을 맡기로 암묵적인 합의가 되었다. 나는 곧장 검을 들고 전방으로 달려들었고 즉시 검기를 뿌려서 세 명을 순식간에 회쳐버렸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서 세 바퀴를 돌며 무려 열두 명을 추가로 참살(斬殺)했다.

순식간에 열댓 명이 검하고혼이 되자 흑의인들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으, 으으."

"뭐야?! 이놈들 뭐 이렇게 쎄..."

나는 놈들의 무공이 금의위급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류라는 걸 알아챘다. 잘해봤자 이류급이었고 일류급이 간간히 섞여있는 정도였다. 그나마도 정식 금의위 대원과 비교하는 게 모욕인 수준이었다.

' 아마 금의위가 정체를 숨기고 의뢰한 사파놈들이거나 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었다.

의술은 인술이지만, 내 목숨을 노리는 놈까지 봐줄 정도로 착하게 굴 이유가 없다. 하물며 그게 금의위의 주구라면 짜증을 해소할만한 노리개에 불과하다.

촤좌좍

나는 차갑게 웃고는 그대로 만승검결 쾌(快)결과 환(幻)결을 섞어서 날뛰기 시작했다. 검기가 쏟아질 때마다 검염이 크게 일렁였고, 이내 검의 흐름이 폭풍우를 만들어 내었다. 검의 궤적에 있던 모든 생명이 베여 나갔다.

"크아아악!"

진소청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진소청은 그저 가볍게 몇 번 움직일 뿐이었는데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적들의 머리통이 무형의 공격에 터져 나갔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보다 훨씬 더 공포스러운 죽음이었다.

"아아악!!"

"끼악!"

선혈이 갈대밭에 한가득 뿌려졌다.

피비린내가 천지에 가득했다.

그리고 습격이 시작된지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놈들의 숫자가 4할 이하로 줄어들자, 놈들은 덤벼드는 걸 멈추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살려줘!!"

나와 진소청은 거의 동시에 이광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광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다 죽여라."

"알겠습니다."

몰살 명령이 떨어지자 나와 진소청은 날듯이 달려가서 잔당들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척살했다. 놈들이 목숨을 구걸할 새도 없이 깔끔하고 빠르게 다 죽여버린 셈이었다.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싸그리 없애버리고 돌아오자 이광이 말했다.

"잘했다."

"굳이 다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죽여주는 게 자비다. 금의위가 저 놈들을 멀쩡하게 죽여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

나는 이광의 말 뜻을 깨달았다. 어차피 살아남아봤자 금의위의 고문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기 때문에, 금의위에게 정보를 주는 걸 차단할 겸 척살한 것이다. 그게 이광이 말하는 '자비'의 의미였다.

' 역시 황궁무관 출신이라서 금의위의 잔인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군...'

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이광이 말했다.

"시작부터 이 정도라면 마지막에는 한가닥 하는 놈이 대기하고 있겠구나. 기대된다."

그게 대체 왜 기대가 된다는 말인가.

'한가닥 한다'의 기준을 묻고 싶었지만 두려워져서 관뒀다.

이광의 상식과 내 상식이 전혀 다르다는 건 숱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수병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한 계곡의 초입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사자후가 울려퍼졌다.

[ 청룡(靑龍), 섣부른 짓 하지 마라! 우리는 황연을 인질로 잡고 있다!]

그리고 멀리에 보이는 절벽 위에 왠 시꺼먼 인영 두 개가 나타났다. 안력을 돋우어서 보니, 하나는 꽁꽁 결박되어서 의자에 묶여 있는 노인이었고 하나는 금빛 자수를 새긴 백의를 입은 사내였다. 노인이 황연인지는 몰라도 저 놈은 금의위가 틀림없었다.

이광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멍청한 놈. 십만 대군을 준비시키고 독연을 뿌리거나 화시를 깔아놓아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이광의 말은 단순명료했다.

"다 죽인다."

파앗!

이광의 신형이 다음 순간 전방으로 폭사되어 나갔다. 그리고 최소한 백 장 이상의 거리가 있는 절벽 위를 향해 갑작스럽게 신형이 솟구쳤다. 허공에서 한 번 더 뛰어오르는 것을 보면 이광의 경공술은 최소한 천상제(天上梯) 이상인 게 분명했다.

금의위는 설마 이광이 이 거리에서 뛰어들지는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다가 이를 악물고 황연을 떨어뜨리려 했다. 그러나 그가 몸을 한 치 움직이기도 전에 이미 이광의 창은 그의 머리통을 분쇄해버린 후였다.

피안개가 절벽 위에 흩날렸다.

[ 죽어라 청룡!]

절벽 위에 선 이광에게 마치 쏟아지듯이 금의위의 고수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위기감을 느꼈다.

' 적어도 4개조 이상...!! 너무 위험해!'

금의위는 엄선된 고수들이 모인 정예로써 일류 중에서도 상급의 고수들과 절정급 천호로 구성되어 있었다. 숫자로 보아서 금의위들은 최소한 40 명은 되었고, 그런 고수들이 달려드는 것은 너무나 흉험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음 순간 눈을 의심해야 했다.

[ 비기 뇌공섬(雷公殲)! ]

이광의 사자후가 터짐과 동시에 거대한 창격이 마치 폭풍처럼 떨어져 내렸다. 백 장은 떨어진 이 거리에서까지 격렬한 땅의 진동과 함께 뇌전의 빛이 시야를 아리게 했다.

콰과과과광

쿠콰콰콰쾅!!

천지가 뒤집혀졌다.

"으아아아아악!"

"크아아악!!"

폭음과 함께 절벽이 무너져 내렸고 십여 명의 금의위가 추락하면서 동시에 뇌공섬에 전신이 찢겨 죽었다. 살아남은 금의위들은 급히 뒤로 물러선 듯 했지만, 이내 이광이 란(欄)과 찰(刹)을 동시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 모조리 죽어버려라!]

퓨퓨퓨퓽

슈쾅

거대한 소용돌이같은 창격이 허공에서 생성되더니 수백 갈래로 공격을 했다. 금의위들은 나름대로 검기나 무공을 사용해서 저항하는 듯 했으나, 이내 뇌전의 창날이 불규칙하게 뻗어져 나오자 사지가 찢겨 나갔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피와 살이 푸른 하늘을 물들였다.

콰과과광

2차 폭음이 울려퍼졌다. 이번에는 절벽 정도가 아니라 수병곡 아래의 숲이 이광의 강기(?氣)에 통째로 날아갔다. 땅거죽이 뒤집어지고 가벼운 지진이 일어나는 듯 했다. 개 중 실력이 있는 금의위의 천호 5명이 동시에 힘을 합쳐서 이광에게 공격해 들어갔다.

"죽어라!"

"이 괴물자식!"

"으아아아아."

그들의 공격은 설령 나라고 해도 치명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화려한 검기의 나래였다. 그러나 강렬한 검기의 폭우를 쏟아내는 금의위 천호들에게서는 여유 따위는 없었고 목숨을 건 절박함이 느껴졌다.

이광이 광소(狂笑)를 터뜨렸다.

[ 크하하하하!! 금의위가 고작 이 정도냐?]

퍼퍼펑

놀라운 일이었다. 이광의 창은 마치 검기가 없는 것처럼 허공에서 모조리 공격을 지워버리고는 그대로 상급 절정고수인 금의위 천호의 전신을 수백 번이나 꿰뚫어 버렸다.

천호의 몸뚱이가 피쪼가리가 되어서 허공에 흩날리는 동안에 이광은 재차 허공에서 도약하더니 한 천호를 정수리에서부터 낭심까지 세로로 쫙 갈라버렸고, 옆의 천호에게 달려들더니 슬격(膝擊)으로 머리통을 터뜨렸다.

퍼엉

옆에서 한 명이 이광을 공격해 오자 그는 놀랍게도 허공에서 삼영분신(三影分身)을 쓰더니, 뇌신권(雷神拳)으로 가슴팍을 내려앉혀서 천호를 죽였다.

마지막 한 명은 목숨을 걸고 돌격해 왔는데, 이광은 아무렇지도 않게 창대로 그의 허리를 때려서 땅에 떨어뜨려 버렸다.

쿠웅

[ 너희도 따라가거라!]

순식간에 네 명의 절정고수를 격살한 이광은 마무리로 창을 생존자 금의위들에게 던졌다.

"으아아아아악!!"

"살려줘!"

투창(投槍)일 뿐이었으나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푸부부북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던 금의위들은 날아드는 창에 꼬챙이처럼 꿰여서 이 쪽으로 날아왔다. 그리고는 창이 절벽에 부딪히자 선혈이 터져나왔고, 잠시 후 창이 저절로 자전(自轉)했다.

푸콰콱

이광의 창이 저절로 돌자 꼬챙이에 꽂혀 있던 인간들의 몸뚱이가 회전에 갈려서 터져나갔다. 혈우(血雨)가 요란하게 흩날렸다.

여기까지 진행되는 데에는 채 반 각도 걸리지 않았다. 이미 장내에 우리를 제외하고 생존한 인간은 거의 없는 듯 했다.

굳이 있다면 피바다 속에서 벌벌거리며 기고 있는 금의위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아까 이광이 일부러 살려둔 듯한 금의위의 천호 조장이었다. 그는 창대에 얻어맞은 극심한 고통 때문에 기절하기 직전인 듯 했다.

타닷

그제서야 허공에서 내려와서 땅에 내려앉은 이광은 피빛으로 물든 자신의 창을 잡았다. 그렇게 무수히 쳐죽였는데도 이광의 몸에는 상처는 커녕 피 한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이광이 말했다.

"절벽 위에 있는 건 인근마을에서 잡아온 가짜였다."

"......"

"꽤 쓸만한 놈이 대기하고 있던 것 같은데 도망쳐버려서 아쉽군."

아마도 초절정고수나 그에 준하는 존재가 은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광의 신위를 보자 도저히 상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도주한 모양이었다.

' 미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전대 황궁 사대고수이자 섬서무림을 피와 죽음으로 장식했던 청룡(靑龍)의 힘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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