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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12화 (112/1,615)

0112 ----------------------------------------------

암천향(暗天鄕)

결혼하라고?!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나는 정말로 당황해서 허둥대었다.

보통 딸을 가진 아버지는 애착이 각별해서 딸바보가 되는 게 보통이 아니었단 말인가? 장내에서 서문혜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하는 기색이었고, 미호는 그냥 심드렁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평정을 되찾으려 애쓰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왜?"

단순한 한 마디의 반문이었지만 굉장히 대답하기 힘들었다.

' 왜라니... 대체 무슨 왜야.'

왜 거절했는가.

천하 사파중에서 으뜸가는 무영문 영애와의 혼사를 왜 거절하는가.

이 대답을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가는 사파 최강급 고수의 원한을 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몰랐다. 죽음의 공포가 몸에 엄습해 왔다. 하지만 나는 가까스로 공포심을 이겨내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제게는 아직 할 일이 있고, 서문혜 소저와 각별한 친분이 아니며 서로 잘 알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혼인을 하면 모두가 불행해질 것입니다."

"그게 아니겠지."

"네?"

"정(情)을 주기를 두려워해서 웅크려있는 모습이 보이는군."

"......!!"

심드렁한 검마 서문대룡의 대답에는 지나치듯 톡 쏘는 느낌이 있었다. 확실히 그의 말은 내 마음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놓은 모든 명분을 관통해서 핵심을 집어냈다는 건, 그가 이미 나라는 인간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파악했음을 뜻했다.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검마가 말했다.

"생각이 없다면 되었네. 나는 혜아의 뜻을 존중하지만, 그게 무영문이 몇 번씩이고 굽히고 들어가야 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

"아버님..."

서문혜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검마는 그녀를 일견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가 더 이상 이 일을 언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서문혜가 낙심해 있는 동안에 검마가 말을 이었다.

"허나 그 일과는 별도로, 우리 무영문은 그대를 은인(恩人)으로써 대접해야 한다. 백웅 자네는 어떤 보답을 받고 싶은가?"

"......"

나는 눈을 마주친 순간 순간적으로 검마 서문대룡이 어떤 인물인지 알 것 같았다.

절대자!

한없이 무심한 듯한 저 눈빛은 예전에 몇 번 느껴본 적이 있었다. 한백령이나 이광같은 절세의 고수들이 이따금 보이던 저 눈빛 -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이성, 무예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지니고 있기에 세상을 오시하는 눈빛이었다. 검마 또한 그들같은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무영문에 온 여인들이 제 2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전부인가?"

"네."

무영문이 내 일을 도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은 굴뚝같다. 그러나 현재는 청룡무관에 편지를 갖다주고 이후의 전개를 살펴보아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어설프게 무영문의 도움을 받았다가는 일이 꼬일 수 있으므로 우선 도움을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검마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의협(義俠)이라더니 과연 그렇군. 보기 드문 재목이야."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물론이다. 애초에 그녀들을 돌보고자 하는 게 혜아의 뜻이니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말한 검마의 말이 이어졌다.

"허나 그걸로는 보답이 충분하지 않겠군. 이를 어떡한다."

"으음..."

"뭐라도 하나 말해 보게. 들어줄 수 있는 한에서는 들어 주지."

나는 혹하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은 겸양의 의미로 거절한 셈이었지만 이렇게까지 권한다면, 뭔가 하나 이야기해도 손해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무영문주 검마에게 말했다.

"그러시다면 저와 비무를 하여 검(劍)의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호오...?"

"천하에 명성 높은 무영문주님의 실력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검마가 호탕하게 웃었다.

"으하하핫!! 정말 재밌는 친구야! 좋아 그러지. 대련장으로 따라 오게."

그리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쓱하고 몸을 돌려서 나가 버렸다. 그를 따라서 대련장으로 향하던 중 미호가 말했다.

"백웅. 그냥 결혼이나 하지 그랬느냐? 매일 떡칠 수 있었을 텐데."

"앗..."

옆에서 같이 걷던 서문혜가 황당한 듯 했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더 얘기할 필요가 없다. 나를 놀리려 들지 마."

"흐응..."

미호는 뭔가 히죽대는 기색이었고 서문혜는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일행과 함께 대련장에 도착하자, 그 곳에는 직경이 백여 장이나 되는 커다란 대련장이 있었다. 아마도 야산을 통째로 깎아서 만든 듯 했다. 대단히 넓은 규모에 놀라고 있자 우리와 삼 장 거리를 두고 마주 선 검마가 말했다.

"여인들은 비무대에서 내려가거라."

미호와 서문혜가 비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나자 나와 검마가 마주선 상황이 되었다. 검마는 물끄러미 내 허리춤을 보더니 말했다.

"그건 도(刀)같은데 그걸 쓸 생각인가?"

"아닙니다. 검을 쓰려 합니다."

"왠지 독특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그 도를 한번 볼 수 있겠는가?"

"그러시죠."

나는 순순히 그에게 명도 촌정을 건네주었다. 촌정을 받아들고 나서 한참동안 살펴보던 검마가 말했다.

"자네는 이 도를 무엇이라 알고 있는가?"

"명도 촌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도신(刀身)에 새겨진 물결무늬를 유심히 살펴보던 검마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것은 동영 땅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굉장한 요도(妖刀)일세."

"으음..."

"정식 이름은 요도(妖刀) 무라마사(むらまさ)라고 한다. 왜도(倭刀)의 정점에 속하는 존재이자 칼 수집가라면 누구든 얻기를 원하는 물건이지. 나도 이름만 들어보았는데 과연 대단한 무기로군."

나는 검마를 통해서 저 도가 요도 무라마사라는 걸 알게 되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호에게도 무라마사를 보여주었지만 미호는 칼같은건 흥미도 관심도 없다면서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요도라구요? 불길한 무기입니까."

"그것까지는 모르겠군. 하여간 뛰어난 무기인 건 사실이야."

내게 무라마사를 도로 던져 준 검마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검을 들게. 도법과 검법은 근본적으로 다르니."

"알겠습니다."

철컹

내가 근처의 대련장에서 강철검 한 자루를 꺼내서 뇌영검법의 기수식을 취하며 검마와 마주섰다. 이 대련장은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원칙으로 하는지 목검 따위가 없었다. 검마는 느긋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자, 시작하지."

"네?"

"왜 그러는가."

"... 검(劍)이 없으시잖습니까."

그랬다.

검마 서문대룡은 허리춤이나 등허리에 아무런 검도 가지고 있는 비무장 상태였다. 그저 팔짱을 끼고 있는 맨몸이었다. 분명히 검의 가르침을 준다고 했는데도 정작 본인이 검을 들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그러자 검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별호는 검마이기도 하지만 혈견휴(血見休)이기도 하다네. 가르침을 구하는 손님에게 진검을 썼다가는 피바다가 될 게야."

나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 뭐야?'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결국은 '칼이 없어도 너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무예계에서 검술로 초절정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도 이 정도로 무시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스으으...

뇌영검법의 기수식을 거두고 만승검결의 요결을 끌어내었다. 현천신공에 의해 복잡한 움직임이 가능해지고 침술구결 뢰풍상박으로 빠른 진기의 순환이 가능해진데다, 얼마 전에 검선 여동빈의 검학에서 약간의 가르침을 얻었다. 모르긴 해도 9번째 죽음 당시보다는 훨씬 실력이 늘어있을 게 분명하다.

내 자세를 지긋이 관찰하던 검마가 말했다.

"자네, 검(劍) 말고 다른 무기를 주무기로 삼고 있군?"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자네의 움직임과 호흡은 장병기(長兵器)를 다루는 자에 가까워. 창이나 극 같은 걸 주로 쓰겠군."

"......"

나는 입을 벌렸다.

지금 나는 완벽하게 검술의 기(技)를 끌어내고 있는데, 버릇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소한 흔들림 속에서 거기까지 읽어 내다니? 아직 제대로 일 초를 겨루지도 않았는데 눈 앞의 검마가 거대한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도끝도 없이 압도되어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 한 수 부탁드립니다."

"오게."

검도 없이 검의 가르침을 주겠다는 게 무슨 헛소린지 알아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순식간에 전방으로 신형을 내쏘았다. 강대한 내공이 실린 진각이 비무대 위를 박찼고 횡(橫)을 가르는 참격이 검마의 목을 노렸다. 만승검결 참(斬)의 구결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가속을 하는 특징이 있었다.

파앗!

갑작스럽게 나는 목표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내 검은 동시에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여기 있네."

등 뒤에서 이 장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긋하게 서 있던 검마가 말했다.

"제대로 검술을 배웠군. 나쁜 버릇이 별로 없어."

"함부로 평가하는 건 그리 좋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호흡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군. 내공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내 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품평을 한 검마가 서서히 손을 들었다.

"이번엔 내가 일 초를 써 보겠네."

나는 긴장하며 뚫어져라 그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가 일 초를 쓰겠다고 해서 내가 꼭 기다려야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수준을 감안하면 방어태세로 전환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숨을 죽이고 동체시력과 기감을 돋우고 있을 때 검마가 움직였다.

부웅

단순히 손을 들어서 파리라도 잡듯이 날려오는 느린 움직임이었다. 나는 그의 몸을 검으로 쉽사리 벨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검마의 손이 정확히 한 치의 간격을 더 파고들었을 때, 나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검기(劍氣)!

그것도 정밀하게 제련된 검기가 소용돌이치며 나를 공격해 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급히 검을 휘둘러서 공격을 쳐내기 시작했는데, 만승검결의 변(變)과 환(幻)의 요결을 합쳐도 그의 공세를 막아내기가 버거웠다.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조금씩 초식이 꼬이고 있을 때 연속으로 날아든 무형의 검기가 내 명치를 살짝 찔렀다.

피잉

"......"

나는 검마의 손가락이 내 명치 앞에 다가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검마는 정확히 일 초를 써서, 무기도 없이 내 모든 방어를 뚫고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위치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비무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죽어있었을 것이다.

내가 멍하니 탈력해 있자 검마가 말했다.

"좋은 검술이야. 우리 무영문의 무영검법(無影劍法)에도 뒤지지 않겠어. 허나 자네의 역량이 그 검술의 잠재력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하는군."

검마가 손가락을 치웠다. 나는 그제서야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검마 서문대룡의 진짜 역량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이광과 동급의 절세고수...!!'

이렇게 압도적으로 뭐가뭔지도 모르고 패배한 경험은 이광과의 대련 정도였다. 그 외에는 십이율주나 호법사자 등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내가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은 이광이었다. 검마가 마도팔마 최강이자 천하무림 최강자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유를 순식간에 체감할 수 있었다.

"그, 그건 뭡니까? 무기가 없으신데 어찌 검기를 쓰실 수 있는 겁니까?"

정말 이상하다.

원래 검기라는 것은 검을 오랫동안 수양한 일류고수가 피나는 노력 끝에 얻게 되는 완성형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심기체가 함께 갖춰져야 하므로, 무기도 없이 검기를 쓰는 고수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대문파 장로들조차도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검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손에서 유형화된 검기를 자유자재로 발출하고 변형시킨 것이다.

"반대로 묻지. 자네의 무기는 무엇인가?"

"......"

"창(槍)이 자신있어 보이는군. 그럼 이번엔 창을 써 보게."

검마가 허공섭물으로 근처에 있던 창을 끌어서 내게 던져주었다. 나는 얼떨결에 창을 받고는 이번에는 천뢰무극창의 자세를 잡았다. 검마는 이번에도 맨몸으로 나를 상대할 생각인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하압!"

이번에는 정신없이 란, 나, 찰을 이용한 응용초식으로 회전력을 이용해서 검마가 피할 곳을 막아버렸다. 창날이 살벌하게 날아드는 와중에도 검마는 마치 나비처럼 공간을 유영했고, 약 10초동안 내 공격을 지켜보다가 다시 느긋하게 손을 내뻗었다.

막을 수가 없다.

"......"

나는 또 다시 창을 엉뚱한 곳에 휘두르는 자세로 명치에 손가락을 맞이해야만 했다. 검마는 손가락을 치우고는 말했다.

"확실히 자네는 창을 검보다 잘 쓰는군. 그러나 창은 자네에게 맞지 않아."

"무슨 말입니까?"

"자네 스스로가 알고 있을텐데."

그렇게 말한 검마는 내 손에서 창을 뺏아들고는 힐끔 창극을 올려다 보았다.

"적성이라는 건 편의와 실질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

그리고는 천천히 창을 휘두르며 창식(槍式)을 시전하기 시작했는데, 그 창식은 딱히 초식으로 표현할 수 없는 움직임인데도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펼치는 뇌령팔식보다 훨씬 자유스럽고 영활한 움직임이었다. 차라리 춤사위에 가까운 그 움직임을 멍하니 보고 있던 중 검마가 마지막 찌르기를 허공에 가했다.

투웅!

창의 찌르기에 허공이 쪼개지는 듯 했다. 나는 그것이 더없이 정확하고 강력한 창술의 기본기, 찰(刹)이라는 걸 깨닫자 흠칫했다.

"이 정도는 극의를 얻지 않아도 아무나 따라할 수 있어."

창을 아무데나 땡그랑 하고 던져버린 검마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 자네의 무공은 창술과 검술이 조화를 이루어서 강함을 이끌어내는 최상승의 무공일세. 그러나 자네는 창의 강력함에 매혹되어서 창의 본질에서 멀어져 있어. 게다가 본래 적성은 되려 검술에 가까워 보이는군. 삼환(三環)이 끊겨 있으니 여러모로 난국(難局)이야..."

나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재능이 미천해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검마의 무공수준이 나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기에, 현재 고도의 무학을 논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의 가르침을 얻기로 한 선택은 잘한 것이었다. 무릎을 꿇어서라도 아쉬운 점을 알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던 검마가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그 나이에 그정도 수준의 절정무공을 익혔다면 바로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타지라서 긴장한 건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쉽게 말하지. 자네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고도의 명인(名人) 밑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창술을 다듬은 덕에 뛰어난 절정의 경지에 올랐어. 하지만 그 길은 자네의 길이 아니며, 억지로 창술만으로 경지를 진보시키려 하다가는 되려 퇴보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

검마가 쓴웃음을 지었다.

"뭐, 창술이 검술보다 뛰어나다는 주장에는 나도 동의하네. 창처럼 강력한 무기가 달리 없지. 같은 실력이면 창술사가 대개 검객을 이길 정도니까. 그러나 나를 비롯한 중원의 무수한 검객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검을 수련하게 되었다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무엇입니까?"

"창의 실전성에 매혹될수록, 창이 사람을 가리는 무기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일세. 검은 사람을 덜 가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빠르게 극한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검을 선택하게 되는 셈이지."

창은 사람을 가리는 무기이다!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청룡무관에서 수십 년 가까이 가르침받았던 나는 그 말을 왠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광은 줄곧 [재능]을 강조했으며, 재능없는 자에게는 아예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말뜻은 뇌신류(雷神流)의 무공 자체가 뛰어난 재능과 오성이 없다면 대성이 불가능한 고급무공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뇌신류의 주된 무공은 창 - 그러나 나는 이광에게서 창을 중점적으로 배우면서도 도저히 일정경지 이상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기초를 단련함으로써 절정수준에 이르는 것은 성공했으나 내 재능으로는 창으로 더 이상을 바라보는 게 힘들다. 그것은 창술이 고급에 이르면 이를수록 인간의 재능을 심하게 가리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검마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모순만 극복한다면 자네는 한단계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힘 내게."

"훌륭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내일부터 원하는 만큼 대련을 신청해도 좋네."

나는 검마를 따라 비무대를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 검이 내 적성에 더 맞다고?'

평소에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직접 타인의 말을 듣게 되니 감회가 달랐다. 원래 검을 전공으로 삼고 있었지만 창을 익혀야 한다는 이광의 주장에 창을 익혔고, 그 덕에 빠르게 수준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벽에 막히게 되니 다시 검으로 돌아가는 길을 추천받은 것이다.

나는 그로부터 한 달 동안 더 검마와 대련을 하면서 내 검법에 미진했던 부분을 지적받았다. 그리고 한 달째 되던 날, 나는 이제 시간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 더 늦으면 황연 대장군의 구출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이상, 여기서 천년만년 수련하는 건 그리 좋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무영문을 떠나겠다고 검마에게 이야기를 했고, 서문혜와 검마가 나와서 나를 송별해 주었다.

"잘 가게 사위."

"... 아닙니다만."

"언제가 되었든 될 거 아닌가?"

"......"

나는 검마가 표정변화 하나 없이 저런 말을 하자 기가 막혔다. 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미호는 뭐가 재밌는지 깔깔대는 모습이었다.

나는 무영문을 나와서 산길을 걸으면서, 그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서문혜 소저를 납치했던 자들을 쫓지 않으십니까?]

[ 당연히 쫓고 있었네. 해적섬으로 향했다는 것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행적을 추측해가고 있었어. 허나 갈수록 버거워지더군.]

[ 정보가 부족하셔서...]

[ 그런 게 아닐세. 내게도 나름대로의 각오가 필요했지.]

[ 각오라고요?]

[ 이 이상은 자네가 외인(外人)인 이상 밝힐 수 없네.]

검마는 내가 서문혜와 결혼해서 그의 사위가 되었다면 전후사정을 말해줄 생각인 듯 했었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안하겠다고 한 이상 서문혜에 얽힌 사건의 전모는 바로 알아낼 수 없게 된 것이다. 내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자 옆에서 따라오던 미호가 말했다.

"검마라는 인간, 대단하더구나. 한 달 동안 그를 매혹술로 홀릴 수 있을지 빈틈을 보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겠지. 사파 최고수 중 한 명이니까."

"이제 청룡무관으로 갈 생각이냐?"

"가야겠지."

나는 무겁게 대답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옆으로 빠졌지만, 결국 청룡무관에서 이광과 해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호가 말했다.

"흐응... 알다가도 모르겠군. 네가 정을 두려워하여 피한다는 기분은 알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기분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냐? 그저 여자를 취한다는 기분으로 결혼해도 너는 어차피 전생하는 것이니 상관없는 일 아니냐?"

"그게 말처럼 쉬운 거였다면, 나는 이미 행복하게 살고 있었겠지."

"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호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 너 말야 너.'

이미 감정이 얽힌 존재가 둘이나 생겼다.

그럼에도 나는 망량이나 미호를 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

더 이상 인연이 얽히는 걸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어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걸어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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