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1화 (10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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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11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누운 상태로 한참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대라멸진을 열고 죽었던 당시의 고통이 너무 강렬해서였다. 전신을 칼로 난도질당한 듯한 격통이 밀려왔기에 땀만 뻘뻘 흘리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허억... 허억..."

결국 죽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비웠다. 어차피 그 상태에서는 어떻게 했어도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되려 한방 먹여주고 죽어서 다행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원한이 맺혀 있었다. 이 세상에는 죽여야 할 놈이 너무 많았다. 나는 한참동안 머릿속에서 지옥처럼 원한을 끓여대다가 이내 고통이 가라앉자 조금씩 힘이 빠졌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 상태를 점검했다.

' 다행이군. 내공은 그대로야.'

나는 10번째 삶에서 얻었던 게 꽤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일류급 의술을 시전할 수 있으며 화씨백팔침과 화타오금희를 익혔다. 또한 술법에 있어서도 기초에 입문했으며 십여 년간 법보를 가지고 수련한 덕에 잠재력도 상당히 늘어났다. 무엇보다도 월요(月曜)의 행방과 수호자의 힘을 알게 된 것, 십이율 문주들과 호법사자의 힘을 알게 된 것은 굉장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 ... 하지만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나는 곧장 외양간을 떠나지 않고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한 식경동안 계속 생각해봤으나 역시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망량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 맞다."

외양간에서 천암비서가 있는 곳으로 뛰쳐나가려 할 때였다. 나는 문득 문 앞에서 멈춰섰다.

뭔가 걸리는 게 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촌장의 집으로 은둔술을 써서 접근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에 촌장의 방 안까지 들키지 않고 도착하는 게 가능했다.

"음..."

나는 곤히 잠들어 있는 촌장을 가만히 보았다. 왠지 별로 원한이랄게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를 내려다보며 팔짱을 꼈다.

' 내가 지금 이 놈을 죽여버리고 나서 떠나면 어떻게 될까?'

원한이 풀렸어도 죽일수는 있다. 특히 촌장은 내게 굉장한 밉상이었기에 당장이라도 머리를 터뜨려 죽일 수 있다. 다만 이 살의어린 생각은 딱히 촌장이 너무 증오스러워서 하고있는 건 아니다.

인과(因果)!

나는 그 동안 아주 사소한 행위가 내 운명에 영향을 미친 것을 경험했다. 실제로도 잘나가다가 뜬금없이 과거의 일에 발목을 잡힌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점에서 촌장을 죽인다] 라는 행위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걸 알 수 있다면, 앞으로 생기게 될 변수를 좀 더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내가 내공을 발에 조금만 모아서 눌러도 촌장은 그대로 머리통이 터질 것이다. 나는 살며시 발을 들어서 촌장 위에 갖다대 보았다.

"......"

나는 발을 치웠다.

' 관두자.'

이걸 시험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리 내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죽어도 되살아날 수 있다고 해서 이 능력을 무한정 쓰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최대한 내 인간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함부로 비인외도(非人外道)의 길을 걷는 것은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 쓸데없는 살인을 할 필요는 없어.'

이건 의술의 길을 배우며 생기게 된 생각이다.

나는 앞으로도 함부로 촌장 및 촌장마을 사람들을 죽이거나 다치지 않게 하기로 결심했다. 대신에 촌장에게 한층 깊은 수면침을 찔러둔 다음 촌장의 몸을 구석구석 진맥(診脈)해 보았다.

살이 많고 혈압이 높으며 중풍에 걸릴 확률이 높다.

거북이목에 폐와 간이 좋지 않다.

전형적인 부자병 환자였다.

아마 내가 가만히 내버려둬도 15년 내에 죽게 될 확률이 높았다. 의원을 제외한 보통 사람들은 '고기(肉)'를 과도하게 섭취하는 행위가 얼마나 건강에 치명적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촌장은 역사 속에서 그 이상 살지 못하고 금만재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

나는 촌장의 방에 쓸모없이 놓여있는 은침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은침의 끝을 내공을 이용한 불꽃으로 소독한 후, 천천히 침을 움직였다.

화씨백팔침(華氏百八針)

명경주침법(命傾住針法)

나는 조심스럽게 촌장의 몸에 있는 열두 개의 요혈을 점하고 체내의 탁기를 몰아내며 침을 꽂았다. 침이 꽂히자 체내에 있던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상해있던 내장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는 침술로 내부를 안정시키자 침을 뽑으며 화타오금희를 이용해 그의 체격을 안정시켜주었다. 꾹꾹 누를 때마다 관절이 풀리고 응혈이 사라졌다.

잠시 후 촌장은 아주 편안한 얼굴로 쿨쿨 누워서 자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공도 불어넣어주었기에 명경주침법이 10할 확률로 확실하게 시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이걸로 술과 고기와 색욕때문에 망가진 당신 몸이 5년은 더 버틸 수 있겠지."

자기 몸을 정양시킨다면 아마 천수를 누릴수도 있을 것이다. 화씨백팔침의 비법은 원래 하북에서도 제일가는 의술이었기에 이 정도는 간단한 것이다. 나는 이걸로 과거 촌장을 죽였던 일을 조금이나마 갚았다는 생각을 하며, 천암비서로 향했다.

천암비서를 얻고 나서는 그대로 황산으로 내달렸다.

' 자, 가자!'

타다닷

황산에 도착해서는 바로 창과 칼, 흑백련을 얻을 준비를 해서 비경으로 들어갔다. 천년설삼은 금새 비경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천년설삼을 얻는 게 너무나 손쉬운 일이었기에, 천년설삼을 먹기 전에 일단 흑백련이 있는 연못 안으로 입수했다.

풍덩

연못 안의 유적으로 들어가서 다시 금궤짝을 바깥으로 옮겨놓은 후 재입수해서 제단 앞으로 갔다. 나는 비석에 쓰여있는 글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좀 더 해석이 되었다. 띄엄띄엄이나마 읽은 내용으로 거의 모두 읽을 수 있었다.

[ ... 어둠의 노래... 짝을 이루는 자... 바람의 걸음걸이... 차갑고 흰 침묵의 신... 태초의 북(北)... 도달자... 시련은 없다... 그러나 봉인을 풀고자 하는 자... 침묵의 신을 만나라.... 피를 그어... 깨워서 도달하라... 이 제단에 바치는 것은... 도달자의 피...]

"오오..."

나는 신기함을 느꼈다. 월요의 유적에서 느꼈던 그 이상한 감각 이후, 내게는 괴어(怪語)를 조금이나마 해석하는 능력이 생긴 모양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 상황에서는 매우 도움이 되는 능력이었다. 나는 몇 번 더 읽어서 완전히 내용을 기억한 후, 막야의 시련에 도전했다.

쿠구구궁

벽이 열리고, 막야로 향하는 외나무다리가 보였다. 나는 잠시 후 거미가 밑에서 튀어올라오자 곧장 뇌명(雷鳴)과 함께 준비하고 있던 침술 비오의 뢰풍상박(雷風相薄)을 시전했다. 뢰풍상박은 실전에서 바로 쓰기에는 준비시간이 좀 걸렸으나, 미리 침을 꽂아서 대법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문제 없었다.

거대거미가 거대한 괴음을 토해내었지만 나는 이미 달려들어서 크게 창을 찌르고 있었다. 평상시의 상태와 비교할 수 없는 신체능력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거대거미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선제공격을 맞아야만 했다.

"란! 나! 찰!"

콰앙!!

[ 키아아아악!!]

겨우 다섯 번 창을 내지른 것 뿐이었지만 거미의 거대한 다리가 6개나 떨어졌다. 거미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느끼자 다시 한 번 전신에서 실을 내뿜었으나, 그 때는 이미 내가 달려들며 놈의 급소에 창격을 가해서 분해해버린 후였다.

푸콰콱

거미의 푸른 피가 치솟아 올랐다. 나는 놈이 떨어져 내리기 전에 전신의 내공을 끌어모아서 옆의 외벽으로 던져버렸다.

꽈앙!

바위벽 사이로 놈이 파고들어서 굉음을 내었다. 꼴보기 싫던 놈이 처박혀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흠, 좋았어."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승리였다. 나는 이제 거대거미를 홀로 족치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다리를 건너서 수요 막야를 얻은 후 힐끔 벽에 박혀서 꿈틀대는 거미를 바라보았다.

"......"

그러고보니 저 놈은 굉장한 마물 아닌가.

그렇다면 내단(內丹)도 있지 않을까?

쐐액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품에서 단도를 꺼내서 던졌다. 그러자 거미의 눈알 사이에 단도가 박혔고, 이내 거대한 내공때문에 거미의 머리통이 터졌다. 치명상을 입고도 꿈틀대던 거미가 완전히 움직이지 않고 멈추자, 반 식경이 지나서 나는 거미를 향해 뛰어들었다.

찌이익

죽은 거미의 몸뚱이 위에 내려앉은 나는 조심스럽게 검을 들어서 놈의 외곽 껍질을 쪼갰다. 그러자 푸른 피가 터져나왔다. 나는 피가 터져나오는 걸 재빨리 피했고, 역시나 그 피는 산성(酸性)을 머금고 있는지 옆에 있던 돌벽이 녹는게 눈에 보였다. 산성 피가 콸콸 쏟아져나오고 있었기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입구 쪽으로 뛰어올랐다.

"쳇. 힘들겠어."

내단을 채취하는 방법을 모를뿐더러, 몸이 저런 산성체액으로 가득 차 있어서야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다. 나는 나중이라도 좋으니 수렵이나 의약전문가를 데리고 와서 저 거미를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미를 안정적으로 처치하고 막야와 금궤짝을 얻어서 지상으로 올라온 후, 나는 천년설삼과 흑백련의 뿌리를 캐어서 큰 봇짐에 넣었다. 특히 천년설삼은 귀하게 다루어야했기에 큰 포대기에 정성껏 쌌으며, 흑백련의 뿌리는 예전과 달리 8뿌리나 캐었다. 덤으로 연꽃도 4개를 캐어서 살짝 말려서 포개넣었다.

가져갈 수 있을만큼 다 가져가는 것이다.

그렇다.

이번에는 천년설삼을 먹지 않는다.

먹어도 내공절대치가 별로 향상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이제 천년설삼을 내가 직접 먹기보다는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흑백련과 달리 천년설삼은 외적으로 평가되는 가치 또한 매우 높았기에, 이걸 잘만 이용하면 내 목표를 쉽게 이룰 수 있을지도 몰랐다.

비경에서 얻을 것을 다 얻게 되자, 나는 비경의 폭포 앞 바위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오늘은 쉴 틈 없이 강행군을 했으므로 잠깐 쉬었다 갈 필요를 느낀 것이다. 나는 앉아서 쉬던 중에 생각했다.

' 황산파(黃山派) 놈들은 풍신류(風神流)였지.'

그리고 황산파의 장문인인 도룡신검 용중일은 아마도 풍신류의 호법사자와 밀접한 관계일 것이다. 미호를 죽였던 그 개자식의 제자인 셈이다. 나는 외양간에서 전생했을 때부터 이 사실을 줄곧 고민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째서 구파일방 중 하나인 황산파가 풍신류의 유파인 것인가?

단순히 장문인이 풍신류의 제자라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것 치고는 장로들이나 문하제자들이 익힌 무공도 전부 정종신공이라는 평가가 세간에 당연히 뿌리내려 있었다. 내가 겪었던 강맹한 풍신류의 무공이라는 느낌은 눈꼽만치도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황산파가 신흥문파이긴 하지만 문파 자체는 백 년도 전부터 있었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중얼거렸다.

"아니, 아직은 움직이지 않겠어. 섣불리 행동하다가 일을 그르치면 안 돼."

지금 내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 황산파에 잠입하거나 시비를 거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망량을 만나기가 힘들어진다. 우선 내가 10번째 생에서 얻었던 정보를 망량과 공유한 후, 그의 의견을 듣고 나서 움직여도 늦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저 멀리에 있을 황산파의 본거지를 노려보았다.

"꼭 네놈들의 근원을 캐 주마."

나는 휴식을 끝내고는 바로 망량이 있는 진랑곡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도중에 뇌명은 물론 침술비기까지 이용해서 달리자 더욱 빠른 속도로 도달하는 게 가능했다. 현재 내 달리기 속도는 설령 전설의 천리마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보다 더 빠르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도중에 태경촌의 화씨 가문에 들러서 봉황조각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발해의 일을 알게 되었으니 일단 필요는 없는 물건이지만, 만에 하나 쓰일 일이 생길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화씨라길래 혹시나 했지만 역시 화서명의 화씨 의가와는 별 상관이 없는 동성인 모양이었다.

진랑곡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망량의 오두막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떤 젊은 마을 처녀와 우물 앞에서 끌어안고 농후한 입맞춤을 하고 있는 망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망량은 그윽한 눈으로 처녀의 턱선을 매만지더니 말했다.

"내게는 그대밖에 없어... 알고 있지요...?"

"민망해요..."

"후훗 웃으니까 더 이쁜데."

뭔가 청춘의 작업을 하고 있던 망량은 순간 내 존재를 그제서야 알아채고 기겁을 했다.

"... 어엇!! 뭐, 뭐야! 당신 뉘겨?!"

"어머낫!!"

망량이 놀라서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마을처녀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나는 급히 손을 저었다.

"걱정 마시오. 지나가던 무림고수요."

망량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너무 수상하잖아! 망운진은 어떻게 뚫었는데!"

"에잇..."

이번의 망량은 달콤한 개인연애사를 방해받은 탓에 약간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저번에 만날 때보다 더 감정적이고 적대적이었다. 나는 별 수 없이 봇짐에서 금궤짝을 꺼내서 금덩이 하나를 던졌다.

"이거나 받고 얘기합시다."

"헉!"

금덩이를 급히 받아든 망량은 허둥지둥댔다.

"이건...?"

놀라서 함께 허둥대던 마을처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망량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망량이 마을처녀를 힐끔 바라보더니 금덩이를 꼭 끌어안으며 마을처녀의 손을 밀어내었다.

"이거 내 꺼요."

단호한 말투였다.

".... 쳇..."

마을처녀는 볼을 부풀렸다.

망량이 갑자기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아이구 소협! 무슨 일이십니까. 뭔가 이 망량선사에게 의뢰할 일이라도 있으신지?"

"......"

망량에게 금을 대뜸 던져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힐끔 마을처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단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은데."

망량이 납득했다.

"알았소. 소향(小香)! 마을에 가 있어요."

"망량..."

소향이 조심스럽게 그를 부르더니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망량 품속의 금덩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 반띵이겠죠?"

"......"

망량은 소향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한층 더 강하게 금덩이를 끌어안았다.

"저기..."

"......"

소향이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펴고는 팔락팔락 부치면서 끈질기게 외면했다. 결국 대화가 안되겠다고 생각한 소향은 힐끔힐끔 황금덩이를 쳐다보며 진랑곡으로 내려갔다.

"노랭이."

소향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압권이었다.

소향의 말을 흘려넘긴 망량이 촥 하고 오화칠금선을 펼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망운진을 뚫은 걸 보니 대단한 내공을 지닌 무림인인가 보군! 지혜가 필요하면 나를 잘 찾아왔소! 뭐든 해결해 줄테니 이야기만 해 보시구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왠지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망량은 원래 이런 친구였던 것이다.

"그건..."

나는 품에서 막야를 꺼내서 이야기를 하려다가 멈칫했다. 과거에 만났던 망량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 그럼 이러는 게 어떻겠소? 다음부터 나를 만날 때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해 두시오.]

[ 미래를 위한 투자?]

[ 나는 이래봬도 꽤 계산이 철저한 속물인지라, 당신이 그렇게 한 마디 해 주면 받은 선물만큼의 일을 해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할 것이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거대한 적을 마주쳐서 조력자가 필요할 때 받은만큼 일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지. 그걸로 서로간에 쓸데없는 마음의 빚을 지지 않게 되는 것이오.]

망량은 무분별하고 막대한 호의를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 때 내게 일부러 이런 지침을 당부해 둔 것은, 적어도 나를 동료로써 신뢰하고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한 이 지침은 망량에게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나는 잘 생각하며 말을 했다.

"... 의뢰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투자가 되겠군."

"엥? 미래라니?"

"잘 들으시오. 조금 믿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천천히 망량에게 내가 전생자(轉生者)이며, 지금까지 총 10번의 전생과 죽음을 겪었으며, 지금이 11번째 삶이라는 걸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망량은 처음에는 마치 병신을 보는 듯한 표정이다가, 천우진과 망량의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칠요(七曜)를 쫓는 모험의 대목에서는 완전히 이야기에 몰입했다.

또한 실제로 칠요 막야를 보여주자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 되어서 잠시 나무 밑에 토를 하러 가기도 했다. 입을 씻고 돌아온 그의 얼굴에 이제 의심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약 반 시진에 걸친 내 이야기가 끝나자, 망량은 한참동안 침묵했다.

그리고는 금덩이를 갑자기 땅에 내팽개쳐버렸다.

땡그랑!

"이딴 금과는 비교도 안되는 귀한 이야기였군. 정말 잘 들었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망량의 얼굴에는 두근거리는 기색이 가득했고 홍조마저 떠올라 있었다. 내 이야기가 그의 마음속에 있는 웅지(雄志)를 자극한 셈이었다. 망량은 낄낄대면서 평상에 걸터앉았다.

"으하하하, 대단하군! 내가 반천맹을 결성하고 황실이랑 한판 붙는다라? 멋져!"

"물론 내 10번째 전생에서 당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소. 확실한 것은 내가 유출한 흑백련 뿌리 때문에 백련교의 소교주가 회복되어버렸고, 교주가 중원을 침공해서 불과 몇 년 만에 중원일통을 앞두고 있었다는 것이오."

"흐음... 생각 좀 해 봅시다."

망량은 자신의 머리를 오화칠금선으로 톡톡 쳤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망량이 말했다.

"크게 세 가지를 짚을 수 있겠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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