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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8화 (9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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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다음날, 나는 미호와 함께 길을 떠났다. 미호와 함께 마니산에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미호와 함께 배를 타고 섬에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목표인 마니산의 초입에 이를 수가 있었다.

미호가 말했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법승(法僧)인가?"

나는 그 말에 안력을 돋우어서 정상 부분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 곳에는 인간의 형체가 보였다. 그 쪽에서도 우리를 감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저게 미호가 말했던 '수호자'이리라.

우리가 좀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갑자기 심어(心語)이 웅웅거리며 울렸다.

[ 시주들은 거기서 멈추시오. 더 이상 참성단에 다가오는 건 허용할 수 없소.]

그러자 미호가 코웃음치며 마주 영언을 울렸다. 그녀는 이미 아홉개의 꼬리를 소환해놓은 상태였다.

[ 네가 뭔데 그걸 결정하느냐? 나는 참성단에 무엇이 봉인되어 있는지 꼭 보아야겠다.]

[ 빈승은 서산(西山)이라고 하오.]

[ 그래서?]

[ 그대가 대요괴 구미호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소. 허나 이 결계에 들어온 순간 절대적인 우위는 빈승에게 있음이니.]

그렇게 말한 법승 서산이 재차 심어를 보내 왔다.

[ 거기서 열 걸음을 더 들어온다면 결코 봐주지 않겠소. 지금이라도 이 섬을 나가시오.]

미호가 잔뜩 화난 표정을 지었다.

"저 망할 중놈이?"

어찌나 화가 났는지 인간미녀의 모습이 일그러져서 요괴여우의 얼굴이 드러날 정도였다. 나는 이렇게까지 화가 난 미호를 처음 보았기에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미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안 돼. 나가자. 이건 좋지 않아."

"이거 놔라! 저 중놈의 간을 씹어먹고 말테다."

"진정 좀 하라고. 이러면 죽어. 난 확신할 수 있어."

내가 뜯어말리자 미호가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네가 뭔데 그걸 확신한다는 말이냐?"

"네 말대로 여기가 칠요의 봉인지이고 십이율이나 단의 일족에서 엄선된 자가 수호자로써 여기를 지키고 있다면... 저 서산이라는 중은 얼마나 강하겠나? 게다가 이 섬에 펼쳐진 결계가 존재한다면 적의 본거지에서 싸우는 건 승산이 없어."

"......"

미호가 이성을 되찾았는지 눈에 이채를 띄었다.

"희한한 놈이구나. 둔하고 어리석은 것 같은데, 죽음의 경계를 본녀보다 잘 느끼고 있는 것 같으니... 하긴 네 말이 맞다."

"하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워낙 나 자신이 돌격하다가 죽은 적이 많았기에, 어떤 게 위험한 상황인지 쉽게 감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냉정침착하게 된 미호가 갑자기 등 뒤를 돌아보았다.

"저 놈들이 벌써 쫓아온 것인가?"

미호를 따라서 등 뒤의 바닷가를 바라보자, 거기에는 왠 작은 배가 수평선 너머에서 점이 되어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후 그 작은 배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기(氣)를 느끼자 침음성을 흘렸다. 안력을 돋우자 그 자의 모습도 보였다.

"호법사자...!!"

그랬다.

흑호 가면을 쓴 호법사자가 홀로 작은 배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옆에서는 열심히 뱃사공이 노를 젓고 있었다. 옆에 다른 풍신대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는 그냥 혼자서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저 속도라면 한 식경 후에는 도착한다.

나는 급히 미호에게 말했다.

"나도 영언을 쓰게 할 수 있나?"

"왜?"

"저 서산이라는 중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알았다."

미호가 내 등에 손을 대자,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간접적으로 내가 영언을 쓸 수 있게끔 해준 것이다. 나는 조그마한 산의 정상에 좌정하고 있는 서산이라는 중에게 영언을 날렸다.

[ 지금 중원의 호법사자가 이 섬으로 오고 있소. 저 자의 목적 또한 칠요를 얻는 것이니, 우리를 도와 주시오.]

서산은 갑작스러운 이야기인지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시주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소.]

[ 결계로 구미호는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호법사자를 당신 혼자서 막을 수 있을 것 같소? 당신에게 그정도의 힘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 ......]

서산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간절하게 그를 설득했다.

[ 저 자가 상륙하고 나면 늦소. 제발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오.]

[ 호법사자는 지금 빈승이 막아보이겠소.]

콰칭!!

갑자기 섬 주변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막이 생긴 듯 했다. 아마도 서산이 결계를 더욱 강화시켜서 실질적인 물리방어력을 지닌 걸 만들어낸 모양이었다. 우리를 섬 외곽까지 들여보낸 이유는 경고를 해주기 위해서 일부러 들여보낸 듯 했다. 그 또한 호법사자를 막아야 했기에 지금 결계를 강화시킨 모양이었다.

그러자 작은 배에 타고 있던 흑호 가면의 호법사자가 사자후를 터뜨렸다.

[ 하하하!! 고작 이딴 걸로 나를 막겠다는 소리냐? ]

우우우우우 -

호법사자가 한쪽 손을 들었다. 그러더니 그의 손 위에 갑자기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났고, 그건 이내 폭풍(暴風)처럼 변했다. 수십 장 크기의 돌개바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낸 호법사자가 작은 배 위에서 몸을 띄웠다.

나는 멀리서 그 광경을 보자 눈을 부릅떴다.

능공허도(凌空虛渡)!!

' 괴물인가?!'

인간으로써는 천상제도 힘들다고 하는 마당에 진정으로 경공의 전설적인 경지가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훨훨 하늘로 날아오른 호법사자는 이번에는 다른 손도 뻗어서 또 하나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의 기는 정말로 한도끝도 없는 걸로 보였다. 인간의 기로 자연의 물을 한됫박 움직이는 것도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데, 바다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면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경지는 터무니없는 수준이었다.

저것이 바로 천령단(天靈丹)이라고 불리는 궁극의 내공경지!

쿠구구구궁 - !!

소용돌이 두 개가 팔짱을 낀 호법사자를 가운데에 두고 점점 범위를 넓혀나갔다. 호법사자가 팔을 휘둘렀다.

꽈과광

[ 크헉...!!]

결계가 크게 부숴지며 서산이 괴로워하는 심어를 토해냈다. 호법사자의 일격이 가볍게 결계를 부숴버린 탓이었다. 서산대사는 경악하면서도 우리에게 말했다.

[ 드, 들어오시오...]

"오냐."

미호와 나는 재빨리 뛰어서 서산이 있는 마니산의 정상으로 올라갔다. 서산이 우리를 따로 막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다행이다.'

나는 호법사자가 능공허도를 펼치는 걸 보고 소름이 돋았다. 아마 저 자라면 그냥 수상비(水上飛)의 신법을 써서 홀로 날아올 수도 있었을텐데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호법사자는 이미 우리를 독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사냥을 즐기고 있는게 분명했다.

산 위에 올라서자 서산을 만날 수 있었다. 서산은 약 40대 나이의 승려로 보였는데, 옆에는 20대의 젊은 승려가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미호는 서산을 냉엄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여기에 칠요의 봉인이 있는 게 맞나?"

서산이 각혈을 손으로 닦아내며 힘겹게 대답했다.

"빈승은 모르오... 그저 십이율주의 명을 받들어서 참성단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오."

"흥, 못 믿겠다."

퉁명스럽게 말한 미호였지만 잠시 후 호법사자가 재차 일격을 두드리는 소리가 섬 전체에 크게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찔끔했는지 미호가 이야기를 꺼냈다.

"중놈아, 저 호법사자를 막는데 본녀가 힘을 보태 주마. 그 대신 이 참성단에 있는 칠요는 본녀가 가져가겠다."

"... 그건 안 되오. 차라리 호법사자를 들이는 것과 차이가 없소."

미호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럴거면 애초에 우리를 들이지 말았어야지.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몰살인데 네놈은 그걸 바라는 것이냐?"

"......"

"시간이 없다. 얼른 결계식을 내게 말해라. 그럼 본녀의 술력을 더해서 최상의 환진(幻陣)을 펼쳐서 저 놈을 막을 수 있다."

"알았소."

키이잉 -

잠시 후 서산과 미호가 힘을 합쳐서 결계를 펼치자, 해안가로 상륙한 호법사자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아까보다 도리어 강력한 결계가 자신을 막고있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는 우렁찬 사자후를 터뜨렸다.

[ 으하하. 이딴 걸로 나를 막을 수 있겠나? 재미있구나!]

그는 다시금 바람의 기운을 모아서 결계를 깨려는 듯 했다. 나는 그 모습에서 그의 유파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풍신류(風神流)!'

뇌신류의 숙적이자 백련교의 호법무류의 한 갈래! 호법사자는 틀림없이 풍신류의 수장일 것이고, 저 자의 실력은 인간의 수준을 초월해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 자연지기 중에서 풍(風)을 저토록 가볍게 다룰 수 있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것이다.

미호는 창백한 안색인 서산을 보며 말했다.

"칠요가 있는 곳을 말해라. 내가 칠요의 힘을 쓰면 저런 놈쯤은 격퇴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한들... 빈승은 정말 모르오. 이 참성단은 그저 수천 년을 이어온 제단에 불과하며... 그리 의심간다면 직접 찾아보시오."

"웃기는 소리!"

미호는 참성단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는 힐끔 미호를 바라보다가 서산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고, 침(針)을 꺼내서 그의 상세를 안정시켰다. 서산은 각혈을 멈추고는 다시 정좌하고 앉으며 말했다.

"한결 낫군. 뛰어난 의술이구려."

나는 그의 기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원래 그가 입은 내상은 최소 5년 이상의 생명력이 쇠할 수준이었으나 화씨백팔침으로 상세를 회복시킨 것이다. 옆에 있던 젊은 승려가 감사하다는 듯 합장을 했다.

나는 뻘쭘해져서 물었다.

"내가 당신을 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소?"

"시주는 그런 사람이 아닐 것 같았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나 저런 구미호와 함께 다니는 건 좋지 않으니 헤어지시오."

"......"

서산은 왠지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는 능력을 갖춘 자 같았다. 그리고 척 보기에도 대단한 법력을 지니고 있는 고승인 듯 했다. 물론 미호같은 대요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인간 중에서는 최상위 수준의 법력을 지니고 있으리라.

서산대사는 옆에 있던 젊은 승려를 돌아보며 말했다.

"유정(惟政)아. 네 금제를 풀겠다. 결계를 도와다오."

"알겠습니다."

파앗

젊은 승려는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결계가 한층 강력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유정이라고 불린 젊은 승려의 법력에 놀랐다.

' 스승보다 몇 배는 강력하지 않은가?'

그 자체가 법력의 화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인간이 이런 술법력을 지니고 있는 건 환신 천우진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이다. 나는 그제서야 어째서 서산이 순순히 우리를 들여보내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여차하면 유정이라는 젊은 승려가 미호를 제압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서산이 심법을 운용하다가 내게 말했다.

"시주는 이름이 무엇이오?"

"백웅이라 합니다."

"... 과연! 헌데 명망높은 무인이자 의원이 어찌 저런 사악한 요괴와 함께하는 것이오."

서산도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머쓱해져서 말했다.

"사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쁜 일은 아니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잘 들으시오. 유정이 도와준 덕에 딱 한 시진동안은 저 호법사자를 막을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하오. 어떻게든 일을 해결하려면 참성단에 제사를 지내는 수밖에 없소."

"제사라고요?"

"그렇소."

서산이 침중하게 말을 이었다.

"단군(檀君)께서 혈구(穴口)의 바다와 마니산 언덕에 성을 돌리어 쌓고 단을 만들어서 제천단(祭天壇)을 만드셨소. 이 곳에서 천제(天祭)를 지낸다면 호법사자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오."

"어떻게 제사를 지냅니까?"

"... 그게 문제요."

이어진 말에 나는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저 여우는 우리를 의심하는 것 같지만 그런 거 없소. 우리는 참성단의 수호역을 하고 있을 뿐 이 곳에 칠요 따위는 없단 말이오. 무엇을 천제의 제물로 바쳐야 할지 까마득하구려..."

정말로 칠요가 여기에 없단 말인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서산대사, 당신과 유정은 굉장한 법력을 가지고 있소. 당신같은 자들을 칠요도 없는 이런 외딴섬에 배치해 둔다는 말이오?"

서산과 유정의 법력은 해동밀천의 주인과 비교할만 했다. 아니 유정의 경우는 해동밀천의 천주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랬기에 미호도 영락없이 이 곳을 칠요의 봉인지로 믿을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킴이가 강력할수록 안의 보물이 뛰어난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내 질문에 서산대사가 화를 내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시오. 이 참성단은 한민족의 역사에서 영토나 국가의 논리에서 벗어나서 늘 신성시되었던 곳이오. 하늘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이며 단군께서 천지에 제사를 지내던 영험한 곳. 이런 곳을 허술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오."

"으음."

나는 고민했다. 그리고 말했다.

"제물로 쓰일 수 있는 건 어떤 것이 있소?"

"무엇이든 가능하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어야 하오."

"혹시 법보(法寶)도 가능하겠소?"

"어떤 법보요?"

"이거요."

나는 품 속에 늘 가지고 다니던 모조 팔지경을 꺼냈다. 진본의 복제품이긴 하지만 확실히 법보라고 할만한 힘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술법재능을 높여줄 수는 없는 것이다. 팔지경을 받아들고 살펴보던 서산대사가 말했다.

"충분할 것 같군. 허나 이걸로는 저 자를 물리치는것까지는 할 수 없소."

"그럼?"

"결계를 여섯 시진 정도 연장할 수 있을 것이오."

그걸론 부족하다. 이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은 어차피 섬이기 때문에 육지와 달리 달아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호법사자라면 몇 시진은 커녕 몇날 몇 달이라도 기다릴 것이 분명했다.

' 뭔가 바칠만한 게 없을까?'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계속 고민했다.

그 때 미호가 참성단을 다 둘러보고 돌아왔다.

미호는 허탈한 듯 말했다.

"정말 없구나. 이런 제길!"

"빈승이 말했지 않소."

"어쩔거냐 땡중! 대체 어떻게 할거냐고!!"

"저 호법사자는 그대들이 끌여들여 놓고 엄한데 성질이군."

"뭐라고...!!"

미호가 성질을 내려 하자 내가 급히 진정시켰다. 미호는 냉정한 거 같으면서도 끓는점이 낮은 성격이었다. 변덕이 죽끓듯 하므로 대처하기가 힘들었다. 미호가 가라앉자 유정이라는 젊은 승려가 말했다.

"이 상황에서는 참성단에 제사를 지내서 결계를 강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혹여 구미호께서 가지신 법보가 있으시다면 도와 주십시오."

"흥, 그딴 게 있을 거 같으냐?"

"그럼 저 시주께서 내놓으신 법보를 쓰는 수밖에 없겠군요."

"뭐?"

미호가 홱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찔끔해서 모조 팔지경을 들었다. 상황을 알아차린 듯 미호가 성질을 내었다.

"아이고, 이런 망할! 그게 보통 보물인 줄 아느냐? 복제라곤 하지만 동영에서는 손꼽히는 법보란 말이다. 그걸 이딴 참성단의 결계 때문에 쓰겠다니."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도망칠 곳도 없는데 여기서 죽을 셈이냐."

"크으으..."

미호는 미간을 좁히며 뭔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좋다! 내가 가진 팔척경곡옥(八尺瓊勾玉)도 쓰자."

"복제지만."

"초치지 마라, 죽는다."

"미안."

잠시 후 미호를 포함한 세 명의 술사가 참성단 위에 올랐다. 그들은 제물이 될 팔지경과 팔척경곡옥을 제단의 중앙에 둔 후, 술력을 끌어올려서 주문(呪文)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도 뭔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설픈 능력으로는 방해가 된다고 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웅웅웅웅

참성단이 힘에 반응하며 점차 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돌제단을 넘어서서 신령스러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의식이 점입가경에 도달하는 걸 지켜보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

나는 급히 창을 들어서 사방을 경계했다. 그리고는 북쪽 방향으로 찰(刹)을 내질렀다.

퓨웅

의문의 괴인은 그 공격을 너무나 쉽게 피했다.

괴인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 듣던대로 꽤 하는 녀석이군. 하지만 아직 멀었다."

"호법사자...!!"

내 눈앞이 암울한 절망으로 굳었다. 설마 그 결계를 뚫고 여기까지 올 줄이야? 하지만 제단 위에 있던 세 명의 술사도 호법사자를 발견했음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결계의식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말할 여력이 없는 모습만은 아니었다.

나는 뭔가 눈치를 채고는 창을 다잡았다. 자세히 보니 그에게서는 압도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분신(分身)이군."

"하하, 그렇다. 내 2할의 힘을 쪼개서 결계에 넣어두었지. 이 결계는 생물만 막을 수 있으니 이런 건 어쩔 수 없겠군."

"그리고 분신은 공격을 받으면 쉽게 소멸되지. 자만하지 마라."

내가 으르렁거렸다.

호법사자가 펼친 것은 술법으로써의 분신이 아니었다. 극치의 내공을 지니고 있으면 만들어낼 수 있는 환영이었는데, 이걸 이용해서 고수들은 상대의 시선을 분산시키거나 추가공격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멀리까지 자유자재로 분신을 보내는 경지 그 자체였으나 지금 본체가 여기에 없으니 그건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를 경계하자 호법사자의 분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2할의 힘으로도 충분하겠지. 어디 한번 나를 막아 보시게, 백웅."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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