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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뇌명의 호흡은 굉장히 독특했다. 보통 들숨과 날숨으로 제어되는 인간의 호흡과 달리, 응축된 호흡을 전신의 기와 감응시킨 후 한 번에 뿜어내는 방식인데, 모공에서도 기의 조절이 필요했다. 수십 수백개의 다른 흐름을 섞어내어서 미간까지 끌어올리는 뇌명의 호흡을 숙달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련이 필요했다.
나는 처음 한 달 동안은 뇌명을 익히기 위해서 밤잠도 아껴가며 수련에 몰두했다. 이광은 그답지 않게 눈을 시뻘겋게 떠 가며 내게 뇌명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고, 나는 상의를 벗고 폭포에서 정신집중까지 했다. 자연의 기를 분산시키지 않고 통제해서, 완벽한 뇌기의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나는 인생의 모든 집중력을 여기 쏟겠다는 각오로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그것은 단순히 수련의 열정이 아니라, [두 번 다시는] 이 뇌명이라는 결전오의를 익힐 기회가 없으리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이광의 마음을 움직여서 진정한 오의를 전해받을 수 있었지만, 다음에 수십 수백번을 시도해도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10번의 전생만에 겨우 얻어낸 이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 했다.
나는 현천신공의 운용까지 동원해가며 밤낮없이 몰두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약 4달 후에 나타나게 되었다.
우웅!!
' 들어갔다!'
나는 처음으로 뇌명의 호흡이 내 전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이광이 자연스럽게 시전할 때와는 대조적으로 무려 일 각이나 되는 집중을 필요로 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제대로 성공한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광이 말했다.
"드디어 익혔구나. 잘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가 그걸 익힌 이상, 이제 왠만한 놈은 네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남은 걸 차분하게 진행하다보면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스으으...
내가 뇌명의 호흡을 풀자, 전신에서 엄청난 내공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겨우 30초를 유지했을 뿐인데 전신 내공의 1할이 사라지는 듯 했다. 내가 물끄러미 내 몸의 상태를 살펴보자 이광이 말했다.
"어떠냐? 뇌명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대략 반 각이 조금 되지 않을 듯 싶습니다."
"괴물같은 내공이구나. 대개 처음 뇌명을 익힌 자는 10초도 넘기지 못하는데..."
이광은 진심으로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디 한 번 내공이 고갈될 때까지 뇌명을 펼쳐 봐라."
"네."
우웅!
나는 이광의 주문대로 내공이 다 사라질 때까지 뇌명의 호흡을 유지하고 버텼다. 이 상태에서 내 반사신경과 움직임은 극단적으로 빨라져서 마치 세상이 멈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진기의 움직임도 엄청나게 기민했기에 어떤 초식이든 절기처럼 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두둑
반 각을 막 지났을 때, 나는 내공이 다 소모되고 피부에 혈관이 돋아나는 걸 느꼈다. 바로 그 때 단전에서 숨겨져 있던 내공이 솟아오르는 덕분에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 내공이 저절로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약 한 식경이 조금 안 되게까지 유지한 후, 뇌명을 해제할 수 있게 되었다.
"허억... 허억..."
"......"
한 식경 가까이 뇌명을 유지하고 탈력해 있는 나를 보던 이광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뇌명을 한 식경이나... 정녕 천하제일의 내공이로다. 이미 천령단(天靈丹)에 가깝구나."
"헉... 헉... 사부님... 천령단이... 대체 뭡니까...?"
나는 숨을 몰아쉬며 질문했다.
"늘 그 천령단이란 걸 말씀하시던데... 그게 어떤 경지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천령단이란 중단전(中丹田)이 개시됨을 의미한다. 하단전에 쌓인 기가 흘러넘쳐서 기경팔맥 생사현관을 타통하고도 모자라 주변 공간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 그리고 그때까지 모였던 기가 단(丹)을 본격적으로 형성하게 되고, 써도써도 줄지 않는 반영구(半永久)적인 내공을 지니게 된다."
"......!!"
"하지만 너는 아직 천령단은 아닌 듯 하구나. 천령단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로써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걸로 알고 있다. 천령단의 증거는 무한에 가까운 내공과 환골탈태(換骨脫態)이다."
"환골탈태?"
"반로환동도 환골탈태의 일부이지. 그 과정을 거치면 어려지는 반로환동이 되거나, 혹은 전성기의 육체를 유지하는 평신(平身)이 된다. 너에게는 아직 그 과정이 찾아오지 않았으니 완전한 천령단이 아닌 것이다."
나는 전설상의 경지인 환골탈태가 내 눈앞에 다가왔다는 걸 깨닫자 가슴이 뛰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도 이제 허물을 벗고 최상의 육체를 손에 넣는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의아함이 생겼다.
' 나는 천년설삼과 흑백련을 무려 7번 먹었다. 세상에서 나보다 영약을 많이 처먹은 인간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백령은 이미 환골탈태와 반로환동을 이루었다. 내공만으로 보면 내가 한백령보다 앞설텐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거지?'
환골탈태는 단순히 내공의 절대치가 높아진다고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듯 했다. 나는 환골탈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질문했다.
"저는 왜 저절로 환골탈태를 이루지 못하는 걸까요?"
"낸들 아느냐? 짐작가는 게 있다만... 이미 이룬 자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겠지."
툭하고 내뱉은 이광이 갑자기 저편에 있던 목창을 허공섭물의 기로 끌어왔다. 그는 내게 목창을 겨누며 말했다.
"자, 다시 뇌명을 써 봐라. 이번에는 뇌명을 썼을 때의 위력을 체감하게 해 주마."
"네?"
"지금도 저절로 내공이 회복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찰나라도 좋으니 집중해서 써 봐라."
나는 별 수 없이 다시 체력과 정신력을 짜내서 뇌명의 호흡을 발동했다. 내 전신에 파르스름한 뇌전이 감도는 순간, 이광이 예고도 없이 목창으로 찰(刹)의 수법을 발동했다. 이광의 찰은 굉장히 빠르고 무자비하기 그지 없어서 나는 원래 피하지도 못하고 격중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보인다.
피해진다.
파앗!
나는 짧은 순간이지만 뇌명을 발동한 동안에 이광의 찌르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반보를 앞세우며 좀 더 피하기 쉬운 위치로 이동할 수 있었다.
"오옷."
지금까지의 내 무공으로는 불가능했던 일이라서 깜짝 놀라고 있자 이광이 훗하고 웃었다.
"그게 뇌명의 위력이다. 네 반사신경과 반응속도, 진기의 이동속도 모든 게 폭발적으로 높아지는 상태이지. 네가 그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에 세상이 느려진 듯한 기분마저 들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한 식경이나 뇌명을 유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뇌명을 펼치는 시전시간은 다른 절기로 소모되는 내공과는 별개이니, 한 식경동안은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겁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이게 결전오의라고 불릴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기술이 있다면 확실히 앞으로의 생존율은 물론 전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이다. 단지 내공이 엄청나게 소모되니 함부로 펼치는 건 지양해야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이득인 건 확실했다.
나는 이후 이광에게 일 년 동안 뇌령팔식을 더욱 세밀하게 지도받으며 란나찰의 기본수법을 손바닥에 피멍이 맺히도록 연습했다. 이상하게도 연습할 때마다 그 기본수법은 전혀 다른 수법처럼 느껴져서 배우는 재미가 느껴졌다.
간혹 이광이 내가 수련하는 속도가 느려서 실망하는 것도 보였지만, 그는 꿋꿋이 나를 가르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그것은 이광이 예전과는 달리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나를 가르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창술을 수련한지 일 년째 되던 날, 이광이 말했다.
"이제 네게 뇌령팔식의 면허(免許)를 주겠다."
"그 말씀은..."
"천뢰무극창(天雷無極槍)과 만승검결(萬乘劍決)의 입문을 허가한다."
가슴이 뛰었다.
천뢰무극창은 뇌신류에서 가장 강력한 비전창법이고, 만승검결은 뇌영검법의 상위무공으로써 굉장한 변화와 빠르기를 지니고 있었다. 저 두 개를 익힌다면 뇌신류의 진정한 전승자로 자처할만한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창술을 봐 주고 있던 진소청이 말했다.
"아직은 좀 이르지 않을까요?"
"이를 수도 있지만... 천뢰무극창의 육식(六式)을 전수하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일단 해 보는 수밖에."
"......"
그들의 대화에서, 나는 아직 내 창술이 합격점에만 이르렀을 뿐 그들을 충족시키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턱걸이로 통과해있는 상태인 것이다. 약간 자존심이 상했지만 별 수 없어서 가만히 입을 다물자 이광이 천뢰무극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 시작하자."
그리고 시간은 유수처럼 흘렀다.
수련하고 또 수련한다.
천뢰무극창의 형태를 터득하고 수련하는데 무려 삼 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다음으로 만승검결의 초입에 입문하는데 일 년이 걸렸다. 나는 청룡무관에 들어온지 약 5년 하고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려서야 뇌신류의 고급무공을 얼추 배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6년 가까운 기간 동안에 나는 너무 많은 눈칫살을 먹었기에 스스로 괴로웠다.
"하... 자살할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연무장에 주저앉았다. 오늘도 마지못해서 연무장에 나오긴 했지만, 이광이 살벌하게 노려볼 일을 생각하자 오금이 저렸다.
지금도 그 때의 호령이 생각났다.
[ 빌어먹을! 내가 이따위 둔재에게 밑천을 다 털리다니! 이 무슨 시간낭비란 말인가! 으아아아아아!!]
지난 시간, 이광은 천뢰무극창을 배우는데 3년씩이나 걸리자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한탄을 금치 못했고, 진소청이 말리지 않았다면 나는 이광의 손에 맞아죽었을 것이다. 이광은 나름대로 생각하는 게 있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내게 열정적으로 가르침을 전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내가 너무 둔재라서 허탈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첫날에 얻어맞은 게 애교로 느껴질 만큼 처맞았다. 진소청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 때 죽어서 전생했을 것이다. 만승검결을 익히는 일 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진소청이 말려준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피곤죽이 되어버려서 무려 보름동안이나 정양해서야 일어설 수가 있었다.
지금 자살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하루하루 이광에게서 살기어린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무공을 수련하려면 여기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억지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괴로운 일이었다.
' 하 제길... 기대를 받다가 배신하게 되면 이광이 저렇게 독해지는군.'
현재의 이광은 숫제 독기를 품고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꿍얼거리며 란, 나, 찰의 수법을 연습하려고 창을 들었을 때였다.
삐리리릭!!
갑자기 창 밖에서 왠 새가 날아들었다. 잘 보니 그것은 지조(紙鳥)였고, 나는 급히 지조를 잡아채서 보았다. 지조라는 건 망량이 중급술수를 터득했을 때 내게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던 술수인 것이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그대는 청룡무관에서 잘 수행하고 있소?
나는 그대의 도움으로 기연을 얻은 후 은빛 봉황조각의 단서를 찾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녔소. 그 와중에 이런저런 동료도 생기고, 하여간 지난 세월 꽤 많은 일이 있었소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대에게 말해줘도 된다고 판단했기에 소식을 전하게 되었소.
사흘 후까지 진랑곡으로 찾아와 주시오.
망량 씀.]
망량은 내게서 흑백련 뿌리와 막야, 봉황조각을 얻은 후 그 나름대로의 5년을 보낸 모양이었다. 너무 간만의 편지라서 반가워서 나는 눈물이 흐를 거 같았다. 안 그래도 청룡무관에서 매일매일 수련하는 게 지독한 마음의 고통이었는데 이런 편지는 고맙기 그지없는 것이다.
' 그래. 일단 나가자.'
나는 망량을 만나서 그 동안의 이야기와 정보를 듣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진소청을 찾아가서 편지를 보여주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진랑곡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진소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사제가 요즘 침울한 것 같던데 기분전환으로 좋겠군. 며칠이 되어도 좋으니 맘 편하게 다녀오게. 스승님께는 내가 말해 두지."
"사형께서는 왠일로 짐을 싸고 있으십니까?"
아닌게 아니라, 진소청 또한 등 뒤에 봇짐을 챙겨놓은 상태였다.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별 거 아닐세. 슬슬 강호무림에서 활동해볼까 해서 말이야."
나는 깜짝 놀랐다.
"네? 사부께서 허락하셨습니까."
"물론이지. 내 경지가 충분해졌다고 그쪽에서 말씀을 하셨네.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강호의 마두들을 때려잡으러 여행을 해야겠지."
"그렇군요."
진소청이 유감인 듯 한숨을 쉬었다.
"사제와 함께 갈 수는 없을 듯 하네. 나는 바로 강남(江南)으로 가야 하니."
"강남이요?"
"그 곳에 마도 팔마(八魔) 중에서 독마(毒魔)라는 자가 날뛴다더군. 그 자를 제압할 생각이네."
"......"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마도 팔마라고 하면 마도팔문의 종주이며 사파무림 최절정고수들을 의미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독랄하고 무서운 독을 사용한다는 독마를 옆집 강아지처럼 때려잡고 오겠다니? 하지만 나는 진소청에게 충분히 그럴만한 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 사형은 이제부터 천하십대고수로 발돋움하는 거구나.'
어쩌면 이광이 나를 현재 미워하는 이유는 이 때문일수도 있었다. 언제가 되었든 진소청이 웅지를 펼 수 있도록 내보내줘야 하는데, 자신의 유일한 애제자에게 쏟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 나 때문에 낭비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진소청이 본격적으로 강호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 이광을 볼 시간이 거의 없을테니 이광이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진소청에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진랑곡으로 갔다. 진랑곡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고, 기분도 좋았다. 지난 시간동안 나는 열심히 무공을 수련했는데 망량은 얼마나 바뀌어있을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타닷
그러나 진랑곡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나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 뭐지?'
마을에 큰 변화는 보이지 않지만 인간이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심상치 않은 음울한 기운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뜻밖에 사방 곳곳에서 사기(邪氣)가 흘러나오는 걸 느끼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