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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내 상처가 모두 낫고 쾌유된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옆에 있는 건 관중 육대가의 의녀(醫女)였고, 곧이어 연락을 받고 의원 강손무가 찾아왔다. 그는 의식을 차린 내 몸을 진맥하더니 말했다.
"좋아. 다 나았군. 그럼 나가게."
"치료비는..."
"진소청이 다 냈다네. 자네는 지체말고 청룡무관으로 가면 돼."
"고맙습니다."
나는 포권을 하고 강씨 가문을 나섰다. 나는 강씨 가문의 현판을 힐끔 뒤돌아보며 생각했다.
' 이광의 관중에서의 영향력이 상당하구나. 의원에게 진료받으려면 보통 몇날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데 바로 진료받았다니...'
상세의 위중함과는 상관없이 강씨 가문 정도 되는 의원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가주에게 진료받기 위해서는 굉장한 인맥과 연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광은 그만한 자격을 가진 인물인 것이다.
나는 곧장 청룡무관으로 갔다. 이번에는 방일 형제가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그들은 내 모습을 확인하자 별 말 없이 들어가라고 했다. 아마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안쪽까지 걸어들어가자 와룡전 앞에서 진소청을 만날 수 있었다.
"백웅 사제. 왔는가?"
"......"
"하하. 경계하는 기색이군. 무리도 아니지."
진소청은 쓴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오늘부터 자네의 사형이 될 진소청이라고 하네. 이 청룡무관의 총사범을 맡고 있으며 먼저 뇌신류(雷神流)에 입문하기도 했지. 앞으로 잘 부탁하네."
진소청의 자기소개를 듣는 기분은 싱숭생숭했다. 이미 여러 번 들은 바가 있었지만, 예전에는 같이 종남파 현판을 뜯으러 갔던 진소청이 생면부지의 타인이 되어서 눈 앞에 서 있다는 위화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포권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형."
"그럼 따라오게. 스승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스승님이?"
치료를 해 놓고 설마 또 팰 생각인가?
나는 걱정을 하면서 진소청을 따라 들어갔다. 그의 말대로 이광은 의자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 없이 엄숙한 기도라서 절로 긴장이 되었는데, 이광이 나를 응시하더니 말했다.
"네 자질은 확인했다. 나 이광은 네 스승을 대신해서 최선을 다해 너 백웅에게 뇌신류의 정수(精髓)를 전수할 것을 다짐하겠다."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 응?'
전에는 이런 식으로 엄숙하게 선서하는 일 따위는 없었고, 그냥 가르칠 테니 보고 배워라~ 수준의 분위기가 전부였던 것이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이광이 내게 질문했다.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네가 알고 있는 걸 확인하겠다. 너는 뇌신류의 무공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알고있는대로 모두 고해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기억을 살려서 대답했다.
"창(槍)으로는 뇌령팔식(雷靈八式), 검(劍)으로는 뇌영검법(雷影劍法)에서도 천뢰인(天雷刃), 권(拳)으로는 뇌운강권(雷雲强拳)과 뇌운장(雷雲掌)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권의 경지가 발달하면 뇌신권(雷神拳)의 경지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으며, 현재 비기로써 뇌영보 천주살을 터득했습니다. 덤으로 내공으로써 뇌령(雷靈)을 이루었습니다."
"그렇군. 잘 알았다."
내 대답을 들은 이광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너는 참 애매하게 배웠구나. 본래라면 뇌령팔식을 숙련시켜서 천뢰무극창(天雷無極槍)에 입문하여 의념의 경지로 향하는 게 정석이다. 그 와중에 뇌령의 경지도 깨우치게 되어있지. 헌데 뇌령부터 익힌 다음, 비교적 약한 검술을 주종목으로 하여 신법비기를 전수받다니...?"
"아..."
"네 스승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게냐."
그의 말투에는 어이없다는 뜻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도 내 나름 기가 막혀서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아니 당신이 날 가르쳤잖아!!!'
하지만 여하튼간에 지금의 9번째 삶에서 이광은 나와 첫 대면이다. 내 전생의 비밀을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끙끙대다가 짐작가는 점을 이광에게 털어놓았다.
"검은 호신의 극의인지라 제 장기로 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무공을 전수해주신 걸로 짐작됩니다. 게다가 뇌영보 천주살을 터득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흐음... 뭔가 이상하군. 가르치는 순서가... 마치 견제하듯이..."
"......?"
나는 이광의 중얼거림을 듣는 순간 퍼뜩 지나가는 게 있었다.
' 설마?'
나는 이광에게 있어서 타 뇌신류의 제자로써, 가르치기는 해야하지만 전력을 다해서 가르칠만한 대상은 아니었다. 비기를 전수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열정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붙어서 가르쳤다고 하더라도 사범을 오랫동안 훈육하는 마음가짐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견제.
어쩌면 이전 생까지의 이광은 과하게 엄청난 내 내공을 보고, 적당한 선에서 나를 제어하기 위해서 비기를 전수하는 순서를 조정한 게 아닐까? 물론 뇌영보 천주살도 뛰어난 비기인건 틀림없었지만 지금 이광의 말을 들어보면 전수하는 속도나 과정이 일반적인 전승자와 궤를 달리하는 걸로 보이는 것이다.
내가 이런저런 추론을 하고 있을 때 이광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오늘부터는 창(槍)을 주로 해서 가르쳐 주마."
"네? 뇌영검법의 다음 단계는..."
"네 검에는 이미 환(幻)과 변(變)이 살아있다. 당장 다음 단계로 향하지 않아도 무력수위는 큰 차이가 없어.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소홀히 했던 창술을 제대로 배움으로써 뇌신류의 극의에 빠르게 접근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평생동안 하나의 병종(兵種)을 연마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뇌신류 전승자인 내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건 다른 유파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뇌신류는 창검권(槍劍拳) 세 개의 무공이 조화를 이루어서 상승효과를 이루게 된다. 네 스승은 그런 것도 가르쳐주지 않더냐?"
"들은 바는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만 제대로 배워도 상관없다고..."
내가 대답하자 이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스승은 정말 개떡같은 놈이군. 어떻게 뇌신류의 전승자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천뢰무극창(天雷無極槍), 만승검결(萬昇劍決), 뇌신권(雷神拳)이 모두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하나라도 깨우침이 부족하면 하나도 얻지 못하거늘."
"읍."
나는 이광이 스스로를 까는 게 너무 웃겨서 순간 웃음이 터져나올 뻔 했다.
' 이 인간아 당신이 가르쳤다고!'
하지만 다음 순간, 내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하자 가슴이 철렁했다.
' 음 이거 심각한데.'
이광의 말대로라면 - 전생(前生)까지의 이광은 내게 전력으로 가르쳐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개인지도 시간은 길었으나 내게 뇌신류의 극의(極意)를 보게 하려 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리라.
이광은 타 뇌신류 제자에 수상쩍은 내게 진심으로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재능까지 일천했으니 보법비기를 포함해서 검, 권 분야에서 맛만 보여주려는 생각이었으리라.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사범 수준에서는 차고넘쳤고 강호에서 이름을 알리기에 족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이전 생에서 살아남아서 평생동안 열심히 무공을 수련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뇌신류의 극의를 얻는 건 불가능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설혹 뇌영검법의 다음 단계인 만승검결을 터득하는데 성공했더라도 나는 갑자기 막혀버린 무학경지 때문에 갈피를 못 잡고 헤매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이광이 말했다.
"우선 네 이해도를 확실히 좀 봐야겠다. 연무장에 가서 네가 알고 있는 뇌신류 무공을 차례대로 시연해 보거라."
"네."
나는 몇 번이고 했던 일이기에 거침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무공을 모두 차례대로 펼치자, 뇌영보 천주살을 터득했기 때문인지 움직임이 훨씬 유기적으로 변한 게 느껴졌다. 마지막까지 초식을 펼쳐내자 이광이 평가했다.
"뇌영보 천주살은 제대로 배웠군. 검법은 너 스스로 발전시킨 것이냐?"
"강렬한 영감을 얻은 적이 있습니다."
"흠, 좋아. 역시 조잡한 창술만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 내에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광은 그렇게 말한 후, 그날부터 계속해서 내게 창술을 개인지도하며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전 생에서 집중적으로 가르침받을 때 이상으로 혹독하고 열정적인 태도라서, 나는 눈 앞에 있는 이광이 본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까강!
까앙!
나는 목창을 쉴새없이 휘두르면서 뇌령팔식을 연속으로 펼쳤다. 이광의 주문에 따라서 뇌영보 천주살의 변화를 가미하면서 8개의 초식을 계속해서 다른 방향으로 펼치는 연습이었다. 벌써 세 시진째 휘두르는 것이라서 내 전신은 땀으로 가득 젖어 있었으나 이광은 연속해서 호통을 쳤다.
"계속 생각하고 계속 휘둘러라! 창(槍)은 최강의 무기다! 네가 정성을 바치는 그 이상으로 네게 힘을 가져다 줄 것이다. 뇌령팔식의 모든 초식을 조합해서 최적의 공격로를 만들어 내라!"
"넵!"
까가가강
나는 그 날 하루종일 창을 휘두르다가 일곱 시진째가 되어서 멈출 수 있었다. 피로도로 치면 십만 번 베기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단순무식하게 휘두르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절기를 시전하고 있는 셈이었으므로 정신적으로 빠르게 지쳤다. 내가 턱까지 숨이 차서 바닥에 쓰러져 있자 이광이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창의 공격거리가 넓고 긴 대신, 근거리로 파고들면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검객이나 도객들이 흔히 하는 착각인데 왜냐하면 그 자들은 강호에서 제대로 창술을 수련한 고수를 만나볼 일이 적기 때문이다."
쐐액
이광의 창이 전방으로 뻗어져 나왔다. 그 창극에는 심상치 않은 기백이 흐르고 있었다. 이광은 마치 전방에 적이 있는 것처럼 노려보다가 말했다.
"천만의 소리다. 창은 근거리에서도 강하다. 창술 본연의 모습은 모든 상성을 무시하는 전투의 최강자! 너는 지금까지 뇌령팔식의 초식만을 알고 있었으나, 이제부터 창술에 존재하는 섬세하고 강력한 기본기를 연마하게 될 것이다."
"기본기요?"
"그렇다. 너는 총 3가지의 기본기를 연마하게 될 텐데 이 모든 것이 비기(秘技)라고 봐도 좋다. 그게 바로 창술의 신묘함이지."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 이광한테 가르침받는 동안에 이런 걸 배운 적은 없었는데?'
지금까지 이광은 내가 검법을 장기로 하고싶다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검술을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악착같이 창술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나아가서 기본기를 터득하게 하려 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란(?), 나(拿), 찰(刹)!"
"네에?! 그건 정말 기본기 아닙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서 반문했다. 지금 이광이 말한 3대 기본기는 이미 배운 적이 있는 것이었다. 뇌령팔식의 초식을 펼칠 때 그걸 먼저 터득하지 않으면 펼칠 수조차 없다.
란이란 밖으로 튕겨내는 외전(外轉)이었고 나(拿)는 안으로 휘어잡는 방어기법인 내전(內轉)이다. 또한 찰(刹)은 그냥 앞으로 찌르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약 3달동안 란나찰을 익숙하게 배워서 뇌령팔식을 펼쳐내는 기본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 재능이랑 별 상관없이 조금만 익숙해지면 익힐 수 있는 기본기였다.
그러나 내가 반문하는 순간 이광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놈!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네가 란나찰이 뭔지 알긴 하느냐?"
투쾅
그 순간 이광의 목창이 빛살처럼 움직이더니, 내 등 뒤의 벽이 무려 직경 2장이나 되는 크기로 부숴져 나갔다. 내가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자 이광이 말했다.
"방금 나는 란나찰의 기법만 썼다. 비기 따위는 쓰지 않았다. 한 초식에 뭘 어떻게 썼는지 보였냐?"
"아... 아니요."
"평생 수련해도 모자란 것이 기본기인데 감히 그딴 소리를 하다니!"
격렬하게 화를 내던 이광이 말했다.
"진소청은 이미 천뢰무극창의 비기까지 다 터득했지만, 비기를 연습하는 게 아니라 매일 란나찰만 반복하고 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가 기지도 못하면서 나는 사람을 비웃는 건 용서할 수 없다."
"......"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매일같이 란, 나, 찰의 수법을 수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루한 반복작업이라는 생각과 달리 이광은 틈틈히 기본수법의 응용을 가르쳐준 데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묘용을 가르쳐 주었다. 말 그대로 창만 갖고 수십 년간 살아온 사람이 아니면 터득하지 못할 요령들이었다.
그리고 약 반 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나는 그 날도 수련장에서 미친듯이 하루종일 수련만 하다가 쓰러져서 잠들고 있었다.
꿈에서 왠 신선(神仙)이 나타나서 구름다리를 타고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가 들고 있는 막야를 가리키며 말했다.
[ 나는 태허천존이다. 그 검의 댓가는 오늘로 모두 끝났다.]
[ 네?]
[ 네 운(運)이 원래대로 돌아가리라. 그럼 안녕.]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 잠깐만요!]
[ 왜?]
[ 수천 년치 수기를 드렸는데 벌써 끝입니까?]
그러자 태허천존의 미간이 좁혀졌다.
[ 보통 인간의 평생치 대운(大運)을 몇 번이나 넘겨주었거늘.]
[ 진짭니까?!]
[ 진짜래두.]
그렇게 말한 태허천존은 총총걸음으로 다시 구름다리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 너는 지금의 마지막 복(福)으로 만족하라.]
"......"
나는 침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소매로 침을 닦으며 생각했다.
' 뭐야. 지금까지가 대운의 연속이었다는 건가? 그럼 마지막 복이 뭐지?'
태허천존의 말 뜻은 바로 다음 날 알 수가 있었다.
란, 나, 찰의 기본기를 평소처럼 펼치던 도중이었다. 나는 창술을 시전하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팍하고 오는 게 있어서 뇌영보 천주살을 응용해서 뇌령팔식을 함께 펼쳤다. 이런 시도는 처음 해 보는 것이었지만 왠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 뭐가 왔어!'
파바바밧
"하앗..."
놀라운 일이었다. 기본기의 응용과 수련도를 높이고, 보법비기를 합한 것 뿐이었는데 내가 펼치는 뇌령팔식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활하고 강력한 창술으로 변모해 있었다. 지금까지 내공을 억지로 불어넣지 않으면 형성할 수 없었던 기운이 마치 이슬처럼 변해서 자연스럽게 창 끝에 맺혔다.
홀황의 상태에서 뇌령팔식을 연속해서 16번 다른 형태로 펼쳐내자 전신에서 땀이 흐르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상쾌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선 채로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뇌령팔식의 다른 경지에 접어든 것이다.
"훌륭하다. 처음이 부진해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너는 역시 훌륭한 자질을 지니고 있구나."
"사부님."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성장해주지 않으면 곤란하지."
어느 새 이광이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빙긋이 웃더니 말했다.
"그동안 고민했지만 결정했다. 너에게 결전오의(決戰悟義) 뇌명(雷鳴)을 전수하마."
결전오의?
생전 처음 듣는 개념이었다. 이광은 대체 그 동안 전생하면서 나를 가르치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꿍쳐두었단 말인가? 내 재능이 얼마나 병신같았으면 십수 년차가 넘어가는 지금에 와서야 겨우 알려줄락말락이란 말인가. 내가 내심 황당해하고 있을 때 이광이 말했다.
"뇌명이란 호흡(呼吸)이다. 무술과 내공의 기초가 호흡이란 건 이미 알고 있겠지?"
"네."
"뇌명의 호흡은 뇌신류의 비기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비밀이기에, 자신이 인정한 진정한 전승자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전수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일인전승(一人傳承)이 전제가 되는 사상최강의 절기인 셈이다."
사상최강!
지금껏 이광이 어떤 기술을 표현할 때 이런 광오한 표현을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물며 천뢰무극창같은 절세의 창법도 아니고 호흡에 이런 표현을 쓰다니.
그렇게 말한 이광은 한쪽 손을 앞으로 내놓은 채 뇌운강권의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더니 전신에 힘을 모으는 듯 했다. 그 상태로 가만히 버티고 있던 이광이 말했다.
"이 뇌명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심기혈정(心氣血精)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단전이란 마음의 밭이며, 의지가 내공을 이끈다. 기경팔맥도 사실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뇌명은 심기혈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서, 한순간 자신의 의지 전체를 번개로 바꿔버리는 호흡이다. 단 한 호흡으로 모든 걸 바꿀 수 있다."
"의지를 번개로 바꾼다고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쩌엉!
이광의 몸이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몸이 다시 나타났을 때는 소리가 터지는 후폭풍과 함께 거대한 일 권(一拳)의 형상이 벽에 박혀 있었다. 나는 이게 단순히 힘과 속도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뭔가가 작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 일 권이 나를 향해 덮쳐올 경우,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는 걸 알아챘다.
내가 오싹하는 표정을 짓자 이광이 말했다.
"눈치챈 것 같군."
"설마 이 호흡은..."
"호흡의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네가 펼치는 모든 뇌신류의 기술이 비기의 위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창(槍), 검(劍), 권(拳)이 조화스럽게 발달했다면 그 위력은 더욱 극대화되지. 뇌명을 쓰면 뛰어난 달인이라고 해도 잡아죽일 수 있으므로, 이 호흡을 호살(豪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나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 만일 이광이 뇌명을 써서 싸운다면...?'
지금까지 이광이 일부러 뇌명을 써서 나와 싸우는 기색은 없었다. 그것은 종남파에 쳐들어갔을 때의 진소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강력한 초절정고수인 그들이 뇌명을 써서 전력(戰力)을 몇 배나 키우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말인가?
이광이 훗하고 웃었다.
"물론 이게 결전오의인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뇌명의 호흡을 지속하는 동안에는 내공이 엄청난 속도로 소모되기 때문에, 나조차도 뇌명을 30초 이상 끌어올리지 못한다. 또한 뇌명이 끝나고나서 몇 초 동안은 급격히 약해져서 위기에 놓이기 쉽지. 그렇기 때문에 뇌명은 필살기(必殺技)이다."
"펼치면 반드시(必) 적을 죽여야하는(殺) 기술(技)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너도 명심해 둬라."
이광의 눈이 파르스름하게 빛났다.
"너, 나, 진소청. 이 이외의 인간에게 뇌명을 펼칠 경우 그 자는 반드시 죽여버려라! 그렇지 않는다면 네가 죽게 될 것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알겠습니다."
"그럼 결전오의 뇌명의 전수를 시작한다."
나는 이게 내게 내려진 태허천존의 마지막 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네."
무술의 깨달음.
게다가 원래라면 몇 년이고 수십 년이고 청룡무관에 붙박이처럼 있어도 결코 배울 수 없을 결전오의 뇌명 - 그것을 낙양에서의 우연이 겹치고, 이광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높아진 덕에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