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70화 (7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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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나는 사실 아직까지 뇌영보의 비기, 천주살에 대해서 온전히 습득했다고 할 수가 없었다. 천주살을 대략적인 운용은 알고 있으나 세부적으로 진기의 흐름을 통제해서 완벽한 위력을 내는 게 불가능했다. 단적으로 내 사형인 진소청이 가볍게 종남파 일대제자의 검초를 농락했을 때처럼 능란하게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경지는 아직 발휘하는게 불가능했다. 순간속도로는 비슷하게 낼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전적으로 내공에 의존한 경지였다.

천주살을 완전히 터득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 혹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내가 '터득했다'라고 하는 것도 흉내를 내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 뿐인 것이다. 내가 고수와의 실전경험을 얻으려고 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생사를 건 대결 속에서 진기에 대한 집중력이 극도로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몸에 터득될 거라는 이론 때문이다.

우우우우...

내가 이 집에서 기거한지 약 한 달이 지났다. 나는 그 동안 뇌영보 천주살을 비롯해서 내가 익혔던 무공을 되짚어보고 다시 시전하는데 주력했다. 또한 기경팔맥 곳곳에 흩어져있는 내공의 통제력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어찌보면 의미없어보일 수도 있으나, 이 과정과 수련 전체가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있는 것이다.

' 안돼. 너무 어려워.'

나는 오늘도 천주살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서 턱턱 막히는 걸 느끼고 짜증을 낸다. 세부적인 운용이 너무 어렵다. 이걸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무공전반에 적용이 되어서 훨씬 빠르고 강해질텐데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뭔가 계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황궁어전대회 전까지는 내 수준을 한단계 올려놓아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 정보라도 얻어 보자.'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집에서 나가서 낙양 성내를 돌아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조금이라도 내 무공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다면 그걸 습득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내가 제일먼저 향한 곳은 개방의 거지들이 기거한다는 창흠 거리 너머의 굴다리로 향했다. 예전에 점소이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개방의 분타가 여기에 있다는 것 같았다. 내가 굴다리 근처에 다가가자 거지들이 힐끔거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굴다리 위에서 그들을 바라보다가 휙하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개천 옆의 자갈밭에 움막을 짓고 모여있는 거지들의 시선이 한번에 내게 박혔다. 나는 천천히 거지들에게로 걸어가며 말했다.

"여기에 개방도들이 있다고 들었소만."

"한씨세가의 새로운 빈객(賓客)이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신가?"

한 거지가 비척거리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나는 그의 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저 뻐드렁니 거지가 이 분타를 책임지는 분타주일지도 몰랐다. 나는 일단은 그가 무림의 선배라고 할 수 있었기에 포권을 하며 말했다.

"나는 백웅이라고 하는 사람이오. 정보를 사고 싶어서 찾아왔소."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네."

"당신이 누구인데 그걸 함부로 결정한단 말이오?"

뻐드렁니 거지는 자신의 이빨 사이를 손톱으로 긁으며 대답했다.

"나는 개방 낙양분타주인 철리개(鐵李?) 오영풍이라고 하네. 정보를 매매할 권한은 내게 있지."

"그렇군."

"단정지어서 말하건대, 우리는 그대에게 정보를 팔 생각이 없네."

나는 개방의 분타주가 무림에서 상당한 위상을 지닌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표사 시절에도 알고 있었던 정보로써, 천지의 거지떼가 모였다는 개방에서도 정종신공을 전수받고 의협활동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분타주급이었다. 그 중에 몇몇은 왠만한 대문파 후기지수를 넘어선다 했으며 강호인들도 개방을 상대할 때 신중해지는 이유였다.

나는 철리개 오영풍에게 말했다.

"철리개. 내게는 충분한 돈이 있는데 어째서 정보를 팔 수 없다는 거요?"

"바로 그걸세. 자네는 너무 돈이 많아."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철리개가 음충맞은 미소를 지었다.

"본인만 모르고 있었나 보군. 백웅 자네가 대택(大宅)을 구매한 사실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 그 과정에서 금괴(金塊)를 매매했다는 사실도 알려졌어. 자네가 숨겨진 알부자라는 게 낙양의 암흑가(暗黑街)에 쫙 퍼졌다는 말일세."

"......."

"현재 자네가 한씨세가의 빈객이며 비호를 받고 있기에 다들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일세. 조만간 자네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겠지. 우리는 그 흙탕물 싸움에 끼어들기 싫기에, 소협과 관계되기 싫다는 것일세."

나는 그의 말을 듣자 짚이는 게 있었다.

' 설마 한 달 동안 집 근처에서 느껴지던 수상한 기척이 그거였나?'

전문도둑, 정탐꾼 따위가 내 집을 맴돌았다는 뜻이다. 나는 기운이 워낙 별볼일없어서 그들을 내버려두었지만 확실히 듣고 보니 심상치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한씨세가의 빈객이 아니었다면 그 자들은 진작에 나를 노리고 쳐들어왔을 거란 말이 아닌가?

내가 침묵하자 철리개가 말을 이었다.

"알아들었으면 이만 가 보게. 섭섭하게 생각지 말고."

"이상하군. 내가 알부자이고 풍운의 중심에 있다면, 당신들은 더더욱 내 보물을 노리고 욕심을 부려야하는 게 아니오? 말과 행동이 맞지 않는군."

"흐흐. 웃기는 소리."

철리개가 큭하고 웃었다.

"우리는 백웅 소협이 절세무비(絶世無比)한 내공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괜히 자네를 상대로 잔머리를 굴려서 손해를 볼 정도로 바보가 아니야. 게다가 한씨세가라니... 호랑이 코털을 뽑는 짓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게 정도(正道)란 거지."

나는 결국 강경책을 내놓기로 했다.

쐐액 - 푹!!

"......!!"

내가 품속에서 꺼내서 던진 금괴가 철리개의 발에서 한 치 앞에 박혔다. 철리개는 물론 주변에 있던 거지들의 이목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철리개는 갑작스럽게 안색이 변하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는 철리개를 정면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면 나는 더더욱 정보를 사야겠군. 그 금괴를 주겠으니 어떤 정보든간에 내게 파시오. 그게 내 요구사항이오."

철리개가 마른침을 삼켰다.

"지... 진심인가? 겨우 정보값으로 이걸 내놓겠다고?"

"얼른 주우시오.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

철리개는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아마도 이성적으로는 내 제안을 거부해야한다는 걸 알고 있으나, 발 밑의 황금빛이 번쩍거리는 걸 이겨내기 힘든 듯 했다. 그는 결국 허리를 숙여서 천천히 땅에서 금괴를 뽑았는데 찬탄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세게 던졌는데 금괴는 내공으로 보호되어 손상이 없다니... 그대는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을 터득했군."

"잔소리 말고 이제 솔직한 얘기를 해 봅시다. 당신이 이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모두 내게 말해 주시오."

"그래야겠군. 허나 그 전에 이 자리를 주시하는 이목부터 치워주지 않겠나?"

철리개의 시선은 멀리 굴다리 위쪽을 향하고 있었다.

"당신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시오."

"알았으니 처리나 해 주게."

"물론."

나 또한 거기에서 기척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천천히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발검(拔劍)하며 굴다리 위쪽으로 뇌영보를 발휘해서 뛰어올라갔다.

파앗!!

비호(飛虎)같은 속도로 순식간에 20여 장을 압축시키며 날아든 곳은 인적없어보이는 골목이었는데, 거기에 있던 인영(人影)이 깜짝 놀라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제기랄!!"

까앙

"으아아아악..."

괴한은 빠르게 내 검을 막아내고 도망칠 생각인 듯 했으나 오산이었다.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절정고수인 종남파 장로마저도 제대로 일격을 막아내기 힘든 게 내 강검(强劍)인데 쥐새끼같은 놈의 실력으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대번에 뇌령지기가 놈의 상반신을 마비시켰고 놈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히, 히익 살려줘..."

나는 놈이 야행의(夜行衣)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옷을 입고 있으니 대낮인데도 골목에 숨어있으면 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나는 놈의 목젖에 검을 갖다대며 싸늘하게 말했다.

"도적(盜敵)이냐?"

"그, 그렇소.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오..."

"흠."

까강!!

나는 다음 순간 검을 휘둘러서 표창을 쳐 냈다. 다섯 갈래로 날아온 표창은 분명히 상당한 솜씨였고, 두 갈래가 도적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도적은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았다는 걸 알아챘는지 안색이 새파래졌다. 나는 도적의 멱살을 잡아채며 다시 굴다리 밑으로 뛰었다.

내가 허공에서 두 바퀴를 돌며 사뿐하게 착지하자 철리개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군."

도적은 철리개와 눈이 마주치자 비굴하게 웃었다.

"헤헤... 철리개. 나와 안면도 있지 않소?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으니 도로 놔 달라고 이 소협께 부탁 좀 해 주시오. 제발 부탁이니..."

"철리개. 이 자는 누구요?"

철리개가 도적을 무시하고 내 질문에 대답했다.

"낙양에 횡행하는 도적 중에서 꽤 뛰어난 솜씨를 갖고 있는 자로써 경족도(慶足盜)라는 별호를 가진 자요. 이 자가 당신의 보물을 노리고 있었나 보군."

"히이이익..."

"흠. 고문이나 해 볼까."

내가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리며 손을 들자 경족도는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러더니 내 바지자락을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말했다.

"소협! 소협!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시오. 나만 소협을 노리는게 아니니, 아는 걸 모두 말할테니 제발 놓아주시오. 두 번 다시 소협 앞에 나타나지 않겠소."

나는 경족도를 힐끔 바라보고는 그의 혈을 짚어서 움직이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철리개는 그깟 도적 죽여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관망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긴 개방의 분타주 입장에서는 도적을 보호해줄 의리같은 건 없으리라. 나는 말했다.

"철리개 당신의 이야기부터 들어 봅시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좀 말해 주시오."

"그러지."

철리개는 경족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런 놈을 포함해서 최소한 10여 명의 무림인과 도적이 당신 주변을 맴돌고 있소. 내가 아는 한에서는 천과직, 혈화쌍창, 묵금자, 마랑객, 전야팔 정도가 강호의 일류고수급이며... 그 외에는 하오문(下午門), 흑사회(黑蛇會), 백도문(白刀門), 찬의문(燦議門)의 고수들이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

생전 처음 들어보는 놈들이었지만 그 말대로라면 수십 수백명의 무림인들이 내 금괴를 노리고 이리저리 맴돌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동안 별생각 안하고 집에서 편하게 지냈는데, 설마 그 놈들에게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당하고 있었다는 뜻인가?

아마 놈들이 내게 습격하거나 훔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금괴가 든 목갑을 늘 몸에서 떼어놓지 않은데다가 한씨세가의 빈객이라고 하는 배경 때문에 확실한 기회를 찾고 있었던 것이리라.

' 너무 방심했나...? 기감에 가끔씩 일류나 절정고수가 잡혔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전혀 짚이지 않는 건 아니다. 이따금 집 주변에 상당한 고수들이 지나다니긴 했다. 하지만 살기를 내뿜지 않기에 내버려뒀는데, 이제 보니 그 놈들도 내 금괴를 노리는 놈들이었던 것이다. 내가 황당해서 가만히 서 있자 경족도가 입을 나불거렸다.

"아이구 소협... 그 자들 중에서 흑사회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요. 그놈들은 낙양 암흑가에서 가장 더럽고 무서운 놈들입죠. 독과 암기를 서슴없이 쓰는 놈들이니 왠만하면 마주치지 않는 게 좋습니다요."

까앙!

"히이익."

나는 경족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날아온 표창을 또다시 쳐 냈다. 나는 경족도를 노린 표창을 여러 번 쳐내는 게 웃기고 기가 막혔다.

그래서 떨어지는 표창을 잡아채서 내밀며 이죽거렸다. 표창에는 흑색 뱀이 음각되어 있었다.

"흑사회도 너를 썩 좋아하지는 않나 보군."

"아, 아, 안돼... 흑사회가 날 노리면..."

경족도의 얼굴이 절망으로 굳었다. 나는 철리개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철리개. 그 정도 정보로는 금괴 한개값이 되지 않소."

"내가 어쩌길 바라시오?"

"적어도 이 자리에서 개방의 영향력이 있다는 걸 저 자들에게 알려줬으면 좋겠군."

"크응... 어쩔 수 없지."

철리개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내공을 돋우어서 사자후를 내질렀다.

[ 우리 개방 낙양분타는 백웅 소협을 지지하오! 이 근방 백여 장 이내에서 무력행사를 하는 건 개방에게 시비를 거는 걸로 간주하겠소.]

사자후는 제법 크고 웅혼했다. 다소 쩌렁쩌렁하게 민가 근처까지 울릴 정도였다. 근처의 관원들이 놀라며 이쪽을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는 걸로 봐서는 관에서 무림의 일에 별로 상관하지 않으려는 듯 했다.

그러자 갑자기 큰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으하하하... 개방도 금을 보면 별수 없구만?"

쉬쉬쉬쉭

굴다리 위에 약 스무 명의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그 자들은 하나같이 등에 검(劍)을 메고 있어서 무림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철리개는 그들 중 선두에 서 있는 자를 보자 짜증나는 듯 외쳤다.

"흑사회주(黑蛇會主). 내가 말했던 걸 못 들은 건가?"

낙양의 암흑가를 반쯤 지배하고 있다는 흑사회주가 팔짱을 낀 채 철리개를 조롱했다.

"아아, 자네가 금괴에 혹해서 추태를 부리는 꼴을 똑똑히 보았네."

"뭐라고!!"

철리개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고 근처에 있던 개방제자들이 자신들의 장죽과 몽둥이를 잡았다. 여차하면 흑사회와 부딪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흑사회주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냐아냐. 우리가 어찌 구파일방의 대개방을 함부로 건드리겠나? 이 자리는 자네 뜻을 존중하지."

"썩 물러가게."

"허나 말이지, 돈냄새가 나. 그 소협에게서는 엄청난 돈냄새가 난다구. 개방에서만 그걸 독차지하려 든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

흑사회주가 은근슬쩍 철리개를 견제하자 철리개가 기가 막힌 듯 말했다.

"독차지라고? 네놈은 백웅 소협이 속한 게 한씨세가라는 사실도 모르는 건가?"

"잘 알지. 그래서 여태 관망만 하고 있었지. 한씨세가와 잘못 엮이면 우리 문파가 풍비박산 날지도 모르니까 말야."

그렇게 말한 흑사회주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헌데 말이지, 우리 부하들이 저 소협을 관찰해 보니, 저 소협은 싸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가봐? 먹고 잘때 빼고는 뭔가 무공을 수련하던데, 살기가 그득하더군. 저 소협은 타고난 투견(鬪犬)의 기질이 느껴져."

"하고싶은 말이 뭐지?"

내가 반문하자 흑사회주가 큿하고 웃었다.

"백웅 소협. 설마 당신을 노리고 있는 모든 낙양고수와 싸울 생각은 아니겠지? 내게 금괴를 좀 양도해 주면 내 최대한 힘을 써서 잡졸들을 없애 주지. 그리고 소협이 무공을 시험할만한 좋은 장소도 소개시켜줄 수 있어. 내가 낙양의 어둠을 쥐고 있다구."

흑사회주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확신해서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나는 힐끔 철리개를 쳐다보았다. 철리개의 표정이 그리 달라지지 않는 걸로 보아, 흑사회주가 낙양의 암흑가에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사실같았다.

"요약하자면 금괴 내놓으란 말이군."

"으하하...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힘 쓸 곳을 소개해주겠다는 건 사실이야. 소협은 아마 황궁어전대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전에 좋은 몸풀기 장소가 있어."

"어딘지부터 말해."

"투마(鬪魔)가 주최하는 암경무투회(暗景武鬪會)라고 하지. 여기에서 우승한다면 소협은 투마에게서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지. 사람을 맘껏 죽여도 아무런 도의적 책임을 듣지 않아. 모든 살인과 고문이 허용되는 곳이라고."

암경무투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철리개 오영풍이 되려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뭐, 뭐라고! 암경무투회의 주최자가 투마였다고?!"

흑사회주가 빙긋 웃었다.

"흐흐. 딱히 숨길 일도 아니니까 당신에게도 정보를 공유하지. 당신이 생각하는 그 투마가 맞아."

"으음..."

흑사회주가 능글맞게 말했다.

"투마께서 좀 더 많은 참여자를 바라거든. 철리개 당신도 많은 홍보를 부탁해."

"닥치게."

나는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철리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철리개가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소협, 저딴 제안은 거절해 버리시오. 암경무투회에 참여하는 건 미친 짓이오."

"그게 뭔데 그럽니까? 투마는 또 누구고?"

"암경무투회라는 건 이 낙양의 권력자들이 묵인(默認)하고 있는 최대급의 투기장(鬪技場)이오. 강호무림에 떳떳이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사파와 마도의 고수들도 대거 참가하고, 승리한 자는 포상을 받지만 패배한 자는 반드시 죽는 곳이오."

그렇게 설명한 철리개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리고 투마라는 자는 마도팔문(魔道八門)을 이끄는 8인의 수장(首長) 중 한 명으로, 수라문(修羅門)의 지존(至尊)이오. 마도 최고의 고수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소."

"......!!"

"설마 암경무투회의 배경에 수라문이 있었다니..."

마도팔문 수라문의 수라문주!

그것이 투마인 것인가.

나는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흑사회주.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흑사회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쩔 도리는 없지. 소협의 실력으로 봐서는 흑사회의 전력을 투입해도 죽일까말까일 테니. 하지만 소협에게 우리같은 날파리떼를 떨쳐낼만한 세력은 없는 것 같군?"

그렇게 말하더니 철리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철리개도 지금 소협을 위해서 간도 빼줄 것처럼 굴고 있지만 이 자리만 나서면 소협에게서 마지막 한톨까지 긁어내려고 정보력으로 간을 볼 거야. 나는 장담할 수 있어. 소협은 황궁어전대회에 참여하기 전에 모든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하게 될걸."

"협박인가?"

"흐흐, 소협을 노리는 건 나 뿐만이 아니야. 내로라하는 놈들은 다들 간을 보고 있지. 그놈들을 죄다 죽여서 은원(恩怨)을 눈덩이처럼 쌓을 생각이라면 말리지는 않겠어."

"......"

나는 조금 더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암경무투회 참가비 겸 여기 경족도의 목숨값이다."

파앙!

내가 던진 금괴가 천천히 날아가더니 큰 파공음을 내고는 가속했다.

"으헛."

흑사회주는 놀란 듯 금괴를 두 손으로 받으려 했는데 내공이 딸리는지 뒤로 훅하고 날아갔다. 그런 흑사회주를 보조하려고 다른 흑사회원들이 달라붙어서 간신히 십여 장을 날아간 끝에 내려앉았다. 간신히 금괴를 받아 낸 흑사회주가 입에서 피를 한 줄기 흘리며 말했다.

"소협이 장난이 많이 심하군."

나는 피식 웃었다.

"당신 너무 깐족댔다는 말이지. 여하튼 그걸로 내 요구조건을 들어줘야겠다."

"좋아. 흑사회의 영향력으로 백웅 소협에게 붙은 날파리를 떨쳐내 주지. 그리고 덤으로 그 경족도란 쥐새끼도 한 번은 봐주겠어."

경족도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내가 혈도를 풀어주자 울며불며 내게 절을 했다.

"아이구 소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옆에 있던 철리개가 약간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소협은 금괴가 아깝지도 않은가? 저런 사파놈에게 금괴를 주고 암경무투회에 참가하겠다니 제정신이 아냐."

"그렇다고 개방에서 내 신변을 보호해줄 깜냥이 있는 것도 아니잖소? 도와줄 게 아니라면 오지랖은 받지 않겠소."

"......"

내 말이 사실인지 철리개가 내 시선을 회피했다. 역시 그 또한 금괴를 받아먹고 낼름해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금괴 하나를 가지고 흑사회 및 온갖 고수들에게서 나를 보호해주기에는 손익이 안맞는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나는 중얼거렸다.

"별로 목숨같은 게 아깝진 않으니까."

"뭐?"

나는 철리개의 말에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 죽으면 죽는 거지. 암경무투회가 뭔지부터 알아야겠다.'

지금은 내 목숨같은 걸 아낄 때가 아니다. 어차피 죽어도 되살아난다면, 뒈지는 한이 있어도 모험에 몸을 맡기면서 하나라도 많은 정보와 경험을 긁어모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암경무투회에서 마도팔문 투마라는 놈에 대한 정보나 약점을 알 수 있으면 좋다. 그건 앞으로 마도팔문에 대한 내 복수에도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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