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8화 (6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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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나는 내 무공에서 미진한 점을 알아보기 위해 그로부터 며칠동안 낙양에 가기로 했다. 일단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각종 무림세력도 많으며, 동시에 금력(金力)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은원(恩怨)이 없는 상태이므로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으면 무난하고 평범하게 낙양에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장은 뭘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한미한 시골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낙양에서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해야할 일을 찾아나설 생각이었다. 게다가 영 일이 풀리지 않을 경우 다시 낙양 쌍문사가에 도전하며 수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이제 비무에 대한 공포는 많이 없어졌어.'

철혈문에서 죽었던 일 때문에 나는 다소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러나 진소청이 나를 데리고 종남파 깨부수기를 해준 덕분에, 나는 그 때의 정신적인 외상을 많이 치유할 수 있었고 자신감도 붙었다. 지금은 특출난 무공의 진전이 없으나 의욕이 만만해있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나는 낙양에 들어와서는 집을 하나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도 혼자 수련하고 생각할 수 있는 본거지같은 느낌의 집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주택을 거래하는 상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대개 말직(末職)의 관리들이었다.

섣불리 민간에 거래 권리를 주면 낙양의 질서가 혼란스러워진다고 생각했는지, 10품 말직이긴 하지만 어쨌든 관리가 그 일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 또한 민간의 업자들과 힘을 합쳐서 세부적인 일을 처리하는게 보통이었다. 큰 일이 있을 경우 자신의 직위보다 높은 상사에게 일을 보고하며 처리하며, 최후에는 육부(六部)의 상서(尙書)에게 보고하게끔 되어 있었다.

내가 찾아간 관리가 말했다. 그는 관공서에서 떡하니 자기 책상을 지니고 앉아서 거드름을 피고 있었는데 약 8품 정도의 관리로 보였다.

"흠... 백웅이라고 했나? 그정도 집을 얻고 싶다고? 그러려면 은자 오백 냥은 필요하건만."

그는 내 나이가 너무 어려보여서인지 불신의 기색이었다. 다만 낙양에서 부유한 가문의 소공자(小公子)들이 큰 거래를 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일면식에 내치지는 않는 듯 했다.

"이걸로 되겠습니까?"

"......!!"

내가 금괴를 한 덩어리 내놓자 그의 눈이 튀어나올듯이 커졌다. 금괴에는 은자 오백 냥의 몇 배나 되는 가치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슬러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큰 소리만 내지 마십시오."

"아암..."

그리고 급히 금괴를 팔으로 숨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다른 사람이 보았나 아닌가를 확인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물론! 물론 충분하고 말고.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걱정 마시오. 집을 얻고싶은 지역이라도 있는가?"

"낙양 쌍문사가 근처에 집을 얻고 싶습니다."

"쌍문사가? 어디 보자..."

낙양의 지도를 꺼내서 보면서 슬며시 금괴를 품안에 넣는 관리였다. 그는 잠시동안 커다란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서씨세가(徐氏世家) 에서 오십 장 떨어진 곳에 좋은 곳이 있네. 졸부가 땅투기 용으로 사놓았다가 매매가 잘 되지 않아서 반쯤 내놓은 집인데, 경관이 좋아. 하자도 하나 없으니 충분히 좋을걸세."

"매매가 잘 되지 않다니요?"

"오해 말게. 그건 어디까지나 졸부가 지나치게 가격을 올려받으려 하다보니 사람들이 기가 질려서 나가떨어진 게야. 내가 이 일을 처리한다면 뒷말 하나 안나오게 이 집을 자네 소유로 만들어 줄 수 있네. 나만 믿고 있게나."

"네네. 알겠습니다."

"사흘이면 족할 걸세. 그 때 찾아오게. 집문서와 낙인을 양도하지."

나는 슬며시 그에게 질문했다.

"헌데 여쭤볼게 있는데, 이 낙양에서 가장 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허허... 자네가 무언가 뜻이 있나 보구먼."

관리는 내가 금전을 바쳐서 출세(出世)하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메기수염을 뒤틀며 웃었다. 그는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소곤거리며 말했다.

"다들 쉬쉬하지만 낙양 제일의 부자는 한씨세가(韓氏世家)일세. 그들은 대륙 전체에 무려 20개나 되는 전장과 5개의 표국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동(山東)에 또 다른 거점이 있다고들 하지. 관리들의 심기에 거슬릴까봐 조용히 지내고 있을 뿐 일개 국(國)에 버금가는 돈을 지니고 있는 진정한 거부일세. 물론 그 자들이 숨기고 있기에 아는 사람들만 아는 사실이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예전에 낙양의 정보를 점소이를 통해 캐낼 때는 전혀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나는 놀라서 반문했다.

"한씨세가라면 철혈태검 장서이한의 쌍문사가 중 하나가 아닙니까? 일개 무림세가가 어떻게 그런 부를..."

"나도 잘은 모르겠으나 그들은 아주 유서깊은 가문이라고 들었네. 전대 왕조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다고 하던데, 그런 가문의 저력으로 부를 이룩한게 아닐까? 실제로 고위관리들이 자금을 융통할 때는 심심찮게 한씨세가에 방문하곤 하지."

"......"

"자네가 그들과 줄을 대어볼 생각이라면 한씨세가의 빈객(賓客)으로 들어가는 걸 추천해 보겠네. 한씨세가의 현 가주는 재능과 재주가 뛰어난 인물들을 좋아해서 식객으로 영입하는 걸 좋아한다더군. 자네에게 운이 트인다면 그들과 친밀해질 수 있을 걸세."

뜻밖의 정보였다.

나는 관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며 생각했다.

' 한씨세가가 낙양 최대의 거부라?'

나는 현재 내가 가진 금괴가 9개라는 걸 알고 있다. 망량에게 2개를 줬고 방금 저 관리에게 하나를 줬기 때문이다. 이 금괴만 있으면 단숨에 떼부자가 되는 건 문제도 아니었으나 한씨세가에 호기심이 생겼다. 아무리 대단해도 무림세가라는 한계가 있을텐데 어떻게 해서 그 정도의 부를 축적한 것일까?

어차피 딱히 목표의식이 없는 지금으로써는 한씨세가의 비밀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다.'

이 사실은 내가 전생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따로 떨어져서 관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게 긴밀한 관계로 얽혀있었다. 쓸데없는 정보처럼 보여도 그게 나중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우선 낙양에서의 목표를 한씨세가의 중요빈객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잡기로 했다. 집을 사놓은 건 나중에라도 쓸데가 있을테니 일단 놔두기로 하고, 한씨세가를 방문해서 빈객이 되어서 그쪽의 비밀을 캐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한씨세가의 위치를 대충 알고 있었다. 드넓은 낙양이었지만 쌍문사가의 위치 정도는 외워두었으므로 반 시진 정도 헤매자 도착할 수 있었다. 한씨세가는 낙양 제일의 거부라는 사실과는 달리 다른 쌍문사가보다 별로 크지 않은 크기였다. 그리고 문 앞에 따로 경비가 서 있지도 않았다.

' 뭐지? 왜 경비가 없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한씨세가의 정문 앞에 문을 두들기려고 걸어갔다.

그 때였다.

"이상한 꼬마로군.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갑작스럽게 기척과 목소리가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빠르게 오른쪽을 보았는데, 고작 일 장 떨어진 곳에 낮도깨비처럼 누군가가 서 있었다. 흑의장포로 전신을 둘둘 말고 어깨에 거도(巨刀)를 메고 있는 장한이었는데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외견에 신경쓸 수가 없었다.

' 일류고수! 그것도 절정에 근접한...'

내 감각에 아슬아슬하게 잡힐 정도로 빠른 경공술에 굉장한 실력을 지닌 듯 했다. 발을 보면 손을 알 수 있다는 격언처럼, 저렇게 불편해보이는 복장을 하고도 소리소문 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불가능했다. 그의 내공 또한 상당한 수준이라고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한씨세가의 가주께서 재능있는 자를 빈객으로 모은다고 들었소. 그래서 내 실력을 보여드리려고 찾아왔소."

"흐음... 빈객지망이라. 이름이 뭐냐?"

"백웅이오."

"형님들 어찌 생각하시오?"

사아아앗!

사앗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무림인들의 신형이 나타났다. 그들 또한 거도의 사내에 못지 않은 무공을 지닌 듯 했다. 개중 홍의를 입은 사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을 것같군. 정말 무시무시한 내공이로다."

"허나 어찌 저 나이에? 의심스럽군."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막내야, 소가주께 이 일을 먼저 알리거라."

"알겠소."

파앗

거도의 사내가 막내였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씨세가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를 삼재의 방위로 둘러싼 고수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그들의 경계태세를 보고 골치아픈 사실을 깨달았다.

' 이게 문제군... 내 내공이 너무 엄청나서 외부에 기세를 숨길 수가 없어. 왠만한 놈들은 내 내공수위를 한번에 알아버리는군.'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무시당하면 그것도 억울한 일이지만 이것도 골치아픈 문제였다. 일류고수 이상의 기감에는 내가 움직이는 기의 폭풍처럼 느껴질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일류고수급 이상의 기를 감지할 수 있으나, 어디를 가든지간에 견제부터 받고 시작한다는 건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견제를 늦출 겸 입을 열었다.

"나는 수상한 자가 아니오. 단지 내 실력을 천하에 인정받고 싶어서 한씨세가를 찾아왔을 뿐이외다."

홍의사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수상한 자가 스스로 맞다고 하는 거 봤나?"

"흐음."

"백웅 자네는 충분히 수상하고도 넘치는 인물일세. 우리 셋이 동시에 덤벼도 자네의 내공에 눈꼽만치 따라갈지 의문이니, 가히 엄청난 내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군. 10대의 나이에 헌원사도(軒元四刀)를 압도하는 소년무림인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네."

"......"

헌원사도!

나는 그들이 누군지 잘 몰랐으나, 그들 또한 무림인의 집단이었다. 아마 네 명이 모두 도(刀)를 사용하며 몰려다니는 것 같은데 강호에서는 상당한 명성을 지니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정도 고수들이 일개 무림세가의 식객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고수들은 수준이 높을수록 자신감이 자존광대해서 왠만한 장사치 밑에는 체면상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표국에서 많은 돈을 주고 일류고수를 영입하려고 해도 거의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다. 하물며 헌원사도 정도의 수준이라면 천하를 제 집처럼 돌아다녀도 무방했는데, 그들이 아무리 쌍문사가라지만 일개 빈객으로 만족하다니.

잠시 후 헌원사도의 막내가 약 십여 명의 고수들을 대동하고 다시 나타났다. 그들 또한 헌원사도에 못지 않은 고수들인 것 같았다. 그들 중 제일 선두에 서 있던 문사(文士) 차림의 사내가 자신의 수염을 쓸더니 말했다.

"소가주. 내 평생에 저런 자는 처음 보았소이다. 명문 구파일방의 영재(英才)가 태어나 보고받은 바대로 정종신공을 반세기 이상 수양해도 저 소년의 내공의 1할도 쌓지 못할 것이외다. 생전 처음보는 절세신공의 소유자이외다."

그러자 소가주라고 불린 흑발의 미소년(美少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외모는 엄청나게 잘 생겼는데,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기룡신군(基龍神君)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런 거겠지요."

기룡신군이라고 불린 중년문사가 내게 침중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자네의 이름이 백웅이라 했던가. 자네의 스승은 누구지?"

"밝힐 수 없소."

"왜 밝힐 수 없는가?"

"내 스승께서 그걸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래도 캐어묻는 건 무림의 법도가 아닐텐데."

내가 태연자약하게 대답하자 기룡신군은 침음성을 흘리더니 말했다.

"자네 정도의 실력이면 굳이 한씨세가에 들어오지 않아도 강호에 명성을 날릴 수 있을 터인데 왜 굳이 들어오려는거지?"

"내가 어디를 가든간에 내 마음이 아니오? 그리고 나는 강호를 횡행하기보다는 조용히 지내고 싶소이다."

"부를 얻고 싶어서 왔단 말인가?"

"딱히 그런것도 아니오. 천하에 이름높은 한씨세가가 어떤 곳인지 알고싶을 뿐."

내 대답에 기룡신군은 물론 장내에 있던 빈객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광오하군!"

그러나 소가주라고 불린 흑발의 미소년은 의견이 다른 듯 했다. 그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백웅. 그럼 당신은 나와 함께 가주를 뵈러 갑시다. 이 일은 가주께서 판단하실 일인 것 같군."

"너무 요란한 게 아니오?"

"하하. 천하의 소영웅을 받아들이는 일에 소홀함이 없을 뿐."

그가 찬연히 웃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같았다. 나는 남궁환 이래로 이렇게 잘생긴 인간은 처음 보았기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동시에 저 한씨세가 소가주의 발톱의 때만큼도 못한 내 병신같은 외모에 약간 자괴감이 느껴졌다. 내공이 아무리 강해져봤자 이런 부분은 개선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소가주를 따라서 한씨세가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그를 따라서 호위하듯이 빈객 십수 명이 따라붙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었는데 여차하면 나를 공격할 것만 같았다.

' 이건 또 신선한 기분이군.'

나는 그 동안 이광이나 진소청같은 자들을 근처에서 보고 지냈으므로 내가 얼마나 강한지 잘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곳에 나와버리니 한번에 내가 쌓은 내공의 강력함을 실감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절정고수들과 싸움박질하는 일은 결코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조용히 소가주를 따라갔다.

잠시 후 조용한 장원이 나왔다. 소가주가 뒤따르던 고수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이만 물러나시오."

"하지만..."

"가주께서는 당신들 걱정을 받을만큼 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잖소?"

그러자 한씨세가의 빈객들은 납득한 듯 포권을 하고 물러섰다.

"그럼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나는 한씨세가의 빈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걸 보자 눈에 이채를 띄었다. 아마도 저 자들은 한씨세가 가주의 무위(武威)에 절대적인 신뢰감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내가 소가주를 따라서 장원 안쪽으로 걸어들어가자, 연못에 조그마한 나무 다리가 놓여져 있고 그 위에서 한 소녀(少女)가 연못을 감상하는 모습이 보였다.

' 누구지?'

소녀의 외모는 가히 절세가인(絶世佳人)이었다. 나이는 이제 갓 20대로 넘어갈까, 어리고 앳된 모습같았는데 흑단같은 머릿결에 고급스러운 옷, 새하얀 피부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사공린이나 모용연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치 인형(人形)같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소녀는 이쪽을 슬쩍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가 백웅이냐?"

쿠구궁

나는 그 순간 엄청난 기파(氣波)가 몰려들어오는 걸 느꼈다.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걸 느꼈다. 그것은 소녀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발출하는 무형(無形)의 기세가 너무나 강대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건 내가 태어나서 딱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는 힘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힘의 이름을 토해냈다.

"무형지기(無形之氣)...!!"

그러자 소녀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무형지기를 알고 있다? 네놈은 반로환동한 것 같지는 않은데 굉장한 수준의 달인(達人)에게 사사한 모양이군. 그런 자는 천하에 거의 없는데 누구의 문하(門下)인지 궁금해지는구나."

"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내 질문에 소녀는 훗하고 웃었다. 그 웃음에서 나는 상대가 반로환동한 절세고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순히 기세만으로 내 심령(心靈)을 제압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한씨세가의 가주(家主)인 한백령(韓白玲)이다."

"......!!"

"자, 그럼 어디 네놈의 출신사문부터 알아 보실까?"

파아아앗

한백령의 손에서 가벼운 장력(掌力)이 떨쳐졌다. 나는 마주 뇌운장(雷雲掌)으로 맞섰는데 역시 단순한 공력에서는 내가 약간 우위인 듯 했다. 그러나 그 새하얀 장력이 다시금 삼중(三重)으로 포개어지며 힘을 더해가자, 나는 어깨가 부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뒤로 두 걸음 물러서야만 했다.

꾸궁!

장력을 부딪힌 직후 한백령이 주위에 있던 돌멩이 하나를 격공섭물의 수법으로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튕겨서 가볍게 내쏘았다.

까앙!

"으윽..."

나는 급히 섬전처럼 검을 뽑아서 돌멩이를 쳐 냈지만 순간적으로 천뢰인이 부러질뻔한 느낌이 들었다. 돌멩이에 실린 역도(力導)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고수였다면 지금 순간에 칼이 부러지고 심장이 함께 관통당했으리라. 내가 주춤대며 물러서자 한백령이 말했다.

"그래, 네놈은 청룡(靑龍)의 제자였구나. 그는 이미 사신위(四神衛)에서 탈퇴했을 터인데 무슨 생각으로 낙양에 자신의 제자를 보내서 분탕을 치는 것이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 노화가 깃들어 있었다.

"나... 나는 그게 누군지 모르오. 내 사부는 따로 있소."

"따로 있다라?"

"그렇소. 나는 산에 박혀서 수련하다가 이제 막 하산했는데, 그저 한씨세가가 천하의 인재를 모집한다고 해서 찾아온 것 뿐이오."

"흐음..."

나는 왠지 이 자리에서 청룡 이광의 제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대로 죽게 될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눈 앞의 한백령은 이광에 못지 않은 절세고수로 보였고, 지닌 감정도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한백령은 의심하는 기색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말했다.

"좋다. 그 말이 사실이라 치더라도 네 무공은 그 자의 무공과 너무도 흡사하다. 이걸 어찌 설명할 것이냐?"

"내 유파는 다인전승으로 이루어져 있소. 같은 무공의 맥을 잇더라도 스승이 다를 가능성은 충분히 있소이다."

"하아? 설마..."

그녀는 뭔가 떠오른 듯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 ... 믿어주지. 네 심선(心線)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악한 놈은 아닌 듯 싶군."

"고맙소."

한백령이 팔짱을 꼈다.

"네가 한씨세가에서 얻고싶은 건 무엇이지? 솔직하게 말해라."

"내 무공을 절차탁마할 수 있는 적절한 적수(敵手)가 필요하오. 한씨세가의 빈객으로 있으면 그런 적과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았소."

내 말은 진심이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줄은 몰랐지만, 여하튼 천주살과 천뢰인을 더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서는 실전훈련의 경험치가 굉장히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진보하려는 내 계획이었다.

한백령이 낮게 웃었다.

"그래? 딱 좋을 때 왔구나. 너는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한백령이 말하는 딱 좋을 때, 라는 게 무슨 뜻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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