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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9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허억... 헉..."
나는 전신에서 땀을 흘리며 격통을 참았다. 전신이 흉기에 난자당하고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의 고통과 절망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환통(幻痛)이 지나갈 때까지는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전혀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하게 죽어버렸다는 어이없음이 내 정신력을 고갈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외양간에 누워서 한참 후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전신에는 땀이 흥건하게 나고 있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 고생이겠군."
마도팔문의 습격에 당한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놈들은 아마 청룡무관에서 홀로 떨어져서 먼 곳에서 돌아다니는 나를 노린 것이리라. 한번에 볼일만 보고 갔다면 흑야문만 상대하면 되는 일이었으므로 죽을 일은 없었을 텐데, 공연히 망량에게도 들리고 시간을 쓰는 바람에 흑도문파가 결집해서 다구리칠 기회를 줘버린 것 같았다.
문제는 너무 애매한 때에 죽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다시 처음부터 청룡무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 골치가 아파졌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가야 할까?
단순히 뇌신류의 기본만 익힌 상태가 아니라, 나는 어쩌면 삼절 이광의 독자적인 무공일지도 모르는 뇌신류 천주살과 천뢰인까지 배워버렸다. 거기에 비전동작과 뇌운강권 응용편까지 배웠다. 내 성취를 숨길수도 없는 일이니, 이광을 처음부터 다시 설득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삼절 이광이 나를 의심한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은 목숨이다. 그 자는 내공고하에 관계없이 워낙 엄청난 무예를 지니고 있기에, 내가 그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 뇌영검법의 응용기까지 배우고 죽었다면 좋았을걸!'
특히 마저 다 배우지 못한 기술이 아쉽게 느껴졌다. 평소에 이광은 내게 가르쳐줄 게 아직 4,5개는 남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내가 가진 무공이 뇌신류 전승자로써는 반쪽짜리라는 걸 크게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광의 말대로 천주살을 전부 다 익힌 상태였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찢어져라 한숨을 쉬었다.
"... 하~아 씁, 어쩔 수 없지. 우선은 얻을것부터 다 얻어놓고 움직여 볼까."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를 것이다. 나는 의외로 8번째 삶에서 얻어낸 정보가 많았기에 지금부터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면 시간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쐐애액!
외양간을 뛰쳐나가와서 천암비서를 품에 넣는것은 이제 말할 거리도 되지 않았다. 나는 뇌신류를 습득하고나자 이제 화살장치 따위는 장난처럼 느껴졌다. 내 무공이 초창기에 비하면 매우 발전했다는 증거였다.
천암비서를 얻고 나서는 황산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단,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가 없었으므로 뼈빠지게 죽자사자 뛰는 게 아니라 형편맞춰서 느긋하게 갔다. 왜냐하면 '태경촌의 참극'은 일단 봉인된 상태이므로, 금의위가 다른 참화를 시도하기 전에는 내가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황산으로 가는 도중에 나는 내 경신법이 굉장히 효율적으로 변했다는 걸 실감할 수가 있었다. 예전과 달리 움직임이나 힘의 소모가 매우 적어졌기에 쓸데없이 많은 공력을 방출하면서 움직이지 않아도 유유히 오랫동안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리 서두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최선을 다했을 때의 기록과 겨우 사나흘 차이로 황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 몸에도 꾀죄죄한 냄새가 거의 배지 않았을 정도이니 참 여유로웠다는 증거이리라.
타앗
"도착이군."
나는 황산 아랫마을에 도착해서는 충분히 준비물을 챙겨가기로 했다. 흑백련을 함께 끓일 통은 이제 당연히 준비해가는 것이었고, 이번에는 덤으로 대장간에 들러서 질 좋은 검까지 한 자루 샀다. 돈은 오는 길에 산적 몇 놈을 때려죽이고 얻은 게 있었으므로 부족하지가 않았다.
그대로 황산 내부의 비경으로 가서 천년설삼을 먹어버리는 과정까지 거쳤다.
쿠우우우우 - !!
"... 뭔가 좀 아쉬운데."
나는 엄청난 내공이 기류처럼 흔들리는 와중에도 약간 불만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번보다 내공이 늘어나는 느낌이 덜한 것이다. 물론 육체라는 그릇에 거대한 기가 따라부어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릇이 너무 거대해진 바람에 충족감이 덜 하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걸로도 안 먹은 것보다는 나았으므로, 나는 대충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곧장 연못에 입수했다.
풍덩 - !!
역시 칠요의 유적이 숨겨져 있었고, 나는 구슬을 빼서 유적 안으로 입장했다. 유적 내부의 제단에 도착해서는, 안보이는 곳에 숨겨져 있던 금괴덩어리 목갑을 빼서 미리 연못 바깥으로 꺼내놓았다. 왕복하는게 꽤 귀찮았지만 그래도 지난번처럼 금괴를 못 챙기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었다.
나는 제단의 돌벽 너머에 수호자 거대거미가 있고, 그 수호자가 지키고 있는 칠요의 비보인 수요(水曜)의 신검(神劍) 막야(莫耶)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제단에 피를 흘려넣기 전에 뚫어져라 그쪽을 노려봤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역시 수호자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막야를 얻기가 힘든 것이다.
' 흠... 지난번처럼 금괴와 횃불을 이용해봤자 그런 요행이 통할거같진 않은데.'
그건 백번 중 한번 있을까말까한 우연이었다. 칠흙같은 무저갱 너머에 살아있는지도 감지가 안되는 수호자의 거대거미의 눈알에 정확히 적중시키는 건 지금 내 실력으로는 불가능했다. 나는 한참동안 고민했지만 별수가 없었기에 들고왔던 장검(長劍)을 단단히 붙잡았다.
"어쩔 수 없지. 한 번 정도는 내 힘을 시험해 볼 수밖에."
나는 8번째 삶에서 죽어라고 무예수련을 했던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면, 수호자 거대거미와의 대결에서도 목숨만은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한 채 제단에 피를 흘려넣었다.
쿠구구구...
돌벽이 열린다. 나는 돌벽 너머에 있는 외나무다리를 노려보다가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전력을 다해야 한다.
기회는 한 번.
실패하면 꼼짝없이 사망이다.
"뇌영보(雷影步) 비기(秘技) 천주살(天柱殺)."
천주의 혈을 타고 뇌기가 전신에 파앗하고 흩어진다. 반사신경과 몸의 움직임이 짧은 순간이지만 급격하게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뇌기가 파직거리며 올라오는 몸뚱이가 잠시 숨을 죽이더니 가공할 탄력을 응축했다. 마치 고양이가 도약 전에 몸을 한껏 오므리는 것과 비슷한 형상이었다.
"최대전개!"
꽈릉
몸뚱이가 번개처럼 튕겨져 나갔다. 겨우 두 걸음을 날았을 뿐인데, 내 신형은 어느새 20장이 넘는 거리를 이동해 있었다. 짧은 순간에 엄청난 속도를 얻는 대신에 한 걸음 한 걸음에 엄청난 내공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걸음째를 걸었을 때 외나무 다리를 거의 다 건너 있었고, 내 귓가에서 바람이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타앙!
내 몸이 바닥에 불꽃의 인(印)을 그리며 바닥에 미끌어졌다. 기민하게 축을 잡으며 내 몸뚱이의 중심을 잡자 눈 앞에는 수요신검 막야가 보였다. 나는 막야를 붙잡은 상태로 다시 이를 악물고 뇌영보 천주살을 재차 전개했다.
투웅 -
허공을 튕기듯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수호자 거대거미가 그제서야 뛰어올라서 검고 거대한 마체(魔體)를 무저갱에서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눈 앞에 거대한 형체가 떠오르는 걸 보자 눈을 질끈 감을 뻔 했으나,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한손에 잡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천뢰인(天雷刃)이 일 장 크기로 전개되어서 거미의 한쪽 다리를 때렸다. 그러자 마치 금속을 때리듯 강렬한 소리가 울렸다.
까앙!
"윽..."
나는 기가 막혔다. 종남파 장로마저 정면으로 받아내려다가 안색이 새파래지며 죽는 표정을 지었던 게 내 천뢰인이다. 압도적인 내공을 실은 뇌전검격인데도, 되려 내 쪽이 팔이 얼얼해지는 기분이 든 것이다. 거미 다리에서 시퍼런 피가 치솟았지만 놈의 덩치를 생각해보면 손가락이 살짝 베인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전신에서 소름이 돋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 이, 이 놈은 진짜 괴물이야...!!'
그리고 잠깐이지만 이 놈과 정면승부를 해보겠다는 게 얼마나 헛된 생각인지를 실감했다. 천뢰인을 최대전개로 모을 시간이 난다면 모를까, 이 놈의 반응은 왠만한 절정고수보다 더욱 민첩하고 빨랐다. 지금의 나로써도 이 놈과 정면으로 싸우면 100초도 되지 않아서 식사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허를 찌른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거미다리가 주춤하는 틈을 타서 허공에서 다시 몸을 튕겨서 안정적으로 출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적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타다다닷
뒤에서 거대한 실뭉치가 날아왔지만, 이제는 그럭저럭 받아낼 만 했다. 내공의 잠력도 검기의 정밀도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거대거미가 쫓아올까봐 계단을 쉴새없이 타고올랐고 연못 밖에 나와서 뻗었다.
풀썩
"으아아아아... 살았다."
지난번과 같은 상황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우연에 기대지 않고도 내 힘으로 막야를 얻어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운이 조금 좋긴 했지만 이 정도면 그럭저럭 실력으로 얻어냈다고 봐도 좋은 점이다. 게다가 미리 금괴목갑을 빼낸 덕분에 상당한 부수입이 생기기까지 했다.
나는 잠시 드러누워서 체력을 회복하다가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얻을만한 걸 다 얻었으니 이제부터의 행동을 결정해야 했다. 나는 한동안 누워서 고민하다가 연못에 시선이 닿였다. 그리고 좋은 생각이 났다.
"... 그래! 흑백련의 뿌리를 채취해서 나가자!"
지금까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천년설삼때문에 세상에 잘 안알려질 뿐, 흑백련의 뿌리 또한 극양(極陽)의 힘을 지니고 있는 보물같은 영약이었다. 위력으로 치면 천년설삼의 영약수준과 대등한 것이다. 단지 극양기를 견디면서 먹기는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것도 복용하는 자가 미리 알고 있다면 어떻게든 대비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흑백련의 뿌리를 각각 3뿌리 정도 캔 후, 가지고 온 봇짐에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지금까지는 영약을 남줄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두고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나는 흑백련을 안에 넣으면서 생각한다.
' 동료가 필요해.'
이번에 죽으면서 느낀 것이다. 나는 마도팔문이 힘을 합쳐서 다구리치는 데 정보도 없었으며, 대비할 틈도 없었고, 심지어 같이 싸워줄 자도 없었다. 망량이 동료가 되었을 때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 오래 생존했을 때를 생각하면 대조적이었다. 혼자의 힘으로 살아나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 흑백련의 뿌리는 동료를 만들어야 할 때 큰 보탬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봇짐을 다시 짊어지고 황산의 비경을 나가기 시작했다.
"가자!"
황산을 나가서는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수요의 기(氣)가 대량으로 움직이면서 천재지변급 먹구름이 이 일대를 강타하게 될게 뻔했다. 수재(水災)에 휘말리기 전에 재빨리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내가 밤잠도 자지 않고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하자 천리마에 못지 않은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마음먹고 달려본 적이 드물어서 몰랐는데, 이젠 말 그대로 반 식경도 되지 않아서 산 하나를 넘어대는 수준이었다. 아마 인간 중에 나보다 경공이 뛰어난 인간은 거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쒸잉
타다다닷
나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예전에 먹구름이 몰려오던 시점은 막야를 꺼낸지 약 7주야가 지난 후였다. 그 때까지 최대한 가는 게 목표였는데, 뜻밖에도 나는 사흘만에 태경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헥헥... 에고에고 죽겠다."
태경촌 비석 앞에 내려앉아서 잠시 숨을 몰아쉬던 나는 믿기지 않았다.
"우와... 나 정말 빨라졌구나..."
내공의 변화는 크게 없다. 그러나 뇌신류의 전승자로써 비기를 배우고 가진 내공을 활용하는 비법을 배우며, 천주살을 응용하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경공술이 몇 배나 빨라진 것이다. 지난번의 수행이 헛된 게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나는 태경촌에서 이제 내 속도로 한나절 거리만 부지런히 뛰면 진랑곡에 여유있게 입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태경촌에서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서 재빨리 마을 뒤편의 헛간으로 갔다.
끼익
우물의 비밀통로를 통해서 지체없이 화씨가문에 잠입했다. 그리고 화씨가문의 부엌에서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화씨가문의 주인인 화종택의 방으로 몰래 숨어서 들어갔다. 야간이라서 저택에 사람이 거의 돌아다니지 않기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화종택이 화련 말고 다른 첩과 알몸으로 얼싸안은 채 잠든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내가 오기 전에 방사(房事)를 치르고 잠들었으리라. 나는 그들이 깨어날까봐 다시 한 번 수면혈을 짚어놓은 채 차분하게 화종택의 방을 뒤져 보았다.
' 있군.'
화종택의 서재 안쪽에 은빛 봉황조각이 있는 게 보였다. 최초로 잠입했을 때는 부엌에 있길래 이상하게 여겼는데, 이런 곳에 있는 것이다. 이것도 특별히 숨기기 보다는 화종택이 손님에게 자랑하기 위한 용도인지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다. 가보치고는 보안이 허술했지만 아마 잔도둑을 걱정하지 않는 화종택의 성격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미안하지만 받아가겠소. 이 발해 조각상의 비밀은 풀어놔야겠어."
가치를 모르는 화종택이 갖고있어봐야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전생에 저 물건을 선물받은 적이 있었던 터라, 나는 대충 은빛 봉황조각을 봇짐에 넣은 채 다시 흔적없이 비밀통로를 통해 탈출했다.
타다다다닷
타다닷
달린다!
그리고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부지런히 진랑곡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맹세컨데 태어나서 이렇게 빠르게 진랑곡으로 온 것은 전생(轉生)동안 이번이 처음이었다. 야밤중에 진랑곡에 도착해서 망운진을 뚫고 망량의 집까지 올라와서는 방안에서 자고 있는 망량을 억지로 깨웠다.
"망량! 일어나 보시오!"
"흐이이이에이에에엑!! 사람살려어어어!!"
망량은 괴이쩍은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닌밤중에 홍두깨인지 그는 잘 자던 중에 날벼락을 맞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걸 아랑곳하지 않고 급히 용건부터 말했다.
타앙
나는 그의 앞에 수요신검 막야를 내려놓고, 내력을 불어넣어서 갑골문을 띄웠다. 그러자 망량이 경황없는 와중에도 큰 호기심을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내 말에 경악해서 죽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칠요의 비보 중 수요를 상징하는 신기, 막야라고 하오."
"......?!?!"
"내가 이걸 봉인지(封印地)에서 꺼내오는 바람에 아마 천지에 수재가 닥칠 것 같소. 당신이 그 재앙을 막을 방법이 있다면 좀 가르쳐 주시오."
"자, 자, 잠까아안... 이게 칠요비보 막야라고?! 보패에 버금가는 절세의 신병이 어떻게..."
"시간이 없소. 빨리!"
내가 채근하자 망량은 억지로 심장을 진정시키며 마음을 다잡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서재 뒤편에 숨겨두었던 우황청심환을 꺼내서 먹은 후, 한껏 탈력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막야에 숨겨진 수기의 이동 때문에 천문에 이상이 발생한 건 사실인 것 같군. 이걸 막기 위해서는 막야를 위한 제단(祭檀)을 만들고 천문(天文)의 의식을 치뤄야 하오."
방법이 있단 소리다! 나는 만면에 화색이 돌아서 말했다.
"할 수 있겠소?"
"... 나는 술법의 신통력이 없어서 무리요. 하지만 음, 사제라면..."
"갑시다! 낙양까지는 하루나절이면 충분하니!"
"에엑?! 당신 내 사제가 어딨는지 대체 어떻게 아는 거요?!"
망량은 반쯤 강제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새끼한테 참 많이 당했으니까!"
"......?"
망량의 사제 천우진.
그 놈이라면 아마 막야의 천재지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