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5화 (6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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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그게 무슨 소리요? 간장과 막야는 춘추전국시대의 검이 아니었소?"

너무나 유명한 신화속의 명검(名劍)인지라 착각할 수가 없었다.

간장과 막야!

망량이 씨익 웃었다.

"맞소. 당신은 그 고사를 알고 있소?"

"물론이오."

오월춘추, 월절서에 따르면 간장이 초왕의 명으로 명검을 만들어 바치려 했다.

대장장이 간장은 간장과 막야를 만든 후에 만드는 기한에 늦어 초왕에게 처형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암검 막야만을 초왕에게 바치고 수검 간장은 집에서 남산이 보이는 곳의 바위 위에 선 소나무 속에 넣어둔다. 이는 주춧돌 위에 세운 나무기둥을 가리키는 수수께끼이고 후에 막야가 자식을 낳으면 이 수수께끼를 풀게 하여 검을 찾으면 자신의 죽음을 알려주라고 한다. 막야는 그의 말대로 하고 아들인 적비는 수검 간장을 찾아 복수를 맹세한다.

초왕은 꿈에서 이 광경을 목격하고 불안에 떨어 꿈에서 본 적비의 얼굴로 수배서를 만들고 적비의 목에 현상금을 건다. 적비는 뜬금없이 수배를 당하게 되고 마을조차 못 들어가게 되어 슬퍼하며 노래를 불렀는데 지나가던 협객이 이를 보고 불쌍히 여겨 자신이 대신 복수를 해줄테니 검과 적비의 목을 달라고 한다. 이에 동의한 적비는 스스로의 목을 치고서도 꼿꼿이 서있는데, 협객이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자 쓰러져 죽는다.

협객은 초왕에게 적비의 목을 바치고 원한이 깊게 사린 목이라 삼일동안 삶아야 한다고 말한다. 초왕은 시킨대로 했으나 3일이 넘도록 삶아지진 않고 물 위에 둥둥 떠있는데 그 목이 살아있어 금방이라도 솥 밖으로 튀어나올듯 하여 협객이 초왕에게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초왕은 솥을 들여다보고 협객은 초왕의 목을 베어버린다.

떨어진 초왕의 목이 솥 안으로 떨어지고 협객은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이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고 스스로의 목을 베고 그 목 또한 솥 안으로 떨어진다. 신하들이 서둘러 목을 꺼냈지만 적비, 초왕, 협객의 목들은 금새 삶아져버려 어느 것이 누구의 목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신하들은 복수를 위해 스스로의 목을 친 적비와 적비의 약속을 지키고 목숨을 끊은 협객의 용맹함과 의협심을 높게 사서 세 개의 목을 함께 묻고 삼왕묘라고 이름 붙인다.

이건 내가 표사시절에도 풍월로 들은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고사였다. 글공부를 하는 동안에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을 뿐, 중원인이라면 대개 한 번쯤은 들어본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막야라는 검이 은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망량이 말했다.

"하지만 사실이오. 정확히 말하자면 둘 다 맞는 말이라고 해야겠지."

"그건 무슨 뜻이오?"

"구전(口傳)이 다르게 전승되었을 뿐이란 거요. 막야는 은나라 시대에 만들어져서 전승되었고, 그게 춘추전국시대에 간장막야라는 부부도공의 손에 의해 재발굴되었을 뿐이오. 다시 말하자면, 이건 원래부터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는 소리지."

"......"

나는 기가 막혀서 망량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면 이치에는 맞지만 너무 허무맹랑했다. 그래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있소?"

"나는 이 갑골문의 해석 자체는 한 달만에 끝냈소. 단지 이 가정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 동안 온갖 산천을 돌아다니면서 고서(古書)를 모으고 조사했소. 그 결과 증거를 찾아내고 말았지."

"무슨 증거를 찾았다는 말이오?"

망량이 안쪽에 들어가서 왠 책더미를 가지고 나왔다. 족히 열 권도 넘어보이는 그 책들은 하나같이 곰팡내가 났다. 그걸 평상에 깔아둔 망량이 말했다.

"이건 간장막야의 고사를 담은 책들이오. 하나같이 가치있는 진서(眞書)들이지. 그리고 이 고사를 찾아보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소."

"공통적인 부분?"

"[집에서 남산이 보이는 곳의 바위 위에 선 소나무 속에 넣어두었다.] 라는 내용이오."

그렇게 말한 망량은 보검을 밑으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갑골문의 법칙은 다른 박서(博書)에 쓰여있는 것과 다소 상이한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었소. 아마 은주시대의 왕족(王族)만이 사용하는 문법이 따로 있었겠지. 그리고 그 문법에 따라서 고서의 전승에 남겨진 저 공통적인 문장을 재배열시키니, 저 문장은 하나의 글자를 가리켰소. 그것은 바로 순(殉)이었소."

"순?"

"그렇소. 이유는 모르겠으나, 간장막야의 고사를 만들어낸 자들은 이 보검이 사실은 순장(殉葬)된 묘역에서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파자(破字)로 숨겨두었던 것이오. 뿐만 아니라 몇몇 고서에는 은주시대에 이미 비슷한 고사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소."

순장된 묘역.

설마 보검을 발굴했던 그 유적은 인간을 순장해놓은 장소였다는 걸까?

"그 말은..."

"오월춘추 간장막야의 고사는 사실 오월시대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말이오. 은주시대에 똑같은 일이 있었고, 그게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다보니 민간설화에 덧씌워져서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낸 셈이지. 이건 분명히 은나라 시대의 보검이오."

"......!!"

나는 깜짝 놀라서 망량을 바라보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중원에 있는 모든 경전의 진위가 의심받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것만으로도 훈고학(訓古學)을 공부하는 모든 서생들의 학계가 난리가 날 것이다. 너무나 파격적인 이론이었기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망량이 말했다.

"물론 이걸 세상에 발표할 생각은 없소. 그럴 이유도 없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을테니까. 중요한 것은 순(殉)이라는 글자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함이오."

"순이 위험하다니?"

"순장은 군주가 사망할 경우 따라서 묻는다는 걸 뜻하오. 누굴 따라서 묻겠소? 그건 말이 좋아서 순장이지, 학살(虐殺)이며 제물이오."

망량은 잠시 숨을 돌리듯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우물에서 냉수를 떠올려서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은나라는 인신공양(人身供養)이 아주 활성화된 시대였소. 공신(恭神)의 풍습으로써, 사실 이건 공자(孔子)가 살던 시대까지도 무분별하게 이뤄졌던 것이오. 공자의 책을 보면 미신행사를 금지시킨 일화가 나오지 않소? 그 시대에도 인간노예의 목을 베어서 천지의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 계속되었던 거요."

"......."

인신공양.

나는 그 단어를 듣자마자 역겨움이 치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나는 직접 그 광기를 몇 번이고 보았을 뿐만 아니라 참혹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건 인간을 가축 이하로 다루는 광기의 연회였다.

"주로 노예나 강족과 같은 다른민족의 포로를 잡아다가 죽이는 방법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형식이었을 것인데, 은나라의 제사에 쓸 인간을 잡아 죽이는 방식이 무려 12가지나 되었소."

"12가지...!!"

"그 12가지 행위는 각각 천자문(千字文)에 전승되었는데, 이를테면 팽(烹), 민(民), 할(割), 작(炸), 증(蒸), 훈(燻), 탕(湯) 따위를 말하는 것이오. 사람을 삶거나 튀기거나 조각내거나 태워죽이거나 찢어죽이거나 말려죽이는 따위의 방법이었지. 그들은 자국민이라도 봐주지 않고 인신공양의 제사에 사용하곤 했다오."

나는 기가 질려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 말대로라면 은나라 시대의 인간들은 잔혹하기로 치면 인간이하의 존재들이었단 말이 아닌가? 나는 짜증을 실어서 말했다.

"더 듣고싶지 않소. 그래서 순이란 글자가 위험한 게 어쨌단 말이오?"

"중요한 건 그 내용과 이 갑골문의 연관성이오.

[ 하늘에 제사를 지내노라.

거북이의 머리와 팔다리를 잘라서 하늘에 바치노라.

신께서 기뻐하시노라.

삼황(三皇)이여 오제(五帝)여, 축복을 내리소서.

이에 칠요(七曜)의 수(水)를 전달받았다.]

여기서 '거북이'라는 건 실제 거북이가 아니라 인간(人間)을 뜻하는 것이오. 즉 인간을 잔혹하게 찢어죽이는 인신공양의 제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신이 기뻐했소. 그 신이란 건 아마 우리가 삼황오제(三皇五帝)라고 칭하는 존재들일 것이며 - 이 보검은 신들이 그 댓가로 내린 칠요의 수(水)를 상징하는 검(劍)이란 말이지."

"......"

나는 잠시 망량의 말을 듣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믿기 힘들군. 이게 칠요의 비보라는 게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삼황오제는 중원대륙 역사속의 위대한 존재들이 아니오? 그런 자들이 인간을 찢어죽이는 인신공양의 제사를 받고 기뻐해서 보물을 내려준다는 게 말이 되오?"

망량이 피식 웃었다.

"삼황이란 복희, 신농, 여와이며 오제란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임금을 말하는 거요. 삼황오제의 공통점이 뭔지 알고 있소?"

"그게 뭐요?"

"바로 인간의 역사에는 단순히 신(神)적인 존재로 기록이 남아있을 뿐 그들의 명확한 치세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남아있다는 것이오. 신화(神話) 속의 존재라는 거지. 본격적으로 인간의 왕이라고 취급받는 것은 우왕과 탕왕부터요."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거지?"

"... 삼황오제는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처음부터 인간(人間)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오."

"......"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인신공양을 받고 기뻐하는 신. 또한 인간을 초월한 괴물같은 존재.

그것은 흡사 - 주술사가 마을을 제물로 마물을 탄생시키던 광기어린 장면과 흡사하지 않은가!

망량은 산해경(山海經)을 꺼내들며 말했다.

"산해경에 나와있는 진귀한 요괴들은 어쩌면 은주시대에 실제로 존재하는 괴물들이었을 수도 있소. 수천 년 전 당시의 중원대륙은 현재처럼 정돈된 지형이 아니라 밀림(密林)이 우거지고 야만족과 괴물이 출몰하는 야만의 대륙이었소. 그런 곳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겠소?

바로 삼황오제같은 신적인 존재에게 제사를 바치고 공양을 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얻어야 했던 것이오. 그것이 바로 칠요(七曜)의 비보(秘寶)이며 고대 은주시대에 인간의 나라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오."

"으음... 당신은 그게 칠요의 수요검 막야라고 확신하는 것 같군. 그렇다면 나도 믿겠소."

나는 별 수 없이 인정해야만 했다. 망량정도 되는 천재적인 학자가 몇 년이나 자기 발로 뛰면서 근거를 찾아내고, 자신감있게 나를 불러들일 정도면 근거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보검이 수요신검 막야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망량이 말했다.

"나는 근 3년간 이 막야를 연구하면서 많은 도움을 얻었소. 무공을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막야에 숨겨져 있는 신통력(神通力)을 전달받으면서 많은 술수를 깨우치게 되었소. 이 막야에는 인간의 상단전(上丹田)을 자극하는 능력이 있어서 술법사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소."

"그럼 막야를 갖고 있으면 술법재능이 없는 자라도 술법을 익힐 수 있단 말이오?"

내 질문에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중급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겠지."

"으음...!!"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내 3년간의 연구내용은 여기서 일단락났소. 이제는 내가 당신에게 물어볼 차례로군."

"무엇을 말이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이 칠요의 수요검 막야를 어디서 얻은 것이고 무엇에 쓰려는 생각이었소?"

망량은 진심으로 그걸 궁금해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망량에게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나는... 전생자(轉生者)요."

이젠 말할 수밖에 없다. 현재 참극의 마을 태경촌이 참극의 마수에서 비껴나갔으나, 동시에 금의위가 무언가를 따로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걸 내 힘만으로 알아내기에는 지혜가 부족하므로 망량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그를 과거에 죽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나는 그에게 늘 빚을 진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여태껏 8번 전생하면서 겪었던 일과 망량과 있었던 일에 대해서 솔직히 털어놓았다. 망량은 듣던 도중에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는데 그렇게 표정이 바뀌는 망량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 하여 이렇게 된 것이오."

"......"

"내 말을 믿을 수 있겠소?"

망량은 비틀거리면서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자, 잠시만. 정리가 안 되는군. 시간을 주시오."

그는 초가집 마루에 누워서 한참동안 멍때리는 듯 했다. 그리고 한식경 후 다시 일어서서 내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당신의 말을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겠군. 천우진 사제의 일과 내 사부의 일, 내 사정을 그리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겠구려. 하하... 정말로 내가 엄청난 일에 휘말리고 말았군."

"지난번에 죽게 해서 미안하오."

망량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런 말을 해도 실감이 전혀 안 나는군. 나는 당신과 함께 다닐 적의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내가 당신을 따라가기로 결정한 결과 일어난 일이 아니었소? 아마 '나'도 죽을 때 그냥 똥밟았다는 생각 말고는 안 했을 거요."

"......"

"흐음... 천암비서와 무명제사서... 이계의 주술사에 금의위... 흐음..."

턱을 괴고 앉아서 뭔가를 한참 생각하던 망량이 말했다.

"그래서 지금 당신은 금의위 총령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충실하게 청룡무관에서 힘을 쌓고 있던 중이었는데, 막상 태경촌에 가 보니 그 자들의 마수가 뻗치지 않았다는 말이군?"

"그렇소. 이게 왜 그런건지 고민하는 중이었소."

나는 진중하게 물어보았다.

"혹시 수요신검 막야 때문인 것이오?"

"......"

망량은 힐끔 막야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그건 아닐 거요. 물론 당신이 나를 찾아올 적에 생겨났었던 엄청난 폭우(暴雨)는 당신이 막야를 봉인지에서 꺼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확실하지만."

"역시..."

"막야에는 천지를 뒤바꿀 정도의 수기(水氣)가 몇천 년 동안 응축되어 있었으니 자연재해가 뒤바뀔 수밖에... 내가 폭우가 일어나기 전 날에 천문을 보았는데 갑자기 별의 이동이 보여서 이상하다 싶었소."

그렇게 설명한 망량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이계의 주술사라는 자는 수천명 단위의 인신공양 주술을 자유자재로 시전할 수 있는 대주술사 아니오? 그 자는 고작해야 칠요 중 하나가 움직인 정도로는 자신의 계획을 멈출 리가 없소. 그리고 금의위도 주술사를 따라서 움직이지 않았다면, 하나의 결론밖에 나지 않소."

"그게 무엇이오?"

"대주술사가 시공간(時空間)을 벗어나서 탈출했다는 말이오. 내 스승께서 그리 말씀하신 거라면 아마 틀림없을 것이오."

시공간을 벗어나서 탈출했다!

워낙 현실감이 없는 소리라서 내가 어리벙벙해 있자 망량이 팔짱을 끼며 부연설명했다.

"그 자는 이 세상에서 인신공양의 제물을 쌓으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중이었을 것이오. 그런데 당신의 천암비서를 보자,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이겠지. 그 주술사의 자폭도 영육(靈肉)을 버림으로써 이 세상에서 자신의 혼(魂)을 빼내려는 특수한 술법이었을 것이오."

"그... 그런 게 가능하오?"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소. 아마 황궁이든 어디든 그 주술사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오. 주술사가 없기에 황궁은 무명제사서를 해석하지 못한 것이오, 인신공양 계획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

나는 놀라움과 동시에 환희를 느꼈다.

주술사는 이제 내 전생(轉生)에 끼여들어오지 못한다!

그리고 전생을 하더라도 마을의 참극을 일일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때 천암비서를 주술사에게 보여준 것은 잘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내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려고 할 때 망량이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오. 왜냐하면 금의위가 이제는 칠요(七曜)의 비보(秘寶)를 모으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테니."

"음...? 나도 그 생각은 했지만, 확실치가 않소."

"아마도 인신공양은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술수였을 뿐, 금의위는 처음부터 칠요를 모으려고 생각했었을 가능성이 높소. 수단은 다르지만 금의위의 최종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소리지. 그렇게 생각하면 당신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셈이오."

"흠."

나는 궁금해졌다.

금의위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금의위 총령은 인신공양의 의식으로 마물의 수를 늘린 후 [2차 의식]이라는 게 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걸 달성하게 되면 백련교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 일이 있었다. 어쩌면 놈들은 인신공양의 제물 대신에 칠요의 비보를 이용해서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게 아닐까?

"아 맞다. 이걸 좀 봐 주시오."

나는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태경촌 화씨가문에서 얻었던 은빛 봉황조각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망량은 은빛 봉황조각을 받아들더니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이것은 발해(渤海)의 유물이 아닌가! 이 귀한 걸 어디서 얻은 것이오?"

"발해가 무슨 나라요?"

"동쪽에서 아주 강성하던 동이족의 나라요. 그것도 이건 발해의 왕족과 관련된 유물로 보이는군... 봉황조각을 쓸 수 있는 건 왕족밖에 없었으니. 그리고 이건 잘 보니 삼족오(三足烏)의 형태를 하고 있군."

망량이 주의깊게 은빛 봉황조각을 살피더니 말했다.

"조그마한 선(線)이 틈새에 봉인되어 있소. 아마도 모종의 구결(口決)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풀리게 되어있나 보군. 이것도 흥미로운 유물이오."

"해석할 수 있겠소?"

그러자 망량이 어이가 없는 듯 피식 웃었다.

"하하하... 당신이 전생자인 건 알겠는데 그리 쉽게 나를 믿어도 되겠소? 나는 솔직히 이게 칠요 중 수요신검 막야인 걸 알았을 때 당신이 돌았나 싶었소. 천지를 뒤바꿀 수 있는 신검을 떡하니 안겨주고 가다니... 내가 당신을 배신할 거라는 생각은 한 적 없소?"

"있소."

나는 곧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배신한다면, 그것 또한 좋다고 생각했소. 나는 당신을 죽였다는 마음의 빚을 덜게 되는 셈이니까."

망량은 잠시 멍해진 듯 했다. 그러더니 허탈하게 말했다.

"그것 참 엄청난 사고방식이군... 당신은 이미 평범한 인간에서 일탈해 있소."

"칭찬으로 듣지."

망량은 훗하고 웃더니 말했다.

"뭐 좋소. 나도 당신을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기로 하지."

"고맙소."

"이 은빛 봉황조각의 해석이 끝난다면 다시 지조를 보내리다. 덤으로 수요신검 막야는 당신이 가져가도록 하시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의 술수를 늘리기 위해 필요한 거 아니오?"

"어차피 갑골문의 해석은 끝났고, 나는 이미 막야로 얻을 수 있는 학습효과를 다 누렸다고 생각하오. 반 년 전부터 술수가 더 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셈이지. 그러니 이젠 당신이 갖고가시오."

"알겠소."

망량의 말대로라면, 나도 수요신검 막야를 지니고 기문둔갑술을 익힌다면 중급까지의 술법을 익히는 게 가능할 듯 싶었다. 문제는 술법을 익히고나서 죽었을 경우 그 경지가 이후에 전승되느냐였지만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파앗

나는 막야를 가진 채 진랑곡을 내려왔다. 망량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 가능하다면 화요(火曜)의 힘을 지닌 비보, 간장(干將)을 먼저 찾아보시오. 간장과 막야는 역사의 기록대로 부부검으로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으니, 두 개의 신검을 가졌을 때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나는 또한 현천도인의 말을 떠올렸다.

' 화요의 비보는 염제 신농의 힘을 담고있으며 세상의 남쪽 끝에 있다고 했지.'

세상의 남쪽 끝.

그런 건 지금까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계속해서 중원대륙 남쪽으로 가면 남만(南蠻)이라고 하는 오랑캐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으나, 거기서 세상의 끝까지 가면 도대체 무엇이 나오는 것일까? 나는 언젠가 세상의 남쪽 끝으로 가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나는 진랑곡을 나와서는 곧장 흑야문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이제 궁금했던 것도 풀렸고 망량에게 의뢰도 맡겨놓았으니 이제는 스승이 내놓은 과제를 해치우고 유유자적 청룡무관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요 근래 들어서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이었다.

파아앗...

그러나 흑야문에 의뢰를 할 수 있는 조벽 마을까지 딱 반나절의 거리를 남겼을 때였다. 나는 산길을 뛰어다니다가 난데없이 강대한 기운이 주변에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뭐지?'

심상치 않은 힘이다. 그것도 결코 얕볼 수 없는 고수의 저력이 느껴졌다. 이 위치에서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큰 공격을 당할 거라는 걸 깨닫고, 나는 검을 뽑아서 침착하게 힘을 북돋았다.

쿠구구구구

내가 내공을 끌어올리자 산천초목이 진동했다. 내 힘의 강함을 정면으로 느꼈는지, 매복해 있던 고수들이 차례대로 앞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숫자는 총 6명이었다.

내가 경계하는 기색으로 그들을 살피자 맨 앞에 서 있던 적의(赤衣)의 사내가 말했다.

"네가 백웅이겠지. 과연 청마사흉을 홀로 쳐죽일 정도는 되는군. 그 나이의 무인이라고 믿겨지지가 않는다..."

그의 말에는 적지 않은 감탄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우리는 네가 쓰러뜨린 청마사흉이 속해있는 마도팔문(魔道八門) 혈마중(血魔衆)의 육대호법(六大護法)이다."

"......!!"

나는 은원에 잘못 걸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육대호법 하나하나가 절정고수급이라는 걸 직감하자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마도팔문이라지만 사파라서 정파보다 약해야 정상일 텐데, 무슨 절정고수가 6명이나 있단 말인가?

"청마사흉의 복수를 하러 왔소?"

"복수처럼 거창한 건 아니다. 단지 네가 청룡(靑龍)의 제자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기에 마도팔문의 중역들이 모여서 의논을 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지."

적의 사내의 눈빛이 강하게 빛났다.

"새끼호랑이일 때 죽여놓자고."

사사사사삿

"......!!"

그리고 나는 먼 곳에서부터 고수들이 더욱 더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자들의 기운도 절정고수 혹은 일류고수급이었다. 그 숫자가 무려 50여 명이 훨씬 넘게 되자 나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가 없었다.

"무, 무슨... 대체 몇 명이나 온 거요?"

"청룡은 수십년 전 사파에 수많은 혈채를 지게 만들었다. 당시 마도팔문의 힘은 현재보다 열 배는 강성했는데, 청룡에게 최절정고수들이 연파(連破)당하고 흑월신마, 영검존, 백검류마 같은 우두머리도 목이 베였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미 구파일방의 성세를 넘어서기 위해 한바탕 정파에게 도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씹어뱉듯이 중얼거린 적의인은 갑자기 몸에서 강한 기세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청룡의 힘이 너무 강해서 차마 청룡무관에 복수할 생각도 못했는데, 새끼호랑이가 홀로 기어나온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네놈의 목을 베어서 그 때의 원한을 풀고, 청룡 놈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주고 말겠다. 크하하하하....!!"

쿠우웅

적의인의 쌍장(雙掌)에서 거대한 장력이 방출되어 날아왔다. 그들은 신호를 맞춘 듯이 육대호법이 거의 동시에 공격해 왔는데, 나는 별 수 없이 마주 뇌운장을 펼쳐서 그들의 장력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

쿠콰콰콰쾅

"으아아악....!!"

"무, 무슨 내공이..."

그와 동시에 혈마중 육대호법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폭음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나는 손쉽게 그들을 격퇴시키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 멍청이들이라 다행이군.'

절정고수가 무공의 묘의를 발휘해서 헛점을 찔러오면 이렇게 쉽게 이길 수가 없는데, 그들이 자신들의 내공을 맹신해서 내공대결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쉬쉬쉬쉭!

각지에서 암기(暗器)가 날아들었다. 나는 급히 검을 휘두르고 뇌영보 천주살을 이용해서 회피했는데, 천주살을 똑바로 펼쳤음에도 피하기 어려운 국면이 있었다. 암기의 소나기를 쏟아낸 자들이 동시에 땅에서 치솟으며 외쳤다.

"마도팔문(魔道八門) 천지문(天地門) 장회 이하 십육 인! 과거의 혈채를 받으러 왔다!"

까가강

그 자들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살검수들 같았다. 내가 천뢰인을 휘둘러서 그들의 공세를 몰아내고 있을 때, 이번에는 갑작스럽게 먹빛 도(刀)를 들고 있는 무인들이 나타나서 나를 사방에서 공격했다.

"마도팔문(魔道八門) 수라문(修羅門) 금도당주(金刀堂主) 이하 칠 인! 과거의 혈채를 받으러 왔다!"

까가강! 까강!

점차 천뢰인을 펼쳐내는 도중에 내 몸이 뒤로 밀려났다. 내공력에 있어서는 내가 압도적이지만 칼날에 암기가 수십 개씩, 그것도 일류나 절정고수들이 날려대는데야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도주할 길을 찾아서 필사적으로 날아다니고 있을 때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도팔문(魔道八門) 광마련(狂魔聯) 비패 이하 십오 인! 과거의 혈채를 받겠다."

콰과과광

마침내 나는 정면으로 검초를 나누는 걸 포기하고 그냥 미친듯이 내공을 모아서 뇌운장을 포탄처럼 갈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말 미련한 방법이지만 범위파괴력만으로는 제일이었기 때문이다. 장력에 휘말린 사파고수들 중 십여 명이 뒤로 나동그라졌지만 놈들은 쉬지 않고 벌떼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 으 안돼... 도망칠 기회를...'

뒤로 몇 걸음씩 물리는 순간 왠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이런... 자네는 정말로 원한을 많이 사고 있군. 불쌍해질 지경이야."

"너... 너는?"

위잉

느긋한 얼굴로 검에 검기(劍氣)를 끌어올린 채 천천히 다가오는 방립의 사내. 그것은 내가 꿈에서도 잊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마도팔문(魔道八門) 흑야문(黑夜門) 살수조장(殺手組長). 살수조 이십 인의 힘으로 혈채를 받는 일에 조력하겠다."

"개자시이이이익!!!"

그래, 분명히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마도팔문의 일류, 절정급 고수들이 포위해서 나를 갈군다고 할지라도 무지막지한 내공으로 길을 뚫다보면 어떻게든 뚫어졌을 것이다. 추적을 따돌리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할지라도, 분명히 이 자리에서의 생존은 보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 나는 뭔가가 툭 끊어진 것처럼 살수조장에게 덤벼들었다.

"크억."

살수조장의 검이 부러지며 그가 피를 토하고 튕겨져 나갔지만, 그와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살수조들이 동시에 내 몸에 칼을 꽂으려 날아왔다.

카가가강

나는 그들의 공격을 뇌영검법 천뢰인으로 쳐냈지만, 다음 순간 절망에 빠졌다. 내가 달아날 수 있었던 한 순간의 생로를 포기해버려서 천지사방에서 흑의인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젠자아아아아앙!!"

푸우욱

푸우욱

"......"

살수조장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인다.

내 몸에는 이미 칼이 여러 개 꽂히고, 암기가 수십 개나 꽂혀 있다.

"처음에는 과한 병력 동원이라 생각했는데 이해가 되는군. 마도팔문의 정예가 일백여 명이나 동원되어서 반 시진동안 공격을 퍼부었는데 이제야 죽다니..."

"크윽... 내 부하가 반이나 당했소."

광마련의 비패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런데 저렇게 편하게 죽게 만들다니!"

"그만두시오. 저 놈은 새끼호랑이였소. 이렇게 잡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

"젠장..."

나는 죽기 직전인 상태였다.

아니 죽어야 정상이다. 놈들도 내가 엄청난 내공으로 겨우 숨이 붙어있는 걸 알기 때문에 살리려는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로 고통 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무인의 정을 베풉시다. 저 어린 놈에게 뭔 죄가 있겠소?"

그렇게 말한 살수조장이 내 앞에 쪼그려앉더니 말했다. 그의 손에는 검기가 맺힌 검이 들려 있었다.

"편히 가시게. 자네 목은 스승에게 수신자 부담으로 보내 주지."

촤악

그것이 내 8번째 죽음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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