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0화 (6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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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종남파의 장로들은 내 승리를 보자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아니 어떻게...!!"

"인간의 내공이 아니다...!!"

내가 뿜어낸 불가해한 수준의 내공력에 경악의 감정을 지닌 듯 했다. 사방에 새겨진 참상(斬傷)은 마치 요괴가 비명을 지른 것처럼 처참한 광경이었다. 자칫하면 건물이 무너질 정도로 갈겨댔으니 당연한 일이다.

잠시 후 일반제자들의 소요가 가라앉고 상황이 진정되자, 종남파 십대장로 중에서 한 명이 걸어나와서 말했다. 아까 진소청 사형과 이야기했던 장로였다.

"진수 장로의 실력은 우리들 중에서도 수위권이다. 그래서 잘하면 승리 혹은 못해도 진소청의 체력을 빼놓기를 바랬건만... 사제라는 자가 한 술 더 뜨는군."

그의 목소리에도 은은한 두려움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어린애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기절했을 뿐이오."

"조금 시간을 주게. 우리끼리 다음 대전자를 정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리니."

그 요구를 하려고 일부러 앞에 나온 듯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지금 말씀하시는 분께서 나서면 되지 않습니까? 진수 장로보다 약해 보이지 않는데."

"허허. 물론 나는 진수보다 약하지 않지만, 그것과 승리를 거두는 건 다른 문제지. 자네들이 우리의 본진에 들어와 있다면 이 정도 작전 요구는 들어줘야 할 텐데?"

"......"

말 잘한다.

기가 막힐 정도로 유들유들하고 말 잘하는 양반이었다. 뿐만 아니라 격장지계에도 쉽사리 말려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가 종남파 측에서 손에 꼽히는 책사(策士)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진소청이 말했다.

"맘대로 하시오. 단 한 식경 이상은 기다려 드릴 수 없소."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그리고는 장로들은 기절한 진수 장로를 데려간 후 비밀장소에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기색이었다. 나는 별 수 없이 멀뚱하니 대련장 위에 서 있었는데 사형의 전음이 들려 왔다.

[ 사제. 이만 내려오시게. 감이 좋지 않아.]

[ 무슨 말입니까? 그 누가 나온다고 해도 일대일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강해졌다.

하는 김에 다른 장로들까지 꺾어서 기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나도 아까 상당히 도발당해서 격해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자 재차 전음이 들려 왔다.

[ 방금 저 장로의 태도를 보지 못했는가?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려고 독기를 품은 상대일세. 자네가 쓸데없이 독수(毒手)에 걸리는 건 자네 자신을 위해서도, 청룡무관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이야.]

진소청의 부드러운 타이름과 설득이었다. 나는 그 말에 머릿속에 끓어올랐던 투쟁심을 가라앉히며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인생경험으로 반추해 봤을때 확실히 나는 위험지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 알겠습니다 사형."

나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거기에 일일이 응해주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진소청은 나 대신에 나선다면 그 흉계를 어떻게든 받아낼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들끓는 피를 가라앉히며 자리에 들어가서 앉았다.

"잘 생각했네."

"다음에는 누가 나올까요?"

"절대 혼자 나오지는 않을 걸세. 아마 합격진(合擊陣)이겠지."

"설마요."

나는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명색이 비무인데 여럿이서 공격하는 합격진을 구파일방이 펼친다는 말인가? 너무 막장스러운 상황이라서 부정했지만, 나는 이내 진소청의 말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육합축월진(六合逐月陣)으로 상대하겠네."

그렇게 말하면서 떡하니 장로 여섯 명이 동시에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육합의 방위에 따라서 진법을 형성해 버리는 것이었다.

"......"

"허어..."

나는 물론 진소청도 입을 딱 벌렸다. 설마설마 했는데 이렇게까지 노골적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기가 막혀서 귀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

명색이 구파일방인 주제에 절정고수 6명이서 다구리를 치겠다니! 게다가 앞장서 나온 여섯 명의 장로들의 얼굴에는 한 줌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진법을 형성하고 있던 장로 중 한 명이 기세좋게 외쳤다.

"그쪽도 원하는대로 힘을 합치게. 물론 조력자가 더 있다면 말이지!"

내가 거세게 항의했다.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한 명씩 붙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었을 텐데?"

"......"

"그리고 육합축월진 또한 당당한 종남파의 무공일세. 우리가 우리의 무공을 쓰겠다는데 뭐 어떻다는 거지?"

너무 당당하게 억지를 부리자 되려 할 말이 없어졌다. 비무라는 건 원래 일대일로 붙어서 무예를 겨루는 것이 관례인데, 문파끼리 혈전(血戰)을 벌일 때나 사용한다는 정규진법을 사용한다니! 그것도 두 명이서 펼치는 합격진이라면 무공의 일종이라고 인정할 수 있으나 여섯 명이 나선다는 건 도리에 어긋난 경우였다.

' 미친 놈들... 이게 구파일방이란 말인가?'

나는 진소청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저 앞에 내가 서 있었다면 너무 당황해서 뭘 해볼 틈도 없이 1대 6으로 싸워야했을 것이다. 아무리 지금의 나라고 해도 진법을 만들어버린 절정고수 6명과 싸우면 이길 수가 없었다. 사형이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둘이 나서겠소."

"마음대로 하시게. 후후후."

장로들의 눈에는 득의양양한 기색과 살기가 동시에 감돌고 있었다. 나는 그런 눈빛을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었기에 놈들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저 놈들은 그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질 생각이 없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 팔다리 하나쯤은 갖고갈 생각이 충만해 보인다.

나는 제대로 함정에 걸려든 걸 알자 사형에게 전음을 보냈다.

[ 그만둡시다 사형. 이건 미친 짓이오. 이딴 거 받아들이지 않아도 세상사람들이 뭐라 하지 않아요.]

[ 그렇겠지. 허나 나는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군.]

[ 뭐라고요?]

[ 나와 보게. 그리고 내 말대로 한 번 해 보면 절대 지지 않을 걸세.]

"......"

나는 별 수 없이 진소청을 따라서 걸어나갔다.

' 씁, 죽기 아니면 살기다.'

진소청의 무예에 대한 안목은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나는 게다가 이 자리에 올 때부터 죽을 각오로 무예를 수련하러 온 것이다. 여기서 내가 진소청보다 쫄리는 모습을 보여서야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진소청을 믿고 갈데까지 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웅성

종남파 제자들은 설마 우리가 육합축월진에 맞설줄은 몰랐는지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아마 우리가 지레 겁먹고 패배를 인정하거나 도망칠 줄 알았으리라. 그런 생각은 상대하는 종남파 장로들도 다르지 않은지, 그들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맨 앞에 서 있던 장로가 말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진법이 펼쳐지는 순간 우리는 절정고수 열 명 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의 말은 허세나 빈말이 아니었다. 진법의 효과는 단순히 1과 1을 더해서 2가 되는 게 아니었다. 2명의 합격진이라면 4명의 효과를, 4명의 합격진이라면 6명 이상의 효과를 볼 수도 있는 고도의 상승무공이 바로 합격진인 것이다. 하물며 종남파의 절정고수급 장로 6명이 한마음 한뜻으로 펼치는 육합축월진이라면 상상만 해도 무서운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자 진소청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건 해 봐야 알지. 근데 하나 물어봐도 되오?"

"무엇을 말이냐?"

"암만 그래도 숫자로 볼 때 6대 2는 너무 불리하오. 선공(先攻)은 이쪽에 양보해 줬으면 하는데."

종남파의 장로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전음으로 의견교환을 하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잠시 후 이야기가 되었는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선공을 양보하더라도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듯 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었다.

스으으 -

자리가 잡혔다. 나와 사형은 나란히 서서, 3장 밖에서 진을 치고 검세(劍勢)를 잡고 있는 6인의 종남파 장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저것이 바로 진법의 방위를 상징하는 기수식일 가능성이 컸다. 저 자세로부터 출발해서 수백 가지의 흐름을 섞어서 적과 싸우는 무적의 육합축월진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 어떻게 공격하지?'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사형의 전음이 들려 왔다.

[ 저 자들은 바보일세. 또한 사제가 따라온 게 내게는 행운이었군.]

[ 무슨 말입니까?]

[ 사제. 천뢰인을 최대개방(最大開放) 해 보게. 저 자들이 도중에 습격하는 건 내가 막을테니 마음놓고 최고까지 힘을 올려 봐.]

나는 순간적으로 사형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재밌을 것 같아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 좋죠. 쓴 맛을 보여주겠습니다.]

우우우우 -

"하아아..."

나는 상단세를 잡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검극에 뇌전의 칼날이 덧씌워지더니 내 몸에서 퍼져나가는 내공이 갈수록 강렬해졌다.

지잉!

팔이 저릿저릿하다. 강대한 뇌기(雷氣)가 충천하는 게 느껴진다.

종남파의 장로들은 아까와는 달리 육합축월진을 형성하자 내 내공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서로의 내공이 상호보완작용을 일으켜서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쿠구구궁 -

대기가 크게 떨렸다.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검극에 모였고, 묘한 소용돌이가 나를 중심으로 감돌기 시작했다. 발 밑이 덜덜 떨리면서 강대한 기운이 실내에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까 진수 장로와 상대할 때보다 훨씬 장중한 기세였기에, 육합축월진을 이루는 장로들은 꽤 동요하는 모습이었다.

"이 놈들 무슨 짓을 하려는..."

그들 중 하나가 버럭 소리를 치며 뛰어들려 했으나, 그 때는 이미 진소청 사형이 창을 벼락같이 뽑아들고는 그 장로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기선을 제압한 진소청 사형이 차갑게 말했다.

"선공은 이쪽이라고 말했을 텐데? 방금 전에 했던 약속도 못 지키는 게 종남파인가?"

"크윽...!!"

그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나는 전신의 잠력을 끝까지 모으면서 천뢰인을 강력하게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실전에서 이 정도로 기를 모을 시간은 주어지지 않지만, 저 자들의 입으로 선공을 허용한다고 했으니 내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내공과 집중력을 하나로 모으면서 천뢰인에만 모든 걸 끌어모았다.

쿠구구구 -

파지지직!

번개의 칼날은 이제 정제되지 않고 날뛰듯이 뇌전(雷電)을 사방에 튀기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3척 크기이던 칼날이 더더욱 커져서 이제는 일 장이나 되는 번개의 칼날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계속 커지고 있는 것이다.

파지지지직!!

전체 내공의 절반 이상을 불어넣자 이상현상이 생겨났다. 갑작스럽게 내 검(劍)의 철이 녹아버리더니 그 자리에 광검(光劍)이 새로 돋아난 것 같았다. 손잡이밖에 없지만 손 끝에 선명하게 칼날이 떠올라있는 듯 했다. 뇌전의 기운이 너무 강해져서 생긴 일이었다.

잠시 후 기어코 칼날의 크기가 이 장을 넘어버리게 되고, 너비만 해도 성인 남성의 키를 훨씬 넘어가게 되었다. 용 잡는 식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거대해진 천뢰인을 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아아아아아...!!"

나는 기운을 한층 더 강하게 불어넣으며 힘을 모았다. 그리고 자꾸자꾸 커져가는 천뢰인에 더더욱 힘을 불어넣었다.

쿠르르릉

이윽고 대련장의 천장을 뚫을 정도로 커진 천뢰인은 이윽고 칼날의 형태를 잃고 뭉툭한 몽둥이처럼 변해버렸다. 하지만 이 번개몽둥이에 맞는 존재는 그 누구도 성하게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느 새 종남파 장로들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들 또한 이 천뢰인의 위력을 짐작하고 있으리라.

' 여기까지인가.'

내공의 7할을 쏟아부은 천뢰인이었다. 나는 좀 더 힘을 불어넣을 수 있었지만, 그러다가는 통제가 불가능할 것 같아서 여기서 멈춰야만 했다. 종남파 장로들을 견제하고 있던 진소청 사형이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사제, 한 방 먹여주게."

물론이죠.

나는 속으로 대답하고는 그대로 천뢰인을 내리쳤다. 종남파 장로들의 비명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잠까아아아아아안!!"

콰아아아앙

꾸콰아아아아아아앙

연속해서 파괴음이 터져나왔다. 마치 세상이 붕괴하는 전조 같았다.

쿠르르르르....

뇌전의 폭풍이 몰아친 후 연기구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종남파 건물의 6할이 바로 이 순간 소멸되었으며, 산 한켠의 구릉이 무너지고, 나아가서는 큰 산사태가 울려퍼졌다. 돌덩어리 굴러다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크허허어어억."

"으아악..."

하늘에서 장로들이 떨어진다.

콰당탕

대상이었던 종남파 장로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나 튕겨나온 뇌전의 충격파에 감전되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아까부터 전면에서 유들유들하게 약을 올려대던 장로는 눈을 새하얗게 까뒤집고 기절해 있었다.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폐허가 되어버린 종남파 건물을 바라보던 종남파 제자들의 얼굴은 새하얗게 핼쑥해져 있었다.

"......."

나는 내가 펼치고도 천뢰인의 위력을 믿지 못해서 눈을 꿈벅거렸다. 30호흡 이상 모았으며 내공의 7할을 쏟아붓기는 했지만, 이게 검법의 위력이란 말인가?

진수 장로와 겨룰 때 사용했던 천뢰인보다 훨씬 크다. 최소한 그 10배 크기의 뇌전격은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허억... 헉..."

뒤늦게 내 몸에 여파가 찾아왔다. 호흡이 힘들어지고 머리가 띵했다. 너무 많은 기를 한번에 써버린 것 때문에 어지럼증이 생겼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자 원래대로 돌아왔고, 어느 새 옆에 와 있던 진소청 사형이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수고했네, 사제. 적들을 일거에 소탕하다니 훌륭하군."

나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렇게 천뢰인을 써 보는 건 처음입니다."

"사제가 전장(戰場)에 나가면 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야. 자랑스러워."

진소청의 칭찬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런 걸 적의 본진에 날려버릴 수 있다면 수백 명 단위의 사상자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종남파의 장로들이 죽지 않은 것도 기적적인 일에 가까웠다. 나는 내 내공이 생각보다 더 비인간적인 경지에 올라있다는 걸 실감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 멀지 않았다.'

이 내공을 온전히 다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무예의 경지가 더 높아진다면, 틀림없이 그 때는 금의위 총령을 쓰러뜨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였다.

"개세절기(氣蓋絶技)는 잘 구경했네. 청룡의 제자들이여."

굵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 자의 신형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내 바로 옆을 통과한 것이다.

파앗

"그럼 나도 한 수 부탁하지."

어느 새 장내에는 소리소문 없이 한 백의인(白衣人)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쓰러진 장로들 바로 앞에 서 있었는데, 놀랍게도 나는 그가 언제 나타났는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진소청 사형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는데, 지금까지 종남파 장로들을 대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경계상태였다. 그것은 저 백의인이 그만큼 위험한 존재라는 뜻이었다. 창을 겨눠잡고 있던 진소청 사형이 말했다.

"연정홍(演鄭鴻) 장문인. 이미 승부는 났습니다."

백의 중년인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승부가 났다니?"

"삼판 이선승제! 사제가 일 승을 거두고, 방금 전 6대 2로 겨루어서 우리가 일 승을 추가했습니다. 더 이상 그쪽에 나설 기회는 없습니다."

의외로 사형은 지금까지 종남파 문인들에게 하던 것처럼 퉁명섞인 하대나 평대를 하지 않았다. 연정홍에게는 깍듯이 반존대를 하는 것이었다.

"흐음..."

연정홍은 못마땅한 눈으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장로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본파의 장로들은 이게 문제야. 나까지 나서면 체면이 깎인다고 자기들 선에서 해결하려고 드는데, 결국 현판을 내주는 치욕을 당했으니 이 어찌 어리석지 않은가."

"옳으신 말씀이군."

진소청 사형은 그 답지 않게 목에 땀 한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도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당신이 처음부터 나섰다면 우리는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을 겁니다."

나도 연정홍을 보자 덩달아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 저 자가 지금 덤벼오면... 내공을 거의 다 썼는데 어떻게 이기지?'

종남제일검(終南第一劍) 연정홍!

현 종남파의 장문인!

동시에 천하에서 몇 안되는 초절정(超絶頂) 고수로 인정받은 자로써 그 검법소양이 중원천하에서도 명인(名人)으로 추앙받는 자라고 들었었다. 이건 내가 낙양 쌍문사가를 조사할 때 같이 알게 된 사항이었는데, 화산파보다 전반적으로 제자들의 실력이 딸리는 종남파가 화산파와 대등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종남제일검의 무위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작 한 명의 비중이 그렇게 거대할 수 있는지 의아했었다.

' 이건... 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마주쳐보니 알 것 같았다.

금의위 총령과 마주했을 때 수준의 절망감이 느껴진다.

절정과 초절정, 고작 한 단계의 차이이지만 무시무시한 힘의 차이가 존재했다. 방금 전까지 육합축월진에 맞설 때만 해도 죽을 각오를 다하면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으나, 눈 앞의 초절고수 앞에서는 그런 요행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스으

연정홍이 살짝 손을 들자 나와 진소청 사형이 강렬한 투기를 발산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듯 살기를 폭사시켰으나 연정홍은 마치 산들바람처럼 흘리고는, 권태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로들이 멋대로 진행해버린 덕에 내가 늦게 와 버렸어. 그 때문에 본파가 큰 치욕을 당했군.... 이 또한 나의 불민함이겠지."

"어쩌시겠습니까?"

"현판을 떼어가게. 그리고 우리는 오 년간 봉문(封門)하도록 하지.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본파 제자들을 단단히 가르쳐야 겠어."

아무렇지도 않게 구파일방의 봉문선언을 한 연정홍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청룡에게는 조만간 술이나 한 잔 하러 가겠다고 전해 주게, 진소청."

"알겠습니다."

연정홍과 진소청은 구면(舊面)인 듯 했다. 그래서인지 진소청은 연정홍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의외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소청이 종남파를 때려부술 때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인데, 그건 아마도 사형 나름대로의 조그마한 허세였을지도 모른다. 종남파 장문인이 나오기 전에 상황을 끝내버리겠다는 자신감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만 잘 가시게."

"잠시만!"

내가 연정홍을 멈춰세웠다. 연정홍이 이 쪽을 뒤돌아보자 나는 질문했다.

"제 사부의 명호는 삼절(三絶)일진데 왜 자꾸 청룡이라고 부르시는 겁니까?"

종남파 장로들도 그렇고 종남파 장문인도 그렇고 이광을 삼절이라는 명호 대신에 청룡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그러자 연정홍이 의외라는 듯 진소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진소청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제는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과거 일을 잘 모릅니다."

"그렇군. 뭐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러더니 연정홍이 우묵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건 자네 스승에게 직접 물어 보게. 하긴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털어놓을 수 있는 자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냐마는."

"......?"

"자네 실력은 잘 보았어. 다음에는 더 좋은 얼굴로 보도록 하지."

그러고는 연정홍은 기절한 장로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 나름대로의 축객령이라는 걸 깨달은 나와 진소청은 종남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덤으로 약속했던대로 종남파의 현판을 떼어서 짊어지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종남파의 현판을 어깨에 지고 달리면서 사형에게 물었다.

"제가 뭐 잘못 질문한 겁니까?"

쐐액

나와 함께 옆에서 달리고 있던 진소청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닐세. 굳이 지적하자면 사제의 질문은 관중 섬서 일대의 절정고수들에게 공포(恐怖)를 재각인 시킨 것이야. 다른 자들이 그 질문을 들었다면 환장해서 부들부들 떨거나 무서워서 잠적했을지도 모르지."

"네?!"

"그러나 연정홍쯤 되는 초절정고수에게는 과거사에 지나지 않아. 돌아가서 스승님께 질문하면 제대로 대답해 주실 것이네."

"네."

"아 그리고 현판은 교대로 짊어지고 갑세. 혼자서 들면 무겁겠군."

사형 나름대로 배려를 했지만, 정작 메고가는 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 질문했다.

"근데 이거 뭐에 씁니까? 팔아먹기도 그럴 텐데."

"으음..."

진소청은 한참동안 종남파 현판의 실용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창고에 박아두면 언젠가 요긴하게 쓸 날이 오겠지."

"......"

도대체 언제? 라는 반문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참았다.

어쨌든 오늘은 종남파 도장깨기에 성공한 날이니 맛있는 밥을 먹고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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