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8 ----------------------------------------------
복마전(伏魔殿)
종남파(終南派)는 구파일방(九派一幇)에서도 손꼽히는 검파(劍派)이다. 비록 청연무당이나 화산파에는 약간의 손색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섬서 남부에서 그들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듯 했다. 역대로 무수한 절정고수들을 배출했으며 뛰어난 절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명문 중의 명문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무림인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예전에 도전했던 낙양 쌍문사가에 결코 뒤지지 않는 대문파! 낙양 내에서야 쌍문사가가 구파일방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할지 모르지만, 구파는 그자체로 천하에 이름을 드날리는 대륙급 존재였다. 인지도나 정파의 영향력에서 볼 때 구파일방은 결코 건드릴 수 없는 태산(泰山)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사형에게 말했다.
"정말로 여기 도전하는 겁니까?"
"사제는 정곽까지 다 와서 객잔에서 짐까지 풀어놓고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따뜻한 차를 음미하던 진소청이 훗하고 웃었다.
"걱정 말게. 종남파는 명문정파이니 섣불리 비겁한 짓은 하지 않을 걸세."
"......"
우리는 정곽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그 말은 종남파의 본거지인 종남산 바로 앞에 도착해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나는 객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종남산의 봉우리를 흘끔 바라보았다. 종남산이 그리 높은 산맥이나 봉우리는 아니었기에 여기저기에 건물의 흔적이 보였다. 저기에 바로 구파일방 종남파의 건물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나는 결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철혈문 또한 정파로 분류되던 문파였는데 대뜸 비무하다가 낭인의 목을 날려버린 전적이 있었다. 이미 한차례 거하게 뒤통수를 맞은 뒤라서 또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걱정하는 모습이 긴장하는 모습으로 보였는지 진소청이 말했다.
"긴장되면 사제는 이번에 나서지 않아도 좋네. 견학(見學)만으로도 족하다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긴장이 아니라 걱정입니다만..."
"자네 의사를 확실히 말하게."
하아 -
나는 꺼질듯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한판 붙어봐야죠. 이런 기회를 어찌 놓치겠습니까?"
"하하하! 역시 사제는 호쾌한 남아의 기질이 있군."
"......"
그렇다. 목숨을 위협받는다고 해서 놓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무림에 고수는 드물었고 그들과 싸울 기회는 잡기가 힘들었다. 그것도 구파일방의 고수와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천금같은 기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종남파 고수들이 둘러싸서 다구리치는 상상을 하면 끔찍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억지로 용기를 내기로 했다.
' 저 인간이 같이 왔으니 왠만하면 도망칠 수는 있겠지.'
내가 이렇게 걱정하면서도 정곽마을까지 와서야 투덜거린 것은, 사형 진소청의 실력을 충분히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 신뢰라기보다는 확신(確信)마저 느끼고 있다. 진소청은 괴물이다.
한참동안 휴식을 취하던 진소청이 말했다.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 새벽에 종남산을 오르기로 하지. 저녁은 어떻게 먹을텐가?"
"저는 만두가 좋습니다."
"그럼 객잔에서 적당히 먹으러 갑세."
달그락...
식사를 하는 동안에 이 객잔 곳곳에 도복(道服), 혹은 백의(白衣)를 입은 자들이 돌아다니는게 보였다. 아마 종남파와 관계있는 무림이거나 종남파 문인일 것이리라. 나는 가급적 그들과 시비가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기에 못본 체 먹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런 생각은 진소청도 마찬가지인지 볶은 소채요리를 천천히 음미하는 듯 했다.
진소청이 밥을 먹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사제의 실력은 내가 보았던 소년무림인 중에서 가장 출중하네. 어떻게 해서 그런 실력을 쌓을 수 있었는가?"
그는 내게 꽤 관심이 많은 기색이었다. 나는 겸양을 떨며 가볍게 실력 이야기를 넘겨 버렸다.
"저는 아직 많이 불민합니다. 그저 몇 번의 인연이 닿았고 운이 좋았죠."
"하하... 스승님께서 사제에게 거는 기대가 커. 원래 비기(秘技)라는 건 섣불리 전수하는 게 아니라는 게 평소 지론이셨는데, 그 지론을 꺾으셨으니까. 단연컨대 스승님께서 사제한테처럼 누군가에게 신경을 써주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네."
"사형께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시지 않습니까?"
"글쎄. 스승님께서는 내게 많은 간섭을 하시지 않네. 필요한 걸 가르쳐주시면 그 이상은 혼자 하라고 방임해 버리시지."
그렇게 말하는 진소청의 얼굴에는 약간 씁쓸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자 전후사정을 대충 알 것 같았다.
' 천재가 천재를 가르치는 거라서 그렇겠군.'
삼절 이광은 무(武)의 천재(天才)이며, 진소청 또한 마찬가지다. 비슷한 재능의 소유자가 서로에게 끌리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고, 상대방의 재능을 가늠하는 일도 쉬웠다. 아마 이광은 진소청이 어디까지 익힐 재능이 있는지 파악하고 있기에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리라. 단지 그런 접근방법은 진소청 본인에게는 다소 정(情)이 없다고 비춰지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되려 그런 관계가 부러웠다. 현재까지 약 반 년동안 이광이 내게 전담하듯이 붙어서 12시진 내내 가르친 이유는 딱히 끈끈한 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얼르고 패고 온갖 지랄을 다해서 가르치지 않으면 기술을 터득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둔재(鈍才)이기 때문이다. 진소청을 믿고 내버려두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혹시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사형께서는 뇌령팔식(雷靈八式)의 비기를 모두 터득하셨습니까?"
"창술(槍術)은 끝이 없는 길일세. 그걸 모두 터득했다고 하기에는 내 수양이 아직 얕아."
"......"
내가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자 진소청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그래. 우선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네."
"그렇군요."
"물론 내일의 비무에서는 비기를 쓸 생각이 없으니 의미없는 일일세."
"네? 비기를 쓰지 않으신다고요?"
나는 깜짝 놀랐다. 천하의 구파일방에게 정면도전하는 일인데 비장의 기술을 쓰지 않겠다니? 그러나 진소청은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타 문파와의 대결에서 적을 죽일 수도 없는데 어찌 기술을 함부로 사용해서 유출시키겠나. 아무리 뛰어난 천하제일의 절기라고 해도 반복해서 타인에게 관찰(觀察)당하면 파해법이 생길 수밖에 없어. 사제도 내일의 비무에서는 배웠던 모든 비기를 봉인하도록 하게."
"음...!!"
물론 아직 비기라고 할만한 건 못 배웠고, 기껏해야 천뢰인을 습득한 것 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삼절 이광에게서 반 년동안 지도받으면서 검술이 크게 향상되고 비전(秘傳)의 동작도 익혔으므로 고민이 되었다. 진소청이 말했다.
"천뢰인은 상관없네. 다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적을 쓰러뜨리는 게 좋을걸세."
"사형. 너무 주의사항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의 수준은 굉장히 높을텐데."
내가 꿍얼거렸지만 진소청은 그냥 껄껄 웃을 뿐이었다.
"하하하, 걱정 말게."
너같으면 걱정 안 하겠냐!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도 소리를 낮추고 나직나직이 얘기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만일 조금만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면 이 객잔에 깔려있는 종남파 관계자들에게 시비를 걸릴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대화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편하게 누워서 잤다. 나는 잠들기 전에 천장을 봤는데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 우리는 종남산을 올랐다. 산길이라고 하기엔 마치 산책길처럼 정돈되어있는 길이 나 있었고, 곳곳에 쉬어갈만한 곳도 있었다. 이런걸 보면 종남파에 방문하는 손님이 매우 많고, 종남파가 축적한 부(富)가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도로를 종남파에서 만들 리가 만무하기에 전적으로 그들이 얻어낸 기부금과 상납금을 이용해서 만들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곧이어 종남파의 본격적인 입구로 보이는 건물이 산중에 자리잡은 게 보였다. 그 앞에는 두 명의 백의검사(白衣劍士)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아마 종남파 제자인 게 확실해보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칼에 달려있는 수실은 독특하게 꼬아져 있었고 그것은 아마 종남파의 표식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둘 중 하나가 이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여기서부터는 종남파의 본산(本山)이오. 외인(外人)은 성명과 출입용건을 밝혀 주시오."
"나는 청룡무관의 진소청이고, 이쪽은 내 사제인 백웅이오. 종남파에 한 수 청하러 멀리 관중에서 왔소."
"......!!"
담담하게 말하는 진소청의 대답에 그들은 적지 않게 놀란 듯 했다. 점잖게 말을 돌려서 했으나 정면 비무신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문지기로 서 있던 백의검객 중 하나가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들은 여기가 구파일방이며 종남파라는 걸 알고 찾아온 게 맞소?"
"물론이오."
"정신이 나갔군..."
"언제까지 우리를 여기 세워둘 생각이오? 전하려면 빨리 전해 주시오."
진소청이 핀잔을 주자, 그 백의검객은 곱지 못한 눈으로 우리쪽을 노려보더니 말했다.
"그러지. 한 식경만 여기서 기다리시오."
파앗!
그리고 곧장 경공술을 발휘해서 어디론가 뛰어갔는데, 저 경공술은 아마 종남파에서 자랑하는 운광보(雲光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견하기에 무공의 실력이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으니 저 백의검객의 위치도 꽤 높은 것일지도 몰랐다.
잠시 후 백의검객은 동료 세 명을 데리고 되돌아왔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를 따라오시오. 대련당(對鍊堂)에서 맞이하겠다고 말씀하셨소."
"누가 말했소?"
"닥치시오. 당신들 따위에게 내가 그걸 말해줘야 할 필요는 없을 텐데?"
나는 순간 황당했다.
' 와 저놈 보게.'
물론 지금 나야 최대한 조심하는 중이라서 여기서 나서지 않을테지만, 저런 태도는 너무 오만한게 아닌가 싶었다. 만일 평범한 중소문파의 무인이라면 저 말에 화를 크게 낼 것이다.
진소청이 말했다.
"말을 참 곱게 하는구려. 이게 손님에 대한 예절인가?"
"쓰레기같은 잡배놈들! 비무를 신청한 자를 손님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당신들도 구파에 어설프게 도전해서 명예를 얻어보려는 낭인(浪人)들인 것 같은데, 성히 걸어나갈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그 말에 진소청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충분히 신분을 밝힌 것 같은데 낭인이라."
"왜 떫소? 근본도 없어보이는데."
진소청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말은 청룡무관과 내 사부님까지 모욕하는 말인 것 같군."
"하하! 청룡무관? 그건 또 어디 붙어있는 곳이오? 하하..."
저 놈이!
나는 순간 발끈해서 뛰쳐나갈 뻔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진소청의 그림자가 엄청난 쾌속(快速)을 남기고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움직임이 뇌영보 비기 천주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숨을 멈추었다. 진소청은 이미 내가 배워야 할 비기를 다 습득한 것이다. 진소청이 눈 앞에 쇄도하는 순간까지도 백의검객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상황판단이 안 되는 듯 했다.
콰악
"으컥...!!"
진소청의 일 장(一掌)이 순식간에 그 백의검객의 명치를 날렸고 그 자는 일 장 위의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나조차도 안력을 집중하지 않았다면 흔적을 보기 힘들 정도의 공격이었다.
"이 노옴...."
옆에 서 있던 그의 동료들이 칼을 반쯤 뽑기도 전에 진소청의 주먹은 무려 십이연타(十二連打)를 끝낸 후였다. 손과 발이 새하얀 잔영만 남길 정도의 속도였다.
퍼버버버벅
세 명 모두가 일류고수로 보였는데 순식간에 박살나듯이 얻어맞고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 버린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진소청은 즉시 몸을 반회전시키며 나머지 한 명의 배때기에 발차기를 날렸다.
꾸웅
"억... 흐윽..."
그 자는 흰 게거품을 물더니 앞으로 쓰러져서 기절해 버렸다.
"나는 몰라도 사부님을 욕보이는 놈은 용서치 않는다."
순식간에 종남파의 제자들을 쓰러뜨린 진소청의 눈에는 차가운 광기(狂氣)같은 게 감돌고 있었다. 나는 그런 진소청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원래라면 종남파 제자를 공격한 후환을 두려워해야 하겠지만, 그런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진소청에게서 흐르는 기도(氣道)는 냉엄하고 강력했다.
잠시 자신이 저지른 짓을 내려다보던 진소청이 나직이 말했다.
"사제. 나를 적당히 말려 주게. 오늘 자칫하면 피를 볼 것 같아."
나는 투덜거렸다.
"이미 보신 것 같습니다만..."
이게 피를 안 본 수준이란 말인가? 장내에 쓰러져 있는 놈들은 잘못하면 불구가 될 수준으로 두드려맞은데다가 어떤 놈은 눈을 까뒤집고 게거품을 물고 있었으며,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진소청이 일부러 아프게 구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적당히 현판만 떼 갈까 싶네."
파앗
무시무시한 소리를 한 진소청은 주먹을 오므려 쥐더니, 엄청난 속도의 경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도 저정도 속도를 발휘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진소청의 내공을 감안해 볼때 그의 경공술이 매우 고절한 경지라는 건 확실했다. 진소청의 나이라고 해봐야 이제 20대 중반일텐데 어떻게 저런 무위(武威)를 지니고 있는지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백의검객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혀를 끌끌 찼다.
"멍청한 놈들. 알아서 호랑이 코털을 뽑는단 말인가?"
진소청을 화나게 한다는 건 나조차도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되려 말 몇 마디로 그의 심지를 부들부들 떨리게 한 저 백의검객 놈의 배짱이 대단해 보였다. 나는 어딘가 속시원해서 피식 웃으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타다닷
잠시 후 약 2리 정도를 뛰어가자 종남파의 본파건물로 보이는 장소가 전면에 보였다. 그리고 그 곳에는 이미 진소청에게 맞아서 기절해 있는 종남파 제자들이 약 10여명 정도 보였고, 나머지 놈들은 진소청을 원형으로 둘러싼 채로 긴장해서 원진(圓陣)을 펴고 있었다. 맨 앞에 나와있던 30대 나이의 종남파 고수가 버럭 외쳤다.
"네 이놈!! 감히 종남파에서 이 무슨 행패냐!"
"당신들 쪽에서 먼저 내 사문을 모욕했소. 얌전히 올 생각이었으나 이 사태는 당신들이 자초한 거요."
"뭐라고?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용서치 못한다!"
촤촤촥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백의검객들이 검의 기세를 돋우는 소리가 돌렸다. 보통 무림인이라면 이 살벌한 광경에 긴장하거나 지리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진소청은 한층 더 냉막하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용서치 못하는 건 이쪽이다."
콰과광
진소청의 신형이 갑작스럽게 세 개로 분열하더니, 사방에서 달려들던 종남파 백의검객들에게 차례로 수장(手掌)을 뿌렸다. 공중에서 이연타나 삼연타를 하면서 장중한 타격음이 울렸고 그때마다 백의검객들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진소청과 대등하게 겨루기는 커녕 일 초식도 제대로 받아내는 자가 없었다.
퍼버버벅
"끄아아악!"
"으헉!"
허공에서 잡아채이고 걷어채이면서 백의검객들이 박살나는 광경은 진국이었다. 아직 사망자는 없어보였지만 몇 방 얻어맞고 눈 까뒤집으며 기절하는 일이 예사였다.
나는 그 전율할만한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자리에 이류급 무인도 섞여있긴 하지만 저들 대부분이 일류고수이며 절정급 초입이 섞여있는데 저렇게 압도적이라니? 더 놀라운 건 아직 진소청은 본신의 무기인 창(槍)을 꺼내지도 않고 뇌운장과 뇌운강권만으로 종남파를 정면에서 털어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 ... 핫! 감상할 때가 아니군!'
나는 급히 외쳤다.
"사형! 그만두시오!"
꽈아아앙
마지막 한 명의 백의검객이 부들부들 떨며 종남파 현관문에 기대어 있자 진소청의 강권(剛拳)이 무게가 몇천 근은 될법한 현관문을 깨부숴버렸다. 일 장이나 되는 크기의 대문짝이 훨훨 날아가서 땅바닥에 육중한 소리를 내며 틀어박혔다. 겁먹어서 눈물과 오줌을 질질 흘리고 있는 백의검객의 바로 옆에 진소청의 권(拳)이 틀어박혀 있었다.
진소청은 그제서야 손을 거두며 말했다.
"아직 기분이 안 풀렸네, 사제."
"네?"
진소청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가 종남파의 최심부 건물을 쳐다보며, 거기에 있는 절정고수들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챈 나는 기겁했다. 아니나 다를까 진소청이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도장깨기를 현재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동안 진소청이라는 인간을 잘못 판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인간은 순하고 착한 양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한번 불이 붙으면 이놈이고 저놈이고 따지지 않고 박살내 버리는 맹수(猛獸)였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힘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지니고 있는 파괴신!
"한바탕 하러 갑세."
"......"
뭘 한바탕 하냐고, 미쳤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겁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