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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관중(關中)으로 향했다. 바로 그 곳에 내 무(武)의 시작이자 원천인 청룡무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장령곡이니, 참극이니, 낙양이니 하는 모든 잡스러운 것들을 잊어버리고 무관을 향해서만 맹렬하게 달려나갔다. 지금까지는 전생(轉生)의 혜택 때문에 다소 제멋대로 엇나가고 있었으나 망량의 죽음을 직접 겪게 되면서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파앗!
달려가는 일에만 집중을 하자, 내 경공은 마치 비호(飛虎)나 다름없는 속력을 내었고 잠시도 쉬지 않았다. 인간의 육체에 걸려있는 한계를 가볍게 무시하듯, 내 짚신이 5번이나 끊어지는 동안에 나는 한번도 지치지 않았다. 근육이 약간 지칠만하면 즉시 초재생(超再生)하듯이 활력을 회복하는 수준이었다.
휘리릭
나는 관중 청룡무관까지 딱 반나절의 거리를 앞둔 산 속에서 산 정상에 뛰어올랐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산길을 가로질러서 굳이 지름길로 다니지 않아도 된다. 도리어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관도를 통해서 이동하는게 나중에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산천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저만치 지평선을 바라보며 생각을 했다.
' 대체 그 엄청난 폭우는 뭐였을까?'
이상하다.
인위적이다.
망량과의 만남 때문에 생각을 못하고 있었지만, 내가 진랑곡에 가는 도중에 덮쳐온 그 암운(暗雲)은 명백히 이상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포함하면 8번째 삶을 살고 있으나 그 동안에 그토록 엄청난 폭우가 지나다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무언가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강력한 기상변화가 생긴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나의 역행에는 [원인이 있으면 과거가 바뀐다] 라는 대전제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나는 망량에게 그걸 잠깐이라도 물어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지워버렸다. 망량이 그 이유를 알고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뿐더러, 더 이상은 다른 일에 한눈 팔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음을 각오했으니 나중에라도 알아볼 수가 있는 일이었다.
' 으음. 여기는 정말로 산적이나 강도가 많군...'
사람이 죽을 위기다.
"사, 살려주세요!"
"흐하하!!"
산정상에 서 있으니 한적한 산길에서 산적 서너 명이 나타나서 행인들에게 칼을 휘두르며 죽이려는 모습이 보였다. 약 사십 장 정도 떨어진 곳이었기에 나는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발 밑에 있던 자갈돌을 내공을 실어서 찼다.
빠박!
"끄아악!"
산적 두 명의 머리통이 자갈에 맞아서 깨져 나갔다. 아마 충격의 정도로 볼 때 뇌진탕으로 즉사(卽死)했을 것이다. 나머지 두 명이 갑작스러운 이변에 놀라서 주춤거리자, 나는 다시 자갈돌을 찼다.
퍼억!
"크아아악!!"
남은 산적들도 그 자리에 피를 쏟고 엎어져서 죽었다. 순식간에 네 명의 산적을 살상했으나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산적을 처리한 덕에 저 행인이 목숨을 구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전생하면서 느끼던 것이지만 이 근처가 유독 노상강도나 살인도적이 많이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긴 한다.
왜 산적이 많이 돌아다니는 걸까.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잠시 후 산속에서 칼을 들고 영업준비를 하는 산적 하나를 만났다. 혼자 활동하는 놈인지 깡다구 있고 체격이 있어 보였다.
"흐흐... 꼬맹아 가진거 다 내놔라..."
산적은 나를 보자 이를 드러내며 좋은 사냥감을 만났다는 표정을 했으나, 잠시 후 내게 정권을 두 방 후려맞자 무릎을 꿇고 이빨을 덜덜 떨었다. 나는 그에게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미안. 가진 게 주먹 뿐이야."
"소... 소협... 죄송합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나는 이미 오늘 4명의 산적을 죽였다. 다들 죽어 마땅한 살인강도이긴 했지만, 더 이상 닥치고 죽여대는 것도 껄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질문했다.
"이봐. 왜 이 근처 산길은 도적이나 강도가 들끓는 거냐? 전부터 좀 이상했는데."
"소... 소협께서는 이 근처에 사시지 않습니까요?"
"그래. 이유가 있다면 좀 설명해 봐. 내 궁금증을 해결하면 널 놔 주마."
"아이구 말씀드리고 말굽죠!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손을 싹싹 비비면서 산적이 비굴한 안색으로 유창하게 설명을 했다.
"소협께서는 강호무림인이신 듯 한데 혹시 녹림칠십이채(綠林七十二寨)라는 걸 들어 보셨습니까요?"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들어는 봤지. 녹림 쓰레기들의 모임이라고."
녹림칠십이채.
그것은 산적 강도들의 총칭인 녹림(綠林)의 인간들이 모여있는 산적채가 총 72개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물론 딱 맞춰서 72개인 게 아니고, 그만큼 중원 곳곳에 도적떼가 들끓는다는 것을 비꼬듯이 표현하는 말이기도 했다.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질 정도의 산적근거지는 머지않아서 관군에게 토벌당하는 편이었다.
"아이구... 그렇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72채는 완전히 뻥이지만, 녹림십팔채(綠林十八寨)는 완전히 사실입니다요! 그것도 이 관중 일대에만 5개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요."
"뭐? 녹림십팔채?"
"네이네이. 저는 거기에 소속된 놈은 아닙지만 완력 깨나 있다는 놈들은 거기로 몰려가서 부하노릇을 합니다요..."
"흐음..."
나는 기가 막힌 걸 느꼈다.
' 내가 어릴 적의 관중은 치안이 막장스러운 곳이었구나.'
내가 표사활동을 하는 시대에도 정식 녹림채가 있고, 그곳의 녹림도들은 표사급의 정식 무공을 전수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따로따로 노는 편이었고 십팔채니 뭐니 하면서 엮여서 불리지 않았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말했다.
"관중에 아무리 무림문파가 변변히 없다지만 무림인들이 그 십팔채라는 놈들을 때려잡지 않느냐? 특히 정파(正派)라면 문파의 이름을 알릴 절호의 기회인데."
"그거야... 십팔채가 따로 노는게 아니라 늘 연합해서 행동하기 때문입지요. 뿐만 아니라 십팔채의 채주나 부채주는 어지간한 무림인보다 쎄다고 합니다. 몇몇 무림인들이 호된 꼴을 당한 후에는 다들 슬며시 피하는 분위기입죠."
"......"
산적이란 건 원래 소작농이나 유민이 과도한 증세(增稅)나 지주(地主)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서 뛰쳐나온 인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개중 상당수는 화전민이나 도망노비인 경우도 많았다. 그렇기에 살인강도도 많았고 지들 멋대로 뭉쳐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서로간의 협력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고 산적들끼리 칼싸움하다가 제멋대로 뒈져있는 경우도 표사생활을 하면서 숱하게 본 기억이 있다.
즉 - 보통은 오합지졸들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산적들은 지나치게 세력이 강하다.
물론 내가 표사활동을 하던 시대에도 산적들이 무공을 익히고 다니긴 했다. 다만 별로 세다고는 볼 수 없었다. 조금 강한 산채일 경우 표국 표사들이 상납금을 내고 지나가는데, 그마저도 표사들이 죽을힘을 다해 저항하면 되려 산적들이 큰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본신의 무공이 표위급 이상가는 산적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든 일인게 보통이었다. 그나마도 그런 놈들도 뒤늦게나마 사파(邪派)나 마도팔문(魔道八門)으로 빠져서 중간관리자가 되곤 했다. 무공이 되는데 산적질이나 하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여덟 개나 되는 산채들이 난립하면서 활동하고, 심지어는 토벌에 나선 군소정파를 때려잡는다는 수준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아무리 산적이 무공을 익힌다고 하지만 정식으로 무문에서 무공을 훈련받은 무림인보다 세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 산적이 설마 상승무공(上昇武功)을 익힌 건가?'
그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채주나 부채주란 자들이 적어도 표위급의 무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세력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보면 관군이 섣불리 토벌을 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나는 궁금해져서 물었다.
"혹시 그 18채를 한꺼번에 통솔하는 자가 존재하느냐?"
"음... 녹림왕(綠林王)이라고 자칭하는 놈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요. 헌데 그냥 뜬소문이라서 저도 잘은 모릅니다요."
"녹림왕?"
"호랑이가죽을 입고다니며 도(刀)를 쓴다고 들었습니다요. 그 자가 이끄는 호왕채(虎王寨)가 18채 중에 가장 강하다는 소문이..."
나는 녹림왕이란 놈이 개인적인 무위가 높기 때문에 소문이 퍼진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고 이 정보를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이맘때의 정보라는 건 하나라도 더 알아둘수록 좋은 것이다.
"좋아. 너도 이만 가 봐라."
"으으으, 감사합니다 소협...!!"
나는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돈 내놔!"
"히이이익."
그리고 안 보이는 곳에서 약 한 식경 정도 몰래 지켜보다가, 그 산적놈이 또다른 행인에게 다짜고짜 칼을 들이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자 한숨을 쉬었다.
' 산적이란 것들은 역시 다들 거기서 거기로군.'
왜이렇게 입발린 소리를 하는 도적놈들이 많단 말인가? 하긴 먹고살기 힘들어서 강도짓하는 놈들에게 인성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리라. 나는 산적들과 반평생 부대끼며 표사일을 해 왔기에 놈들의 인성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인간이었다.
나는 엄지손가락만한 조그마한 돌멩이를 튕겼다.
따악!
"헉!"
까강
정확하게 칼을 들고 있던 검지에 돌멩이가 적중되자 놈은 칼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급히 다시 칼을 주운 산적놈이었으나 이미 내가 숨어서 지켜본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태였다. 놈은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 그냥 가라."
"히이이익."
나는 그 꼬라지를 더 보기가 싫어서 그냥 물러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 산적왕이란 놈을 언젠가 꼭 잡아야겠군. 그런 놈이 있으니까 양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머지않아 관중 시내에 진입할 수 있었다.
관중 시내는 예전과 같이 번화했다. 나는 이번이 3번째 입관이었으므로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고, 대신 산적 몇 놈을 족쳐서 얻어낸 노잣돈으로 편하게 씻고 쉬기 시작했다. 옷과 짚신이 꼬질꼬질해져 있었으므로 새로운 옷을 사기도 했다.
나는 객잔의 2층에서 여유롭게 창 밖의 하늘을 보며 쉬던 중 기감(氣感)에 일류급 고수들의 기운이 다수 감지되는 걸 느꼈다.
' 음... 남궁환과 모용연, 그리고 그들을 은밀히 추적하는 강호 일류고수들이었군.'
분명 그런 일도 있었다.
천음지체(天陰之體) 추적사건!
천음지체인 모용세가의 절세미녀 모용연을 강제로 범(犯)하면 강대한 내공을 얻는다는 소문 때문에 남궁환과 모용연이 쫓기게 되고, 남궁환이 어쩔수없이 사형 진소청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일이 있을 때 즈음에 딱 맞춰서 도착한 듯 했다. 아마 이 일은 별다른 일이 없다면 '반드시' 일어나는 필연적인 사건이었으리라. 나는 마음만 먹으면 남궁환을 도와줄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까진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이번 일은 모두 전적으로 남궁환의 경솔한 입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으며, 나와 큰 상관도 없는 일일 뿐더러, 얻는 이득도 전무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형이 끼어들게 되면 저런 놈들 따위는 변변히 상대도 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내일 청룡무관에 무난하게 들어갈 마음의 준비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든든하게 잘 먹고 푹 쉰 후 관중 청룡무관 앞으로 찾아갔다. 거기에는 반가운 얼굴인 방일 형제들이 서 있었다. 이들은 청룡무관의 이선(二線) 문하생(門下生)인 방일과 방곡으로써, 특히 방일은 나와 꽤 인연이 깊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 좋은 만남은 아니지만 악연도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청룡무관에 입관시험을 치러 왔습니다."
이 말은 이제 3번째인가. 감회가 어렸다.
"입관시험? 크하하, 웃기는 놈일세."
방일의 이 말도 3번째 듣는다. 껄껄 웃던 방일의 반응을 보자 예상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조용히 심리적 흐름에 맞춰서 그 때의 일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꾸웅!
이윽고 나와 방일이 팔씨름을 하게 되고, 내가 이겨서 방일이 나를 와룡전(臥龍殿)까지 인도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나는 방일을 따라 와룡전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중에 궁금한 마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한번도 한적이 없는 질문을 방일에게 해 보았다.
"방일 사형."
"흥, 벌써 사형이란 말을 쓰다니 되바라진 놈이구나."
퉁명스럽지만 말에 가시가 돋히지는 않았다. 역시 방일 이 놈은 남에게 표현하는게 서툰 놈이었다. 나는 속으로 낄낄대면서 말을 이었다.
"방일 사형은 강호의 고수(高手)가 되려고 무관에 들어오신 겁니까?"
"하아? 당연한 소리를 왜 하느냐! 일선(一線) 문하생이라면 몰라도 이선 문하생부터는 왠만한 각오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삼선까지 가면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렇게까지 노력을 갈고닦으면 반드시 고수가 될 수 있는 겁니까?"
방일은 콧김을 내뿜었다.
"당연히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 관주님과 총사범님, 그리고 두 분의 사범님의 무공은 굉장히 뛰어나지. 우리도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렇군요."
나는 납득한 듯 이야기했으나 씁쓸했다.
' 아니, 아니야. 방일 너는 잘못 생각하고 있어.'
방일의 재능도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기껏해야 나랑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방일 녀석은 5년이 지나도록 일류(一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를 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왠만한 표국의 표위 수준은 해 먹겠지만, 20대 청춘을 모조리 갈아넣은 댓가 치고는 비참한 것이었다.
나도 사범일을 할 때 나중에는 방일이 조금 불쌍해서 괜히 시비 걸지 않을 정도였다. 청룡무관 사범직을 노리기도 힘든 실력이었기에 더 불쌍했다.
그는 고수가 되려는 꿈을 안고 들어왔으나 결국 나중에는 좌절해서 종종 술 마시러 다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나도 천암비서의 힘이 없었다면 방일과 별다를 바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소름마저 돋았다.
아니, 이 청룡무관에 방일같은 인간이 얼마나 많을까? 매일매일 피땀흘려 수련하는 이선 이상 문하생의 절반가량은 방일과 별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삼선 문하생 중 몇몇이나 겨우 투자한 만큼 본전을 찾을까말까였다.
나는 현실과 재능의 냉엄함에 한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노력이란 무엇인가?
재능이란 무엇인가?
내가 갑자기 자리에 딱 멈춰서자 방일이 의아한듯 내 쪽을 돌아보았다.
"뭐 하냐? 얼른 따라와."
"방일 사형.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놈이 쑥쓰러운 듯 외쳤다.
"아오 짜식아! 걍 따라오라고. 아직 확정도 아닌데 김칫국은..."
투덜대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인생을 몇 번씩이나 살다 보니 이제 이런 일 정도는 애교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번 생에는 왠만하면 방일에게 시비를 걸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그를 따라서 걸어갔다.
이윽고 나는 와룡전 앞에 도착했다.
"관주님. 이선 문하생 방일이 입관시험 지망생을 데리고 왔습니다."
"들어오너라."
그러자 약간 넓은 공간이 나왔고, 의자에 청룡무관주가 앉아 있었다. 그가 앉아있는 곳 근처에는 서재가 있었고 현재 그는 독서(讀書)를 하던 중으로 보였다.
청룡무관주의 인상은 예전과 그대로였다. 잠시 투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청룡무관주가 말했다.
"방일아. 이 아이의 이름이 뭐라고 하더냐?"
"어... 그게..."
방일이 우물쭈물하며 나를 쳐다보자 나는 내 이름을 밝혔다.
"백웅이라고 합니다."
나는 이 흐름을 알고 있다.
"그래... 방일 너는 나가보거라."
"넵."
드르륵
방일이 문을 닫고 나가자 청룡무관주 삼절 이광은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나를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말했다.
"백웅. 귀하는 백련교(白蓮敎)에서 왔소?"
예전에는 이 질문에 너무나 당황해서 목숨을 걸고 이런저런 변명을 하려고 필사적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때는 죽기살기로 도박을 걸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구차한 당혹감을 내비치지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대신 관주께 제 무공시연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걸로 모든 걸 납득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호오."
"연무장에 좋은 창검(槍劍)이 있습니까?"
되려 태연하게 되묻는 나를 보자 삼절 이광은 흥미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몇 년이나 그에게서 가르침 받았던 나는, 저게 삼절 이광이 무언가에 강한 호기심을 느낄 때 보이는 눈빛이란 걸 알고 있다.
"물론 있지. 충분히 실력을 보여 주게."
"그럼."
파앗
나는 뇌영보(雷影步)를 전력으로 시전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희미한 그림자가 여러 번 겹쳐지는 듯한 환영이 드러났고, 삼절 이광은 그것만으로도 꽤 놀라는 듯 했다. 나는 그대로 연무장에 거치되어 있던 창검을 하나씩 잡으며, 뇌령팔식, 뇌영검법, 뇌운장의 수법을 차례차례 펼쳤다.
마지막으로 뇌운장의 공력이 쩌엉 하고 연무장 전체의 공기를 울리는 소리가 터졌다.
거기까지 조용히 와룡전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삼절 이광이 마치 귓가에 들리는 듯 나직한 전음을 보내 왔다.
[ 타 뇌신류(雷神流)에서 온 제자인가? 훌륭한 경지로군.]
이번에는 백련교나 성련이니 뭐니 구차한 이야기로 의심하지 않는 삼절 이광이었다. 뇌신류의 전승자인 그가 보기에도 내 무공시연과 뇌령(雷靈)의 응용이 원숙한 경지로 접어들었다는 증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세한 사정은 안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삼절 이광이 흐뭇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뇌신류를 보게 되다니, 기분좋은 날이군. 약주나 꺼내볼까."
나는 3번째 입관이 성공리에 끝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약주를 꺼낸다 -
그것은 삼절 이광이 최고로 기분 좋을 때 믿을 만한 손님에게 행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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