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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2화 (5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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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8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사실상 지난번 삶이 너무 일찍 끝나버렸기에 별다른 감흥은 안 생겼다. 단지 자진을 했을 때의 고통이 전신에 마치 근육통처럼 아로박혔기 때문에, 잠시동안 누워서 끙끙댔다.

저번에는 정신적 충격과 놀라움, 자괴감이 너무 컸기에 잘 몰랐지만 심맥(心脈)을 끊는 자살방법 자체가 그리 편한 자살법이 아닌 탓이다. 죽는 고통으로 치면 참수(斬首)로 죽는 고통보다 약간 덜한 수준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쉽게 선택하지 못할 정도다.

"윽... 제길."

나는 그래도 투덜거리면서 일어섰다. 그래도 자진수법이 나은 점은 내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뒤이어 찾아오는 정신적 충격이 덜하다는 방법이었다. 나는 좀 더 빠르게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을 방법이 없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무튼 정리해 보자. 흑백련이 피어있는 연못의 수저(水底)에는 아마 칠요(七曜)의 비보(秘寶)일 유적이 존재한다. 그 빛나는 검에서 흘러나오는 영기(靈氣)는 굉장한 수준이다. 다만 그걸 얻기 위해서는 수호자 거대거미를 죽여야 한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상황을 짚고 넘어가자,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다.

과연 그 보물을 어떻게 얻어야 할 것인가?

나는 수호자와의 전투를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수호자가 뛰쳐올라오기 전에 빠르게 외나무다리를 횡당해서 칼만 얻고 나오는 것도 생각해볼 만 하지만, 그건 위험부담이 너무 큰 일이었다. 게다가 거미의 반응속도로 볼 때 자칫하다가는 제압만 당하고 허무하게 죽을 가능성도 높았다. 최소한 내 경공속도가 지금보다 2배 이상 빠르지 않으면 속도만으로 승부를 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 여기서 속도를 2배...? 뇌령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내 경공속도는 현재 전혀 느린 편이 아니다. 그렇기보다는 강호무림인을 통틀어도 단연 상위권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일례로 금의위사들은 내가 뇌영보(雷影步)를 밟아서 공격해 들어갈 때 반응하기도 힘겨워했으니, 일류급 이하의 고수들은 내 속도보다 느리다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내공으로 인한 신체능력 향상이 강하게 작용하기에 절정급 고수와 상대하더라도 제법 빠른 속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여기서 더 빨라진다는 것은 현재의 내 무술경지를 한두 단계 이상 혁파(赫破)하는 진보가 필요했다. 거대거미와 싸워서 보물을 쟁취해 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던 끝에 하나의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지난번에도 정했던 단순명확한 목표가 더 절실하게 와닿은 것이다. 나는 외양간에서 걸어나와서 통각을 줄일 겸 내공을 실어서 마보(馬步) 자세를 잡았다. 이 자세는 꽤 힘들기 때문에, 여기에 집중하다보면 고통이 빠르게 잊혀질 것 같았다.

"......"

나는 청룡무관에 가서 단순무식하게 수련할 게 아니라 좀 더 무학경지를 섬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삼절 이광이나 진소청이 가르쳐 주는 걸 익히기만 해도 바빠서 숨돌릴 틈이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몇 년이나 그들 밑에서 수학(修學)한 경험이 있는데다가 뇌신류를 이용한 실전경험도 꽤 쌓인 것이다.

' 이제는 내가 모르는 상승단계의 무리(武理)를 적극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천재들 옆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그들은 둔재나 범재를 일일이 비웃거나 비교하지 않는다. 그런 쪼잔한 짓을 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확신이 없는 얼간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들은 성큼성큼 발을 내딛기만 해도 다음 단계가 보이므로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들이 뒤를 돌아보고 설명하게끔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노력과 성실이었다.

청룡무관에서의 수련!

그리고 강해져서 칠요유적에서 보물을 얻어내기!

"가자!"

이것을 이번 생의 내 목표로 삼기로 하고, 나는 반 시진 후 외양간에서 출발했다. 천암비서를 별 무리 없이 얻어낸 후 황산으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황산에 도착하는 데는 지난번과 별다를 바 없는 시간이 걸렸다. 저번에 황산파 장로가 돌아다니는 궤적도 대충 알 것 같았기에, 이번에는 별로 숨지 않고도 천년설삼이 있는 장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설원의 동굴에서 천년설삼과 흑백련을 물끄러미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 이제 그만 먹어도 되지 않을까?'

아닌 게 아니라, 내 전신의 세맥(細脈)은 거의 다 뚫린 듯 했다. 딱히 내공심법의 주천(周天)을 행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계속 길이 트이는 중이다. 이미 내 몸속의 기맥(氣脈)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용맥(龍脈)이나 다름없이 변해있었다.

이걸 먹으면 이제 진짜로 천하에 나보다 내공이 많은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천년설삼을 6번이나 먹은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원래 조그마했던 그릇이 여러번 넓혀지면서 이제는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차오른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넓이가 비교도 할 수 없이 커졌기에 수천 배나 되는 용기의 수면(水面)이 천천히 차오를 뿐이다. 여기서 천년설삼과 흑백련의 기운을 더 받아들여도 갈수록 효과가 적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흠. 어쩔까... 어떻게 해야하나...'

나는 앉아서 고민했지만, 결국 그냥 먹기로 했다. 이걸 만일에 바깥세상에 내다팔거나 하면 단숨에 가공할만한 부(富)과 권력을 얻을 수 있겠지만 이번 생의 목표는 그게 아니다. 남줄 게 아니라면 이득이 조금밖에 나지 않더라도 내가 먹어치우는 게 훨씬 이득인 것이다.

파아아앗

운기조식이 끝나자 이제는 꽈득 하고 내면에서 뭔가가 부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거치적거리던 걸 툭툭 차내던 영약의 기운이 통째로 맥을 밀어대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공이 본격적으로 가속(可速)을 받으면서 움직이는 걸 느끼자 전율했다.

' 우와앗...!! 몸 안에 폭풍이 밀어치는 것 같다.'

다만 이것만으로 강력해졌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의 전조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의 소득에 만족하고 일어섰다. 일어서는 내 눈에 흑백련이 피어있는 연못이 보였다.

저 안에 칠요의 유적이 있다.

"... 혹시 모르니까 한번만 더 가 볼까?"

이번에 청룡무관에 들어가면 수십 년은 나오지 않을 생각이다. 언제 다시 나올지도 모르는데 한번쯤 더 들어가 보는건 무방했으며, 되려 필요한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나는 각오를 굳히고 다시 연못에 입수했다.

첨벙!

나는 다시 구슬을 돌려서 문을 열고, 수중통로를 통해서 유적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제단이 설치되어있는 공동에 발을 들였다. 혹시나 내가 예전에 빠뜨린 게 없을까 싶어서 이번에는 제단 근처를 더 꼼꼼하게 뒤져보았다.

"... 앗! 이건!"

나는 기둥에서 훨씬 뒤편에 어떤 상자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난번에는 제단에 신경이 쏠려서 알 수가 없었는데 아주 외진 곳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상자는 재질을 알 수 없는 목갑(木匣)이었는데 나무치고는 돌덩이보다 단단하고 무거워보였다.

나는 목갑을 열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단도(短刀)를 잡아서 그대로 참(斬)했다.

슈콱!

밀봉되어 있던 목갑이 일격에 잘려나갔다. 내 내공을 실은 단도는 그 자체로 절세의 명검(名劍)이나 다름없었고 은은한 검기(劍氣)마저 머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목갑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파아앗

"오옷...!!"

나는 침음성과 탄성이 섞인 소리를 냈다.

금괴(金塊)다!

내가 전문적으로 판별하는 안목은 없지만, 너무나 순연(純然)하고 맑은 광채였기에 그렇게밖에 믿을 수가 없었다. 촌장집의 은괴도 본 적이 있지만, 금괴의 통상적인 가치는 은괴의 20배에 이르렀다. 이 목갑에 들어있는 금괴 10여 개 중에서 1개만 내다팔아도 즉시 떵떵거릴만한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뜻밖의 수입에 나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신기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유적에 들어온 것 뿐인데 이런 일도 있다니! 꼼꼼한 덕에 얻게 된 재수좋은 인연 같았다.

' 잠깐, 혹시?'

나는 금괴 중에서 두세 개를 집어서 일어섰다.

그리고 제단으로 가서 피를 흘려넣었다.

쿠르르릉

돌벽이 열린다.

다시금 저만치에 보검(寶劍)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어둠 저만치에 외나무다리가 아련하게 보였다. 나는 외나무 다리의 끝까지 달려가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수호자가 출현하기 전에 재빨리 왕복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대신에 나는 돌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외나무다리 앞에서 금괴를 들었다. 그리고는 무저갱 아래로 세게 던져보았다.

까강!

[ 크워어어어어어어어!!!]

그러자 갑작스럽게 지옥의 악마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무저갱 내부에서 울려퍼지더니 뭔가가 쿵쿵대면서 빠르게 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내가 내공을 실어서 던진 금괴에 맞은 거대거미 수호자가 열받은 소리인 듯 했다. 나는 덤으로 옆에 들고 있던 횃불을 밑으로 던져버리며 외쳤다.

"이것도 먹어라!"

화르륵

횃불이 희미한 형체에 옮겨붙는 게 보였다. 그러자 수호자는 크게 발버둥을 치며 혼란스러워하는 듯 했고, 공동이 크게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운 좋게도 횃불이 놈의 눈을 지지거나 한 모양이었다.

' 느려졌다? 그렇다면...'

나는 이게 기회라고 생각해서 재빨리 뇌령(雷靈)을 발동해서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경공이 일시적으로 빨라졌다.

파앗!

그리고는 원시적인 형태의 보검을 재빨리 잡아챈 후 밑의 기척을 살펴서, 다시 다리를 뛰어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약 십여 장 정도를 뛰었을 때 갑작스럽게 밑에서 거대한 어둠이 치솟았다.

콰광!!

"......!!"

놈의 다리가 한 개 솟아오른 것 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외나무다리가 크게 부숴졌다. 나뭇조각이 밑으로 떨어지고 내 몸이 공중으로 튕겨올랐다. 나는 지금이 삶과 죽음의 경계라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조금이라도 출구 쪽으로 떨어지려고 노력했다.

까앙!

"크윽!"

나는 밑에서 실뭉치가 튕겨 날아오는 걸 급히 단도로 쳐 내었다. 저번과는 달리 반탄력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아서 약간 옆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허공에서 고양이처럼 몸을 회전시키면서 천장에 잠시 다리를 붙였는데, 그 순간 밑에서 미친듯한 속도로 바락바락대며 기어올라오는 수호자 거대거미와 눈이 마주쳤다.

놈은 수십개의 눈 한가운데에 금괴가 박힌 채 횃불에 안구가 불타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우연히 내공을 실은 금괴가 놈의 눈에 꽂혔고, 더욱 운좋게도 횃불이 그 고통을 부채질하는 위치에 떨어져내린 것이다. 나는 놈이 폭주하듯 강렬한 기운을 내뿜으며 올라오는 것을 보자 소름이 쫙 끼쳤다.

저렇게 거대한 거미라니!

저번에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지만 저 놈은 진정한 괴물의 크기였다. 저런 거에 검격(劍擊)을 가해봤자 피해가 갈지가 의문이었다. 공성병기를 정면으로 때려박아도 흠집도 안날 것 같은 저런 놈에게 정면승부를 해볼까 했던 생각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 으윽... 잡혀먹힐 수는 없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 의지로 죽고싶다! 그런 강렬한 생각이 내 몸의 내공을 급격하게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내 발과 근육에 번갯불이 비쳐 흘렀고, 나는 전신에서 뇌령(雷靈)을 튀기면서 출구로 뛰어내렸다.

콰광!

쿠르르르릉....

내가 출구로 뛰어내려서 구름과 동시에 거미의 거대한 몸뚱이가 치솟아 올라서 먼지구름을 만들어 내었다. 나는 극적으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아니나 다를까 석벽 너머에서 거미가 강철같은 실뭉치를 뿜어서 투척하는게 하나하나가 인간의 육체를 박살낼 정도의 강력함을 지니고 있었다.

콰과광

콰광

"으아아아앗..."

나는 단도로 실뭉치를 쳐 내다가 내 몸이 홱하고 허공에서 제비를 도는 걸 느꼈다. 어떻게든 막아서 튕겨내는 건 성공했지만 실뭉치에 실려있는 힘이 너무 세서 몸이 강제로 튕겨진 것이다. 내 내공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힘이라면, 일반 무림인들은 이 실뭉치공격을 방어조차 불가능할 게 틀림없었다.

쿠당탕

나는 허공에서 3바퀴를 돈 후, 굴러서 넘어지면서 필사적으로 계단을 타고 올랐다. 한참을 오르자 더 이상 밑에서 붕괴하거나 쫓아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쉬지 않고 달렸고, 마침내 다시 수중통로의 출구로 나올 수 있었다.

촤아앗

연못에서 물에 젖은 몸을 꺼내자마자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허억..."

나는 이번에 미친짓을 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 우... 운이 좋았어.'

그냥 금괴를 던져서 수호자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나 시험해 본 것 뿐인데 어떻게든 성공은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금괴를 던진 게 우연히 거미의 급소인 눈깔에 박혔기 때문이며, 추가로 던진 횃불이 그 피해를 부채질한 덕분이었다. 다시 한번 하라고 하면 9할 9푼의 확률로 실패할 정도의 우연이었다. 만일 금괴가 눈 이외의 다른 곳에 박힌다면 놈은 전혀 피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또한 속전속결로 금괴만 가지고나와서 수호자와의 전투를 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수호자 거대거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민첩하고 강력했다. 이번에 금괴와 횃불의 행운으로 상당한 시간을 벌었는데도 따라잡힐 뻔 했으니, 절대 불가능이었다. 놈과의 일전은 피할 수가 없다.

나는 연못 밖의 설원에 몸을 누이며 크게 웃었다.

"그래도 보검을 얻었다!! 하하."

내 왼손에 들려있는 검을 보자 흐뭇해진다.

원시적인 형태를 띄고있는 보검!

이것은 아마 칠요의 비보 중 하나일 것이다.

이번 삶에서는 무공수련을 악착같이 함과 동시에 이 보검의 유래와 가치를 알아볼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 아쉽게도 금괴가 든 목갑을 가지고 나올 여유는 없었지만, 뭐 상관없어.'

아마 금괴의 가치라고 해도 이 보검의 때만큼도 안될 게 뻔하다. 망량선사의 말대로라면 칠요의 비보는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보물일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험삼아서 보검에 기(氣)를 불어넣어 보았다.

우우우웅....

"... 글자?"

그러자 보검의 표면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글자가 떠올랐다. 다만 천암비서나 제단의 글자처럼 아예 알아먹을 수 없는 괴어(怪語)는 아니었다. 나는 한참을 들여다본 끝에 이게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갑골문(甲骨文)의 원형이군. 고문(古文)이야."

내가 만자문과 기문둔갑책을 공부하던 당시에는 현재는 쓰지 않는 고어나 사어(死語)도 많이 배웠다. 개중에는 은주시대에나 사용했다는 기본적인 갑골문도 있었는데,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그 갑골문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마 이 보검은 수천 년 전의 고대인이 만들었을 확률이 높다. 다행히도 은주시대 갑골문의 해석은 괴어처럼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마 내가 조금만 더 학식을 쌓으면 가능할 것이다.

' 흠... 어쩌지? 청룡무관에 가기 전에 보검의 음각어(陰刻語)를 해석하는 편이 좋을까?'

나는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망량을 찾아가 보자."

망량이라면 이게 칠요의 비보인지 아닌지 판별해 줌은 물론, 갑골문의 해석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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