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47화 (47/1,615)

0047 ----------------------------------------------

복마전(伏魔殿)

나와 현천도인은 류 천호의 몸뚱이를 대충 지혈하고 내공을 불어넣어서 맥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 망량에게로 갔다. 망량은 6층 전각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입가에 한줄기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땀이 줄줄 새고 있는 상태였다. 명백히 체력과 정신력을 모두 소모한 상태라서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소?"

"후... 후, 괜찮소. 보패를 쓴 댓가로 이 정도면 아주 싸게 먹혔지..."

쿨럭!

한 줄기 피를 토해낸 망량은 머리를 휘휘 저었다. 그는 정신을 차린 듯 말했다.

"마저 뒷처리를 해 주겠소."

화아아악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밑의 대지에서 화염이 치솟아 오르더니 널부러져 있던 금의위나 괴인의 시체를 지글지글 태우기 시작했다. 엄청난 화력(火力)인지 그들의 시체가 탄화(炭化)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건드리면 파삭 부숴질 것처럼 변하게 되자 생명체의 흔적은 거의 남지 않은 듯 했다.

나는 빠르게 뛰어내려가서 내공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잔해(殘骸)를 보이지 않는 뒷골목에 전부 몰아넣어버렸다. 그러자 살육이 일어났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해져 있었다. 나중에 조금만 더 정리하면 추적자들이 흔적을 찾기가 불가능할 것이리라.

' 살생금지이지만 죽은 놈은 예외인 건가.'

나는 여러모로 망량을 데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없었다면 이번 작전을 세우지도 못했을 것이고, 꼼짝없이 2대 11로 싸워야했을 것이며, 심지어는 사람들의 이목을 물리치거나 금의위 시체 뒷처리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창백한 안색인 망량의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당신은 최고의 책사(策士)요."

망량이 없었다면 나는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몇 번을 죽었어야 했을까? 최소한 서너 번은 죽으면서 시행착오를 거치고 삽질을 거듭했으리라. 그 와중에 정신력이 얼마나 소모되었을지를 감안하면 망량이 은인(恩人)이나 다름없었다.

"크큭... 나쁘지 않군."

망량이 웃더니 말했다.

"어서 갑시다. 이 놈에게서 들을 게 많소."

우리는 류 천호를 데리고 마을 밖의 비밀통로 출구로 향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는 동안에도 누더기를 놈에게 뒤집어씌우고 피난민인 척 하니 무난하게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이윽고 류 천호를 건물 안에서 데려와서 내동댕이쳤다.

류 천호는 아까 팔다리가 한쪽씩 잘렸을 때 기절해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를 바로 깨워볼까 생각했으나, 지금은 망량의 상태가 좋지 않았으므로 우선 그를 돌보기로 했다. 나는 현천도인에게 말했다.

"혹시 망량에게 진기요상(眞氣療傷)을 시전해 줄 수 있소? 그의 기력이 좋지 않군."

"물론이오. 잠시 이리로 따라 오시게."

현천도인은 망량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 무당파의 진기요상법을 시행한다면 망량도 머지 않아 체력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이제 와서 현천도인이 망량에게 해를 가할 리가 없었기에 나는 부담감없이 맡길 수가 있었다.

우우웅

그리고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류 천호에게 기를 불어넣었다. 가공할 힘이 꿀럭거리며 그의 기경팔맥에 기어들어가자, 그는 마치 전신을 바늘로 찔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깨어났다.

"... 끄아아악!!"

"정신 차려라. 너에게 듣고싶은 게 많다."

"흐... 미친 놈!"

류 천호는 이미 자신이 살기는 틀렸다 생각했는지, 고문을 피하려고 즉시 혀를 깨물었다. 망설임이 없는 것을 보면 상당한 훈련을 받은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고, 그가 턱근육이 움직이지 않아서 어어거리는 장면을 확인했다.

"......?!"

"네 자진을 막기 위해서 근육의 운행을 막았다. 자결할거면 아까 혼자 남았을때 했어야지."

현천도인은 인체의 운행과 혈도제압에 있어서 나보다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현천도인이 자진을 막아버렸다면 적어도 혀를 깨무는 일은 절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류 천호를 냉막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고문에 저항하는 훈련은 받았겠지?"

"......"

"나는 고문방법을 많이 알지 못하니 제일 잘하는 방법으로 요리해 주마."

스윽

나는 손을 내밀어서 놈의 인중에 손가락을 갖다대었다. 그리고는 곧장 힘을 주어서 기운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인중을 통해 기가 투과해 들어가서, 이윽고 점착(粘錯)되는 것을 확인한 후 중얼거렸다.

"여기가 건(乾)이다."

"......?"

"팔괘봉인(八卦封印)을 시작한다."

놈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기색이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팔괘봉인이란 육합진살(六合盡殺)과 함께 뇌신류(雷神流)에 전승되는 은밀한 수법으로써, 오로지 상대를 봉인하고 괴롭게 하는데 주력하는 고문비술이었다. 뇌신류를 배운 자들은 이 수법을 이용해서 귀찮은 고문 없이도 상대에게서 왠만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목젖에 손가락을 갖다대었다.

"여기가 태(兌)다."

지지직

"헉... 으헉!!"

갑작스럽게 놈은 감전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펄떡거렸다. 건방에 이어서 태방으로 기경팔맥으로 기(氣)가 불어넣어지자 신경계가 강하게 활성화되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통각(痛覺)이 예민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의문으로 젖어있는 류 천호의 눈동자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건으로 네 머리를 죽였고, 태로 폐를 장악했다.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이 이어지는 동안 차례대로 팔부(八部)에 금제가 걸릴 것이다. 통각은 갈수록 예민해질 것이고, 시간감각은 계속 느려질 것이다."

따악!

딱히 세게 때린 것도 아니고 그냥 이마에 손가락으로 딱밤을 살짝 놓은 것 뿐이었다.

"끄아아아악!!"

그러나 류 천호는 다음 순간, 마치 머리에 톱이라도 긁은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꿈틀거렸다. 피부가 한올한올 벗겨지는 따가움이 엄습해 왔을 것이다. 나는 히죽 웃으며 류 천호에게 말했다.

"겨우 팔괘봉인에서 2괘를 넣었을 뿐이니 아직 약한 것 같군. 계속 해 보자구."

팔괘봉인을 건다는 건 머리, 팔, 다리, 몸통의 사부(四部)와 뇌, 심장, 폐, 생식기의 사부(四部)를 합쳐서 팔부(八部)에 내공으로 금제를 건다는 걸 말했다. 팔괘가 올라가면서 고통은 극대화되고 시간감각이 혼돈을 빚게 되는데, 이건 어설픈 육체적 고문보다 훨씬 효과가 있었다. 종래에는 정신력이 파괴되면서 혼백까지 나가버리게 되는 것이다.

단, 팔괘봉인에는 막대한 내력(內力)이 소모되었다. 사괘(四卦)까지 넣는데 무려 80년 이상의 내공이 필요했으며 괘가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내공이 추가된다. 내가 이걸 배우고 나서 인간에게 써먹은 적이 없어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써도 팔괘를 다 넣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걸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겨우 2괘를 넣었을 뿐인데도 류 천호는 인생의 행복을 모두 잊어버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통은 채찍을 100대쯤 때려야 이정도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류 천호이지만, 내 손가락이 움직이며 심장 위를 짚으며 한 마디를 고하자 무너져내렸다.

"여기가 이(離)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자, 잠깐! 잠깐만!"

"뭐냐?"

"뭐가 알고 싶으냐? 뭘 말하면 나를 살려줄 것이냐?"

류 천호는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팔괘봉인에 의한 감각의 폭주가 너무 강렬해서 자신의 정신력으로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나는 쪼그려앉아서 냉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살아서 뭣하게? 너는 이미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었다. 무인은 커녕 일반인처럼 살아갈 수도 없다. 그래도 살아남고 싶냐?"

"으으... 그래도 좋다. 제발 살려다오. 내가 아는 건 뭐든 다 말하겠다."

"......"

"제발..."

눈물콧물을 흘리며 바닥에서 버둥대는 류 천호의 모습은 확실히 불쌍한 것이었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애원을 하면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라도 하리라. 하지만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일말의 동정심을 가질 수 없었다.

류 천호가 괴로워하는 모습과, 사람들이 미쳐서 참극속에서 학살당하는 광경이 겹쳐보였다. 수천 명도 넘게 괴로워했으리라. 그 참극을 이루려 했던 주체가 목숨을 애걸해봤자 와닿는 게 없었다.

"나도 그저 위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제발... 살려다오!"

"위라... 그건 금의위 총령(總領)을 말하는 것이냐?"

"그... 그렇다."

"더 위로는?"

"모른다. 나같은 말단은 그저 위에서 전해들을 뿐이다. 부총령이 직접 명령을 내릴 뿐이다."

금의위는 기가 막힌 조직이었다. 무당파 장로를 상대로도 어느정도 검을 겨뤄볼만한 절정고수가 스스로를 말단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부총령이나 총령의 무공은 강호 최정상급의 절세고수일 가능성도 높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처자식이 있나?"

"... 있다."

"그들은 어디에 살고 있지?"

"......"

류 천호는 망설이며 말을 하지 못했다. 뭐든 말하겠다고 했으면서도 처자식의 안위가 걸리자 쉽사리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 팔괘봉인 이의 방위를 짚으며 놈의 감각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놈은 펄떡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아아, 아아아아아악!!"

나는 놈이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잘 알지 못했다. 시전자로서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의 눈이 반쯤 까뒤집어지며 팔다리를 사시나무처럼 떨고있는 걸 보면, 아마 왠만한 고문술사가 가하는 고통 이상일 것이다. 나는 다시 기를 불어넣어서 놈의 팔괘봉인을 느슨하게 해준 후에 물었다.

"말해."

"흐... 흐윽... 호경(鎬京)에..."

"섬서성이군. 멀지 않아."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물었다.

"만일 임무표적으로 네 가족이 살고 있는 호경이 지목되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

"그... 그야... 그 전에 처자식을 이사시켰을 것이다."

"호경에 살고 있는 다른 인간들은?"

"......"

"그냥 죽어도 된다는 소리냐?"

내가 놈을 때리려는 듯 손을 들자, 놈은 기겁하는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 그건 어쩔 수 없다! 위의 명령을 내가 어떻게 거역하는가?! 금의위는 절대복종이기에 거스를 수가 없다!"

"아주 편리한 변명이군. 시켜서 어쩔 수 없다고 한마디 하면 다 끝나버리는군. 수천 명이 미쳐서 죽는데도."

류 천호는 한스럽게 말했다. 그건 아마 그의 솔직한 진심일 것이다.

"으으... 네가 누군지는 몰라도 이건 어리석은 짓이다. 금의위의 전력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강대하다. 설령 구파일방의 비호를 받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안다. 네놈들이 십개 조(組)로 이루어져 있고, 네놈은 조장이자 천호라는 사실도."

"......!!"

류 천호가 눈을 부릅떴다. 내가 말한 것은 말 그대로 금의위의 조직도이자 기밀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놀랄 필요 없다. 너는 이제부터 금의위의 모든 조직관계도, 기밀, 본거지, 목표, 간부의 무공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할테니."

내가 일부러 그 사실을 알려준 것은 위증도 간파할 수 있다는 견제의 의미였다.

"그... 그걸 말하면 살려줄 테냐?"

"물론이지."

류 천호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필사적으로 정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차분하게 들으면서 정리를 했고, 특히 금의위와 다른 조직간의 관계가 흥미로웠다.

나는 그 외에도 다른 정보를 캐물었다. 약 한 식경동안 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질문했다.

"그러니까, 이번이 '첫 시도'였다는 말이냐?"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다행이었다. 류 천호의 말에 따르면 주술사와 금의위가 함께 움직이며 학살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즉 이전에 희생되었던 마을은 없다는 소리였다. 이번 음모를 분쇄하며 마물이 성장할 가능성을 막은 셈이다.

나는 망량을 힐끔 바라보았다. 망량은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설득한 명분에 따르면 망량이 의문스러워하는게 당연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그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주술사가 무명제자서를 해석한 것은 언제지?"

"대략 1년 전으로 알고 있다... 그 때부터 계획의 초안이 잡히고 금의위의 병력이 특수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1년 전.

나는 그 말을 되뇌다가 말했다.

"네놈은 특수한 언령(言靈)을 써서 세뇌를 하는게 가능할텐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무슨 소리인가..."

"......"

파지지직

"끄아아아악!! 아, 알겠다! 나를 비롯한 10인의 천호는 주술사를 통해서 세뇌의 언령을 전수받았다!"

예상대로다. 그것은 일반 좌도방문의 술수가 아니었다. 도리어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계(異界)의 능력에 가까웠다. 아마도 신입 금의위를 설득하고 세뇌시키기 위해 통제관인 천호에게 언령을 전수한 것이리라.

"어떻게 배운 거지? 그 놈은 사람 말을 못 할텐데."

"사람 말은 못 하지만 주술사에게는 심어(心語)를 전달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놈은 부총령이나 총령에게는 보다 상위(上位)의 술법(術法)을 알려준 것으로 알고 있다."

"상위의 술법? 그것도 언령인가?"

"그건 모른다. 하지만 그걸 배우고 난 후부터 부총령과 총령은 굉장히 강해졌다."

"강해졌다고? 어느 정도 수준이지?"

류 천호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원래 금의위와 동창의 수장(首長)은 거의 대등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둘 다 강호에서는 초절정이라고 불리는 수준이었는데, 1년 전부터 힘의 관계가 바뀌었다. 금의위 총령이 동창 제독을 압도적으로 눌러버렸고, 그 이후부터는 금의위의 활동을 동창이 정보력으로 보조해주는 관계가 되었다."

"......!!"

나는 뜻밖의 정보에 침음성을 흘렸다.

그 말대로라면 금의위나 동창의 최고위는 원래 구파일방의 장문인 수준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러나 금의위 총령이 '압도적'으로 눌렀을 정도라면, 그 자는 초절정을 상회하는 실력자라는 소리다. 그 정도 실력자는 내가 아는 중에는 기껏해야 삼절 이광 정도뿐이다.

만일에 내가 금의위를 없애고자 한다면 총령을 쓰러뜨릴 수 있느냐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류 천호에게 질문했다.

"만일 나와 저 도인이 힘을 합쳐서 총령과 싸우면 승산이 어느정도 될 것 같은가?"

"......"

"대답해."

류 천호는 마지못해서 대답했다.

"너희는 대단한 강자(强者)다. 강호에서 보기 드문 상위급 절정고수지만... 너희가 힘을 합쳐도 총령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힘은 인간을 초월했다."

"그런가."

처자식의 거취까지 털어놓은 류 천호가 이런걸로 위증을 할 것 같진 않았다. 총령의 힘은 정말로 막강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럼 총령이란 자가 황궁제일고수인가?"

"틀림없다. 애초에 이 계획은 무림의 전 세력(全勢力)을 적으로 돌리는 것을 가정하고 세워졌는데, 총령이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다는 계산이 서 있었다."

"흠."

"이제 됐지? 날 풀어다오!!"

그 때였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직이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서는 망량과 현천도인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망량은 정성들인 기공치료를 받았는지 안색이 눈에 띄게 좋아져 있었다. 그는 이제 기침을 토하지도 않는 상태였다.

망량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똑같은 걸 처음부터 한번 더 물어 보시오."

"......!!"

류 천호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내가 궁금한 눈으로 망량을 쳐다보자, 그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저 자의 눈에는 이 상황만 모면하면 된다는 기색이 떠올라 있소. 당신에게 털어놓은 게 전부 거짓은 아니겠지만 도중에 거짓정보를 섞거나 면피용으로 누락시킨 정보가 있을 것이오. 저 자가 진실성을 토해낼 때까지 다시 물어 봐야 하오."

"그러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당신이라면 적당한 조절이 가능할 것이오. 내가 옆에서 저 자를 지켜볼테니 부담없이 하시오."

망량에게는 사람의 진실성을 간파하는 안목이 있는 듯 했다. 나는 힐끔 현천도인을 바라보았는데, 그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는 이 모든 게 강호정의를 위한 것이라 알고 있겠소."

현천도인이 그렇게 말하자 나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도가의 탈속한 도인이 사마외도의 응징은 그렇다치고 이런 고문을 용납할지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천도인은 일이 걷잡을수없이 커진 것을 깨닫고, 가능한 한 정보를 알아내서 자신과 제자들을 보호하려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을 경우에는 현실을 인정하는 게 현천도인의 성격으로 보였다.

"그렇게 되었다. 네가 안 죽도록 최대한 조절은 해 보마."

내가 다시 팔괘봉인을 위해 손가락을 갖다대자 류 천호가 발작하듯이 비명을 질렀다.

"그만둬어어어어어어!!!!"

심문이 끝난 것은 그로부터 두 시진이 지나서였다.

"히... 헤헤..."

류 천호는 고통과 괴로움때문에 너덜너덜해져서 입가에 침을 흘리고 소변을 지린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누워서 얘기를 듣는 것보다는 앉혀놓는게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놈은 거듭된 고문으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직접적인 육체의 손괴 없이도 고통만으로 이렇게 사람을 망가뜨리는게 가능했다.

망량은 모든 고문과정을 끝까지 옆에서 지켜보면서 위증이나 누락을 간파해서 한 번씩 찔러대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얻어낸 정보는 대개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망량이 현천도인에게 말했다.

"제자들이 제때 찾아오지 않은 게 다행이오. 만일 찾아왔다면 발을 빼기가 힘들었을 것이오."

"음, 내가 어쩌면 좋겠는가?"

"오늘 즉시 태정관으로 돌아가셔서 제자들을 맞이하시오. 그리고 적당한 핑계를 대어서 산적이라도 퇴치하러 가시는 게 좋겠소. 뒷욕은 들어먹겠지만 금의위와 쓸데없이 얽히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지."

"당신 말대로 하겠소."

현천도인은 난데없이 엄청난 진실을 알아버려서인지 찝찝해하는 안색이었다. 하긴 그는 사교의 발호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 금의위가 주술사를 돕는다는 것까지는 예상치도 못했을 것이다. 이제 그의 관심사는 진상을 조사하러 나올 금의위에게서 가급적이면 이목을 흐려서, 무당파에 쓸데없는 화살이 쏠리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아마 현천도인이라면 큰 위험 없이 이번 일에서 발을 뺄 수 있을 것이다. 금의위에서 그를 약간 의심할 수는 있겠지만, 워낙에 현천도인의 무림에서의 비중이 크며, 금의위가 떳떳한 일을 하고있던 중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건드리지 않고 감시를 하는 수준에서 그치게 될 것이리라.

현천도인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는 어쩔 생각인가?"

"무슨 말이오?"

"금의위도 전멸시켰고 악의 근원인 주술사도 자폭했소. 그래도 앞으로 금의위와 더 싸워나갈 생각이냐는 말이오."

마치 캐어묻는 듯한 말투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그럴 생각 없소. 앞으로 금의위와 싸우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큰 일이오. 나는 모든 흔적을 지우고 잠적할 생각이오."

"그렇군."

"우리가 나머지 뒤처리를 하겠소. 도인께서는 서둘러 도인이 하실 일을 하시오."

"알겠소."

파앗

현천도인이 장내에서 사라졌다. 그가 완전히 가버린 것을 확인한 후, 망량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

"거짓말이군. 당신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보여."

"......"

촤악!

나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대로 수도(手刀)를 휘둘러서 류 천호의 목을 베어 버렸다. 피도 거의 흐르지 않고 류 천호의 모가지가 미끌어져서 떨어졌다. 처음부터 나는 류 천호를 살려둘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손에 묻은 피를 천으로 닦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이미 기호지세(驥虎之勢)이니, 적어도 금의위가 십 년 동안 문을 닫을 정도로 박살내 버려야 하오. 실행부대가 박살나면 아무리 황제의 의지가 있어도 어쩔 도리가 없겠지."

그게 도리어 안전하다. 어설프게 피해다니다보면 적의 힘만 불어날 가능성이 컸다. 마치 마물이 성장하는 것처럼, 황실에서는 지속적으로 유리한 선택만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그 전에 초전박살을 내 버려서 나를 추적할 생각조차 들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또한 기왕 할거라면 진상파악때문에 우왕좌왕하는 이 때가 기회다. 금의위 1개조를 박살내버리고 주술사가 죽어버려서, 당분간은 금의위가 냉정하게 활동하기 힘들 것이다. 이 공백기간동안에 최선을 다해서 정보를 모으고 반격해야 한다.

"숨어사는 건 왜 싫소?"

"좋고 싫은 게 아니라 그럴 수가 없소. 오늘의 흔적은 완전히 없앤 게 아니오. 시간이 걸릴 뿐 언제고 금의위는 나를 추격하러 오겠지."

망량이 씁쓸하게 웃었다.

"격전을 거치면서 상황판단력이 좋아졌군. 당신 말이 맞소."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물론 백웅 당신을 따라가야겠지. 같은 배를 탔으니."

그렇게 말한 망량이 눈을 빛냈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고 했소. 백웅 당신의 각오가 섰다면 속전속결로 금의위를 찍어누를 방법이 있소."

"그게 뭐요?"

이어진 망량의 말은 이후의 행선지를 결정지었다.

"낙양에 사는 내 스승님의 도움을 얻읍시다."

망량의 스승인 [진짜] 망량선사!

중원 최고의 술법사로써, 무당파의 장로조차 경외심을 느끼는 인물에게 도움을 얻으러 가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약간 수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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