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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6화 (4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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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 왔군!"

금의위가 쳐들어왔다!

나는 숲의 나뭇가지 위에 서서 사방을 감시하고 있던 중에 수상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 곳은 마을로 들어오는 길의 초입이었기에 내가 지속적으로 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처음 망량과 도착한지 약 6일이 지나서 슬슬 지루해지고 있을 때쯤, 갑자기 오후 어느때에 상대방이 들이닥치고 있는 중이었다.

기운은 총 열 개였다. 그것도 기운의 크기로 봐서는 금의위인 게 분명했다.

' 천호급도 있군.'

나와의 거리는 대략 7, 80장 정도였는데 나는 재빨리 나무에서 내려와서 몸을 숨겼다. 빠르게 몸을 숨긴지라 놈들은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나는 그들이 마을 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방향을 돌려서 마을 뒤쪽에 있는 비밀통로로 향했다.

"적이 왔소."

망량과 현천도인은 내 보고를 듣자 긴장했다.

"음, 온 건가!"

"주술사도 머지않아서 마을에 나타날 것이 분명하오."

우리는 비밀통로가 있는 건물의 헛간을 치워서 임시거점으로 쓰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객잔에서 묵었지만 연락수단이 마땅치 않았기에, 여차하면 마을 뒤편으로 바로 돌아가서 광장으로 가기 위해 이곳에서 먹고자고 한 것이다.

망량이 말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오. 주술사가 언제 나타날지는 구체적이지 않소.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놈들을 효과적으로 분리(分離)할 수 있도록 민첩하게 행동해야 하오."

"마을 내부로 가야겠군."

"서두르시오. 주술사는 백발백중 광장 근처에 나타날테니, 그 곳에서 미리 대기합시다."

덜컹

우리 셋은 짐을 정리해서 우물의 비밀통로 내부로 향했다. 비밀통로를 걷던 중에 현천도인이 말했다.

"우리 제자들이 이제 연천을 지났을 텐데... 시간에 맞추지 못해서 한스럽구나."

"이것도 운명일 것이오. 셋이서도 충분하니 잘 해봅시다."

우물의 비밀통로로 나오자 그 곳에는 부엌이 나타났다. 이미 비밀통로의 효과적인 활용은 확인해 둔 바가 있었으므로, 나는 거침없이 부엌의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한다고 일일이 잠입작전을 하는 것보다는 단번에 저택으로 나가버리는 편이 훨씬 나았다.

타앗

곧이어 현천도인이 망량의 목덜미를 잡고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망량은 갑작스럽게 뛰어내리자 어지러운 듯 고개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무림인은 정말 괴물이군. 높이가 족히 이 장은 되는데 그걸 망설임없이 뛰어내리다니."

"궁시렁거릴 때가 아니오. 당신은 준비 되었소?"

"물론이오. 나를 제 위치로 데려다주기만 하면 되오."

우리가 지붕 위를 빠르게 뛰어서 광장 근처까지 도착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장 높은 6층 전각의 옥상에 올라가자 밑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인간은 일일이 높은 꼭대기를 올려다보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망량은 씨익 웃었다.

"여기가 딱 좋겠군."

그리고는 망량은 제일 높은 전각에 마련된 방으로 성큼 들어갔다. 안에는 전각의 주인이자 어떤 상회(商會)의 주인이 바깥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중이었다.

타앗

나는 그 자가 낌새를 눈치채기 전에 달려들어서 순식간에 혈도를 찍어서 기절시켜 버렸다. 내가 기절한 상회 주인의 눈을 가리고 침상 밑에 눕혀두자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들어서 술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보패(寶貝)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할 장소가 필요했고, 원거리에서 화염을 조작하는 동안에 술자는 무방비였기 때문에 안전한 장소에 있어야 했다. 이 6층 전각의 옥상 방은 그 조건을 정확하게 충족시키고 있었다.

이 곳에서 망량은 오화칠금선으로 화염을 조종하며 금의위를 공격하고, 나아가서는 나와 현천도인을 도와주게 될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현천도인이 곱지못한 눈길로 나를 흘겨 보았다.

"이건 좋지 못한 일이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양해해 주시길. 사전에 설명드리지 않았소?"

"허어... 망량선사의 말을 신뢰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당사자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오."

"반드시 그렇게 하겠소."

개뿔이. 퍽도 그렇게 하겠다.

나는 속으로 현천도인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애초에 금의위의 후환을 없애기 위해 이번 일을 벌이는 것인데, 뭐하러 정체를 노출시키면서 사과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현천도인이 밑을 내려다보다 말했다.

"다시 한 번 묻겠소. 합격술을 시전하는 절정고수가 저들 중에 존재하는가?"

그 시선에는 마을의 군중에 섞여있는 고수 한 명이 닿여 있었다. 현천도인도 기를 느낄 줄 알기에, 저 자의 복장이 평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뛰어난 일류고수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물론 이쪽은 저 자들을 의식해서 기세를 낮추고 있기에 발견되지 않는다.

"높은 확률로 없을 것이오. 그 자들은 저 조직에서도 굉장히 높은 직위로 보였고, 우리가 숨어있다는 사실이 들키지 않았다면 일일이 찾아오는 신분이 아닐 것이오. 절정고수 한두 명과 뛰어난 일류고수가 10여 명이라고 생각하시오."

"음... 다시 들어도 엄청난 세력이군... 저 자의 기세만 해도 본파의 일대제자급 이상이건만. 그 정도면 하룻밤에 중간규모 방파를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야. 어디서 저런 자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현천도인의 탄식은 당연한 것이었다. 금의위 일개 조의 힘은 천호를 위시해서 왠만한 무림문파를 뛰어넘었다. 내 눈으로 직접 천호 한 명과 위사 2명, 고작 3명이서 전력을 다하는 현천도인과 대등하게 싸우는 걸 봤을 정도였다. 저 놈들이 일개 양민마을을 습격한다고 하면 결코 저항할 수 없으리라.

나는 현천도인에게 물었다.

"현천도인. 사기(邪氣)가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그걸 모르겠네. 지금으로써는 느껴지지 않아. 그렇게 사악한 주술사가 나타난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고요하네."

"......"

아마 이 상태로 여기서 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장기전이 될 것도 각오하면서 차분하게 광장의 풍경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이변이 생긴 것은 그로부터 한 시진이 지나서 서서히 해가 저물기 시작할 때였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망량은 술수를 언제든 발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던 현천도인이 별안간 눈을 뜨며 외쳤다.

"아니! 이렇게 사악한...?!"

쿠구궁

그 순간이었다. 광장 한가운데에 왠 어둠의 구(球)가 나타나더니, 갑작스러운 광풍(狂風)이 스산하게 몰아쳤다.

"으아아앗!"

"뭐... 뭐야?!"

행인들은 갑작스러운 이변에 놀라서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쳤다. 그리고 어둠의 구가 사라진 공간에는 익숙한 존재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나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황색의 옷, 피리괴인!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닌 괴물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있는 것이다.

' 이상한 술법을 써서 갑자기 나타난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광장이 혼란과 혼돈으로 물들어있는 와중에도 놈의 존재감은 굉장히 컸다.

놈은 이번에도 광기를 전염시키려는지 서서히 한쪽 팔을 들어서 피리를 입에 갖다대었다. 나는 저 연주가 시작되면 지근거리에 있던 자들은 그대로 미쳐버린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즉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앗!

"이 사악한 놈!"

나와 현천도인의 신형이 거의 동시에 땅에 추락하듯이 떨어져 내렸다. 실제로는 천근추의 수법으로 낙하속도를 높이고, 깃털처럼 땅에 내려앉아서 그래도 돌진하는 무공수법이었다. 먼저 피리괴인을 베어들어간 것은 현천도인이었고 난데없는 공격에 피리괴인은 당황한 듯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 순간 현천도인의 검을 가로막는 존재가 있었다.

까앙!

"후웃. 강한데."

팔이 얼얼한지 검격(劍擊)을 충돌시킨 후 팔을 미세하게 떠는 흑의인(黑衣人)이었다. 그는 어느 새 광장에 들어와서 술법사가 언제 출현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와 마찬가지 행동을 하고 있는 그 흑의인의 정체는 충분히 짐작할 만 했다.

천호(千戶)!

금의위사 10인조를 통솔하는 조장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현천도인의 공격을 막아낸 걸 보면 그 자의 실력은 절정고수 수위가 틀림없어보였다. 나는 동시에 그 천호의 얼굴을 확인하자 인상을 찌푸렸다.

' 류 천호.'

우연의 일치인지, 5번째 삶에서 보았던 육조의 조장이 이 자리에 나타나 있었다. 피리괴인은 목숨을 건지자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는데, 그 옆에는 어느샌가 금의위 육조가 소리소문없이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총 10명이었는데, 다들 이 광장을 목표로 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저 놈들도 주술사가 광장에서 출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보군.'

순식간에 2대 11의 구도가 되었다.

류 천호는 능글맞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쪽의 꼬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나를 공격 안 했군? 왜 그랬지?"

나는 그의 말에 대답했다.

"덤볐으면 그쪽의 열 명이 나를 기습했겠지."

그랬다. 나 또한 현천도인과 마찬가지로 땅에 내려서는 순간 피리괴인을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감이 이상하게 말랑말랑해서 망설였는데, 잘 보니 주위에 있던 열 명의 금의위사들이 은근한 살기를 내게 뻗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움직였다면 금의위사들이 나, 혹은 현천도인에게 일제공격을 가했으리라.

"하하하... 놀랍군. 네 나이에 그런 무공경지가 가능하다니."

류 천호는 껄껄 웃었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금의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계획 변경이다. 이 놈들을 여기서 척살한다."

"척살이라... 그렇게 쉬울까?"

"훗.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는 주제에 일개 무림인이 까부는군."

류 천호가 비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의 입장에서는 금의위 일개 조의 전력이 갖춰진 상태에서 고작 두 명이 덤비는 게 자살행위로 보일 것이다. 현천도인이라고 하더라도 숫자로 깔아뭉개면 충분히 죽일 수 있다는 계산이 머릿속에 서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되려 비웃어 주었다.

"너야말로 우리가 누군지 모르고 있는 주제에 너무 까부는 거 아니냐?"

화아아악!

쿠콰쾅

"......!!"

그 순간,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발동했다. 마을 바깥에서 수십 장 크기의 폭염기둥이 일어났다. 한 개만 일어난 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마을이 환해질 정도로 거대한 폭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류 천호가 동요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였고, 마을 전체가 폭염으로 휩싸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화르르륵

"우와아악!"

"꺄아악!!"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서 여기저기로 도망쳤다. 시가지에 불이 옮겨붙지 않았고 그리 뜨겁지도 않으나, 마을 바깥에 거대한 화염이 벽처럼 일어난 것만으로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망량이 오화칠금선으로 조종하고 있으니 무고한 사람들이 해를 입지는 않으리라. 되려 쓸데없는 방해꾼들이 없어졌으므로 우리 입장에서는 편했다.

화염에 포위된 마을이 되자 류 천호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퇴각! 계획 실패다! 주술사를 확보해서 도주해라!"

"그렇게 쉬울 리가 없잖아."

콰아앙

갑자기 저만치 마을 바깥에서 불똥이 떨어지더니 불길의 강이 되어서 흘렀다. 그리고 그 곳에서 불길의 벽이 치솟아 오르더니 금의위들의 대형을 분리해 버렸다. 세 명이 따로 갇혀버리자 류 천호는 인위적인 기색을 느낀 듯 했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 놈의 짓이냐...?"

"나와 내 동료의 짓이지."

기왕이면 망량이 이 놈들을 불꽃으로 없애버렸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망량은 분수에 안 맞게 보패를 발동시키는 댓가로 10년의 수명과 수십 개의 기문둔갑진, 그리고 불살(不殺)의 제약과 엄청난 집중력을 바치고 있었다.

비살상조건을 걸어두었기에 겨우 보패의 영령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기껏해야 놈들 사이를 차단해서 수를 줄이는 게 망량이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미친 놈. 네가 누구에게 칼을 들이댄 건지 알고 있느냐?"

"잘 알고 있지."

나는 그에게 더욱 거센 살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금 20관과 녹봉, 출세를 위해 수천 명을 학살하려는 살인마(殺人魔) 아니냐!"

"......!!"

류 천호의 얼굴이 한층 더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물론 옆에 서 있던 다른 금의위사들도 내 말을 듣자 얼굴이 지나치게 굳어버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자들은 내가 그들의 정체를 알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어찌 알았는지 몰라도, 네놈의 운명은 정해졌다."

류 천호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노갈을 터뜨렸다. 퇴로가 막힌 상황에서 살인멸구를 해야 할 동기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살(殺)! 저 놈들을 죽이지 못하면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에 맞서서 으르렁거렸다.

"않는다? 못한다겠지!"

카아앙!

동시에 류 천호와 현천도인의 검기가 거세게 부딪혔다. 나는 신형을 날려서 나머지 금의위사 7명 쪽으로 날아갔다. 현천도인이 류 천호를 상대하고 있는 동안에 내가 나머지 놈들을 처리해야만 오늘의 일이 마무리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발에 힘을 주어서 앞으로 호랑이처럼 튀어나갔다.

"한판 붙어 보자!"

금의위사 7명은 하나같이 실전에서 숙련되고 다듬어진 정예급 일류고수였다. 개 중엔 절정을 넘보고 있는 자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드는 나를 어이없다는 기색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부나방같은 놈!"

그리고 맨 앞에 서 있던 금의위가 자신의 검술을 끌어올려서 나에게 부딪혀 왔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처럼 민첩하고 빠른 검로(劍路)였다. 역시 생각하던대로 내 검술의 숙련도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의 강자인 것이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 해 보자.'

원래라면 나와 큰 실력차가 없을 7명의 숙련된 금의위와 동시에 싸운다 -

원래라면 시도조차도 하지 않을 정도의 자살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망량의 말을 믿고 달려들기로 한 것이다.

며칠 전 망량과 마을에서 작전을 이야기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 금의위 일개 조를 어떻게 상대하느냐고? 뭐, 말이 일개 조지 상황에 따라서는 당신과 현천도인이 힘을 합쳐서 놈들과 싸울 수 있을거요.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 큰 상관이 없다니 무슨 소리요?]

망량은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었다.

[ 당신은 눈치채지 못했소? 당신만 유독 매사에 조심하고 있을 뿐, 정작 현천도인이 당신을 대면했을 때 그 자는 적지않게 경계하고 있었소.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오기로 결심한 것도 8할은 당신 때문이오.]

[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망량이 자신감있게 말했다.

[ 당신은 가진 실력에 비해 너무 쫄아있다는 거요. 그 내공과 역량을 가진 후로 그걸 전력으로 써본 적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 음.]

[ 금의위와 싸울 때는 그냥 하던대로 최선을 다해 보시오. 당신은 당신 스스로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오.]

콰과광!!

"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뇌령지기(雷靈之氣)가 폭발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내 앞을 가로막으며 뱀같은 검로를 전개하던 금의위 하나는 상반신이 터져나갔고, 옆에서 합공하던 도(刀)를 쓰는 금의위는 팔 한 쪽이 날아가 버렸다.

내 검(劍)은 그것도 모자라서 반바퀴 도는 동안에 일 장 밖에 있던 금의위 한 놈을 정수리에서 고간까지 쭉 그어버리고 말았다. 그 금의위는 내 검이 너무 빨랐는지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잠시 후 눈동자가 무게중심을 잃더니 피빛 분수를 내뿜으며 두쪽으로 갈라져 버리고 말았다.

푸콰콱

그러고도 나는 힘이 남아서 한 놈을 정면으로 공격했는데, 면도(綿刀)를 휘두르던 금의위는 칼날째 튕겨나가더니 겨우 중심을 잡았다. 무려 삼 장이나 날려간 거라서 그놈 자신이 당황한 듯 했다.

"......!!"

나는 그냥 내공을 다 실어서 전력으로 검로를 펼친 것 뿐이다. 그런데 삼 초도 버티지 못하고 금의위 세 명이 검하고혼(劍下孤魂)이 되어버린 것을 보자 놀랐다. 내공이 뻗어나갈 뿐인데 공격범위와 파괴력, 그리고 검속(劍速)이 예전과는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강력해져 있었다!

"이, 이, 이런?!"

카앙!

카앙!

약간 밀리면서도 열심히 현천도인과 싸우고 있던 류 천호는 난데없는 내 활약을 보자 당황해하는 기색이었다. 현천도인은 그 틈을 타서 한층 더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다. 나는 류 천호를 살짝 비웃어주면서 검을 들었다.

"그럼 마무리 가 볼까!"

"이, 이 자식."

"얕보지 마라!"

남아있던 네 명의 금의위가 분노하며 전의를 북돋았다. 그들은 명색이 황실의 정예부대라서인지 동료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에도 기가 꺾이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전혀 그들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내가 얼마나 강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 그래. 내가 5년동안 했던 건 헛짓거리가 아니었어!'

무림인의 길을 걷고, 뇌신류(雷神流)의 뜻을 얻기 위해서 밤낮없이 열심히 수행했던 5년. 그러나 결국 스승인 이광이 나를 실망해서 가르침을 놓아버렸고 진소청도 안타까워했다. 그 이후로 변변히 싸워볼 상대도 없는 상태로 열패감만 키워왔기에 나는 내 실력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 뇌신류의 수련 덕분에 내가 가진 내공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 이전까지보다 몇 배나 더 강해져버린 것이다! 거기에 명문의 비전이 더해져서 섬세한 전투가 가능해지게 되었기에 약점도 왠만큼 사라져 있었다.

파지지직

내 검이 뇌기(雷氣)를 머금고 명동(鳴動)했다. 뇌령지기가 검날에 흐르는 순간 내 눈이 푸르게 빛나면서 몸의 반사신경과 빠르기를 한층 더했다. 이것이 뇌신류의 경지, 뇌령(雷靈)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진짜 방법이었다.

힘의 집중과 폭발!

뇌령을 이룬 자는 잠깐동안이지만 그 과정이 무척 자유로워지게 되고, 몇 배나 되는 속도를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파앙

잠깐동안이지만 내 몸뚱이가 공기를 부수는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게 달려들던 금의위사 중 한 놈의 머리통이 순식간에 네 토막으로 회쳐졌다. 내 발이 땅에 살며시 스치는 순간 땅바닥에는 화염불길이 화륵하고 상처를 만들어 냈다.

투웅!

검무(劍舞)가 또다시 흐른다. 억지로 검기(劍氣)를 끌어내어서 대항하던 그 금의위는 칼날이 두 토막 나고, 연이어서 왼쪽 팔이 날아간 후, 마무리로 심장이 터졌다. 심장이 터져서 피가 흩날리기도 전에 내 신형은 그 자리를 벗어나서 다음 놈에게로 날아가고 있었다.

쉬캉

쉬카캉

예리한 바람소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뇌령이 최고단계까지 가속을 받게 되자 폭발조차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검광(劍光)이 다섯 줄기 스쳐 지나가자 이미 그 자리에 서 있던 금의위 두 명은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잠시 후 실선이 몸뚱이에 죽죽 그어지더니 요란하게 피분수가 터져나왔다.

파아아아.....!!

나는 피안개가 흩날리는 순간을 등지고 칼날의 피를 땅에 뿌렸다. 원형의 혈선(血線)이 땅에 흩뿌려진다.

일련의 과정이 끝날 때까지는 채 십 초(十招)가 걸리지 않았다.

장내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던 현천도인과 류 천호는 어느 새 검투를 잊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천도인이 더 놀라서 떨리는 목소리로 외칠 정도였다.

"그, 그, 그건 뭔가? 그런 검술이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이런 미친..."

류 천호도 떨리는 목소리로 욕지기를 내뱉고 있었다. 그 또한 나와 정면으로 상대할 경우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이리라. 나는 그들의 반응에 대답하지 않고 검을 늘어뜨렸다.

' 내가 미친 게 아냐. 뇌신류(雷神流)가 미친 거지.'

나는 그 동안 이 실력을 갖고도 진소청과의 목창 대련에서 백 초를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뇌신류라는 문파 자체가 괴물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씁쓸함을 베어삼키고는 류 천호에게 말했다.

"승패는 난 것 같군. 곱게 갈 테냐, 아니면 끝까지 해 볼 테냐?"

"......"

류 천호는 화염의 장벽 때문에 나머지 3명과 분단되어 있는데다, 나와 현천도인을 상대로 2대1로 싸우면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몇 장이나 되는 화염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미친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미친 놈들아!! 이 화염이 보이지 않느냐? 지금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해? 우린 이제 다 죽었단 말이다!!"

"그건 너고."

"뭐..."

나는 무덤덤하게 현천도인에게 말했다.

"이 놈이 간부급이니 들을 얘기가 많을 것 같소. 이 놈의 팔다리를 잘라버리고 저기 있는 주술사 놈도 잡아 족칩시다."

현천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두르세."

망량이 오화칠금선으로 화염을 조종할 수 있는 건 길어도 반 식경이 한계였다. 그 전에 이놈들과 결판을 내야만 했다. 다행히 그 결판은 눈 앞에 다가와있는 상황이었다. 류 천호는 서서히 칼을 들고 다가오는 나와 현천도인을 바라보자 절망하며 외쳤다.

"이 개자식들!!! 비겁하게 합공이냐!"

나는 냉담하게 말했다.

"알 게 뭐냐."

현천도인도 한 마디 거들었다.

"비인외도(非人外道)는 사람이 아닐세."

파앗

까앙!

"으아아악!!"

나와 현천도인이 합공(合攻)을 시작하자 류 천호는 끊임없이 수세에 몰렸다. 그래도 놈은 한가닥 하는지, 죽을 힘을 다 끌어올리며 방어하자 내가 뇌령으로 순간속도를 높여도 치명상만큼은 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 필사적인 자세도 오래 가지 않아서, 놈은 삼십 초만에 오른팔이 잘리고 왼쪽 다리가 터진 채로 바닥에 널부러졌다.

슈칵

퍼억

"끄... 어어억..."

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류 천호의 팔을 잡아채며 말했다.

"현천도인. 이 놈이 자진(自盡)을 못하게 해 주시오."

"알겠네."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 멀뚱하니 서서 전투를 바라보고 있던 황색 옷의 주술사에게 다가갔다. 나는 놈이 가리고 있는 뒤편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놈의 얼굴을 다시 볼려니 짜증나기 그지 없었다.

' 흥, 이번에도 영양가없는 소리를 한다면 죽기 전까지 고문해 주마.'

그 때였다.

주술사 피리괴인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 .... $&*#(@*$&*@!!]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놈의 주술언어인 것 같았다.

파아앗!

갑자기 주술사 놈의 손에서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내 몸을 감쌌다. 직전에 재빨리 피하려고 했지만 이건 속도와 상관이 없는지 결국 적중당하고 말았다.

저 놈은 가만히 보고만 있던 게 아니라 반격할 방법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아차!'

저 놈에게 무공이 없다고 너무 방심한 건가?

너무 시간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곧 찾아올지도 모르는 죽음에 대비했다. 너무 고통스러울 경우 혀를 깨물 준비도 되어 있었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엉? 뭐야?'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래 꿈벅거리는 눈으로 놈을 바라보았다. 놈은 믿을 수가 없는지 황색 옷 너머로 길쭉한 촉수를 드러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이럴수가! 일개 인간 놈에게 내 주문(呪文)이 통하지 않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나는 놈에게 반문했다.

"주문? 그게 뭐냐?"

놈이 깜짝 놀랐는지 촉수를 순간 멈추었다.

그러더니 당황해서 외쳤다.

[ 너는 우리의 언어를 어찌 알아듣는가? 너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런 일이 있을 수는 없다!]

"언어...?"

나는 그러고보니 5번째 삶이 끝날 때 이 주술사놈과 이야기할 때와는 꽤 다른 상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 때는 주술사놈이 맞아죽기 싫어서 억지로 심어(心語)의 형식으로 내게 의지를 전달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놈이 자기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걸 내가 도중에 알아들어버린 것이다. 그 말은 내가 저 놈의 언어를 무의식중에 해석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물론 나는 아직 저놈의 말을 할 줄은 모른다.

나는 설핏 호기심이 생겨서 슬쩍 천암비서를 놈에게 보여주었다. 이걸 보자 저번에 놈의 정신력이 꺾여서 알아서 좌절했던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것 때문이 아닐까?"

[ ......!!]

이번에도 주술사의 촉수가 딱하고 멈췄다.

놈은 데굴데굴 눈알을 굴리더니, 이윽고 허탈한 듯 말했다.

[ 크흐흐... 그렇군... 더 강한 저주가 걸려있으니... 내 힘이 통하지 않을 수밖에...]

"저주?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놈은 갑자기 광소를 터뜨렸다.

[ 크하하하!! 고맙다!! 덕분에 탈출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퍼버버벙

"... 윽!!"

주술사의 몸뚱이는 말이 끝나자마자 육편(肉片)이 되어서 비산했다.

' 이 자식, 자폭할 수 있었다니!'

나는 놈의 몸뚱이에서 온갖 촉수와 푸른 피가 튀어나오는 걸 재빨리 피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현천도인은 난데없는 괴인폭발 장면에 놀라서 눈을 둥그렇게 뜬 상태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로서도 놀라운 일인지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 자는 대체 뭔가?"

나는 다소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확실한 건 우리가 이겼다는 거죠."

화르륵

잠시 후 망량이 펼쳐낸 화염장벽이 사라졌다. 시전시간이 다 끝난 듯 했다.

마을 바깥에서 소용돌이치던 화염도 모두 씻은듯이 거둬졌다. 그렇게 화염이 몰아쳤는데도 마을에서 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츄콰콱

"끄아악!"

"으악!"

그리고 화염벽 안에 갇혀 있던 세 명의 금의위는 나와 현천도인의 손에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화염 때문에 다들 도망가 버렸기 때문에 목격자가 없어서 척살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현천도인이 말했다.

"이 놈을 심문하기 전에 지혈하고 치료해야 할 터인데."

"숨만 붙여놓으면 됩니다."

류 천호는 팔다리가 잘리고 터진 상태로 혈도까지 제압당한 상태가 되어서 벌레처럼 피바다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잠시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만일 이번에 충분한 준비를 하고 오지 않았다면 내가 저 꼴이 되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개무량해져서 잠시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

"후..."

그렇다.

나는 여섯 번의 전생만에 처음으로 - 사교 토벌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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