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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망량과 함께 마을의 근처로 숨어드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우웅
"적은 느껴지지 않소."
나는 기감(氣感)을 넓게 펼쳐서 적의나 강력한 기(氣)를 탐지했다. 내공이 엄청난 덕분에 범위를 팍팍 늘려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심지어는 잠깐이지만 팔십 장 밖의 조그마한 동물이 움직이는 것까지 느낄 수가 있었다. 적어도 마을에서 십여 장 거리까지 올 때까지는 아무런 매복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 위치에는 마을의 입구인 비석이 보인다. 그 비석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망량은 건포를 뜯고 있었다.
"금의위나 무인들의 매복은 딱히 없다는 건가."
그는 나에게서 일 장의 거리를 두고, 내가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내면 천천히 따라오는 식으로 동행했으며 지금은 풀숲에 숨어있었다.
"그렇소. 내 이목에서 기척을 숨길 정도의 무림인이라면, 사실 알아도 별 수 없을 것이오. 그런 자는 무림의 최정상(最頂上)에 서 있는 자일테니."
"흠... 여기까지 오는데도 없다는 것은, 이미 작전이 개시되었거나 아예 없다는 뜻."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망량이 말했다.
"혹시 모르니 좀 더 이 근처를 탐색해 보고 오시겠소? 나는 여기서 준비를 좀 하고 있겠소."
"당신은 무공이 없는데 괜찮겠소?"
"걱정 마시오. 만일의 경우 몸 하나 뺄 재간은 있소."
"알았소. 반경 5리를 좀 더 둘러보고 오겠소."
쉬익!
나는 풀숲 사이로 빠르게 발을 내딛으며 영활한 움직임으로 마을 곳곳을 살폈다. 예전에 현천도인과 이 근처를 탐색한 적이 있었기에 그리 낯선 지형이 아니었다. 몇 년이나 된 일이지만 돌아다니다보니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특히 현천도인과 함께 파고들었던 비밀통로 우물까지 발견하니 반가울 정도였다.
그렇게 한 식경 정도를 민첩하게 돌아다녔지만 기감이나 감각에 특별한 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고 망량에게로 돌아갔다. 망량은 그 자리에서 독의 양을 재어서 다른 호리병에 나눠담고 있는 중이었다.
"집중하고 있으니 잠깐 기다려 보시오."
망량은 잠시 후 호리병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떻소? 적이 없는 게 확실하오?"
"지금은 없다고 생각하오. 금의위는 항상 일개 조가 긴밀하게 연대하면서 움직이는데다가 비밀거점을 하나씩 놔두는 편. 이 근처에서는 그런 곳을 발견할 수도 없었고 인적도 없었소."
"백웅 당신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하군. 아직 그 자들이 '계획'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가정합시다."
"근데 이 호리병은 뭐요? 굳이 독수(毒水)를 둘로 나눌 필요가 있소?"
망량이 내 호리병을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호리병은 진짜로 마을을 제압해야 할 때 사용하시오. 이것은 내가 따로 계획에 사용할 생각이오."
"무슨 계획이오?"
"우선 마을의 동향을 살펴 봅시다. 그 이후에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오."
나는 망량과 함께 마을 뒷편에 있는 비밀통로 우물으로 향했다. 혹시 모르니 마을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비밀통로를 이용해서 잠입하려는 생각이었다. 비밀통로를 본 망량은 신기한듯 말했다.
"이것 참. 이걸 개발한 사족(士族)은 어지간히도 부를 축적한 자 같군. 비밀통로의 주인은 아마 저 마을의 최대 지주(地主)일 것이오."
"꼭 그렇다는 보장은 없지 않소?"
"아니오. 이 마을은 강에서 상당히 떨어진 마을인데 이런 곳에서 몰래 비밀통로를 건축하려면 막대한 금력이 필요하오. 비밀엄수비용이라던가 건축재료를 조달하는 걸 생각하면 등골이 빠지지. 아마 틀림없을 것이오."
"흐음."
내가 처음에 잠입할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그 정도 세력가의 비밀통로였단 말인가? 약간 걷다 보니 비밀통로의 출구 사다리가 보였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올라가서 청경(聽經)으로 바깥의 소리와 기척을 탐지했다.
우웅
기감에 인기척이 잡혔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뭔가를 끓이고 만드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걸음걸이도 부산스러운 게 느껴졌다. 예전에 여기가 부엌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아마도 저택에 고용된 하인일 것이다. 나는 망량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광신도가 아니오. 아마 평범한 하인이 저녁을 만들고 있는 것 같소."
망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마을은 아직 금의위에게 제압당하지 않았군."
"어떻게 할 생각이오? 이대로 하인을 점혈하고 침투해 보는게 낫겠소?"
망량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아마 긁어 부스럼일 거요. 되돌아가서 마을을 정면으로 방문합시다."
나는 망량의 말대로 비밀통로를 돌아 나가서, 망량이 준비한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썼다. 그리 완벽한 변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까 마을의 정면으로 걸어들어갔다.
누가 어떻게 보아도 딱 여행자의 차림이었으므로, 초저녁의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듯 했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꾼 차림이거나 곳곳에 행상(行商)도 있었다. 조금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니 번화한 듯한 건물과 전각도 있었다.
"뭐 그냥 평범한 마을이구려. 이 근처에 구리와 동철이 생산된다고 했으니 그곳의 수익 덕에 조금 번화한 건가?"
망량이 둘러보며 평가를 내렸다.
' 내가 이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광신도를 쳐죽이고 잠입했었지.'
조금 더 들어가자, 마을의 광장같은 곳이 나오고, 내가 현천도인과 함께 암살기회를 노렸던 높은 전각도 출현했다. 나는 약간 감회어린 눈으로 그 전각을 쳐다보면서, 동시에 이 곳에서 그렇게 끔찍하고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악행이 저질러졌었다는 사실에 부조화를 느꼈다.
어린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꺄하하!"
"야, 거기 서!!"
아마 술래잡기를 하는 걸로 보였다. 그 옆에서는 왠 장사치가 고함을 치듯이 옷을 들고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보였다.
"자아, 쌉니다 싸! 목면옷! 목면옷 팝니다!"
"질 좋은 농구(農具) 있소! 이 기회에 하나 장만하쇼!"
와글와글
"......"
나는 마을 중심거리의 시끄러움을 느끼자 멍해져서 걸음을 딱하고 멈췄다. 앞서 가던 망량이 이상함을 느끼고 나를 돌아 보았다.
"백웅? 왜 그러시오."
"저기 있는 저 사람 말이오."
망량이 내 시선을 따라서 주류를 판매하는 객잔의 일 층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주방에서 가져온 듯한 닭다리를 뜯으며 느긋하게 배를 긁고 있는 중년 아재가 있었다. 망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사람이 왜?"
나는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아, 아니오."
"흠 뭐요. 싱거운 사람 같으니."
나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
과거 내가 현천도인과 함께 이 마을에 침투했을 때의 일이었다. 뒷골목에서 무언가가 인육(人肉)을 뜯고 있길래, 내가 배를 발로 차서 내장을 터뜨리고, 이어서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끔 뇌운장으로 광신도의 머리를 박살냈었다.
그게 바로 지금 닭다리 뜯고 있는 저 중년 아재였다.
몇 년이나 된 기억이었지만 그 때의 기억이 강렬해서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당시에 광신도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꽤 거침없이 팍팍 대가리를 터뜨리고 다녔는데 이제 와서 그 당사자를 마주치게 된 것이다.
갑작스럽게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저 사람은 아무리 봐도 별거 없는 평범한 사람인데, 이 마을의 평범한 일상에 묻혀있는 사람인데, 그저 금의위와 주술사의 목표가 되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것이다.
스윽
이어서 내 옆으로 한 여인(女人)이 지나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아."
그리 예쁘지도 못나지도 않은 표정이었지만 분명히 기억난다. 저 여자는 인신공양(人身供養)을 할 때 제물로써 제단에 걸어나왔던 여자였다. 흐리멍텅한 눈으로 주술사의 칼에 심장이 뜯겨나갈 뻔 했었다.
질퍽한 냄새가 코를 타고 흐른다.
피 냄새가 환각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 으...'
나는 광장 한가운데에서 그 때의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환각에 가까운 냄새가 머릿속을 괴롭혔다. 피비린내 나는 제단이 서 있는 광장과, 사람들이 평화롭게 시끌거리는 광장의 모습이 눈 앞에서 겹쳐졌다.
나는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 불행에 사로잡혀서 발광하다가 결국 모조리 죽고 만다는 [결과]를 한 번 본 적 있다. 아니 - 내가 막지 않는다면 그 일은 틀림없이 일어날 것이다.
대체 왜?
대체 어째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죽어야만 하는가?
그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절실한 의문이 머릿속 한켠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임무를 수행하면 금 20관과 녹봉을 받는다고 껄껄 웃던 류 천호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두 개의 풍경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앞으로 직접 희생자가 될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내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나는 더 이상 걸어갈 힘이 나지 않아서, 비틀거리며 나무 아래에 앉았다. 망량이 걱정스러운 듯 내게로 다가와서 옆에 앉았다.
"왜 그러시오? 아까 탐색 때 너무 체력을 쓴 거요?"
"그... 그런 게 아니오. 잠시 날 내버려 두시오."
"흠."
나는 팔깍지를 끼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여기에 오기 전에 각오를 다지고 생각을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현장에 오니 이야기가 달랐다.
' 빌어먹을...'
나는 그 때의 일이 내게 생각보다 큰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지금까지 내 삶의 원한이라고 해 봤자 촌장일가와 못된 동년배들에게 학대당하고 표사로 힘들게 살았던 정도밖에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무시무시한 불행을 마주했던 정신적 충격이었다.
그 때였다. 지나가던 소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야, 넌 왜 그렇게 침울해?"
나는 힐끔 고개를 들었다. 잘 보니 10대 초중반 나이의, 평범한 궁장 차림의 소녀였다. 꽤 예쁘장하게 생겼기에 앞으로 미녀가 될 것 같긴 했다. 나는 그 소녀가 내게 반말을 하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놀랐는데, 잘 생각해보니 지금 내 외관도 저 소녀와 별다를 게 없는 나이인 것이다.
망량은 재밌는 일이 생겼다는 듯 옆에서 히죽거리며 말했다.
"이 친구는 말이다, 갑자기 머리가 아픈 거야~ 그래서 똥마려운 표정을 짓고 있지."
이 인간이 보자보자 하니까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내가 망량을 째려보자 그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망량이 원래부터 장난끼 덩어리라는 걸 알고 있어서 별로 화는 안 났다. 그러자 내 앞에서 유심히 내 얼굴을 쳐다보던 소녀가 방긋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걸 건넸다.
"야! 이거 먹어!"
"어?"
"먹으면 아픈거 다 나아, 알겠지?"
그러더니 왠 닭고기를 꽂아놓은 나무꼬챙이를 내게 건네주고는 총총걸음으로 가 버리는 것이었다. 시내의 좌판에서 파는 걸 먹고 있다가 내게 준 듯 했다. 내가 멍청하니 소녀의 뒷모습을 보자 망량이 껄껄 웃었다.
"푸하하... 맛있겠군. 덜 익은 게 흠인가?"
"......"
"고기 말이오 고기."
나는 망량의 농담을 귓가로 넘겨버리며 물끄러미 닭꼬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망량."
"응? 이제 기운 좀 차렸소?"
나는 닭꼬지를 한입 베어먹으며 질문했다.
"당신은 이번 계획이 실패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나를 따라온 거요?"
"이제 와서 그런 질문 하다니 늦었소. 좀 진작에 하지."
망량은 피식 웃곤 말했다.
"나는 내 마음이 옳다고 시키는 걸 행하고 있을 뿐이오. 죽으면 죽는 건데 뭘 그리 따지면서 살겠소? 내 마음과 의지를 꺾으면서 죽은듯이 살아봐야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당신을 따라서 여기에 왔소."
그는 아마 이 자리에서 처참하게 고문당하다 죽어도 나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동행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군."
나는 내가 망량을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망량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은, 전생(轉生)을 반복하는 내게 부러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 또한 삶을 망설임과 부담감없이 팍팍 치고나가고 싶을 뿐이다.
마음이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천암비서(天暗秘書)가 내게 역행능력을 준 이유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시오? 갑자기 어깨에 힘줘봤자 안 통하는데."
나는 마주 피식 웃었다.
이제야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소."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 반드시 놈들의 손에서 참극을 막아내고 말겠다.
지금까지는 그저 양심의 껄끄러움을 해결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으나, 이제 내게는 확실한 각오가 서게 된 것이다. 설령 금의위와 이번 생 평생동안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신념(信念)에 가까운 각오였다.
나와 망량은 곧장 마을에서 가장 큰 저택으로 향했다. 위치로 볼 때 비밀통로가 위치해 있던 저택이었다. 망량의 추측대로 가장 큰 세력가라는 게 맞는 듯, 정문에는 제법 오래 무술을 익힌 듯한 문지기가 4명이나 서 있었다. 개 중 한 명은 일류급 고수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망량이 멀리서 저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찰은 이 정도면 되었소. 이만 숙소를 잡으러 갑시다."
"알았소."
내 머릿속에는 망량의 오두막에서 처음으로 작전계획을 전해들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내 계획을 제대로 설명하겠소."
"경청하겠소."
"당신이 마을에서 잠복하다가 주술사를 확보하거나 쳐죽인다는 의견을 내놓았지. 하지만 그건 좋지 않은 방법이오. 왜냐하면 성공한다고 치더라도 금의위는 대륙 끝, 지옥끝까지 당신을 추적해서 합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평생 쫓기며 살아간다는 건 그리 좋지 않소."
"따라잡히지 않으면 되지 않소?"
망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금의위는 그렇게 허술한 조직이 아니오. 기왕 할 바에는 놈들을 확실히 몰살시켜서 일의 후환(後患)조차 남겨서는 안 되오. 우리가 상대하는 게 대륙 최고의 무재들이 모여서 살인병기로 양성된 집단이며, 그걸 황실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중이라는 걸 유념하시오."
"으음. 그래도 주술사를 없애는 순간 황실의 인신공양 계획은 중단되지 않겠소?"
"너무 자기 좋을대로만 해석하는 건 금물이오. 그 자들이 무명제사서의 내용을 해석했다면, 언젠가는 주술사 없이도 자의적으로 의식을 진행하려고 할 것 아니겠소?"
망량이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왕 할 바에는 주술사만 해치우는 게 아니라 금의위까지 전부 해치워 버립시다. 주술사도 실종되고 금의위도 몰살 혹은 납치당해서 언제 계획이 만천하에 까발려질지 모른다는 상태가 되는 것... 그 자체가 황실의 의지를 꺾을 수 있소. 후환도 덜하고."
황실의 의지를 꺾는다!
엄청난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은 망량이 말을 이었다.
"만일 스승님이 동행해 주신다면 당신 계획대로 진행해도 되었을 테지만, 그렇지 않으니 제 2책을 쓸 수밖에 없소."
"제 2책이라고 하면?"
"속전속결(速戰速決). 그리고 섬멸(殲滅). 그들이 추격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을만큼 빠르게 전황을 휘어잡아버리는 것이오. 적어도 그 자리에 도착하는 금의위 1개조를 반드시 몰살(歿殺) 시킨다는 가정 하에 진행해야만 하오."
"... 그게 가능하다고 치더라도 어떻게 할 생각이오?"
"간단하오. 마을에 불을 질러버리면 되오. 그것도 금의위나 주술사가 마을에 출현하자마자!"
불을 지른다!
어처구니없는 방화계책을 내놓은 망량이 말을 이었다.
"불을 지르는 건 내가 하겠소. 나라면 딱 맞춰서 마을을 포위하듯이 불을 피워올리는 게 가능하오. 이 근처가 숲이니 충분히 타오를 것이오. 그리고 놈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현천도인이 주술사를 확보하고, 당신은 금의위 일개 조를 전멸시키시오."
나는 나더러 금의위 일개조를 전멸시키라고 하는 황당한 이야기를 따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제조건인 방화 자체가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아니, 불을 지르면 다 타죽잖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내게는 그 불이 타오르는 전장(戰場)을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형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소. 우리든 마을사람이든 전혀 다치지 않을 거요."
"그건 기문둔갑이오?"
"그것도 있고, 여하튼 거기에 도착해서 말해 주겠소."
망량은 내가 금의위에 관한 것을 숨긴 이후 약간 나를 지켜보는 기색이었다. 그런걸 알고 있었으므로 그 자리에서는 더 캐묻지 않았다. 어쨌든 나보다 지식과 지혜가 뛰어난 천재인 건 확실했기에 신뢰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이 자리까지 도착한 것이다.
나는 망량의 그 '능력'을 듣기 위해서 슬며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치를 챘는지 슬며시 자신의 섭선을 들었다.
"이 오화칠금선(五火七禽扇)의 능력은 화염의 영향력과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이오. 심지어는 화염이 옮겨붙지 않게끔 할 수도 있소. 화염지대에서 내가 이 오화칠금선을 다룰 경우 당신을 확실하게 지원해줄 것이오."
"......!!"
사기스러운 능력이었다. 화염을 조종한다는 것 - 그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화염지기나 양강지력을 다루는 무공은 강했으나, 망량의 오화칠금선처럼 마을단위의 화염을 조종할 수 있는 수준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무공으로 그정도 역량을 보이고자 한다면 신선이나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망량의 오화칠금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저 말이 거짓이라면 애초에 망량이 목숨내놓고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신에 그에게 물었다.
"이제 이야기 해 주시오. 그것은 아마 보패(寶貝)라는 보물이라서 그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 보물을 갖고 있소? 그리고 당신과 망량선사는 어떤 관계요?"
"후우...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군."
망량은 한숨을 쉰 후 나무등걸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망량선사. 좌도방문 최고의 술법사는 바로 나의 스승님이시오. 그리고 나를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 하고 내쫓으셨소."
"......!!"
"이유는 보다시피, 내 학식과 상관없이 신통력(神通力)이 부족하기 때문이오. 술법사로써 대성(大成)할 수 없다 판단한 스승님은 가르침을 멈춰버리셨지. 나는 마침 천문관으로써 직위도 혈육(血肉)에게 밀려서 찌끄러기나 다름없는 상태였기에, 잘 됐다 싶어서 낙향해 버린 것이었소."
그의 과거는 복잡했다.
즉 그는 천문관 가문의 아들으로 태어나 천문과 술법을 공부했고 망량선사를 스승으로 두었다. 그러나 뛰어난 학식과는 별개로 그에게는 술수의 재능이 없었다. 그렇기에 망량은 천문관을 그만두고 진랑곡에서 스승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가 막혀서 말했다.
"아니, 당신은 여차하면 스승의 도움을 받을만큼 가깝고 스승의 보패인 오화칠금선도 갖고있지 않소? 그런데도 파문이나 다름없이 내쫓긴 상태라는 거요?"
"나와 스승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소. 그러나 뛰어난 술법을 전승하기 위해서는 무능력자보다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오. 그렇기에 인간으로서의 관계와 사제로서의 관계는 구별되는 것이지."
그는 오화칠금선을 쫙하고 펴더니 말했다.
"스승님은 내게 미안하다고 하시며 오화칠금선을 주셨소. 그 후로도 정기적으로 도움을 주시고 있소. 나는 그걸로 족하오."
"그 말은... 혹시 진짜 망량선사에게는 다른 제자가 있다는 소리요?"
"그렇소.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술법사지."
쓸쓸하게 뇌까린 망량이 말을 이었다.
"무능력자에 가까운 내가 오화칠금선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을 곳곳에 기문둔갑의 방진(方陣)을 설치해야 하오. 남은 시간은 거기에 사용합시다."
나는 급히 말했다.
"잠깐. 중요한 걸 말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말이오?"
"아무리 당신이 화염으로 도와준다고 해도 내 힘만으로 금의위 일개 조를 감당하는 건 힘드오. 그 자들은 서너 명만 모여도 현천도인과 맞상대할 정도인데 열 명이나 되는 놈들을 어떻게..."
그러자 망량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당신은 때때로 적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소."
"엉?"
"충분히 당신이 이길 것이오. 그리고 혼자도 아니오. 날 믿어보시오."
그는 더 이상의 작전을 주지 않고 오화칠금선을 사용하기 위해 기문둔갑의 진법을 마을 여기저기에 몰래 설치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진법이라고 해도 가벼운 표식을 배치하는 것 뿐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에게 수상하게 여겨질 것 같지는 않았다.
"......"
이건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다음 날, 태정관의 현천도인에게 계획전반을 설명한 후 같이 마을에서 잠복할 것을 부탁하러 갔다. 현천도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걱정 마시게! 나는 그 마을에 자주 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심하지는 않을 걸세. 그보다 아주 훌륭한 계획이군.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끝낼 수 있겠어."
"지원군?"
"나는 어제 즉시 본산(本山)에 지원 요청을 했네. 아마 칠 주야 이내에 무당파 본산의 제자들이 도착해서 우리를 도와줄 것이네. 실력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걸세."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망량선사의 말이라면 믿을 만 하지. 정의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네."
현천도인의 합류는 의외로 큰 전력이었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무당파 본산의 지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무당파의 고수들이 도착하게 된다면, 굉장히 일이 쉬워질 것이리라.
' 설마 망량 이것까지 생각한 거였나?'
그는 현천도인을 끌어들일 때부터 무당파의 합류까지 가능성에 넣은 것이다.
나는 준비가 끝날 때까지 현천도인과 함께 마을 근처를 감시하며 금의위나 주술사의 출현을 감지하려고 노력했다. 아마 시기상으로는 머지 않아서 그 자들이 탐색 및 조사에 나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남는 시간에는 계속해서 내공을 연마하며 내가 익혔던 무공들을 종합했다. 나와 함께 행동하는 현천도인이 이따금씩 검법수련을 봐 줬기에 실력이 약간 진보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결전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