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4 ----------------------------------------------
복마전(伏魔殿)
약 이틀 후, 망량은 어린아이만한 크기의 독에 찬물을 받았다. 그리고 공방에서 조심스럽게 여러가지 첨가물을 넣더니 조합을 하기 시작했다. 약 서너 번의 공정이 끝나고 나자 매캐한 화약같은 냄새가 번지더니, 이내는 호리병 하나에 담을 만큼의 독수(毒手)가 완성되었다. 망량은 완성품을 내게 건넸다.
"여기 있소."
"만일 인간이 이걸 먹게되면 어떻게 되오?"
망량이 훗하고 웃었다.
"숨을 열 번 쉬기 전에 전신이 마비되는 기색이 오고, 다시 열 번 쉬기 전에 완전히 꼼짝 못하게 될 것이오. 그대로 방치되어서 반 각이 지나면 그대로 절명하겠지."
"......"
"우선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군. 정말로 이 독을 써야할 정도로 그 사교(邪敎)의 활동이 악독한 것이오?"
나는 진실을 말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참극의 마을에까지 동행한다면 망량은 현재 내게 있어서 최대의 동료다. 그가 사실을 많이 알고 있을수록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나는 담담하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 자들은 단순한 사교도가 아니오. 금의위(錦衣衛)가 사술사를 보조하고 있소."
"......!!"
망량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지금까지 내게 금의위가 연관되어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한 것이다. 그는 황망한 표정을 짓더니 머릿속으로 뭔가 생각하는 듯 했다. 그는 나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왜 그걸 지금까지 내게 말하지 않았소?"
"나에게도 당신을 지켜볼 시간이 필요했소."
망량에게 처음부터 그걸 다 털어놓았다가, 망량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건 나로써는 좋지 않았다. 게다가 망량이 의기(義氣)를 보인다는 보장도 없다. 갑작스런 진실에 당황한 망량이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고 빠질수도 있기에, 나는 어떻게든 독부터 확실히 받아놓고 나서 그를 신뢰할 수 있을지 관찰해야했던 것이다.
그리고 망량은 어쨌든간에 완성품을 내게 주었다. 그래서 털어놓은 것이다. 망량은 내 심리를 읽었는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뭐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래서 당신은 금의위와 황실을 적으로 돌려도 좋단 말이오?"
"그 자들은 자신들은 아무것도 걸지 않으면서 타인에게만 희생을 강요하오. 그 자들을 내버려뒀다가는 앞으로는 막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될 거요."
나는 내가 금의위나 황실에 대해 느낀 점을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망량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소. 뭐, 그래도 진작 말해줬다면 더 준비할 게 있었는데 아쉽군."
"더 준비할 것?"
"적이 금의위라면 스승님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오. 이미 늦었으니 그 일은 잊어버리지."
스승님?
나는 그러고보니 망량이 어떻게 해서 저렇게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체득했는지 듣지 못했다. 단순히 천재라서 독학으로 익혔거니 생각했지만, 그에게도 스승이랄만한 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궁금해서 스승에 대해서 물어보았지만 그는 얼버무릴 뿐이었다.
"나에게도 당신을 지켜볼 시간을 주시오."
"... 알겠소."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망량에게 금의위와 주술사에 대해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정보를 듣고 정리한 망량이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서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마을까지는 아마 말을 타고 가면 사흘이면 족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오. 당신은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거기서 참극이 일어날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데, 그 때쯤에 금의위와 주술사들은 어떤 단계일 거라고 생각하오?"
나는 지금 적어도 십 주야 이상의 시간을 당겨놓은 상태다. 아니, 어쩌면 15주야 이상일지도 모른다. 황산까지 가는 시간이 내공상승으로 크게 단축된데다가 쓸데없이 복수를 한답시고 고향마을에 들르지도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처음에 참극을 마주쳤을 때와 비교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빠져있었다. 게다가 현천도인이 그 자들의 만행을 발견했을 때는 아직 인신공양이 본격적이지 않고, 세뇌단계에 들어간 수준이었다. 나는 그 모든 점을 감안하고 대답했다.
"매우 높은 확률로, 그 자들은 아직 마을을 탐색하며 암살대상을 물색하는 단계일 것이오. 혹은 아직 낙양에서 출발하지도 않았거나."
"당신의 말대로라면 금의위는 주술사의 피리소리가 울린 후에야 움직인다는 소리인데, 확실히 그 말 대로라면 금의위가 움직이기 전에 주술사를 마을에서 발견해서 제압하는게 최선이긴 하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래서 나도 가능하면 마을에 빨리 잠입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소."
"그래서 주술사가 마을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 최단시간에 제압하겠다?"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소."
잠시 생각하던 망량은 고개를 저었다.
"음, 그건 아니오. 좋아 보이지만 하책(下策)이오. 우리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상책(上策)을 선택해야 하오."
"무슨 말이오?"
"설명해주기에 앞서... 혹시 이번 일에 좀 더 조력자를 끌어올만한 자가 있소? 나 말고 다른 조력자가 있냐는 말이오."
나는 즉시 대답했다.
"이 곳으로 오던 중에 태정관이라는 도관을 발견했소. 그 곳의 관주인 현천도인은 무당파 장로출신의 절정고수이니, 참극을 확인시키면 반드시 우리 도움이 될 것이오."
"과연. 나는 쌍문(雙門)에서 용병을 차출할까 생각했는데, 확실히 그 자 정도면 충분하겠군."
"용병?"
"낙양쌍문인 태검문과 철혈문은 자문파 출신의 제자들 중에서 사범 이상의 능력자를 종종 타지에 보내서 의뢰를 받게 하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연줄있는 자라면 비싼 돈을 주고 쌍문 출신의 고수를 고용하는 게 가능하오. 일을 그리 열심히 해주지는 않지만 돈값은 한다는 소문이 있소."
"......"
"사가(四家)에서도 이따금 세간에서 돈을 받고 활동한다고 하지만, 그 자들은 매우 폐쇄적인 인맥이라서 만나기 힘들지."
철혈문의 당주(堂主)나 태검문의 대제자급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류고수급 무위를 가진 그 자들이 종종 외부에 출장나와서 문파를 위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어쩌면 장로라고 불리는 자들도 용병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긴 했다.
나는 혹시나 해서 말했다.
"망량. 그 은괴를 이용해서 용병을 고용하는 게 어떻소?"
"나쁜 생각은 아니지만 이미 늦었소. 지금 한시가 바쁜 상황인데 언제 낙양까지 가서 고용한다는 말이오? 이틀 전이었다면 스승님께 전서구를 띄워서 대리고용해서 딱 맞춰서 도착하게 할 수 있었을텐데."
"......"
"뭐 걱정 마시오. 아마 당신과 나, 현천도인만으로 충분할테니."
촤라락
망량은 어디선가 지도를 가져와서 펼쳤다. 잘 보니 참극의 마을 주변 삼십 리를 소상하게 그려 둔 지도였다. 나는 놀라서 말했다.
"설마 당신 거기 지도를 그린 거요?"
"그럴 리가 없잖소. 이건 이틀 전에 진랑곡의 내 부하에게 부탁해서 관아에서 훔쳐오게 한 기밀문서요. 관아에는 유사시를 대비해 늘 군사용 지도가 창고에 비치되어 있지."
"......"
역시 이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내 말을 듣자마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오?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 준 건데."
투덜거리던 망량이 지도의 한 군데를 짚었다.
"잘 보시오. 이 산의 중턱이 경하강의 수원(水原)과 연결되어 있소. 그 마을은 이 수원에서 지류(支流)에 간신히 닿여 있는데, 이 지류가 바로 우물과 연결되어 있소. 단순히 지하수(地下水)를 퍼올리는 구조가 아니라는 거지. 이 외에는 그 마을이 따로 물을 얻으려면 너무나 수고스럽게 경하강까지 수십리를 왔다갔다하며 물을 퍼야 하오."
"그렇군."
"지류의 통과점을 찾아서 그곳에 독을 풀어넣는다면 반드시 마을을 마비시키는 게 가능할 것이오. 우물은 심층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오."
망량은 슬며시 손가락을 치우며 씩 웃었다.
"... 물론, 이건 우리가 도착이 늦어서 마을을 어쩔수없이 제압해야만 하는 경우요."
"그건 무슨 소리요?"
"만일 우리가 선제(先制)를 제압할 수 있다면 더 상책이 있다는 소리요. 이 독을 쓰면 최소한 100명은 죽을 텐데, 그 희생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모두를 구하는 게 더 좋지 않겠소? 이건 신경독이라서 해독제도 변변히 없는데."
"......?"
이어진 망량의 말은 너무나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마을에 불을 지릅시다."
그로부터 사흘 후, 나와 망량은 말을 타고 태정관 앞에 도달해 있었다.
푸르륵
망량은 껄끄러운 눈으로 태정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나는 이런 도사들과는 별로 친하지가 않는데."
그가 기문둔갑의 고수라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신통력도 없고 사기꾼에 가까운 점괘로 벌어먹고 사는 인물이다. 당연히 도인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천도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니 걱정 마시오."
"쩝."
나와 망량이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자, 태정관 앞에 서 있던 도복(道服) 입은 제자들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복마검(伏魔劍)을 들어서 우리들에게 겨누었다. 복마검은 실전용으로는 좋지 않은 무기이지만 어쨌든 날이 들어있는 칼이라서 도사들이 호신용으로 많이 갖고 다니는 무기였다.
"너희는 누구냐?"
나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 태정관의 관주님을 뵈러 왔소. 나쁜 용무로 온 게 아니니 양해해 주시오.]
"저... 전음(傳音)."
태정관의 제자들은 내 내공이 최소한 절정고수 수준이라는 걸 알아채자 뻣뻣하게 굳은 얼굴을 했다. 외견은 10대 아이지만 반로환동한 고수라고 착각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대 나이의 제자 하나가 극도로 긴장한 표정으로 이마에서 땀을 흘리며 말했다.
"관주님을 뫼시고 나올테니 가만히 있으시오."
[ 행패같은 건 안 부릴테니 안심하시오.]
"......"
그가 태정관의 관주, 현천도인을 데리고 나오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세상에서 은거하는 탈속한 모습의 도인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나는 매우 오랜시간이 지나서 그를 보게 되자 감회가 어렸다.
도인은 힐끔 나를 살피고는 정중하게 말했다.
"고인(高人)께서 왕래하셨구려. 어느 문파의 인물이시오?"
나는 현천도인에게까지 무위를 광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뛰어난 절정고수였기에 그저 안목만으로도 내 실력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신에 포권을 하면서 그의 말에 대답했다.
"나는 백웅이라고 하고, 이쪽은 내 친구인 망량이라고 하오. 아주 어려운 일이 있어서 태정관주 현천도인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왔소."
"도움이라..."
현천도인이 기가 막힌지 털털 웃으며 말했다.
"껄껄... 백웅 당신의 내공은 이미 초인(超人)적인 경지에 이르러 있는데 고작 노도(老道)의 도움을 얻을 일이 있단 말이오? 나는 그저 자연속에서 제자들과 함께 수양하고 있는지라, 바깥의 일에 관계하고 싶지 않소이다."
역시 이렇게 나설 줄 알았다.
현천도인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일이 아니라면 절대 무력행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인물이 아닌 것이다. 참극을 두 눈으로 보지 않는 한 동료가 되어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고매한 도사였기에 그를 끌어들이는 건 굉장히 까다로울 듯 했다.
하지만 나는 현천도인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 내 내공과 무공이 전반적으로 급증했다고 하지만, 금의위 일개 조의 힘은 나 혼자 감당하기엔 벅찬 것이다. 그 자들은 심지어 합공과 합격술도 연마했으니 자칫하다가는 참살당하기 딱 좋다. 현천도인이 도와주면 일이 두 배는 쉬워질 게 분명했다.
그 때 망량이 나섰다.
"도인께서는 천기(天機)를 읽을 줄 모르십니까? 천지에 흉성(凶星)이 떠올라서 머지않아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을 고하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앉아서 불행을 기다리십니까?"
그러자 현천도인이 그윽한 눈으로 망량을 바라보았다.
"본도도 최근의 천문이 이상하다는 건 느끼고 있소이다. 허나 그것은 천하의 대흉(大凶)이니, 나처럼 미약한 한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운행이 아니오. 나는 함부로 외부의 꼬임에 넘어가기에는 짊어진 것이 많소이다."
천기가 이상하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아마 망량도 현천도인도 천문을 볼 줄 아는데 요즘은 불길함이 많이 감지되는 듯 했다. 의외로 쓸모있는 정보일 거 같아서 내가 그걸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을 때 망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아무리 잘난 도인일지라도 나보다 천하의 액운을 잘 살피지는 못할 것이오. 나는 단언할 수 있소. 반드시 이 근처에서 사악한 자들이 발호하게 될 것이오."
"무엇이? 그대는 누구길래 그토록 광오한 것이오?"
현천도인이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그는 무당파 장로 출신으로, 무공 뿐만이 아니라 도사로써 익혀야 할 온갖 수행에도 통달해 있었다. 당연히 천문을 보는 것도 그 중 하나로써 제정신이라면 현천도인을 저렇게 깔아뭉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자 망량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는 망량선사라고 하오. 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인가?"
뭔 개소리야?
나는 황당해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망량선사라고 해도 그냥 낙양 주변에 유명한 점쟁이 정도로써, 진랑곡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그 이상 그 이하의 인식도 없었다. 무당파 출신의 현천도인에게 갖다대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자기자랑이었다. 나는 현천도인을 끌어들이는 게 틀렸다고 생각해서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현천도인은 망량선사 라는 칭호를 듣자 깜짝 놀라서 말했다.
"설마 당신이?!"
"내가 바로 경계의 제망량이라고 불리는 자요."
"허허... 이럴수가... 당신이 중원 좌도방문(左道傍門) 최고의 술법사라는 말이오?"
"그렇소."
촤라락
"이것이 나의 신표인 오화칠금선(五火七禽扇)이오."
망량은 평소에 늘 들고 다니던 섭선을 들어서 현천도인에게 내밀었다. 현천도인이 섭선을 받아들자 유심하게 여기저기를 보며 관찰했다. 그는 한참동안 보다가 꺼지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과연... 인간의 몸으로 선인(仙人)에게서 직접 보패(寶貝)를 받았다는 전설이 사실이었구나... 이것은 인간의 재주로 만들 수 없는 진정한 보물이구려. 당신이 망량선사라는 걸 인정하겠소."
저게 보패였다니?!
망량이 저걸로 귓밥이 간지러울 때 긁는 용도로 쓰는 걸 본 적이 있는 나로써는 믿을 수 없었다.
"고맙소."
"따라오시오. 같은 도문(道門)의 인연으로 이야기 정도는 들어드리리다."
현천도인은 우도의 고수이지만, 좌도방문 최고 권위자가 방문한 것이라면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듯 했다. 나는 얼떨결에 그를 뒤따라 태정관 안으로 들어가면서 어이가 없었다. 망량선사라는 건 그냥 대충 지어놓은 별명 아니었던가? 그게 정말로 또다른 정체가 존재했고, 그게 중원 좌도방문의 최고술법사였다니?
' 이 인간 신통력이 없어서 술법 하나도 변변히 못쓰는 거 아니었어?'
나는 몰래 전음으로 망량에게 물었다.
[ 어떻게 된 거요? 당신이 정말로 최고의 술법사요?]
망량은 힐끔 눈빛으로 나중에 설명해주겠다고 하는 듯 했다. 나는 별 수 없이 그를 믿고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태정관의 응접실에서 우리 세 사람은 탁자를 두고 앉아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망량이 말했다.
"현천도인. 내 이름을 걸고 말할 수 있소. 머지않아 이 근처 마을에 횡액이 닥쳐올 것이고, 그것은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일 것이오. 나는 점괘로 미래를 보았는데, 사악한 종교가 사람들을 제물로 발호하려는 기색이 느껴졌소."
"으음... 하지만 어찌 이 근처의 마을에서..."
"이 근처는 교통이 좋지 않아서 소통을 단절시키기가 쉽소. 사교의 무리들은 그 점에 주목한 것이겠지."
망량이 너무나, 엄청나게 확신을 가지고 팍팍 밀어붙이자 현천도인은 의심할 수 없어하는 기색이었다. 현천도인은 이미 반쯤은 믿게 된 얼굴이었지만, 이내 나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백웅의 공력이 이미 초절정을 넘어선 지경일 터인데, 그런데도 본도의 힘이 또 필요하다는 말이오? 그렇게 사교의 힘이 강력한 것이오?"
"그 자들은 인신공양과 살육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자들이오. 뿐만 아니라 정체불명의 절정고수가 그들을 뒤에서 돕고 있소. 백웅은 내 호위무사로써 굉장한 무공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자들을 홀로 감당할 수 없소이다."
내가 호위무사?
아무렇지도 않게 즉석에서 설정을 짜내는 망량을 보자 나는 기가 막혔지만, 현천도인에게는 잘 먹혀들어가는 듯 했다. 현천도인은 인신공양이라는 말을 듣자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분노했다.
"그런 사악한 놈들이...!! 그 자들은 마도팔문(魔道八門)의 도움을 받고 있소?"
"그건 모르오. 하지만 합격술을 익힌 절정고수가 두세 명이나 있다고 하니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지."
"허허... 그런 세력은 결코 흔하지 않건만."
현천도인이 어이가 없어하는 듯 했다. 하긴 절정고수가 뉘집 애 이름도 아니고,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대문파에서 최고간부급, 혹은 장로쯤은 되어야 절정고수를 찾아볼 수가 있었다. 하나의 단체에서 그런 고수들을 서너명씩 운용하려면 최소한 구파일방급 규모여야 가능했다.
망량이 말했다.
"우리는 사악한 자들을 끌어내어서 세상사람들이 피해입지 않게 처리하려고 하오. 이 근처에서 뜻있는 무림인을 찾아보았으나, 다들 회피하더군. 강호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도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오!"
"으음, 알겠소! 내 반드시 도와드리리다!"
"......"
그렇게 순식간에 현천도인을 구워삶은 망량은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와 함께 태정관에서 물러났다. 아마 내일 다시 오면 각오를 단단히 한 현천도인을 든든한 아군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태정관에서 멀리 벗어나면서 기가 막혀서 말했다.
"당신 무슨 거짓말을 한 거요? 당신은 최고의 술법사는 커녕..."
"그렇소. 알다시피 신통력이 없어서 기초술수밖에 못 쓰지."
"그럼 도대체..."
망량이 씁쓸하게 웃었다.
"전부 거짓말은 아니오. 보패도 진짜고, 망량선사도 보다시피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지. 단지 그게 내가 아닐 뿐이오."
무슨 의미인 걸까?
하지만 망량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걸 전부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해지오. 지금은 당장 마을을 정찰하러 갑시다."
"그래야겠지."
현재의 최우선목표는 하나였다.
마을을 정찰하고, 마을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이후의 목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