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 ----------------------------------------------
금의위(錦衣衛)
임동(壬凍)은 낙양에서 북서쪽으로 약 400리 떨어진 지방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룻밤 사이에 갈 수는 없는 거리였다. 약 사흘동안 나와 류 천호는 말을 갈아타고 숙소에서 잠을 자며 목적지로 향했다. 그리고 임동 경계선까지 약 50리의 거리를 앞두고 류 천호가 말했다.
"철전(鐵田) 마을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나?"
"외부와 단절되기 쉬운 곳이겠지요."
그러자 류 천호는 깜짝 놀란 듯 했다.
"허어. 자넨 머리가 좋군. 따로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말뜻을 알아들었어."
"그야 기밀을 유지해야하니, 타 지역과의 교류가 활발한 곳은 대상으로 삼을 수가 없지요."
"그렇네. 그 곳은 다리를 두 개만 끊어도 완전히 고립되는 장소지. 이번 임무를 실행하기엔 아주 최적의 장소야."
다그닥...
방금 전에 큰 관도를 말타고 달렸기 때문에 지금은 조금 쉬어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천천히 말을 앞세우며 말했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그 대주술사란 인물은 어떤 인물입니까? 그 또한 황실 사람입니까?"
"흠... 원래는 가르쳐줘선 안되는 거지만, 자네는 좀 특수한 경우지. 시기가 교묘하게 겹쳐서 금의위 신입교육을 거치지 않고 바로 투입되었으니... 내가 말해준 건 절대 타인에게 발설하지 말게."
원래는 신입교육 과정에서 아까 받았던 언령세뇌를 강화해서 받거나 이런 전반적인 금의위의 기밀을 전달받는 모양이었다. 시기가 겹쳤다는 말로 봐서는, 아마 당장 일이 급하고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금의위 추천으로 오자마자 나를 육조에 넣은 듯 했다.
"네."
"그는 이 계획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마을 사람들의 심령을 제압하고 사흘밤낮동안 피리를 불어서 명정(冥靜) 상태로 만들지. 그리고 깨어난 자들에게 교전(敎傳)을 전파하여 충실한 수족으로 만든다. 이후에는 충분한 마물의 소환을 위해서 제물을 바치는 과정이 반복된다네."
그의 말은 아주 사무적이고 담백했다. 류 천호가 이미 몇 년이고 피비린내 나는 인신공양 제사를 보아왔기 때문에, 한 치의 죄책감이나 거리낌도 없다는 증거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며 추가로 물었다.
"그 자는 대체 어디서 그런 신비한 주술을 익힌 것입니까? 말로만 듣던 방문좌도의 술법사입니까?"
"글쎄... 아마 아닐걸세. 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나, 그가 외우는 주술어나 의식은 굉장히 이질적이야. 또한 생김새가 그러니..."
"......?"
"그 자의 생김새를 보고 놀라지 말게. 흉측하기 그지없어."
류 천호의 얼굴에 잠시 질린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인신공양이나 학살을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자가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면 대주술사 피리괴인의 외모는 천하에 다시 없는 흉물(凶物)일 듯 했다.
나는 또다시 물었다.
"헌데 마물이란 게 소환된다니... 아무것도 없는 빈공간에서 나타난다는 겁니까?"
"헛참. 자네는 정말로 궁금한게 많군. 뭐, 다들 그랬지만."
"죄송합니다."
"아니야. 음... 마물은 갑자기 땅에서 솟아오른다네."
"... 네?"
"말한 그대로일세.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허무맹랑하게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땅을 파고 갑자기 튀어나온다네. 그걸로 보아, 아마도 대주술사가 [의식]을 하는동안 그 놈들을 부르는 것이겠지."
"......"
나는 입이 약간 벌어지는 걸 느꼈다.
그 말대로라면 괴물들은 이계의 마물이라기 보다는, 원래부터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게다가 이동할 때는 땅 깊숙히 들어가서 이동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괴물이 어디선가 먹이를 사냥하며 지낸다고 생각하니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솔직한 심정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 마물의 힘이 백련교를 없애기 위한 것입니까? 마물을 왜 부르는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자네가 이해를 할 필요는 없어. 우리는 명령만 들으면 돼."
"......"
"근데... 아마 아닐 거야. 마물은 2차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니까, 직접 그 전투력을 활용하진 않아. 대주술사와 황제 폐하만이 그 정확한 내용을 알고 있다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네."
류 천호는 고급정보를 술술 털어놓았다. 아마도 내가 물어보는 게 크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데다가 내가 세뇌되어가는 중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미치지 않은이상 금의위를 배신할 리 없다는 자신감도 한몫하는 듯 했다.
' 더 이상 캐어물으면 의심할 것 같군.'
나는 적당한 선에서 연기를 하기로 했다.
"잘 알겠습니다. 제 임무는 그 주술사를 호위하는 게 맞습니까?"
"호위? 그럴수도 있고... 여하튼 자네 정도 무공이면 뭘 하든간에 어려운 일은 아닐테지."
그 또한 절정고수, 그것도 제법 상위의 실력자라서 내 실력을 파악하는 모양이었다.
"과찬이십니다."
"아닐세. 정말로 간만에 대단한 인재가 추천으로 들어왔군. 이거 내 출셋길도 피겠는데? 하하하."
"하하하..."
나는 힘없이 웃었다.
이렇게 농담하듯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류 천호의 얼굴에는 사악하거나 악독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 또한 자기 직책에 자부심이 있고, 나름대로 부하들과 인간다운 관계를 쌓아나가려는 자인 것이다. 말투만 들어봐도 이 사람이 근본까지 사악한 사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황실을 위해서, 비뚤어진 애국심으로 몇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끔 만든 전적이 있었다. 세상에서 당장 악마(惡魔)라고 지적하고 때려죽어도 할 말이 없는 악행이다. 그 어떤 마교교주(魔敎敎主)나 강호의 대마두(大魔頭)라도 류 천호만큼 사악한 짓을 하며 살아오지는 못했으리라. 사람의 성정과 행동이 이렇게까지 불합치할 수 있다는 걸 깨닫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류 천호가 악마가 되게 만든 건 누구인가?
"거의 다 왔군. 이제 이 산을 넘으면 철전마을로 가는 다리가 나온다네."
"선발대가 끊어놓지 않았을까요?"
"그럴 리가. 내가 도착한 후에야 작전시작일세. 다리는 제일 나중에 끊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였다.
다리는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지만 멀쩡하다. 말을 타고 건너도 이상이 없을 것이다.
류 천호가 하늘다리 앞에 섰다. 약 10여장 거리를 잇고 있는 하늘다리의 아래에는 허공이 있었다. 절벽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잇고 있는 것이다. 그는 눈을 꿈틀거리며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흠. 폭약을 쓰려 했는데 이렇게 허술하다면 그냥 끊어놓기만 해도 되겠군... 흔적이 적을수록 좋으니..."
나는 하늘다리를 건너며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지금까지 웃으며 오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마을사람들을 몰살시키려는 계획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류 천호는 약 반 시진 후에 철전마을 앞의 기지(基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풀숲 한가운데에 있는 오두막집이었는데 사람들 눈에 안띄게 엄폐를 해놓고 있었다. 그 곳에는 미리 도착해 있던 금의위 육조의 위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상황은? 너 뿐인가?"
오두막집 안에는 위사가 한 명밖에 없었다. 그는 류 천호에게 보고했다.
"저희도 막 도착했습니다. 현재는 나머지 인원이 마을에 잠입해서 주요인사들의 거처와 행적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귀환하겠나?"
"세 시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럼 그들이 도착하는데로 마을 제압작전에 들어간다."
나는 오두막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천호님. 대주술사가 이 곳에 없습니다만..."
"신경쓰지 말게. 그는 아마 이미 마을에 들어가 있을 걸세. 그 자는 신묘한 술법을 쓰기 때문에 우리가 걱정해 줄 필요가 없어."
"흐음..."
"제압작전이 끝나면 그놈 쪽에서 찾아올 것이다."
나는 이것도 중요한 정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대주술사와 금의위는 항상 함께 움직이는 게 아니군. 그리고 동료라기 보다는 서로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관계에 가깝다... 그리고 대주술사라는 놈은 피리부는 것 외에도 특수한 주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거군.'
그렇다면, 금의위나 대주술사 중 어느 한쪽만 제압할 수 있어도 계획을 사전에 무효화시킬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전략의 방향을 보다 많이 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에 골똘히 잠겨있다가 류 천호에게 말했다.
"천호님. 저도 마을에 잠입하겠습니다. 선배들을 도우고 싶습니다."
"안 돼. 자네는 변장술이나 축근술(縮筋術)을 전혀 모르지 않는가? 조금이라도 마을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으면 계획은 꼬이게 된다. 지금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변장술이나 축근술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비단 이 자리에서 써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왠지 앞으로도 유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기술을 누가 가르쳐줄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특히 축근술은 특수한 진기도인법을 익히는 것이었기에 일반인은 절대 알 수가 없는 특수한 기술이었다.
류 천호가 말했다.
"정 몸이 쑤신다면 이 근처 1리를 경계하고 있게. 수상한 자가 접근하는가 살펴보게."
"알겠습니다."
나는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류 천호 앞에서 표정관리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고 무엇보다 지금은 생각을 정리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두막집에서 나와서 꽤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외진 마을의 숲속을 누가 하릴없이 돌아다닐 것 같진 않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잠시뿐이었다. 이내 내 시력에 왠 인영(人影)이 비쳤기 때문이다. 나는 칠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그 존재에게 벼락처럼 튀어서 달려갔다. 내가 그 자에게 도착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꺄앗!"
약간 높은 비명소리였다. 나는 그 찰나에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입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공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죽이려면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내가 그럴 수는 없다.
"조용히 해."
평범한 농촌 소녀다.
나이는 이제 막 십대 중반이 될락말락으로 보였다. 그녀는 입이 막힌 채로 버둥대다가 이내 포기했는지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소리지르지 마. 알았지?"
"......"
잘 보니 내 손바닥에 혀를 날름거리며 침을 바르고 있었다.
"야, 드러워."
나는 소녀의 입에서 손을 떼며 중얼거렸다. 소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는 뭐한다고 여기 있는 거야? 다른 마을 사람이야?"
"그래. 이 곳에서 길을 잃다보니 여기까지 왔어."
"우리 마을에 가! 먹을 거 줄께."
방실방실 웃는 모습이 귀엽다. 애살이 있는 아이였다.
"......"
나는 순간적으로 아이에게 행인이라고 속이는 데 성공했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계획이 시작되면 이런 어린아이가 광신도에게 갈가리 찢기고 범해진다는 말인가? 그리고 순박한 시골마을 사람들이 살육의 광연을 벌이다가 인신공양을 당하고, 종래에는 마을이 모두 불타서 몰살당한다는 말인가? 대주술사가 인신공양을 벌이던 제단의 피비린내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에 무덤덤하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꽤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 했다.
' 이런, 위사 한 명이 나오고 있어.'
소변이라도 보려고 나왔는지 오두막 안에 있던 금의위사 한 명이 걸어나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이 소녀를 발견하면 즉결처분하려고 들 것이다. 나는 급히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얘야, 여기서 쭉 너희 마을 쪽으로 돌아가라. 알겠지?"
"오빠 길 잃었담서?"
"괜찮아. 왔던 길로 돌아가면 돼. 그럼 담에 보자."
"알았어~"
아이는 총총걸음으로 풀숲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 후,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금의위사가 걸어왔다. 그는 아마 처음부터 나에게 이야기를 걸려고 나온 모양이었다.
"여어 신입. 반갑네."
"선배님이십니까?"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였다. 나이는 현재의 나보다 서너 살 더 되어봄직 했다. 아마 실제 나이는 더 되겠지만 잘생긴 동안이기 때문에 어려보이는 것이리라.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도 태검문(太劍門) 출신일세. 태검문의 장현(長鉉)이라고 하면 과거에는 낙양에서 꽤 잘나가는 후기지수였지."
"그렇군요."
장현이 갑자기 묘한 표정을 지었다.
"헌데 이번에 자네는 관중 청룡무관 출신인데도 태검문의 추천권으로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었다네."
"......"
아마 그 잠깐사이에 류 천호가 장현에게 나에 대한 걸 이야기한 모양이었다. 나는 류 천호가 입이 싼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태검문주께서 받아들이신 일이었습니다."
"누가 뭐랬나? 단지 좀 서글퍼서 그렇네. 태검문에 자네같은 시골놈 하나 감당할 놈이 없었다니. 내가 있었으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비꼬려고 하시는 거면 더 듣지 않겠습니다."
"하하. 뭐 어쩔 도리가 없군. 임무중만 아니었으면 자네한테 따끔한 맛을 보여줬을텐데."
나는 안그래도 생각이 복잡한데 장현이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오자 짜증이 났다. 그래서 계속 참지 않고 되려 툭하니 내뱉듯이 대답했다.
"너무 짖어대시는군. 하긴 짖어보고나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자기가 약하다는게 들통나지 않을테니."
"뭐... 뭐라고!"
장현은 대번에 도발당했다. 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갑작스레 진검을 뽑아서 발도(拔刀)했다.
피잉!
그의 발도는 제대로 된 솜씨라서 나도 제대로 안력을 돋워서 반사신경으로 피해야 했다. 강호의 어중이떠중이들은 장현의 첫 발도수에 그대로 목이 날아갈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확하고 빠른 절초(絶招)였다.
퍼억
"으윽..."
하지만 나는 다소 여유롭게 피한 후 도리어 뇌영보(雷影步)로 파고들어서 그의 배에 주먹을 한 방 먹였다. 장현은 발도술이 실패하자 헛점이 너무 많이 노출되어서 뻔히 알면서도 피할 수가 없었다. 장현은 의식이 날아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부들대며 말했다.
"너... 너... 무슨 순간속력이... 너무 빨..."
장현의 얼굴이 앞으로 꺾였다. 한 방에 내장이 진탕될 정도로 쳤으니 기절은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이 놈은 내가 겨뤘던 태검문 대제자 3명보다는 훨씬 강하다. 하지만 역시나 내 실력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나는 역시 일반 금의위사급보다는 내가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사부 이광이 부총령급이라고 평가를 한 건 거의 정확할 것이다. 나는 장현을 비웃었다.
"이게 빠르다고? 그래서는 진소청에게 일 초도 못 버티고 죽을 거다."
나는 기절한 장현의 목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어서 나무 밑에 앉혀두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참극을 막을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차분하게 지켜볼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제 3의 방법이 있는 것일까?
나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 본격적인 학살이 일어날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결론을 내린 이유는 망량 덕분이었다. 내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해결방안이라도 망량의 지혜라면 다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망량이 말했듯이 지금은 섣부른 행동보다는 하나라도 더 단서를 모아야 할 때였다. 섣부른 행동이 화가 된다는 지침을 받은 셈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완전히 세뇌될 때까지는 사흘의 시간이 있다. 그 때까지는 일단 지켜봐야 한다. 대주술사란 놈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고, 금의위의 행동을 좀 더 알아봐야만 한다. 언제 어디서 깜짝 놀랄 정보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후 장현의 혈도를 눌러서 그를 기절상태에서 깨웠다. 그리고는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장현 앞에 쪼그려 앉아서 나직이 협박했다.
"선배님. 나는 태검문에 별로 원망도 애정도 없습니다. 그런 저한테 열등감을 부딪혀 오시면, 무식한 시골촌놈인 저는 주먹으로 해결하는 것밖에 모릅니다. 어차피 금의위에 들어온 이상 문파가 뭐가 더 중요합니까?"
"... 으..."
"지금건 없었던 일로 하고 편하게 지냅시다, 장현 위사님."
"아, 알겠다."
장현은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 했다.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하면 삼 초면 충분하다는 사실, 그리고 나는 아마 그를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을 거라는 걸.
나와 장현은 수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같이 걸어들어갔다. 마침 책을 읽고 있던 류 천호는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저벅 저벅
"복귀했습니다!"
정확하게 약 세 시진이 지나서 어둑어둑해질 때쯤 마을에 정찰나간 금의위들이 전원 복귀했다. 그들은 저마다 변장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류 천호를 발견하자 일제히 부복했고, 류 천호는 싸늘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결과를 보고하라."
"넵."
그러자 금의위들은 저마다 마을의 중요인사와 중요건물, 그리고 알아낸 정보에 대해서 하나하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정보를 정리하던 류 천호가 말했다.
"좋다. 우리는 이제 여기서 대기하다가 주술사의 피리소리가 들리면 곧장 작전에 돌입한다. 방해가 될만한 자들은 모두 제거하고, 외부와의 교통 통신수단을 모두 막아라. 무사히 작전이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해라!"
"넵!"
피리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딱 하루가 지나서였다.
끼리리링 -
점심 때가 딱 지나서 낮고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피리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제일 먼저 들은 것은 나였는데, 역시나 사람의 귀를 간질거리면서 심령을 제압하는 효과가 있는 듯 했다. 거의 동시에 다른 금의위사들도 급히 전투준비를 했다.
준비가 끝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복해 있는 금의위들에게 류 천호가 명령했다.
"제압작전 시작이다! 가라!"
나도 다른 금의위들을 따라서 마을 내로 진입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마을의 지붕을 뛰어다니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평범하게 돌아다니던 마을 사람들이 머리를 붙잡고 바들바들 떨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공이 없거나 정신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이 피리소리는 치명적인 위력이 있는 듯 했다. 개중에는 비틀거리면서도 제대로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무공이나 건강호흡법을 익히는 자들인 듯 했다.
선배 금의위사가 말했다.
"움직이는 놈들도 내버려 두게. 어차피 우리 상대가 못 돼. 암살대상에만 집중해라."
나는 의견을 내었다.
"대주술사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백웅, 자네가 피리소리의 진원지를 알아보게."
아마도 꼭 찾을 필요는 없지만 내가 신입이라서 움직임에 방해될지도 모르니 적당한 임무를 주어서 쫓아보낸 듯 했다. 다짜고짜 들어오자마자 암살임무라고 하면 너무 무거워서 일을 망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네."
쉬익!
나는 금의위 일행에서 빠져나와서 개별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눈에는 나지막한 살기가 웅크리고 있었다.
' 꼭 찾아봐야지.'
그 대주술사란 놈을 제일 먼저 찾아낸 후 빼돌려야 했다.
그리고 최대한 정보를 캐낸다.
그걸 위해서는 고문도 불사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