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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위(錦衣衛)
나는 차례대로 태검문에서 삼 전(三戰)을 치러야 했다. 내게 도전한 태검문도가 총 세 명이었기 때문이며, 그들 하나하나는 태검문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한 후기지수인 듯 했다.
태검문의 대련장에는 태검문도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곱지 않은, 혹은 살기어린 시선을 꽂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비밀이 새어나간 수준이 아니라 소문이 퍼져서 모두가 알게 된 수준이었다.
' 이건...'
그리고 제일 처음으로 나온 자는 태검문의 대제자인 성규(星規)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30대 나이의 훤칠한 사내였는데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청룡무관에서 온 백웅이지?"
"그렇소."
"나는 태검문의 대제자, 성규다. 한 수 부탁한다!"
키잉
동시에 그의 검은 자연스럽게 빛을 흩뿌리며 칼집에서 뻗어나왔다.
나는 놀라서 말했다.
"진검(眞劍)이라고? 이건 실제 비무가 아니라 대련 아니었소?"
그러자 옆에 서 있던 태검문주가 말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
"자네도 겨룰 준비를 하게. 물론 자네가 원한다면 자네는 진검이 아니라 목검을 써도 무방하네."
태검문주의 말에는 한줄기 미동도 없었다. 나는 그제서야 이번 일의 전개가 어떻게 된 건지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기밀이 새어나간 건 사실이지만, 태검문주가 원한다면 그는 대련신청 따위는 무시해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련이라는 핑계를 빌어서 이 자리를 만들어 준 이유 - 그건 청룡무관에서 보내온 내 실력을 직접 보고싶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 실력이 기대이하일 경우 그의 명예에도 흠집이 가기 때문이리라.
' 이 놈들이 나를 무시하는군.'
하지만 나는 왠지모를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다짜고짜 대련장 옆으로 가서, 거치되어 있는 병기 중에 목창(木槍)을 꺼냈다. 목창은 명백히 수련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상대방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날도 변변히 닦여있지 않은 것이었다.
"난 이걸로 하겠습니다."
웅성...
몰려있던 수련생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특히 대련을 신청한 성규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져 있었고 관자놀이에 혈관이 울룩불룩 돋아나고 있었다. 그는 극도로 노해서는 내게 노갈성을 터뜨렸다.
"이 놈!! 장난하는 거냐? 연습용 목창으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물론."
"후회하지 마라!"
쐐액
말이 끝나자마자 성규의 몸이 전방으로 쇄도해 왔다. 이것이 태검문에 오기 전에 삼절 이광에게 들었던 태검문의 독문무공, 파운검법(破雲劍法)인 듯 했다. 거대한 강격(强擊)이 호화스럽게 난무하는 모습은 마치 성난 이리를 연상케 했다.
다만 나는 성규의 움직임은 물론 칼끝, 변화방향, 심리까지도 한 번에 읽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이 정도 녀석이 대제자라는 사실에 속으로 혀를 찼다. 내가 죽어라고 진소청과 겨룰 때와 비교하면 마치 애들 장난을 하는 기분이었다.
' 역시 이 정도인가? 읽어낸 대로군.'
나는 5년동안 청룡무관에서 수련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모든 것은 독학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익힐 수 없는 것으로, 실로 명문(名門)의 진전이라고 할 만 했다. 특히 진소청이 직접 기(氣)를 제대로 다루는 법을 알려줬으므로 나는 한 눈에 상대방의 힘을 파악하기가 쉬워졌다. 원래부터 천년설삼을 여러번 복용해서 엄청난 내공 덕분에 기감(氣感)이 발달해있었는데 기술까지 더해지니 예리한 안목이 저절로 생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읽어낸 성규의 역량은 정말로 대단치 않았다. 내가 나무창을 선택한 것은 딱 그 정도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투웅
순간적으로 내 몸이 움직였다. 그림자가 스치듯이 가볍게 허공을 흐른 내 신형은 이미 성규의 등 뒤로 돌아가 있었다. 경악한 성규가 검로를 되돌려서 반응하려고 할 때, 나는 이미 나무창을 그의 뒷통수에 겨누고 있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승리였다.
"......"
성규의 안색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의 눈에는 내가 순간적으로 뇌운보(雷雲步)를 밟아서 가속할 때 눈에 비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 그냥 내공을 발에 싣고 달릴 때와는 달리, 나는 이제 제대로 뇌운보를 구사하면서 천년설삼의 공력을 발에 실을 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순간속력으로 성규 정도의 무인은 가볍게 농락할 수 있었다.
나는 느긋하게 말했다.
"이건 대련이니까 나무창을 써야 하지 않소?"
"으윽..."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던 태검문주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만하면 됐다. 백웅의 승리다."
성규와 내가 포권을 해서 대련의 끝을 맺었다. 그러자 좌중의 웅성거림은 한층 더 심해졌다. 강화된 청력으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마 태검문의 일반문도 중에서는 성규보다 강한 자가 거의 없는 모양이었다.
이어서 두 명의 대제자가 더 나왔다. 원래는 문파의 장문제자 한 명을 대제자로 칭하는 편이지만, 태검문은 워낙 사람수가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연배높고 뛰어난 여러명을 대제자로 부르는 모양이었다.
"태검문의 대제자, 왕루! 한 수 부탁한다."
"태검문의 대제자, 발지! 한 수 부탁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오랜 초수를 겨룰 수가 없었다.
"헉."
"내가 이겼소."
쐐액
"아니...!!"
"내가 이겼소."
왜냐하면 방금 전 성규를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뇌운보를 운용해서 헛점을 찌르는 걸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왕루와 발지의 실력은 성규보다 괜찮은 편인지 내 앞에서 약 5초를 더 버텼지만 그것 뿐이었다. 나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시시하게 승리해버리자 김이 빠질 정도였다.
태검문주가 모든 대련결과를 확인하고 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좌중에 외쳤다.
"백웅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이제 이번 금의위 추천에 이의있는 자는 없겠지?"
"네!"
"이제 모든 제자는 다시 수련일과로 돌아가라."
우르르...
백여 명은 될법했던 태검문 제자들이 이내 사범의 인솔에 따라 흩어졌다. 텅텅 빈 대련장에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나와 태검문주 뿐이었다. 태검문주는 대련이 끝났는데도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떤가? 한심하지?"
"아뇨. 다들 좋은 실력이었습니다."
그러자 태검문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게 공치사를 하는건가? 이광의 제자답지 않군. 쓰레기같으면 쓰레기같다고 솔직히 말하게."
"... 죄송합니다."
나는 약간 민망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문주 앞에서 제자를 까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공손하게 나갔는데, 아무래도 태검문주는 그런 걸 신경쓰지 않는 성격인 듯 했다.
태검문주가 말했다.
"친구의 부탁이라지만 자네같은 외인(外人)에게 금의위 추천권을 넘기려 한 건 그것 때문이야. 정말 괴로운 일이군."
"......"
"나와 철혈문주, 그리고 낙양 쌍문사가의 가주(家主)들은 일 년에 딱 한 자리씩, 문내제자 중에서 한 명을 추천해서 금의위에 추천가능하다네. 하지만 쓸만한 제자는 모두 금의위에 이미 들어갔거나 독립해서 다른 지역에 자기 도장을 열었지. 이제 남아있는 놈들의 실력은 내 이름을 걸고 추천하기엔 너무 역량이 따라주질 못하는군."
"그랬던 거군요."
나는 태검문주가 굳이 이런 대련자리를 열어둔 또 하나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압도적 실력차이를 실감하게 해서 뒷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기위해서였다. 나는 궁금해져서 질문했다.
"태검문주께서는 천하를 오시하는 고수이신데 제자가뭄이라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핫하, 역시 좀 솔직해졌군. 그래야지."
태검문주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가 상대했던 성규, 왕루, 발지의 실력도 세간에서는 일류(一流)라고 부를 정도일세. 자네가 그들을 너무 허약하다고 느끼는 건 자네의 무공이 굉장한 달인(達人)에게 사사한 것이기 때문이야. 늘 달인과의 전투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격이 낮은 자들과 겨루면 한심함을 느끼는 것이지."
"음..."
"재능(才能)이란 건 어쩔 수 없어. 내가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주려고 해도 떡잎이 좋지 않아. 세상에서 영재를 찾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이야..."
태검문주의 넋두리는 의미심장했다. 수백 명이나 되는 낙양의 인재들을 받아들이는 태검문인데도 그 중에서 제대로 된 고수를 한 명 길러내기 힘든 것이다. 잠시 후 태검문주가 의혹섞인 질문을 했다.
"근데, 정말 자네가 재능부족으로 여기 온 게 맞나? 그 나이에 그정도 수준이면 충분히 천재(天才)이건만."
아마도 삼절 이광은 적나라하게 내 재능부족을 서찰에서 까댄 모양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따위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진정한 천재가 있습니다. 불민하지만 저로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후하하하, 역시 삼절이야. 제자운은 나보다 훨씬 좋군."
씁쓸하게 웃는 태검문주였다. 하긴 아무리 일시적인 제자가뭄현상이라고 해도, 자신의 친우이자 호적수에게 제자역량이 뒤지는 걸 눈앞에서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태검문주에게 말했다.
"혹시 금의위가 된 태검문출신 제자들이 다시 복귀하는 일은 없습니까?"
"금의위는 단순무력단체가 아니라 황실의 비명(秘命)을 수행하는 단체이기에 존재 자체가 기밀덩어리일세. 옛제자들이 가끔 찾아와서 술이나 한잔 할 때는 있으나, 나도 그들도 서로의 일을 캐묻지 못한다네. 복귀는 절대 할 수 없다는군."
"쓸쓸하실 것 같습니다."
"훗... 어쩔 수 없지. 술이나 한 잔 할 텐가?"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후 태검문주와 간단한 안주를 차려놓고 약주를 간단하게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물론 태검문주를 상대하는 건 공적인 일이었으므로 나는 예의범절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태검문주같은 사람은 겉으로는 거리낌없이 털어놓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적당한 가식과 예절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걸 첫대면에서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행동이 태검문주의 호감을 샀는지, 그는 술이 거나하게 들어간 상태에서 말했다.
"나는 자네가 어째서 삼절 그친구에게서 그렇게 박한 평을 듣는지 알 수가 없군. 자네는 이미 절정지경(絶頂之境)에 발을 들여놓은데다 무시무시한 내공을 지니고 있는데!"
"하하..."
"삼절 그 친구에게는 자네조차 눈에 차지 않을 정도의 제자가 또 있다고? 세상은 정말 불공평해..."
"......"
나는 술자리를 파하고 내 숙소로 돌아와서 드러누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엄청난 내공이 있기 때문에, 약주를 거의 4병이나 들이부었는데도 거의 취하지 않았다. 물배가 약간 찼지만 주정을 땀처럼 배출하자 그것도 의미없이 머릿속이 멀쩡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
바깥세상에 나오고 나니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정말 문제는, 내가 강해진 걸 알게 되었는데도 그다지 만족감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 내 스승과 사형이 모두 천재(天才)이기 때문이다. 범재들을 보고 열등감을 해소하기에는 그들의 존재감이 너무 컸다.
'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한숨 자자.'
나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 중요한 건 금의위에 들어가는 것이었으므로, 할 일부터 한 다음에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죽음을 거듭하면서 얻게 된 삶의 태도였다.
나는 그로부터 이틀 후, 태검문주를 따라서 황궁(皇宮)의 외문(外門)을 통과했다. 잠시 검문을 받은 후 따그닥거리며 말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마차 안에 태검문주를 마주보고 앉아있던 중이라서인지 엉덩이에 진동이 느껴졌다.
마차 안에서 나와 동행한 태검문주가 말했다.
"이제 곧 금사전(金司殿)에 도착할 것이네. 내가 동행해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이니, 건물 안에 들어가서 금의위 총령(總領)을 만나시게. 그의 면접을 통과하게 된다면 바로 다음날부터 금의위로 일하게 될 걸세."
"뭔가 조심할 점은 없겠습니까?"
태검문주가 씁쓸하게 웃었다.
"딱히 없네. 쌍문사가에 주어지는 금의위 추천권은 황실에서 우리 쌍문사가의 명예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지. 여태 추천권을 받은 자들 중 면접에서 탈락한 자는 한 명도 없으니, 평소처럼만 하면 될 걸세."
"그렇군요."
나는 새삼 이 추천권의 위력을 실감했다. 무관직의 꿈이라고 일컬어지는 금의위에 10할 확률로 합격하게 되는 권리! 쌍문사가의 성세를 상징함과 동시에 어째서 태검문주가 다른 문파에게 넘겨버리는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추천권은 10할 확률로 완벽하게 합격할 수 있는 권리지만, 추천권으로 들어간 인재가 허섭쓰레기같다면 되려 해당문파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마차가 멈췄다. 나는 태검문주와 함께 말에서 내린 후 그에게 포권했다.
"이 은혜 반드시 잊지 않겠습니다."
"좋은 결과 바라겠네."
잠시 후 태검문주를 실은 마차가 되돌아가자, 나는 금사전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금사전의 내문 앞에는 두 명의 금의위(錦衣衛)가 서 있었는데, 과연 그들의 실력은 상당해 보였다. 내가 겨루었던 태검문 대제자들보다 적어도 두세 수는 위에 있었으며 움직임 또한 실전의 이슬을 먹고 사는 자의 흔적이 느껴졌다.
왼쪽에 서 있던 금의위가 말했다.
"자네가 오늘 오기로 되어있던 추천자인가?"
"그렇습니다. 태검문의 추천을 받고 온 백웅입니다."
"청룡무관 출신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는 이해가 안되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원래 추천권은 반드시 자문파 내에서 쓰게 되어있는데 특이한 일이군. 하여간 총령님을 뵙고 싶으면 나를 따라오게."
나는 그를 따라서 금사전 안으로 들어갔다. 금사전은 과연 황궁의 일부답게 호화롭고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곳곳에 고급스러운 비단도 깔려 있었다. 이윽고 총령을 마주하게 된 나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 응?'
뭔가 이상하다.
나는 오늘 저 금의위 총령을 처음 본다. 그리고 저 자의 기운이나 기세도 생전 처음 보는 것이다. 그러나 총령의 양옆에 서 있는 자들의 기세는 왠지 굉장히 낯익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마주쳤던 자가 아니라면 이런 기분이 들 수는 없는 것이다.
' 뭐지? 저 두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아.'
정말 어디선가 느꼈던 기운이다.
내가 저 두 사람을 어디서 봤었단 말인가?
기억을 되새겨 봤지만 잘 생각이 안난다.
금의위 총령은 특이하게도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흰색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에서 보이는 것은 오로지 오른쪽 눈 뿐이었다. 그가 흑안(黑眼)을 번득이며 탁자에 앉은 채 말했다.
"백웅. 금의위 금사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가 새하얀 종이를 잠시 뒤적거렸다. 그건 아마도 내 행적을 조사한 종이인 듯 했다.
"자네의 인적사항은 이미 조사를 끝냈다. 시골마을에서 상경해서 5년 전에 청룡무관에 입관했고, 이후로는 별다른 일 없이 조용히 사범생활을 했더군. 자네의 과거사는 매우 깨끗하기에 나는 아주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총령은 훗하고 웃음을 짓는 듯 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태검문에게는 실망이군. 자문파에 인재가 없어서 대체할 정도라니..."
"......"
"어쨌든 좋아. 이제부터 곽 천호를 따라가서 활동복과 무기를 지급받아라. 오늘은 그가 금의위의 내규와 활동전반을 가르쳐 줄 것이다."
나는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곽 천호를 따라서 복도를 걸어갔다. 곽 천호라고 불린 자는 성이 곽씨인 금의위 천호였다. 즉 일반적인 금의위 위사보다 한단계 위에 있는, 표사업계로 치면 표위같은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곽 천호의 무공은 입구에 서 있던 자들보다 한단계 위에 있는 걸로 보인다.
곽 천호가 걸어가면서 말했다.
"너는 오늘부로 금의위가 된 것이다. 모든 행동이 황제폐하를 위한 것이며, 너의 삶과 죽음도 황실에 귀속되었다는 것을 유념해라. 그것이 금의위 된 자의 사명이다."
"알겠습니다."
"네 무공은 굉장히 강해보이니 무공관련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오늘 내규와 활동에 대해서 듣고 나면 바로 육조(六組)에 배치되어서 실전에 투입될 것이니 그렇게 알아두어라."
곽 천호가 상당한 실력자인 건 확실해 보였다. 내가 기운을 숨기고 있는데도 내 움직임만으로 수준을 알아보았다는 것은 세간의 일류고수와 차원을 달리하는 고수라는 뜻이다. 나는 내심 놀랐다.
' 천호는 금의위에서 행동대장 수준 아닌가? 그런데도 이 정도 수준이라고?'
그는 아마 절정고수일 것이다.
금의위의 평균무력수준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듯 했다. 나는 당황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말했다.
"육조라고요?"
"금의위는 일조(一組)에서 십조(十組)까지 총 10개조 100인으로 운용된다. 실력이 더 뛰어난 자는 천호나 부총령이 되고, 그 외에는 별개의 상위조에 배치되지. 네가 속하게 될 육조는 현재 기밀임무 중이니 너는 죽을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후 밀폐된 방 안에서 곽 천호에게 두 시진동안 금의위의 내규와, 활동내용, 그리고 전반적인 조직도나 황궁의 권력관계에 대해서 전해들었다. 뿐만 아니라 황실에 존재하는 모든 황족과 종친의 이름까지 외워야 했으며, 변장술을 비롯한 각종 잡술을 알고 있는지 말해야만 했다.
생각 외로 별도의 정신교육은 시키지 않는 듯 했다. 정신교육을 시키기에는 금의위가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 너무 많고 방대해서로 보였다. 게다가 미치지 않은 이상 금의위를 배신할 리가 없다는 자부심도 섞여있는 듯 했다.
곽 천호는 두 시진동안의 교육이 얼추 끝났다고 생각하자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는 신기한 듯 말했다.
"넌 굉장히 똑똑한 편이구나. 이렇게 말귀 잘 알아먹는 놈은 처음 본다."
"그렇습니까?"
"보통 한평생 무공만 파던 돌대가리들이 금의위에 배치되는 편이거든. 신입을 가르칠 때는 사실 무공보다는 이런 게 더 어렵다."
나는 현재 왠만한 서생급의 지식과 독서경험이 존재했다. 게다가 암기력과 이해도도 높은 편이므로, 평균적인 금의위 위사보다는 훨씬 똑똑한 편이리라. 나는 그때까지 들은 것들을 입에서 웅얼거리며 외우다가 물었다.
"곽 천호께서는 몇 조를 담당하십니까?"
"나는 오조(五組)에 속해 있다. 곧 육조 조장이 와서 너를 데려갈 것이다."
그 때였다.
끼익 하고 문이 열리며 한 명의 흑의인(黑衣人)이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곽 천호가 반가운 듯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이 류! 잘 왔어. 무기지급과 훈육을 막 끝낸 참이다."
"고생많군. 그쪽이 새로 온 신입인가?"
나는 벌떡 일어나서 대답했다.
"네. 백웅이라고 합니다!"
"호오, 씩씩해서 좋군... 내가 바로 육조 조장인 류 천호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넵."
곽 천호가 류 천호에게 인수인계가 끝나자 나는 그를 따라서 어디론가 향했다.
"우선 지금부터 네게 한 시진동안 휴식시간을 주겠다. 너는 충분히 개인실에서 체력을 다듬은 후에 곧장 나와 실전에 투입될 것이다."
"어떤 임무입니까?"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 주겠다. 또 물어볼 거 있나?"
어느 새 나는 내 방 앞에 와 있었다. 여기서 한 시진동안 쉰 후에 바로 금의위로써의 첫 임무에 투입되는 것이다. 나는 새로 지급받은 철검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물어볼 건 하나 뿐이었다.
"총령님 옆에 서 있던 그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들도 천호입니까?"
"그 분들은 부총령이다. 부총령은 총 세 명이 있는데, 한 명은 십개 조의 조장을 통솔하고 있지. 그리고 그 2명은 언제나 총령님을 호위하거나 특별임무를 한다고 알고 있다."
"......"
정말 뭔가 헷갈린다. 나는 분명히 그 2명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들이 금의위 서열 2위인 부총령이라니? 내가 지금껏 꽤 오래 살아왔지만 그 자들을 어디에서 마주쳤었단 말인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머리를 잘 굴리면 풀어낼 수 있는 연관점일 것 같았기에 답답함이 더했다.
나는 한 시진동안 내가 지급받은 창과 검, 단도를 살폈다. 역시 금의위에게 주어지는 것이라서인지 굉장히 좋은 강철로 제조된 것이었으며 장인의 솜씨가 느껴졌다. 이런 무기로 싸우면 당분간은 날이 빠지거나 부러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할 일이 없어서 벌렁 누웠다.
한 시진이 거의 다 갈 때까지 그저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 분명 어디서 봤는데... 대체...'
그 순간이었다.
나는 망량을 떠올렸고, 망량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황실과 무명제사서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더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기억을 끌어낸 것이다. 나는 한 가지 추론이 떠오르자 깜짝 놀라서 그 자리서 일어섰다.
"......!!"
그렇다.
부총령 두 사람 - 그들은 참극의 마을에서 현천도인(玄天道人)의 기습을 막아낸 자들이었다! 강호에서 희귀하다는 합격술(合擊術)을 시전할 수 있는 고수는 흔치 않았고, 그 때 느꼈던 기운은 오늘 느낀 것과 동일했다.
' 그 말은... 설마...'
내가 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어느 새 한 시진이 다 지났는지 문 밖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임무투입이다. 어서 나와라, 백 위사(衛士)."
내가 속한 육조의 조장, 류 천호가 부르고 있었다. 나는 급히 대답했다.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