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 ----------------------------------------------
금의위(錦衣衛)
무명제사서에 이 마물이 그려져 있었다고?
우리 둘은 서로가 놀라서 얼굴을 쳐다보았다. 뭔가 할 말은 많은데 뭘 말해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나였다.
"내가 바로 그 경하강의 화재가 나기 전, 그 마을에 갔었소. 그리고 거기서 이 마물을 봤소."
"이걸 실제로 봤다고? 허무맹랑한 소리..."
"실제로 보지 않았다면 이걸 내가 꾸며냈단 소리요?"
"......"
망량은 부정하고 싶은 듯 했으나 그럴 수 없는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우연히 내가 꾸며낸 그림이 무명제사서의 수록도화와 일치할 확률이 너무나 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명제사서를 보고 와서 망량을 일부러 놀리고있을 확률은 더 낮았다. 망량은 내 말을 사실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시오."
"알겠소."
나는 망량에게 인신공양 사건과 광신도, 마물과의 조우를 차례차례 설명했다. 물론 현천도인 이야기도 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죽고말았던 사건이었지만, 운좋게 살아서 빠져나왔다는 식으로 이야기의 마무리를 바꿔서 설명해 줬다. 한참동안 내 이야기를 듣던 망량이 꺼지듯 한숨을 쉬었다.
"하아, 믿지 않을 수도 없는데... 정말 믿기 힘든 일이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나는 망량에게 지혜를 얻고 싶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생각을 정리하고 싶소."
촤락
"끄응..."
망량은 그렇게 말하고는 섭선을 펼쳐서 자신의 관자놀이에 갖다대고는 꿍하니 앓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노인네가 똥마려운 듯한 표정이었다. 표정이 시시각각 변화하며 뭔가를 필사적으로 생각하던 망량이, 반 식경이 지나서야 내게 말을 걸었다.
"백웅. 그래서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오?"
"나는 이번에 금의위가 되려고 하오. 운이 닿는다면 무명제사서를 얻겠지만, 그게 꼭 아니라도 좋지. 여하튼 서두를 필요가 없는 일이니까."
"재밌군... 당신은 왠지 마음에 들어."
망량은 뭔가 중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경하강 인근의 화재와 인신공양, 마물... 그건 엄청난 음모(陰謨)가 존재하고 있소. 그것도 어쩌면, 이 중원 전체를 뒤흔들지도 모르는..."
"뭔가 알고 있소?"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오. 이 또한 허무맹랑한 일이라서, 자칫하다가는 나도 당신도 파멸(破滅)할지도 모르오. 지금은 확정을 지을 때가 아니라, 머리를 굴려서 조금이라도 단서를 더 얻어내야 하오."
망량의 얼굴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사실 예전에 무명제사서를 얻고싶어서 내가 협력했을 때는, 지루한 삶에 청량제가 다가온 듯한 기분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망량의 표정은 그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있는 각오어린 표정인 것이다. 망량은 방금 내 얘기에서 뭔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게 틀림없었다. 다만 확신이 없기에 내게도 섣불리 털어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 뿐이다.
잠시 후 망량이 말했다.
"당신은 혹시 낙양 내에 조력자(助力者)가 있소?"
"한두 사람 있소."
낙양쌍문 중 하나인 태검문의 문주가 나를 도와줄지도 모른다. 아니, 스승의 친구인데다가 서찰까지 주고받으면서 금의위 추천을 넣어줄 정도이니 확실히 그런 관계였다. 물론 위험한 지경에 놓이면 태검문이 나몰라라 하고 나를 내다버리겠지만, 내가 특별한 이상을 보이지 않는 한은 태검문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러자 망량은 고개를 저었다.
"한두 사람으론 안 되오. 나도 당신을 따라가겠소."
"뭐라고?"
"내가 아는 한 가장 뛰어난 실력자가 당신을 암중에서 돕도록 설득하겠소. 그렇지 않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죽을 테니까."
"죽는다니? 나는 바로 무명제사서에 접근하지 않을 것이오. 몇 년이고 기회를 볼 생각인데 너무 부정적이군."
망량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 그런 문제가 아니오. 그 마물과 무명제사서가 연관이 있다는게 무슨 뜻인지 알겠소? 황실(皇實) 또한 이 일에 충분히 연관이 있다는 말이오."
"그건 나도 짐작했소."
"짐작하다니? 저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오?"
이어진 망량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이미 황실에서 무명제사서를 해석(解釋)했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거요."
"......!!"
뭔가 찝찝하다 했는데 그런 거였나!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거기까진 생각이 닿지 않은 것이다.
"그럼 설마..."
"입 다무시오."
내가 약간 고양되어서 입을 열려고 하자 망량이 급히 내 입에 검지손가락을 갖다대며 말했다.
"더 이상은 함부로 생각해서도, 억측해서도 안 되오. 우리는 좀 더 확실한 단서가 필요하오. 그 전에는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모두 죽음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시오. 이건 엄청난 음모요."
"......"
망량은 확실히 나보다 지혜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상황을 통찰하고 앞으로 해야할 일을 확고하게 해둔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한 건 황실 그 자체가 적(敵)이 될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무명제사서를 훔쳐서가 아니라, 무명제사서 그 자체가 음모의 중핵에 놓여있을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한 발짝 한 발짝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인 게 당연하다. 내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보인다면, 그 즉시 황궁이 내 무덤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다소 가볍고 즐겁게 낙양으로 가던 마음이 답답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는 잠시 후 말했다.
"그렇게까지 위험한데도 이 일을 밝혀낼 필요가 있겠소?"
"뭐라고...?"
망량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이 일을 밝혀내야만 하는 사명(使命)은 없소."
"그건..."
"당신은 가만히 여기에서 은둔하고 있는다면 낙양으로 들어가면서 죽음을 무릅쓸 필요가 없을 것이고, 여전히 진랑곡의 망량선사로 유유자적 놀 수 있을 것이오. 나 또한 무명제사서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금의위로써 편한 일생을 보낼 수 있겠지. 그렇지 않소?"
나는 더 이상 죽고싶지 않다.
우연히 기회가 다가와서 무명제사서를 얻으려 했을 뿐, 거대한 위험이 존재한다면 더 이상 무명제사서에 집착하고 싶지 않다. 겨우 손에 얻어낸 무인(武人)으로써의 삶을 잃고 싶지 않다는 보수적인 욕망이 나를 붙들어매었다.
"......"
망량이 잠시 넋놓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내가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마을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은 걸 억울해해서 이러는 줄 아시오? 강호의 정의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그 비밀을 밝혀내려는 줄 아시오?"
"......"
"백웅. 당신이 보았던 그 참극(慘劇)이란 언젠가 반드시 불특정다수에게 몰아치게 될 거요. 그것도 그 마을의 비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정도로 거대한 규모로. 그 때 무작정 운에 맡기고 도망을 칠 생각이오? 그것도 아니라면 권력자들의 개가 되어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할 생각이란 말이오?"
망량의 말은 간절했고 피끓는 호소가 깃들어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비극을 막을만한 건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황실(皇實)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자는 없소. 천문관으로 일하면서 알 수 있었소. 그들은 이 세상을 뚜껑 정도로 여기고 있소. 그 자들이 주재(主宰)하는 일이라면 언젠가 말도 안 되는, 무시무시한 환란이 닥쳐올 게 분명하오.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하는게 당연하지 않소?"
나는 망량의 말이 질서정연해서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은 내가 생각지 못했던 점을 하나하나 일깨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내 삶에 비춰서 생각하자 바로 와닿지 않는 점이 있었다.
나는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나는 쓸데없이 피해를 보기 싫소."
"... 당신은 내 스승같은 사람이군. 실망이오."
망량은 툭하고 내뱉더니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정 그렇다면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소. 나도 낙양행을 접게 되었으니 잘 됐군. 혹시 내게 더 듣고싶은 말이 있소?"
나는 고민하다가 물었다.
"만일에 당신이 5년 전의 나였다면, 어떻게 그 비극을 막았을 것 같소? 아니, 만약 내가 5년 전에 당신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구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소?"
망량은 차갑게 웃었다.
"만일에 나였다면 몰래 숨어들어서 우물에 독을 풀었을 것이오."
"우물에 독을?"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신도든 뭐든간에 인간인 이상 물을 마셔야 하는데, 폐쇄된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면 식수를 얻을만한 수단은 우물,개천,강밖에 없소.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 마을은 경하강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마을 내부의 개천도 없었소.
결국 멀리서 수로(水路)로 끌어둔 우물을 이용해서 살았다는 뜻. 우물에 강한 독을 풀었다면 그 자들의 계획은 손쉽게 좌절되었을 것이오. 광신도의 생명력으로 며칠은 버텨도 결국 물이 없으면 말라죽을테니까 인신공양의 제물도 사라질 게 아니오? 더욱이 그 자들의 계획은 대규모의 인신공양이 필수적이었을 테니 그때와서 다른 마을을 선택하기도 힘들어졌겠지."
"......!!"
"게다가 당신이 말했던 음모의 주체인 흑의인이나 피리괴인도 인간일진대 그 마을에서 거주하다보면 당연히 물을 마실 게 아니오? 운 좋게 그 놈들이 독먹고 뒈져버리면 개이득이 아니겠소?"
나는 망량의 계략(計略)에 입을 벌렸다. 나와 현천도인은 무림인이라서 그냥 숨어들어서 암살하는 것밖에 생각지 못했는데, 망량의 방법대로 하면 일거양득을 노릴 수 있었다. 인신공양의 주 제물인 광신도들을 봉쇄함과 동시에, 운 좋으면 계획의 실행범도 없앨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흑의인과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 대단하군."
"물론 그런 집착과 독기를 가진 자들이 독 하나때문에 계획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주춤하는 사이에 꾸준히 관아에 신고하고 무림인들에게 소문을 퍼뜨리면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오. 이 정도는 무공이 크게 필요하지 않겠지."
망량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허나 이건 모두 과거의 사건, 내가 이제 와서 대책을 말해봤자 끝난 사건이오. 마을사람들은 광기에 미쳐서 날뛰다가 마물을 탄생시키고 몰살당했을 뿐.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데 이제 와서 이걸 말해봤자 뭐 어쩐단 말이오?"
"......"
"그리고 당신은 유념해야 하오. 그들이 마물을 탄생시켰다면, 그 마물은 지금 어디에 있을지를."
"헉...!!"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보니 마물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렇게 거대하고 흉폭한 마물을 거둬들여서 양식할만한 장소는 결코 흔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마을을 전소시켜서 자신들의 행위를 은폐했다고 해도, 마물을 데리고 이동하는 건 너무나 눈에 띄는 일이었다. 괴물을 목격한 소문조차 듣지 못한 걸 보면 그들은 분명히 마물을 데리고 쥐도새도 모르게 잠적한 것이다.
' 빌어먹을...'
나는 지금이라도 망량의 말을 들어서 황궁의 음모를 탐색할까 하는 충동에 시달렸다. 그 마물이 이 세상 어딘가에 우글우글하다는 생각을 하자 속에서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꾹 참았다. 아무리 망량의 말이 옳고 앞으로 거대한 횡액이 천하에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걸 막으려 하다보면 죽게 될 가능성이 너무 높다. 확실하지도 않은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거느니 그저 못본 척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적어도 이번 삶은 무림인으로써 평안하게 지내고싶은 마음이 강했다.
대신에 나는 주제를 돌렸다.
"아까 독을 쓴다고 했는데 어떤 독을 쓰겠단 말인가?"
"광신도들은 실생활에 필요한 수준의 이성만 남겨져 있으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강한 고통을 주거나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독은 큰 소용이 없을 것이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임을 멈추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신경독(神經毒)이 필요하오. 신경독은 전신의 근육을 마비시키고 호흡곤란과 심장마비로 죽게 할 수 있으니."
"당신이 신경독을 갖고있는 거요?"
"제조할 줄 알고 있소. 뱀독에 특수한 화학약품을 첨가하면 하루 안에 만드는 게 가능하오. 수용성으로 만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틀이 안 걸리겠지."
과연 그는 굉장한 지식의 소유자였다. 강호무림에서 사천당문을 포함해서 극히 일부의 가문이 비밀리에 전수하는게 독술(毒術)인데, 그는 워낙 책을 많이 탐독하다보니 그에 대한 지식도 박식한 것이다.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말했다.
"망량. 정 그렇다면 이런건 어떻겠소?"
"뭐를 말이오?"
"나는 아직 당신 말대로 음모를 막으러 활동할 준비는 되지 않았소. 지금도 음모를 막으려는 생각은 없소."
"흐음."
"하지만 나는 그 신경독 제조법을 꼭 배우고 싶소. 그러니 내가 금의위가 되어서 얻게되는 정보와 신경독 제조법을 교환하지 않겠소? 그 정보로 당신이 뭘 하든간에 도와주긴 힘들겠지만 꼭 전달한다고 약속하지."
이 정도라면 내 목숨이 위험한 선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망량은 현재 내게 실망한 상태였기에 신경독 제조법을 안 가르쳐 주려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타협안을 내놓은 상태였다.
"... 좋소! 당연히 가르쳐 드리지."
망량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는 소극적으로나마 의사를 밝힌 나를 전적으로 도와주고싶은 듯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의협(義俠) 기질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다행히도 낙양까지 도착하는 기일은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적어도 7일은 비울 수 있었기에, 나는 그 동안 망량에게 기초적인 독술(毒術)과 함께 특수한 신경독의 제조법을 배웠다. 전체적인 제조법을 전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고 내용도 방대했기 때문에 나는 초가집을 나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공부해야 했다.
독술을 배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중에 혹시 과거로 돌아갈 경우 써먹을 수 있을 뿐더러, 만일에 망량을 찾아갈만한 시간여유가 안 된다면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 겨우 다 배웠다...'
신경독 제조법의 전수가 끝난 것은 그로부터 나흘 후였다. 철야를 해서 공부한 나와, 옆에 붙어서 쉬지않고 쫑알거리던 망량은 피곤해서 쓰러졌다. 정신적인 피로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약 반나절 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망량은 잠에서 깨자 나를 배웅해 주었다.
"나중에라도 마음이 변한다면 낙양성에서 남서쪽으로 5리 떨어져있는 여동빈(呂洞賓)의 사당으로 가 보시오. 그리고 이 신표(信標)가 있다면 목숨이 위험할 경우 거기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오."
망량이 신표라고 건네준 것은 조그마한 곡옥(曲玉)이었다. 나는 곡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쓸데없이 찾아가지는 마시오. 그럼 화(禍)를 입을 테니."
"아무튼 고맙소."
"살펴 가시오."
나는 망량과 헤어져서 낙양으로 향했다.
낙양 성내로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약 8일이 지나서였다. 나는 말을 타고 낙양의 외성관문을 통과한 후 천천히 태검문으로 향했다. 대낮이라서 그런지 태검문에는 수련하는 제자들이 철혈문만큼 많았고 북적거렸다. 전반적으로 철혈문보다는 숫자가 적어보였으나, 그런만큼 제자들의 평균적인 수준은 더 높아보였다.
나는 태검문의 정문으로 갔다. 그러자 문지기들이 막아섰다.
"멈춰라. 너는 태검문에 무슨 일이냐?"
"관중 청룡무관에서 온 백웅이라고 합니다. 이 서찰을 태검문주님께 전해 주십시오."
"흐음."
그들은 잠시 후 안쪽에 들어갔다 나왔다.
"따라오시오."
문지기들을 따라서 도착한 곳은 깔끔한 분위기의 응접실이었다.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잃지 않은 실내장식을 보면 이 곳이 낙양에서 가장 성하는 무문이란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사치하는 물건은 별로 보이지 않았으나 내부분위기만으로도 주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잠시 후 응접실 안으로 한 명의 사내가 걸어들어왔다.
"이야기는 들었네. 자네가 청룡무관의 사범, 백웅인가?"
나는 일어나서 예를 갖췄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태검문주님."
그랬다.
내 앞에 서 있는 유한 인상의 장년인 - 수수한 백의(白衣)를 단정하게 입고 있는 이 인물이야말로, 현재 낙양무림을 주름잡는 쌍문사가의 우두머리급인데다가 화산파 장로를 100초만에 패배시킨 절세무위의 소유자 태검문주였다.
"잠시 앉지."
"네."
쪼르르륵
옆에 서 있던 시비가 조심스럽게 태검문주와 내 찻잔에 차를 따랐다. 기품있게 차를 마시는 태검문주의 모습은 왠지 청룡무관주를 떠올리게 해서, 비슷한 성격끼리 친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얌전하고 유유한 인상이지만 아마 태검문주 또한 실전에서는 호랑이처럼 무서운 인물이리라.
태검문주가 말했다.
"자네의 금의위 추천 이야기를 듣고 왔겠지?"
"그렇습니다."
"허나 기밀을 지킨다고 했는데, 불운하게도 내 문하제자 중 몇몇이 그 이야기를 듣고 말았네. 물론 나는 결코 내 말을 번복할 생각이 없으나, 그들은 자네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고 하는군."
당연한 일이다. 자기 자리가 될 수도 있었던 금의위 자리가 타 문파의 사범에게 넘어간다고 하면, 나같아도 이성을 잃고 덤빌 것 같았다. 다만 태검문의 문하제자들은 태검문주의 권위와 명예가 워낙 막강하다보니 내게 화풀이를 할 생각으로 보였다.
"비무(比武)입니까?"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대련(對鍊)이라고 해 주게."
나는 오자마자 복잡한 일이 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했던 일인지라, 나는 자신감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