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33화 (3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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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위(錦衣衛)

관중 육대가인 조가의 위치는 북서쪽에 있는 조가전장(曺家錢場)이었다. 전장 일을 해서 먹고사는 가문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나는 약 7리 정도를 빠듯하게 뛰어서 조가전장으로 갔다. 조가전장의 현판을 보면서 생각보다는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7리 정도면 말을 타면 금방이었기 때문이다.

조가전장 앞에는 경비무사 4인조가 서 있었다. 그들은 난데없이 빠른 경공으로 나타난 나를 보자 곧장 창날을 곧추세웠다. 그들 또한 무술을 배운 자들 같았다.

"너는 누구냐?"

나는 장난끼가 잠시 일어났지만 자제했다. 괜히 일을 벌여서 복잡하게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는 청룡무관의 제자인 백웅(白熊)이라고 합니다. 제 사형인 청룡무관의 진소청 총사범께서 조가장에 방문하셨다 들어서, 연락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음..."

그들은 잠시 서로 곁눈질을 했다.

"잠시 기다려라."

"그러죠."

"혹시 네 신분을 증명할 게 있느냐? 신분이 불확실한 자는 그 누구도 조가장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

"이것이 청룡무관의 사범패요."

나는 경비무사의 말에 품 속에서 사범패(師範牌)를 꺼냈다. 사범패에는 승천하는 청룡(靑龍)이 양각되어 있었으며 고급재질의 동(銅)을 가공해서 만든 것이었다. 내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서 삼절 이광이 건네준 물건이었다. 그들은 사범패를 확인하자 탄성을 흘렸다.

"오오... 그 나이에 청룡무관의 사범이라고?"

"대단하군!"

"잠시만 기다리시오."

어느새 한 명은 경어를 쓰며 안쪽으로 뛰쳐들어갔고, 나머지 셋은 창날을 느슨하게 하며 말했다.

"백웅 소협이라 했던가? 관중무림에 새로운 별이 나타났구려."

"나이가 어떻게 되시오?"

"......"

나는 사범패를 보여주자마자 대번에 친한척하려는 경비무사들을 보자 어이가 없었다. 그들은 이 사범패가 가짜인가 위조인가 그런것도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갖고있는 건 진짜였으나, 그만큼 이 관중무림이 별다른 변란이 없이 평안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동시에 청룡무관의 위세와 명예가 관중에서 얼마나 드높은지를 증명하기도 했다. 청룡무관 또한 낙양의 쌍문사가처럼 관중 내에서만은 대문파 못지않은 성세를 떨치는 중이었다.

"아... 잠시... 사형을 뵙는 일이 중요해서."

나는 대충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경비무사들은 알아서 납득하며 껄껄 웃었다.

"하하. 기다려 보시오."

약 일 각 정도를 기다렸을 때였다.

안쪽에 들어갔던 경비무사가 당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미안하지만 백웅 소협. 조금 더 기다리셔야겠소."

"무슨 일입니까?"

"......"

그는 뭐라 말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안쪽에서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 아마도 나를 보지 않겠다고 말했거나, 혹은 안에 진소청이 없던가 하는 문제였다.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사부님의 명을 받아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시바삐 사형을 모셔오라는 게 사부님의 명이었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바깥에 세워둘 생각입니까?"

내가 성질을 내자 경비무사들이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내 말이 인내심없긴 했지만 맞는 말이긴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안쪽에 들어갔었던 경비무사가 급히 변명하듯 말했다.

"지금 진소청 사범은 조가장주님과 중요한 이야기를 하시고 있소. 소협이 청룡무관 출신이라면 그 정도는 이해를 해 주시오."

"물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막아선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다면."

"......!!"

책임 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경비무사들의 안색이 조금 새하얘졌다. 그들같은 경비무사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단어였다. 그들은 순식간에 책임계산이 누구에게 어떻게 넘어갈지를 생각하다가, 이내 안쪽으로 들어갔던 호위무사를 재촉했다.

"택이! 그냥 한번 더 물어보고 와!"

"어차피 그렇게 급한 일 아닌 거 아냐. 말이라도 한번 더 여쭤봐."

택이라고 불린 그 호위무사는 버럭 성질을 냈다.

"제길! 내가 너네 종이냐?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아니 니가 보고담당이잖냐."

"아오..."

그는 억지로 욕지기를 참는 듯 했다. 그리고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방금 전에는 소협의 사형이나 장주님께 직접 언질을 듣지 못했소. 이번에는 확실히 듣고 오겠소."

"무슨 말입니까? 중간에 누가 돌아가라고 했단 말입니까?"

"아 그게... 총관(總官)님이 내빈실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셔서. 이번에는 걱정 안하셔도 되오."

그 말만 하고는 호위무사 택이가 급히 도망치듯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머지 호위무사들은 엥이 쯧쯧 멍청이 등등을 연발하며 그의 뒷담을 깠지만, 그런 건 신경쓰이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맹렬하게 머리를 회전시켜서 현재의 상황을 파악했다.

' 조가장주와 사형이 중요한 이야기? 오늘 사형은 친구인 창천검룡 남궁환을 조가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게 아닌가? 여기는 그냥 접선장소로 쓰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생각보다 사형이 창천검룡 남궁환을 만나는 일은 많은 사정이 꼬여있는 듯 했다. 나는 내심 조가장주가 사형을 가두거나 위협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관중 육대가라도 그런 짓을 하지는 못했다. 우선 사형의 무공부터가 조가장의 납치감금을 허용하는 수준이 아닌데다가, 청룡무관 하나의 세력이 육대가의 두셋을 합친 것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이없는 가정은 머릿속에 지워버렸다.

나는 경비무사들에게 창천검룡 남궁환과 약혼녀 모용연이 여기에 왔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경비무사들은 경계어린 기색이었다.

"그걸 왜 물어보시오?"

"저자거리에서 그들이 조가장 쪽으로 향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건 우리가 모르는 일이오."

그들은 모른다고 잡아뗐지만, 나는 되려 그 모습에서 남궁환과 모용연이 조가장에 들른 게 확실하다는 걸 느꼈다. 정말로 모른다면 저렇게 적의어린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경비무사들이라서 머리굴리기에 서툴러서 실수한 걸로 보였다.

' 그냥 안으로 쳐들어갈까?'

나는 이렇게 서 있는게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주먹을 꾹 말아쥐며 한 번 더 참았다. 너무 경솔하게 나서다가 죽은 적이 꽤 있었기에 최대한 참을만큼 참아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가장을 뒤엎는 건 쉽겠지만 후폭풍이 감당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후로 반 시진이나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 때가 되어서야 택이 라는 호위무사와 중년 사내가 같이 걸어나왔다.

"반갑소. 백웅 소협.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당신은?"

"나는 조가장의 총관인 하준(河濬)이오."

그는 내가 청룡무관의 사범급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외모인데도 하대가 아니라 평대를 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무림인의 관계로 나를 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자신을 조가장의 총관 하준이라고 밝힌 중년사내는 유감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진소청 사범은 장주님과 이야기를 하셨으나 의견조율이 되지 않아서 좀 더 머무신다고 말씀하셨소. 나중에 청룡무관으로 복귀한다 했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시오."

"...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단 말입니까?"

"그것은 본 장(本場)의 기밀과 연관되어 있소. 정 들으려거든 나중에 그대의 사형에게 들으시오."

나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살기를 명백히 띄고 있는 웃음이었다.

"사람을 호구로 보나? 이렇게 기다리게 해놓고 나중에 돌아오는 걸 기다리라고? 나중 대체 언제? 사형의 얼굴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 내가 당신들의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이오?"

"아, 아니..."

하준 총관은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쿠우우우

그도 그럴것이 내 말에는 가시가 돋혀있는데다 무의식적으로 발출한 기운이 주변을 압박하며 그를 주눅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가전장 또한 무림세력이라서 하준총관도 무공을 익히고 있었지만, 내 내공을 정면에서 마주하자 움츠러들어서 팔을 덜덜 떠는 게 보였다.

심지어 옆에 서 있던 경비무사 넷도 흠칫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들은 이미 내공에 기가 죽었는지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나는 하준 총관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말해두는데 당신들이 내게 사형을 똑바로 대면시켜주거나, 하다못해 자세한 사정을 알게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방식대로 할 겁니다."

"사제인 주제에 자네 사형의 얼굴에 먹칠할 셈인가? 청룡무관의 일개사범 주제에 조가전장을 협박하는 건가?"

하준 총관이 매섭게 쏘아붙이는 걸 보면, 그는 나름대로 강단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공의 압력을 받고있는데도 심지를 굳게하고 할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피식 웃고는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이게 협박같습니까? 나는 사부님께 '사형을 데려오라'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건 사형에게도 절대적으로 통해야하는 명령이죠. 사형핑계 대지 마십시오. 이 명령에 불응하는 것이 바로 사형의 책임입니다."

"......"

"무문(武門)에서 사형의 의지와 사부의 명령 중 어떤 게 우선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도리(道理)를 말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으음..."

나는 냉엄한 얼굴로 쐐기를 박았다.

"당신네와 사형이 어떤 일을 이야기하건간에 그것은 사형 개인의 사정입니다. 나와 청룡무관에게 있어서는 사부의 명령이 더욱 중요한 것이오!"

하준 총관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의 행간(行間)에서, [나 백웅이 사형을 찾으러 조가장을 들어엎어도 강호도의상 문제가 없다] 라고 주장하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총관씩이나 할 정도니 기본적인 머리가 돌아가는 것이다. 실제로도 내가 이런 명분을 내세우며 총관이나 호위무사들을 때려눕히고 안으로 진입해도 조가전장만 이후에 손해를 보게 된다.

물론 내가 진짜로 그들을 때려눕히진 않을 것이다. 그걸 하는 순간 나에게도 위험부담이 매우 크다. 그러나 내가 살기를 일으키며 으름장을 놓는 이유는 [할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대방에게 각인시켜서 '협박'이 성립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수틀리면 미친 짓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위협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결국 총관은 힐끔 등 뒤의 조가장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군. 진 사범의 행방을 가르쳐 주겠소."

"행방이라고? 조가장 안에 있는 게 아니오?"

"그는 반 시진 전에 이곳을 떠났소."

"......!!"

나는 역시 직감대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까 총관이 경비무사를 막아서고는 핑계를 대어서 돌려보냈던 것은, 이 곳에 진소청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나는 아까 내 직감이 맞았다는 걸 확인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명분과 상황을 다 재어본 후에야 내게 손해보지 않는 최선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총관에게 말했다.

"당신은 무엇때문에 진 사형의 행방을 숨긴 것이오?"

"그가 조가장주님께 부탁했기 때문이오."

"뭐라고...?"

"더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소. 그러나 우리는 부탁대로 한 것일 뿐이니, 설령 청룡무관주라 하더라도 우리를 이 일로 겁박할 수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아두시게."

하준 총관의 말은 마치 면도날처럼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거기에는 괜히 남의 집안 일에 끼어들었다는 짜증이 섞여 있었기에, 나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진소청 사범은 모종의 이유 때문에 조가장주에게 자신의 행적을 감춰줄 것을 부탁했고, 그 기한은 내일까지인 듯 했다. 총관도 부탁받은대로 시간을 만들어준 것 뿐이었다.

하지만 무엇때문에?

이윽고 하준 총관이 말했다.

"그는 함곡관(函谷關)으로 향했소. 말을 타고 갔으니 서둘러야 행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면피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군."

성실하게 행방을 알려주는 것은 나중에 왜 사형을 숨겨줬냐는 질책에 최대한 대답할 말을 만들기 위해서리라. 그러자 하준 총관이 인상을 찡그렸다.

"비꼬지 마시오. 우리도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흠."

"배웅하지 않겠소. 소협은 이만 가시오."

잠시 후 하준 총관은 경비무사들에게 문을 닫으라고 지시하고는 들어가 버렸다. 쾅하고 문이 닫히자 경비무사들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횃불의 심지에 불을 붙이며 자기들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제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종적을 놓치게 될 것이다.

파앗

나는 함곡관이 어디있는지 알고 있었다. 3년간 관중에서 살았기에 대충의 지리는 파악하고 있다. 함곡관은 동쪽의 중원(中原)으로부터 서쪽의 관중(關中)으로 통하는 관문(關門)으로써, 황하(黃河) 남안(南岸)의 영보(靈寶) 지역에 딱 붙어있는 곳이었다. 나는 직접 함곡관으로 가본 적은 없었으나 역사적으로 오래된 요새인데다 유명해서, 관도만 쭉 따라가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 근처에 역참이 있었지. 거기서 말을 한 마리 빌려타자.'

야간에 말을 타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횃불을 한쪽 손에 들고 타면 그럭저럭 시야가 확보될 만 했다. 물론 내 승마술이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기에 아마 말의 속도를 적당히 조절해야 하리라. 달려서 갈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체력을 보존하고 싶었다.

히히힝

관도 근처에는 띄엄띄엄 횃불을 달아놓은 화루(火樓)가 있었다. 다행히 그렇게 안보이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나는 천천히 말을 몰고 달리기 시작했다.

역참지기의 말로는, 함곡관은 산 하나를 넘어서 약 5리 정도를 가면 형태가 보인다고 했다. 그 말에 따르면 실질적인 거리는 여기서 약 25리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다. 상당한 거리였기에 말을 타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그닥 거리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 틀림없어. 진소청 사형은 조가전장에서 남궁환과 모용연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함곡관으로 향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목적은 하나였다.

호위(護衛)!

대낮부터 어중이떠중이는 물론, 상당한 일류고수들이 남궁환과 모용연을 찾아서 시내를 배회하고 있었다. 남궁환이 그걸 모를 리가 없을테니, 자신의 약혼녀를 데리고 조가장으로 피신함과 동시에 자신의 친구인 진소청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사형도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이광에게 말해두고는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남궁환 일행과 동행한 것으로 보였다.

쏴아앗

나는 말 등에 바짝 엎드려서 나뭇가지를 피하며 중얼거렸다.

"귀찮은 일이 되어버리는군."

틀림없다.

이대로 사형을 따라서 함곡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아마 일류고수들 일당과 마주칠 확률이 높다. 그들은 모용연에 강렬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고, 일류쯤 되는 고수들이 남궁환의 종적 하나 못 찾아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조가장에 있을 때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다가 해가 저물고 어두운 밤중인 지금 승부를 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다는 걸 곧 알 수 있었다.

말을 타고 산의 중턱을 넘어서 내리막길 관도를 천천히 횃불따라 걷고 있을 때, 내 기감에 강렬한 반응이 왔다. 그것은 거대한 파장이었는데, 아마도 강력한 초식끼리 부딪힌 듯 했다. 일반인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조그마한 소리가 송곳처럼 귀를 간질이는 감각은 틀림없이 고수의 격돌을 알리고 있었다.

"이런... 늦지 않을려나."

나는 혀를 차며 말의 속력을 높였다. 내리막길이라서 위험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힘을 내라, 이 놈아."

나는 말의 목에 한손을 대고 서서히 기운을 불어넣었고, 말은 지쳐있다가 기운이 나서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말의 감각과 감응하면서 말이 삐끗하거나 엇나가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었다.

히히힝 -

보통 고수들은 이런 식으로 기를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타 존재에게 내공을 불어넣는 것은 엄청나게 비효율적이므로, 보통은 기경팔맥의 위치를 잘 알아놓은 다음에 정해진 혈도로 한정된 내공을 불어넣어야 힘의 낭비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공이 워낙 넘쳐나므로 딱히 혈도를 살피지 않고 기운만 불어넣어도, 비효율적일 지언정 충분히 힘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서두른 결과 나는 약 반 각만에 문제의 대결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쏴아아아 -

풀숲에서 나와서 곳곳에 큰 나무가 있는 넓은 평원(平原)이었다. 저 멀리 산 위에 함곡관이 보이는 평원의 한가운데에는 횃불이 마치 연무장처럼 꽂혀 있었고, 십여 명의 인영(人影)이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나는 말에서 내리며 외쳤다.

"진소청 사범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채채챙

진소청이 창(槍)을 휘두르며 두 명의 고수들과 싸우고 있는 도중에 내 쪽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두 명을 상대로 창을 마치 자기 몸처럼 움직이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는데, 되려 압도하고 있는 듯 했다.

따앙!

"어억."

투둥, 하고 진소청이 창대를 쳐올리자 장검(長劍)을 쓰던 한 고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동시에 진소청이 뇌령팔식을 사용해서 창날을 회전(回轉)시키자 기묘한 충격파가 발생했고, 나머지 한 명의 상대도 수투(手套)가 찢겨져 나가며 어깨죽지가 뜯겨나갔다.

순식간에 두 명의 고수를 물리친 진소청이 나를 놀라워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너는 누구냐? 어째서 뇌령(雷靈)의 기운이 느껴지느냐?"

그는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뇌기(雷氣)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견하는 것만으로도 뇌령의 경지를 파악하는 걸 보면, 이맘때의 진소청은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고수였던 듯 싶었다.

장내의 고수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나는 꾸벅하고 사형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는 새로 청룡무관의 제자가 되었으며, 사범위를 수여받은 백웅이라고 합니다. 관주님의 명에 의해 총사범님을 사형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사범...? 사형?"

"저 또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삼절(三絶)을 익히고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어리둥절해하던 진소청은 상황을 파악했는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핫! 그렇군! 잘 부탁하네, 백웅 사제!"

"넵."

그는 순식간에 내가 다른 뇌신류(雷神流) 출신이며, 뇌신류의 달인인 삼절 이광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유추해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삼절이라고 한 게 뇌신류를 은밀히 비유한 거란 사실도 알아낸 것이다. 그는 역시 천하의 기재(奇材)라 할 만큼 두뇌와 무공이 뛰어난 자로 보였다.

' 하긴 미래의 천하십대고수니까...'

진소청 뒤에는 일남일녀(一南一女)가 서 있었다.

남자는 굉장한 미남(美男)이었다. 진소청도 나름 쾌남아처럼 생겼으나 저 사내의 외모는 마치 용(龍)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마치 관옥으로 깎아지른 듯, 한 치의 흠도 없이 조각된 잘생김이었다. 그가 가볍게 웃기만 해도 수많은 처녀들의 마음이 흔들릴 듯 했다.

또한 그 미남 옆에 서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절세미녀(絶世美女)였다. 내가 보았던 중에는 사공린과 비교할 만 했는데, 사공린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가 없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공린은 청초했고 저 여자는 애띈 외모였다. 어찌되었든 일반적인 사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얻고싶어할 만큼의 미녀인 게 확실했다.

그들은 내게 인사했다.

"반갑네, 소협. 나는 남궁세가의 창천검룡 남궁환일세."

"저는 모용가의 여식, 모용연이에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대충 그들의 정체를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별다른 말 없이 인사를 받아들였다. 역시 내 추측이 맞은 것이다.

그 때였다.

왠 흑의(黑衣)를 입은 사내가 나와 진소청을 비웃으며 앞에 나섰다.

"꼴값 떨고 있군. 10대 아해 하나 늘어났다고 오늘 너희가 살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진소청과 창천검룡!"

그가 서 있는 곳에는 무려 7~8명이나 되는 고수들이 저마다의 독문병기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그들 중에 대낮에 느꼈던 4인의 일류고수들의 기운도 섞여있는 걸 알아챘다. 뿐만 아니라 제일 뒤쪽에는 목도(木刀)를 지니고 있는 청년이 있었는데, 내가 낮에 패퇴시킨 전도귀(戰刀鬼) 위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위종이 내 모습을 발견하자 경악성을 내질렀다.

"아! 너는 낮의 개방 소년!"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개방이라니? 나는 청룡무관의 제자요."

"까마귀같은 꼴로 땟국물을 질질 흘리던 주제에 웃기지 마라!"

"개소리 하지 마, 빌어먹을."

비교할 게 없어서 개방과 비교한단 말인가?

저건 욕이었다.

나는 짜증이 나서 곧장 몸을 앞으로 날렸다. 아무래도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미친 놈!"

일류고수들은 내가 전면으로 돌진하자 하루살이를 보는 듯한 표정이 되어서 코웃음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흉맹한 흉기(凶器)를 날려서 나를 격살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공격범위에 들어가기 전에 멈춰서서 허공에서 급전직하(急轉直下)했다. 그리고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서 바닥에 진각(振脚)을 날렸다.

' 맛 좀 봐라.'

꾸콰콰콰콰콰쾅 - !!!!

대파괴(大破壞)!

장렬한 폭발음이 울렸다. 마치 수십 관의 폭약을 폭발시킨 것과 같은 폭음과 함께 산의 중턱에 이르는 먼지구름이 용오름하듯이 터져나왔다.

어둠의 벽이 솟아오른듯, 천지가 한차례 더 굉음에 휩싸였다. 무형의 충격파가 윙윙대며 구름을 찢었다. 진각의 종심은 아예 지반(地盤)이 붕괴했고 끝도 없이 부숴지는 것 같았다. 근처에 있던 나무가 충격파 때문에 나뭇가지가 바람에 뜯겨 나갔다.

인간의 몸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아아아아아악!!"

"뭐, 뭐야아아?!"

"이런, 이런 미친?! 허어억!!"

비명소리와 함께 모여있던 일류고수들은 몸을 허우적대며 반강제적으로 뒤로 날려갔다. 개 중에는 땅에 무기를 박거나 허공에서 경신법으로 자세를 잡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 누구도 오 장 이내에 버티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공이 약한 자 하나는 십여장 밖으로 내동댕이쳐져서 입가에서 핏줄기를 꿀럭거리며 흘렸다.

단순히 내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서 땅에 진각을 찼을 뿐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오자 도리어 내가 놀랐다.

이것을 정말 내가 했단 말인가?

대체 내 내공은 어떤 수준에 이르러 있는 것일까?

그 때 진소청 사형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잘했어, 백웅 사제! 저 말에 모용연 소저를 태우고 어서 달아나자."

"네? 달아나다니."

"저 자들은 다들 한가락 하는 자들이야. 정면승부해서는 좋지 않아."

휘익

여인인 모용연이 내가 타고온 말에 올라섰다. 말 고삐를 잡은 모용연에게 남궁환이 말했다.

"함곡관에 서둘러 가시오.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알았어요, 가가."

따그닥 따그닥

모용연의 말이 달리기 시작하자, 나와 진소청 남궁환은 그녀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세 명 모두가 말의 달리기를 따라잡을 수 있었으나 내력과 체력을 아껴야 했으므로 말궁둥이가 보이는 수준으로만 거리를 유지했다.

달리는 도중에 남궁환이 힐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같은 소년고수가 관중에 있었다니... 앞으로 천하의 판도가 바뀌겠군."

"아하하..."

나는 어설프게 웃었다. 저렇게 말하는 남궁환이 미래에는 천하십대고수이자 남궁세가의 검왕(劍王)이라고 불린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위인에게서 저런 평가를 듣자 약간 민망했다.

그 때 진소청이 내게 전음을 날렸다.

[ 타 뇌신류를 전승받은 건가?]

나는 전음을 쓰는 법을 잘 모른다. 대신에 낮게 뇌까리며 말했다.

' 네. 예전 스승님께서 돌아가셔서 관주님을 찾아왔습니다.'

[ 후후. 앞으로 수련할 때 재밌겠어. 오늘은 잘 부탁하겠네.]

놀랍게도 진소청은 의심하거나 질투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무리 동일한 유파의 갈래라고 해도 난데없이 모난돌이 굴러들어오면 누구든 의심하거나 화내야 정상인데 말이다. 나는 그의 마음이 위선이나 가식이 아니란 걸 느꼈기에 약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진소청이야말로 천연의 일재(溢材)!

' 차라리 찌질댔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삼절 이광이 인정한 천재 후계자를 앞으로 내가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오류 수정했습니다 헉헉 버스에서 초코크림빵 먹고있다가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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