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32화 (32/1,615)

0032 ----------------------------------------------

금의위(錦衣衛)

백련교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백련교란 남송(南宋)때부터 이어져오는 종교이다. 사실 난 무식한 편이었고 관심이 없어서 그쪽은 잘 몰랐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았으나, 지금 내게 있어서는 백련교의 무림(武林)에서의 입지가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다. 종교로서는 거의 입지를 잃어버린 백련교였으나 무림에서는 달랐다.

현 무림의 최강후보!

백련교는 현재 무림에서 정사중간(正邪中間)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림의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무심(無心)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선악을 분류하기 힘든 것이다. 그럼에도 백련교의 호교무공(護敎武功)이 강력하다는 사실은 강호에 널리 퍼져 있었다.

오죽하면 홍무제 때부터 백련교를 탄압하려 했으나, 백련교의 교주나 호교사자가 너무 무서운 존재라서 눈치를 보았다는 설도 있을 정도였다. 겉으로 드러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마도팔문과는 달리 암중의 최강자로 손꼽히는 곳이 바로 백련교였다.

' 빌어먹을...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청룡무관주 삼절 이광의 말뜻을 깨달았다.

' 백련교의 무공이라면 나처럼 어린 나이에 고수인 것도 납득이 가능하다는 건가?'

삼절 이광은 자신의 지식 내에서 가장 이성적인 추론을 해낸 셈이었다. 이어진 그의 말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백련교도라면 우리 무관에는 받아들여줄 수 없소."

나는 급히 대답했다.

"저는 백련교도가 아닙니다."

삼절 이광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냉기가 흩날리는 표정도 아니었고 그저 무심한 눈빛으로 이쪽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빨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백련교의 성련(聖蓮)을 복용한 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 나이에 초절정의 공력을 이룰 수가 없소."

"성련이라뇨? 그게 무엇입니까?"

"시치미를 떼는군."

스으으

삼절 이광이 탁자 옆에 있던 자신의 창(槍)을 붙잡았다. 나는 그 순간, 전신의 세포가 맹렬하게 위험신호를 보내며, 정수리에서부터 고간에 이르기까지 직선이 그어지며 그 범위가 따끔따끔 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선명하게 두조각 나는 것 같은 착각에 급히 비명소리를 참으며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섰다.

타닷

하지만 아직 삼절 이광은 창을 잡고 있을 뿐 움직이지도 않은 상태였다. 나는 이마에 땀이 잔뜩 난 상태로 침을 꿀꺽 삼켰다.

' 대... 대체 방금 그건 뭐지? 살기(殺氣)? 하지만 살기라기엔...'

지나치게 현실같았다!

나는 방금 전에 전신이 진짜로 베인 줄 알았던 것이다.

다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살아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있을 뿐.

살기의 영역에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자 삼절 이광은 호오, 하고 자신의 정갈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단순히 성련을 복용한 호교인(護敎人)은 아닌 것 같군. 무형지기(無形之氣)의 범위를 정확히 알아내다니."

"무형지기...?"

"자신의 무기를 이해하는 과정을 넘어, 무기의 마음을 깨닫고, 나아가서는 그 마음을 하나로 하는 것이오. 이걸 이루면 무형지기를 구사할 수 있게 되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삼절 이광이었으나, 그 말투의 내면에 스며들어있는 섬뜩한 무심함과 한기(寒氣) 때문에 이빨이 딱딱 떨릴 지경이었다. 분명히 살기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삼절 이광이 저 창을 한번 휘두르는 순간 내 몸뚱이가 공중분해되어버릴 거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 저 경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검기나 검염같은 거랑은 근본적으로 달라!'

이대로는 죽는다.

삼절 이광은 나를 완전히 백련교도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벤다는 죄책감도 없어보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잠깐! 저는 정말 백련교도가 아닙니다. 증명할 수 있습니다!!"

"증명이라... 어떻게 증명할 생각인가?"

"그건..."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무슨 수를 써서 삼절 이광을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뇌령팔식이나 뇌영검법, 뇌영보를 펼치게 된다면 삼절 이광은 자신의 절기가 새어나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현실적인 장벽 앞에 맞닥뜨리게 되자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이 위험을 감수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청룡무관에 찾아온 것이다.

이 자리에서 베여죽어도 용기를 낼 수밖에 없다!

"... 제 무공시연을 보면 아실 수 있습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되는대로 설득해 보자.

"무공시연이라..."

"여기는 좁으니 바깥에서 보여드리죠."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와룡전의 문을 벌컥 열고 와룡전 앞의 넓은 연무장으로 뛰어내려갔다. 이 곳은 평소에 사범이나 삼선 문하생들이 도열해서 삼절 이광에게 그간의 성취도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휘리릭

그리고는 연무장에 거치되어 있던 창 한 자루를 꺼내들어서 중앙에 섰다. 삼절 이광은 와룡전 문 앞에 서서 흥미로운 듯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 잘 보시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현천도인의 지도 아래에서 헛점을 없애던 때를 떠올리며 서서히, 그러나 한 동작 한 동작에 집중하며 뇌령팔식(雷靈八式)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 장기는 검법이지만, 최강의 창법인 뇌령팔식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쉬쉬쉭!

뇌령관천(雷靈貫天)에서 뇌령고전(雷靈孤轉)의 단계까지 여덟 개의 초식이 마치 구슬에 꿴 것처럼 빠르게 시전되었다. 나는 뇌령팔식을 펼치면서 힐끔 삼절 이광을 보았으나 그는 아직도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창을 다시 거치하고는 이번에는 검을 뽑아들어서 뇌영검법을 더 빠른 속도로 펼치기 시작했다. 이건 내 장기였기 때문에 더욱 자신감있게 움직일 수가 있었다. 뇌영검법이 반쯤 펼쳐졌을 때쯤, 삼절 이광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쿠르릉

마지막으로 뇌운장(雷雲掌)을 연환하며 뿌려대자 연무장에 뇌기(雷氣)가 진동했다. 내 움직임이 회전을 끝내고 마지막 기수식을 잡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는 시연!

"......"

적막과 침묵이 흘렀다. 이 공간에는 나와 삼절 이광밖에 없었다. 삼절 이광은 팔짱을 낀 채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으며, 언뜻 빈틈투성이로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무형지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거나 도망치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삼절 이광이 약 일 각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지?"

아까처럼 단정내리듯 정중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도리어 상당한 분노와 음울함을 내포하고 있는 격정적인 목소리였다. 예상했던 반응이랄까, 보통사람이라면 잠시 후 상대방이 미친놈처럼 덤벼올 거라고 생각해서 얼굴이 하얘질 것이다. 하물며 그게 삼절 이광이라면 어쩌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적어도 백련교도는 아니죠."

"정말인 것 같군. 성련을 먹으면 뇌령(雷靈)을 성취하지 못하니."

삼절 이광은 왠지 씹어뱉듯 말하고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등을 돌리며 갑작스럽게 내게 전음을 보냈다.

[ 한 치의 거짓도 고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나를 따라와라.]

단순히 실토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거움이 담겨있는듯한 말이었다. 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 안으로 삼절 이광을 따라갔다. 나는 약 일 장의 거리를 두고 그를 따라가며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삼절 이광은 뭔가 다르다.

지금까지 내가 봐 왔던 절정고수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는 현재 내 수준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덜컹...

아까 봤던 이광의 방과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광이 문을 열자 그 곳에는 삭막하고 어두운 방이 있었다. 이광은 그 방에 오랜만에 온기를 넣는 듯 아궁이에 약간의 불쏘시개를 넣은 후, 내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거기 앉아라."

나는 혹여 이게 그의 계략인가 잠시 고민했으나 망설임을 지우고 앉았다.

' 수준차이가 너무 나.'

아까 무형지기로 확인했던 이광과 나의 격차(格次)는 내가 생각하던 그 이상이었다. 잘은 모르겠으나 철혈문의 제일장로와 격돌했을 때 이상으로 하늘과 땅같은 차이가 느껴진다. 진심을 다하는 이광과 싸우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테니, 계략같은 게 의미가 없어보였다. 하수인 내 입장에서 이렇게 생각될 정도면 이광이 자잘한 계략을 쓸 것 같진 않았다.

타다닥...

불꽃이 타오르며 방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이광은 마주 의자에 앉은 채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자세히 말해 봐라. 너는 어디서 뇌신류(雷神流)를 터득한 거지?"

뭐?

나는 갑작스러운 명사가 튀어나오자 내심 곤혹스러웠다. 당연히 이광이 자기 무관의 비기를 훔쳐배웠다며 노발대발할 줄 알았는데 [뇌신류]이라는 생전 처음듣는 이름이 튀어나온 것이다.

' 설마 이건 삼절 이광의 창작무공이 아니었단 말인가? 뇌신류라는 별개의 유파에서 분리되었던 것인가!'

혹은 삼절 이광은 자신의 무공을 따로 뇌신류라고 칭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게 이 무공을 전수한 분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삼절 이광을 찾아가라고 하셔서 찾아온 것 뿐입니다."

"죽었다고? 왜?"

"병(病)에 걸리셨습니다."

도박을 걸었다. 삼절 이광을 믿고 천암비서의 전생(轉生)을 곧이곧대로 털어놓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죽어도 죽어도 되살아나는 이야기가 너무 허무맹랑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무림인도 나같은 존재에게 진신절기를 전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거짓말이 걸려서 죽는 한이 있어도 그에게 배짱으로 허세를 걸어볼 생각이었다.

"그 자의 이름은 뭐지?"

통했다!

역시 삼절 이광의 무공은 온전한 창작무공이 아니라, 뇌신류라는 하나의 유파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나는 내심 뛸듯이 기뻤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 그럴수도 있겠군."

씁쓸하게 중얼거리던 삼절 이광이 말했다.

"그럼 내공은 어떻게 해서 성취한 거냐?"

"스승님이 돌아가신 후 천하를 헤매던 중, 황산에서 천년설삼(千年雪蔘)을 운좋게 복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팔목을 내밀어 봐라."

스으

삼절 이광은 내 손목을 붙잡고 진맥했다. 그리고는 내 안에서 날뛰고 있는 웅혼한 내공의 기질을 탐지하듯 눈을 감고 있다가 한참후에 떼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정말이군. 극한(極寒)의 음기가 돌아다니고 있어. 하지만 극양의 기운과 보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건 뭐지?"

"사실 그 옆에 다른 영약이 있었는데 그걸 함께 복용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건가."

삼절 이광은 뜸들이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네 스승은 틀림없이 뇌신류의 전승자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허나 불운하게도 뇌령을 성취하지 못하고 잡병에 걸려서 죽었나 보구나."

"......"

"그렇다면 너와 나는 동문(同門)이다. 네가 나를 다시 스승으로 섬길 마음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내게 구배지례(九拜之禮)를 행해라."

구배지례!

나는 삼절 이광의 말을 듣고 흠칫했다. 얼핏 들으면 동문의 제자를 받아들이는 흔한 의식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이 청룡무관은 그 어떤 제자에게도 구배지례를 강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범들조차도 삼절 이광에게 구배지례를 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진소청만이 정식으로 구배지례를 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즉, 구배지례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돈벌이를 위해서 받아들인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진신절기를 전수할 진정한 전수자로 선택하겠다는 뜻이다. 진소청만이 구배지례를 행한 이유는 그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나는 구배지례를 망설임없이 했다. 아홉 번의 절이 끝나자 이광이 말했다.

"일어나거라. 이제부터 나는 너의 스승이며, 뇌신류를 마저 전승해 주겠다."

"네."

그는 나를 의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하긴 이광에게 진신절기를 친아들처럼 전수받은 것이 진소청이었고, 그 진소청은 3년동안 폐관수련이나 다름없이 나를 가르쳤다. 뇌신류라는 유파가 따로 있다면 그가 나를 의심할 리가 없는 것이다.

"백웅. 이미 네 스승에게 들었을 테지만 뇌신류는 다인전승(多人傳承)이자 경천(驚天)의 무문(武門)이다. 너는 앞으로 가능성이 높으니 성실하게 수련하여 뇌신류의 극(極)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라."

"알겠습니다."

다인전승이며 경천의 무문?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그게 뭔 소리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전승유파라면 스승이 무공을 전수안해도 문파의 역사를 전수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걸 모르고있다는 건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곧 생각을 고쳐먹고는 다시 도박을 걸었다.

"저기... 저는 머리가 둔해서 유파의 역사를 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다시금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하긴 나이가 어리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 보여도 내 외견상 나이는 10대 초중반의 어린아이다. 애라서 잘 기억 못한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 버리면 통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되려 무공부터 캐묻는 게 아니라 자문파의 역사를 알고 싶다는 식이 되자 삼절 이광은 기꺼이 알려주려는 기색이었다.

"백련교(白蓮敎)에 대해서 얼마나 들었느냐?"

"스승님은 백련교를 그다지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오늘 처음 듣습니다."

"그래? 아마 그는 백련교에 대한 원한을 신경쓰지 않는 자였겠군."

"원한요?"

이어진 말에 나는 그만 헛숨을 들이킬 뻔 했다.

"그렇다. 백련교의 호교사자(護敎師者)이자 무문(武門)이었으나 숙청되어 반세기 전에 중원으로 나온 것이 우리 뇌신류다. 강호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겠지만 우리의 뿌리는 백련교에 있다."

"......!!"

"물론 나도 내 스승에게 들은것이라 그들에게 직접적인 원한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뇌신류의 무인(武人)들을 이용해먹고 배신했다는 역사만큼은 반드시 기억해 두어라."

뇌신류!

그것은 백련교의 호교무공을 전승하던 무예문파였던 것이다.

그리고 백련교 내에서 암투가 벌어지면서 중원으로 강제로 내쫓기게 되었고, 생존을 위해서 새로운 문파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전승자들이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선택을 한 듯 했다. 나는 놀라움을 참고 질문했다.

"복수를 하고자 한다면 뇌신류가 뭉쳐서 큰 문파를 만드는 게 낫지 않았습니까?"

"백련교주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들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느니 그저 무예를 수양하면서 조용히 강호에 은둔하고 싶었던 게 선대(先代)들의 생각이었겠지."

그러고보니 무당파의 현천도인도 백련교주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내 가공할 내공을 보고서 감탄할 때, 백련교주만이 나를 내공으로 이길 수 있을거라고 한 적이 있다. 천년설삼을 여러번 먹은 내 내공은 가공할 경지에 깃들어 있는데 비견할 수 있을 정도라면, 백련교주의 가공할 무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련교주는 얼마나 강한 것입니까?"

"백련교주는 200년 전부터 절대무적(絶對無敵)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백련교주가 대대로 전승되지만, 그 모든 교주들은 언제나 중원 정사파의 지존급 고수들을 압도했다. 사실상 백련교의 무공이 천하제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헉..."

그 정도였다는 말인가? 괜히 현천도인이 백련교주 운운하는 게 아니었다!

삼절 이광이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선대의 원한을 깊이 숙고하는 편이다. 네가 만일 백련교도라는 게 확실했다면 나는 너를 아까 그 자리에서 베어버렸을 것이다."

"제가 뇌령을 터득했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뇌룡일기공이 극성에 이르게 되면 만병에 저항력을 지니고 수명이 늘어나게 되며 뇌기의 공능이 전신에 충만하게 된다. 이 경지를 뇌령이라고 하며, 너는 아마 천년설삼을 먹음으로써 뇌령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아..."

뇌룡일기공을 익히고 나서 지속적으로 뇌기가 파직거리며 방출되는 현상. 그게 바로 뇌령이었다는 뜻인가.

"백련교의 성련을 먹은 자들은 가공할 내공을 얻을 수 있으나 뇌룡일기공의 뇌령을 이루는 게 불가능하니, 내가 네 말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성련은 아마 백련교에서 보급하는 영약인 듯 했다. 내가 새로운 지식들을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는 동안에 삼절 이광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네 몸 속에는 뇌룡일기공과는 또 다른 흐름이 있던데 그건 무엇이냐?"

이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속여봤자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현천신공(玄天神功)입니다."

"현천신공! 무당파의 오대신공(五大神功) 중 하나인 현천신공 말인가?"

"네. 진기도인법일 뿐이었지만, 여행 중에 무당파의 기인과 인연이 닿여 익힐 수 있었습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흐음... 현천신공이 있었다면 무당파의 진산제자가 될 수 있었을텐데도 나를 굳이 찾아왔다는 말이냐?"

"네. 스승님의 유지였으니."

삼절 이광은 왠지 뿌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청룡무관이 아무리 크고 흥하는 무관이라고 하더라도 구파일방 중에서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는 무당파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 무당파 장로의 제자가 될 수도 있는 걸 포기하고 자신에게 왔다고 하니 내심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좋다. 오늘부터 너는 나의 직전제자이며, 진소청을 직계사형으로 모셔라. 네 실력으로 보아 우선 사범(師範)의 직위를 줄 것이고, 당분간은 내게 일대일로 배우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나는 이야기가 너무나 잘 풀리자 기분이 좋았다.

어떻게든 삼절 이광의 직계제자로 들어온 것이다!

' ... 뭐, 사실 2번째 죽음 때 복수만 안했어도.'

그 때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하는 바람에 청룡무관의 무공을 깊이있게 배울 시간을 날려버린 셈이다. 나는 온갖 고생을 다 해서 겨우 청룡무관으로 되돌아오게 되자 그 때의 내 행동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얼추 정리되자 삼절 이광은 백련교, 그리고 뇌신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와중에 나는 백련교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백련교는 원래부터 정교(正敎)로써, 대명(大明)을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었으며, 홍무제 또한 그런 백련교에 입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제국을 건국한 후 홍무제는 손바닥뒤집듯 태도를 바꾸어서 백련교를 은연중에 탄압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백련교도를 나서서 죽이지는 않았으나 교세를 확장하려 할때마다 온갖 핑계를 대어서 잡아가두거나 몰아붙였다.

결국 백련교는 비밀결사의 형태가 될 수 밖에 없었으며 대륙 남쪽으로 쫓겨갔다. 소수민족들이 다수 웅거하고 있는 남부는 쉽게 황실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백련교가 홍무제의 맞수였던 진우량의 후예들을 흡수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었다.

삼절 이광이 말했다.

"그러고보니 소청이가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나는 그만 헛웃음이 나올 뻔 했다. 이 근엄하고 냉정하기 그지없는 삼절 이광이 진소청 사범을 애칭으로 부르다니! 그만큼 무관의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그들 사제의 사이가 가깝다는 뜻이었다. 아마 삼절 이광은 무관의 다른 제자를 모두 버리는 한이 있어도 진소청만큼은 챙길 것 같았다.

"저도 사형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그러냐?"

잠시 고민하던 삼절 이광이 말했다.

"그럼 네가 데려오너라. 녀석은 지금쯤 창천검룡과 있을 테니."

"네?"

"개인시간을 뺏어서 미안하지만 새로운 뇌신류의 사제를 대면시키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삼절 이광은 다른 뜻으로 이해했나 보지만, 내가 놀란 건 그런 점이 아니었다.

창천검룡과 함께 있다!

그 말은, 진소청 총사범의 친구가 바로 창천검룡 남궁환이라는 뜻이었다.

그러고보니 남궁환 또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약혼녀를 데리고 관중에 왔다고 했는데, 설마 그게 이런 뜻이었다는 말인가?

아무튼간에 이건 창천검룡을 정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눈을 반짝였다.

"네, 꼭 사형을 데려오겠습니다."

"지금쯤 그들은 관중 육대가 중에서 조가(曺家)에 있을 것이다."

관중 육대가란 관중 일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6개의 상가(商家), 예가(藝家), 무가(武家)를 통칭해서 이르는 말이었다. 그 중에서 조가는 뛰어난 자금력으로 전장(錢場)을 운영하는 상인가문이었다.

"객잔이나 주루가 아니라요?"

"나도 모르지. 소청이가 밝힌 행적은 거기였으니 갔다 오너라."

"네."

쉬익!

나는 청룡무관에서 나서서 빠른 경공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아마 삼절 이광도 내 실력을 짐작하고 있을테니 진소청을 호출하러 부르는데는 문제없다고 맡긴 모양이었다. 나는 지붕 위를 날듯이 뛰어다니며 생각했다.

' 잘됐군 잘 됐어.'

하는 김에 창천검룡 남궁환과, 그의 약혼녀인 모용연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운좋은 날이라는 생각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심부름이 간단한 줄 알았던 것이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