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8화 (2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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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위(錦衣衛)

나와 현천도인은 마을의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마을의 뒤편에 있는 한미한 건물로 들어갔다. 현천도인은 이 버려진 건물에서 더욱 안으로 들어가더니 왠 우물 앞에 섰다. 우물의 뚜껑을 열자 밑으로 향하는 사다리가 있었다. 틀림없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었으므로 나는 현천도인을 바라보았다.

"이건?"

"아마 이 마을은 고귀한 핏줄을 가진 자가 살던 곳이었을걸세. 만일의 경우 지하의 통로를 이용해서 탈출할 생각으로 만들어뒀겠지. 마을의 동향을 살피던 중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비밀통로일세."

"이 지하통로의 끝으로 가면 어디로 나옵니까?"

"어떤 사족(士族)의 저택이 나오네. 물론 거기는 지금 광신도들의 소굴이 되어있지만."

"......"

지하통로를 만들었을 고귀한 신분 일가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익히 짐작이 갔다. 아마 지하통로를 이용해볼 새도 없이 광신도들에게 습격당해서 죽었을 것이다. 여하튼 나와 현천도인은 밑으로 내려가서 화섭자를 이용해서 기름을 먹인 횃불을 켜서 걷기 시작했다. 지하통로는 약 2리 정도 이어져 있었으며 한참 후 올라가는 사다리가 보였다.

덜컹

사다리를 통해 올라가자 적막하게 폐허가 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 피비린내가 엄청나군.'

이 곳은 저택 외곽에 있는 커다란 부엌의 우물이었다. 곳곳에 끔찍하게 늘어붙어있는 핏자국과 살점은 이 곳에서 어떤 살육(殺肉)이 벌어졌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나는 뭔가 값나가는 게 있나 찾아보았는데 금(金)으로 만들어진 새 조각상이 있길래 봇짐 속에 슬쩍 집어넣었다.

"그런거 챙길 때가 아닐세. 광신도에게 들키기 전에 서둘러 나갑세."

"한두 놈이면 때려눕혀도 되지 않을까요?"

"그런 위험을 무릅쓰기에는 마물의 힘이 너무 강하네. 최대한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는 들켜서는 안 돼."

쉬익!

나와 현천도인은 기감을 이용해서 주변을 살피며 부엌에서 나왔다. 저택의 곳곳에는 지난번에 현천도인이 이 통로를 이용할 때 쓰러뜨린 듯, 몇 명의 광신도들이 대가리가 터져서 죽어 있었다. 명백히 무당파 무공에 의한 흔적이었기에 내가 물끄러미 현천도인을 바라보자 그가 헛기침을 했다.

"여긴 광신도가 너무 많았네. 다시 이용할 때 덜 귀찮으려면 제거를 해야했어."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퍼엉!

현천도인이 통로를 막고 있던 광신도 사내 두 명을 보자마자 문답무용으로 격공장(隔空掌)으로 머리를 날려 버렸다. 망설임도 없는 걸 보면 이미 이 마을에 멀쩡한 사람이 없다고 단정내린 모양이었다. 단순한 장력으로 사람의 머리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는 걸 보면 그의 공력도 대단히 높은 편이었다.

"빨리 나가지. 여긴 피냄새가 너무 역하네."

"......"

저택에서 나가던 중에 광신도로 보이는 마을사람들 두세 명이 쟁기와 커다란 식칼을 들고 멍하니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놈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기 전에 재빨리 모습을 숨겨서 들키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 뭐야 저 새끼들? 왜 사람 대가리를 들고 다녀?'

나는 현천도인이 말했던 광기(狂氣)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한 놈은 여자아이의 머리를 소중하게 가슴에 끌어안고 있었으며, 다른 한 놈은 겁에 질려 죽어있는 중년사내의 수급을 허리채에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아니 바깥세상의 윤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들이 걸어다닐 때마다 머리통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멍한 표정으로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광신도들의 표정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약간 토악질이 치밀어오를 것 같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차피 나도 꽤 수라장을 겪어왔기에 이런걸로 정신이 흔들릴 정도는 아닌 것이다. 내가 광신도들의 모습을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자 현천도인이 말했다.

"저 자들은 이성이 있으나 완벽하게 세뇌(洗腦)당해서 대화가 통하지 않아. 외부인을 죽여야 한다는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있네. 마주친다면 망설임없이 없애버리게."

"알았습니다."

"참고로 저 자들은 이상하게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으니, 사지와 머리통부터 날리는 게 좋네."

"......"

나는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고명한 정파의 고수인 현천도인이 사지를 날리라느니 머리통을 날리라느니 하는 소리를 태연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진심이 깃들어 있었기에 나 또한 이 자리가 생지옥(生地獄)이라는 사실을 점차 납득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건물사이에 골목이 많은, 꽤 번화한 마을이었다. 그래서 광신도들을 피해서 빠르게 이동하며 잠입하기에 좋았다. 벽과 벽 사이에 가끔씩 엎드려서 인육(人肉)을 먹고 있는 광인(狂人)들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재빨리 머리통을 밟아서 터뜨려버렸다. 광신도는 적을 발견하면 기괴한 비명을 지른다고 했기에 정 안되면 검을 휘둘러서 머리통을 두세조각으로 쪼개어 버렸다.

마을은 피빛으로 물들어 있다.

쉬익!

"꽤 힘들군요."

나는 푸념을 하며 왠 서점(書店)의 2층으로 숨어들었다. 여기에 있으면 잠깐동안은 광신도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뒤따라서 경공술로 들어온 현천도인이 품속에서 호리병을 꺼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정로수(正露水)인데 힘들면 좀 마시게. 정신력을 회복시켜 준다네."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제 슬슬 제단(祭檀)이 보이는군요."

제단은 지금 숨어있는 서점거리에서 약 일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마을 중앙의 광장에 커다랗게 돌로 만들어져 있는 솟대 모양의 제단이었는데, 솟대 바로 아래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제단이 존재했다. 바로 저기에 피리괴인이 출현한다는 말이었다.

' 광신도들의 완력(腕力)은 정말 대단하다. 아무리 나라도 방심하면 팔다리가 찢길 수도 있겠다.'

광신도들은 딱히 무술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팔다리나 무기를 휘둘러서 공격해온다. 그러나 힘이 엄청나게 셌다. 아까 광신도 머리통을 터뜨릴 때 잠깐 놈의 팔을 잡을 기회가 있었는데, 내 내공을 끌어올린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살짝 근육을 긴장시켜야 할 정도였다.

하나하나가 천하장사급 완력!

저 정도면 산채로 인간의 육체를 찢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닐 것이리라.

고수라고 해도 놈들을 상대로 접근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현천도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제단 쪽을 노려다보며 말했다.

"명심해 두게. 만일 마물(魔物)이 등장하면 싸울 생각을 하지 말고 도망치게. 그건 원래 인간이 상대할만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네."

"그럴 생각입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앉아서 쉬고 있다가 말했다.

"만일 오늘 괴인을 죽이는데 실패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음... 나도 도망칠 생각이네만, 이후에는 관아에 전적으로 맡겨야겠지. 내 영향력을 모두 동원한다면 어쨌든 관군이 움직이긴 할 게야."

"그럼 처음부터 그걸 기다리시면 되지 않았습니까? 왜 이렇게 위험한 시도를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현천도인이 씁쓸하게 말했다.

"관군이 출동하면 이 마을을 토벌할 수 있긴 할 게야. 하지만 마을사람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겠지."

"도인께서는 피리괴인만 죽이면 이 마을 사람들이 광신도에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네. 그들은 피해자야. 이런 악몽에 말려든 건 불행한 일이지만, 그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네. 최대한 살아있는 자들의 목숨은 살려야 해."

"......"

나는 침묵했다.

'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이 마을의 광기(狂氣)를 직접 목격했다. 이미 인신공양을 숱하게 벌였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형제끼리 죽이고, 연인끼리 잡아먹었을 것이다. 만일에 광신도가 되었던 사람들이 피리의 지배에서 풀려난다고 한들 그들이 앞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도리어 살아있는 것 자체가 끔찍한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의지없이 지배당하고 있는 현재가 더 행복할지도 모를 정도로.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굳이 현천도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전력을 기울여도 될까말까하는 위험한 계획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공연히 논쟁을 해서 서로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천도인이 말했다.

"곧 해가 중천에 뜬다."

"좀 더 접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흠... 제단에서 삼십 장(丈)까지 접근해 보세."

"그러죠."

파앗!

나와 현천도인은 빠르게 누각에서 누각으로 이동했다. 마을 심층부로 올 수록 누각의 숫자가 많았기에 잠입하기엔 더욱 편했다. 물론 누각 곳곳에는 어디에 처박혀있었는지 난데없이 광신도들이 튀어나와서 도끼나 칼을 휘둘러왔지만, 그 정도 습격에 당할거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다. 간단하게 하나씩 제압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삼십 장 거리까지 접근하자 제단이 누각 위에서 선명하게 내려다보였다. 나는 제단의 형태를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끔찍하군... 완전히 붉게 물들었군요."

"악마같은 놈들."

현천도인은 새삼 치를 떨었다. 어찌나 인신공양을 많이 했는지, 원래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던 커다란 제단 전체가 붉은 색이 되어있었다. 제단 곳곳에서는 광신도들이 흐리멍텅한 눈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점차 그 숫자가 많아졌다. 아마 정오가 될 때까지 마을에 퍼져있던 광신도들이 천천히 모이는 듯 했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좀 더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무리일 거 같군."

현천도인의 말마따나 이 거리가 최대한으로 보였다. 이 건물 바깥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광신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계획이 시작되면 이 위치에서부터 피리괴인 암살을 시도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때였다.

기잉 -

기묘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마을 광장에 우글우글 몰려있던 인간들의 시선이 모두 한 곳에 집중되었다. 그들의 눈이 가리키는 곳은 바로 정중앙의 제단이었다.

수백 수천 명의 시선이 몰려있는 가운데 드디어 목표물이 나타났다.

' 저 놈인가.'

피리 괴인!

뒤편에서 나타나서 제단 위로 뚜벅뚜벅 걸어오르는 것은 갈색 옷으로 전신을 가리고 있는 자였다. 옷이 얼굴 상단은 물론 팔다리를 거의 다 가리고 있어서 성별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놈은 품 속에서 검은색 피리를 꺼내더니 불기 시작했다.

끼잉 - 기잉 -

"......"

나는 그 피리의 음색이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한 음률이 아니라 마치 귀를 갉는듯, 매우 얇은 기음(奇音)이었기 때문이다. 이 음파를 이용해서 인간들을 광신도로 만들고 통제하는 것이다.

물론 내공의 영향력이 느껴지긴 했으나 지금의 내게는 그저 불쾌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귀를 긁고 있자 현천도인이 나직이 말했다.

"이건 심령(心靈)을 제압하는 음공(音功)일세. 내공을 돋우고 있으면 환술에 걸리지 않아."

"알겠습니다."

"곧 놈이 인신공양을 하려고 칼을 뽑을 때가 올 걸세. 그 때 움직이세."

칼을 뽑는 순간이 피리 불고 있을 때보다 더 약하다는 모순.

그 때 움직여야만 하는 이유.

그것은 현천도인의 경험으로, 피리 괴인이 피리를 불고있는 동안에는 광장에 모여있는 광신도들이 한층 사납고 빠르고 흉폭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피리소리는 광신도를 통제함과 동시에 한층 기민하고 빠르게 강화시켜주는 공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와 현천도인은 놈의 일거수일투족에 엄청난 집중력을 쏟아부었다. 말 그대로 건드리면 터질 것처럼 안력을 돋우었다.

잠시 후 광신도들 몇몇이 [제물]을 가지고 제단 위로 올라왔고, 그 자들은 제단 위에 죽은 생선처럼 올라와서 멍하니 누워 있었다. 피리괴인은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건지 피리부는 걸 멈추고 천천히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서 제물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 바로 지금이다!'

파앗!

나와 현천도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각에서 추락하듯이 뛰어가서 내달렸다. 경공술이 기쾌하게 바람을 가르더니, 마치 용수철같은 탄력을 안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현천도인보다 내가 먼저 땅에 내려서 있었고 그 순간 나는 모든 내공을 담아서 진각(振脚)을 밟았다.

쿠콰콰쾅!!

내 진각이 땅을 때리자 갑자기 발 밑의 땅이 무너지면서 주변에 있던 광신도들이 진각의 충격파에 휩쓸려서 멀리 날아갔다. 한번 광신도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자 도리어 모여있던 게 해가 되어서, 썰물처럼 인간들이 넘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진각으로 단숨에 얼추 오십 명은 날려버린 것 같았기에 순식간에 제단으로 향하는 길이 뚫렸다.

현천도인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 고맙네! 반드시 저 놈의 목을 베어버리겠다!]

현천도인은 내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는 듯 했다. 하긴 아무리 현천도인의 무공이 절정지경이라도 이런 광신도떼거리를 뚫는 건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을텐데 내 천하제일의 내공이 담긴 진각 덕분에 상당한 여유가 생겨난 것이다.

쏴악

현천도인의 절세경공, 제운종이 극성의 성취를 안고 마치 미끄러지듯이 전방으로 폭사되어 나갔다. 현천도인이 삼십 장을 좁히고 피리 괴인의 앞에 서는데는 채 삼 초가 걸리지 않았으며, 피리괴인은 그때 막 칼을 멈추고 등 뒤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현천도인의 최강절기라고 하던 무당파 현천검기(玄天劍氣)가 마치 섬광처럼 피리괴인의 등으로 쏘아져 나갔다. 나는 손을 휘둘러서 뇌운장으로 단숨에 광신도 열 명을 날려버리고 있는 동안에도 현천검기를 확인하자 눈을 부릅떴다.

일렁이고 있다.

푸른 빛으로 넘실대고 있다.

' 검염(劍炎)!'

현천도인 또한 단순한 절정초입을 넘어서 검기를 화염처럼 넘실대게 할 수 있는 검염지경의 고수였던 것이다.

완전히 허를 잡은 상태에서 현천도인의 현천검기가 등을 가르려는 상황!

설령 철혈문의 장로라고 해도 저 상태에서 치명상을 피할 수 없으리라. 내가 그렇게 낙승을 자신하고 있을 때였다.

쓔캉

키잉 - !

"......!!"

나는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피리괴인 옆에서 왠 검은 옷의 사내가 2명 나타나더니, 그 찰나지간에 마주 검을 휘둘러서 현천도인의 현천검기를 차단한 것이다.

"크윽."

"과연."

하지만 그들로서도 꽤나 의외의 습격이었는지 1대2의 상황인데도 흑의사내 2명 쪽이 입가에서 한줄기 피를 흘리며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세 발자국을 물러난 후에야 그들은 중심을 잡을 수 있었는데, 이미 흑의사내 한 명이 피리괴인을 자기 등 뒤로 물려놓은 후였다.

"아니?!"

현천도인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지금 현천도인이 우위를 잡았으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전력을 담은 현천도인의 습격을 고작 두 명이서 막아냈다는 것!

그것은 저 흑의사내 2명의 무공이 일류를 훨씬 뛰어넘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그들이 검염(劍炎)을 막아낸 수법은 말로만 듣던 합격술(合擊術)이었다.

두 사람의 내공과 역량을 합쳐서, 그들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고수를 효율적으로 상대하는 무공! 강호의 명가(名家)에서 한정적으로 전수한다는 비전 중의 비전수법이 눈 앞에 펼쳐진 셈이다.

오른쪽에 서 있던 흑의사내가 자기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코피까지 나는 걸로 봐서는 개인적인 실력차이가 현천도인과 꽤 나는 모양이었다.

"역시 왔군 현천도인. 급히 파견명령이 떨어지길래 무슨 일인가 했는데 설마 무당파 서열 10위 내에 들어가는 절정고수가 올 줄이야."

"네놈들은 누구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왼쪽에 서 있던 사내가 했다.

"이런 일로 마주치게 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오. 당신들은 이 자리에서 결코 살아나갈 수 없소."

크오오오오 -

우와아아아악 - !!

그리고 내가 혼란 중을 틈타서 날려버리고 있던 광신도들이 서서히 광기에 물들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피리의 효과가 끊겨서 실끊어진 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는데, 흑의사내 등뒤에 숨은 피리괴인이 다시 피리를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한층 강화된 광신도들과 죽기 직전까지 싸워야 한다!

그것도 천 명 단위의 미친놈들과!

' 이런 개씨발!!!'

나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물론 내가 쉽게 광인들에게 잡혀죽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저 앞쪽에 있었다.

끼리리릭...

쉬쉬쉭...

[ ^@*#^*&!*$!&^$^&!$^&.....]

또한 영문을 알 수 없는 괴음(怪音)을 내면서 부정형(不定形)의 마물이 일어섰다.

현천도인을 막고 나선 두 명의 흑의인 뿐만 아니라, 스멀거리면서 마물(魔物)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물의 형체는 무려 2장이나 되는 몸뚱이를 가진 액체같은 괴물이었는데 전신에 수백개의 눈과 촉수가 달려있어서 흉악스러웠다. 끼룩대며 움직이는 동안 어둠의 기운이 퍼져나온다.

"빌어먹을! 튑시다!!"

나는 비명을 지르듯 현천도인에게 외쳤다. 현천도인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그 자리에서 뛰어서 내 쪽으로 왔다. 그러자 흑의인이 냉소(冷笑)를 지었다.

"현천도인이란 걸 알았는데 우리 두 명만 왔을 거 같은가?"

슈슛!

까강

나와 현천도인이 높은 누각에 뛰어올라서 태세를 정비하려고 할 때, 갑작스럽게 경공으로 마주 나타나서 검을 휘두르는 흑의인들이 있었다. 그 숫자는 총 여덟 명이었는데 그 중에는 기문병기(奇門兵器)를 가진 자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자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정예로 훈련받은 무술인들!

현천도인이 노갈을 터뜨렸다.

"이 사악한 놈들!!"

동시에 현천도인의 검염이 허공에 뿌려졌다. 유형화된 검기가 마치 질풍처럼 쏘아져서 그들 중 두 명의 목을 날려버렸고, 현천도인이 화풀이를 하듯 내뻗은 일 장(一掌)이 한 놈의 가슴팍을 내려앉혔다.

순식간에 3명을 격살해버린 현천도인이었지만, 다음 순간 3명의 고수가 합공해 오자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고작 3명이서 현천도인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까강! 카앙!

너무 충격적인 광경이라서 순간 나는 넋을 놓았다.

' 뭐... 뭐야? 어디서 저런 고수들이 나타난 거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현천도인을 상대하는 세 명의 흑의인 중에서 한 명은 검기(劍氣)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강호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절정고수가 다른 일류고수들과 함께 현천도인을 공격하고 있는 셈이었다.

"큭."

"네놈은 우리가 죽여 주마."

그리고 내 앞에는 두 명의 흑의인이 다가와서 포위했다. 나는 상대방의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들을 사납게 노려보다가 검을 잡았다. 둘 중 한 명이 기문병기 철동(鐵銅)을 던져서 내 머리통을 노렸지만 나는 품속의 단도를 꺼내서 쇠사슬을 감기게 만들었다.

"아니?"

퍼억

"내가 만만하게 보이냐!"

놈이 당황하고 있을 때, 달려들어서 앞발차기로 다른 놈의 가슴을 뭉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철동을 쓰는 놈에게 재차 돌진해서 검격(劍擊)을 날렸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동안 너무 발리고 다녔기 때문에 이번 공격이 안먹히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강했다.

콰광

"아아아악!!"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철동을 쓰던 놈은 정면으로 내 공격을 받으려다가 갑자기 검날에 맺힌 뇌령지기(雷靈之氣)에 당해서 폭발했다. 상체가 육편이 되어서 날아가며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놈도 이류에서 일류급 고수로 보였는데 내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려다가 뼈도 못 추린 것이다.

한놈에 한방!

내가 2명을 처리해 버리자 현천도인을 상대하던 3명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아, 아니."

"저 놈은 누구냐?"

나는 이런 자리에서 통성명이나 하고 자랑질할 때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있다. 괜히 무림인 특유의 똥같은 멋을 부리려다가 탈출할 기회를 잃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늑대처럼 달려들어서 검격을 몰아쳤다.

' 이새끼들 뒈져라!'

까강! 깡!

쇠가 연신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나와 현천도인은 둘이서 3명을 상대했는데, 힘의 균형은 이쪽으로 넘어와 있었다. 게다가 흑의인들은 뜻밖의 사태에 당황했는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 했다.

"하압!"

쉬칵

"커억."

현천도인은 기회를 보다가 재빨리 제일 약한 놈 하나에게 검염을 날려서 즉사(卽死)시켜 버렸다.

"이런 제길..."

그러자 검기를 쓰던 흑의인 절정고수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부하를 데리고 누각 밑으로 뛰어내려가서 퇴각해 버렸다.

쿠웅... 쿠웅...

그 때 마물들이 우리를 인지했는지 둔중한 몸체를 움직여서 오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눈과 촉수가 데굴데굴 움직이면서 점차 영활해지는 모습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현천도인이 급히 말했다.

"저 놈들은 갑자기 속도가 빨라진다! 얼른 도망쳐!"

"제기라아아알!!"

나는 비명을 지르듯이 현천도인과 함께 누각 위에서 뛰어내렸다. 동시에 쾅, 하는 폭음과 함께 무려 6층에 이르던 전각이 한순간에 괴물의 몸통박치기에 붕괴해 버렸다. 파괴의 바람을 타고 현천도인은 재차 허공에서 한 번 더 발을 딛었고, 손을 내게 뻗었다.

타앗

쿵! 쿵! 쿵! 쿵! 쿵!

나와 현천도인은 뒤에서 마물 세 마리가 인간이고 건물이고 아랑곳하지 않고 모조리 부숴버리며 우리를 추격하는 소리를 들었다. 말 그대로 젖먹던 힘까지 다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얼쩡거리던 광신도들은 마물에게 짓밟히면 흔적도 없이 개박살나 버렸다. 실로 달리는 파괴마(破壞魔)였다.

쿵! 쿵! 쿵! 쿵! 쿵!

"으아아아아악!!"

나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끔찍하게 공포스러운 도주에 속에서 토가 치밀어올랐다. 처음부터 예감이 안 좋긴 했지만, 설마 꼬여도 이렇게 꼬일 줄이야! 그리고 현천도인이 '마물'을 인간의 힘으로 상대할 수 없다고 한 것도 내심 이해가 갔다.

쿠콰콰콰쾅

다시 한 번 마물의 몸통박치기에 커다란 전각이 붕괴했다.

거대한 먼지바람이 마을을 감쌌다.

"억, 으억, 안돼애애애애!!"

나는 단말마를 내질렀다.

.......

마지막 기억은 너무나 찰나동안 마물의 몸통박치기에 전신이 찢겨져 나가는 것.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의식이 사라졌다.

그것이 나의 4번째 죽음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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