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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위(錦衣衛)
무시무시한 고통!
호흡의 단절!
혀가 꼬부라진다.
"꽤애애애애애액!!!"
나는 순간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는 자기자신을 발견했다.
"... 읍!!"
하지만 나는 급히 그 목소리를 최대한 가라앉히고, 전신에서 활화산처럼 뛰어다니는 내공을 억지로 부여잡았다. 나는 재빨리 주변의 광경을 바라보았고, 이내 내공을 가라앉히고는 뺨과 코, 목젖을 한 번씩 꼬집었다. 고통이 느껴지자 나는 전신에 힘을 빼고 다시 외양간에 드러누웠다.
"......"
또 다시 나는 10세 초중반 무렵의 외양간에서 밤중에 드러누워 있었다. 새벽이슬을 막기 위한 짚단더미에서 한기가 흘러나온다. 나는 그 한기마저도 그리워져서 조용히 다리를 웅크리고 짚단벽에 기대었다.
"하아..."
운 좋다.
나는 정말 운이 좋구나.
기쁨의 눈물이 한방울 뺨을 타고 흘렀다.
이번에 나는 죽음을 감지하고, '고문'당해서 숨이 붙어있을 가능성을 최대한 피하려고 마음먹었다. 그 상황에서 철혈문주의 비무강요를 거절하고 도망칠 경우, 철혈문주의 성격상 나를 고문해서 최대한 괴롭게 죽이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문을 받을 경우 내가 천암비서에 대해서 실토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래서 일부러 비무를 받아들이고 최대한 하는데까지 싸우다가 죽은 것이다. 적어도 싸우다 죽으면 나를 살려두며 능욕할 수는 없을테니까. 몇 번 죽어보다보니 죽는다고 생각해도 나름대로 마음의 대비를 할 수 있었다.
다만 이건 전부 '운'의 영역이었다.
천암비서로 총 2번을 역행했었지만, 3번째도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왜냐하면 천암비서의 내용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쯤은 도박을 하는 마음으로 짚을 지고 불속에 뛰어든 셈이다. 내가 다시 역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덤으로 죽을 때의 고통을 죽이기 위해서 일부러 호흡법으로 내공을 끌어올려서 저통증을 유도했다. 목을 베어주는 자가 절정고수라서 깔끔하게, 순식간에 베였기에 고통이 적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통때문에 발광하지 않고 비명소리를 참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픈 정도로 치자면 채찍으로 목젖을 맞은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운이 좋았다.
이렇게 되돌아왔고, 내공도 그대로이다.
게다가 망량에게서 배웠던 학식과 기문진법, 환술지식도 있으니 훨씬 나아진 셈이다.
"......"
하지만 나는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너무 우울해져서 할 말이 없었다.
' 빌어먹을. 결과적으로 쌍문사가 중에서 하나도 쓰러뜨리지 못했어.'
그리고 황궁 내부에 들어가서 무명제사서를 가지고 나온다는 게 얼마나 허황스러운 난이도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망량은 내가 절세고수(絶世高手)라고 상정하고 계획을 짠 듯 했으나, 실제로는 나는 검염을 시전하는 절정고수를 이길 수가 없다.
또한 나를 삼백오십초만에 베어죽인 귀영검객이라고 하더라도 금의위 10명을 상대로는 죽고 만다. 고작 10명이서 그 괴물같은 절정고수를 죽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금의위의 평균무력이 소름돋을 정도로 높다는 걸 의미했다.
황궁 내부에는 그런 금의위가 30명도 넘게 돌아다니고 있고, 뿐만 아니라 수시로 기문둔갑으로 침입자를 가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창(東廠)의 첩형급 고수들도 경비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슨 미친 생각을 했었냐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 안 돼. 지금 이 힘으로는 택도 없다.'
무명제사서를 가지고 나오는 건 현재로써는 불가능하다.
천하제일의 대도(大盜)라고 해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다른 초절정고수들을 우습게 볼 수 있는 천하제일, 천하무적의 절대고수쯤 되어야 시도해 볼 수 있을까?
차라리 그 시점에서 빨리 죽고 주제파악을 한 게 나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흐음... 그래도 소득은 있지."
나는 이번 전생(轉生)에서 얻게 된 걸 머릿속에서 정리하며 희미하게 웃을 수가 있었다.
첫째. 천년설삼의 내공을 얻었다.
둘째. 서생급 지식을 얻은데다 기문둔갑 지식도 얻었다.
셋째. 황궁의 지도를 머리속에 넣었다.
넷째. 절정고수와의 사투(死鬪) 경험을 얻었다.
다섯째. 무림의 명문(名門)은 피한방울 없는 개새끼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다섯번째가 마음속에 박혀들었다.
나는 자책했다.
"빌어먹을. 나는 아직도 병신이야."
얼마나 순진했던가.
아마 쌍문사가의 6대문파 중 누구에게 가서 비무신청을 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더럽힌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비를 건 시점에서 병신이 되거나 죽을 운명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낭인이 비무행을 통해서 자신의 실력을 상승시킨다는 건 소설(小說)에서나 나오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실전경험을 쌓고 싶으면 실전을 겪어야 한다.
실전에서 상대방을 확실히 죽여버리는 상황까지 몰아넣어야 후환(後患)이 없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는데 내가 그 동안 무림의 꿈에 취해있었던 듯 싶었다.
나는 다리를 잡고 쪼그려앉은 상태로 계속 머리를 굴렸다.
이번 일로 절정고수의 실력과, 나의 실력차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걸 좁히고자 한다면 최소 10년 이상의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도 본인의 입에서 들었다. 그럼 이제 무술수행을 10년 하기만 하면 나도 절정고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 도대체 어떻게?
혼자서 초식만 주워삼기면서 세월아 네월아 허공을 보고 검만 휘두르는 건 실력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부족함을 지적하면서 향상시킬 점을 조언해줄만한 존재가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목숨걸고 매번 비슷한 실력자와 싸우면서 스스로 개선해나가야 하는데, 이건 목숨이 몇 개 있어도 모자란 위험한 행위라는 걸 이번 죽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사투를 하는데 깨달음을 얻어서 강해지면 편리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없다.
그렇다고 안전빵을 추구하기 위해 하수(下手)들을 두드려팬다고 해서 실력향상이 있을 리가 없다. 내가 그렇게 싸우기 시작한다면 그냥 내공믿고 일류이하의 고수들을 두드려패는 식이 될텐데, 이런 싸움법을 연마해봐야 진정한 절정고수 앞에서는 소용없다는 걸 또 이번에 깨달은 것이다. 임검당주 교준 정도에게는 통하겠지만 철혈문 장로급 앞에서는 얄짤없다.
나는 계속해서 생각해 봤지만 역시 '스승' 밑에서 수련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뛰어난 스승 밑에서 가르침을 다 받아먹고, 그 이후에야 독립해서 자기류를 수련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 천년설삼의 내공을 받아먹은 후에 너무 기뻐서 까먹고 있었던 듯 싶다.
생각해보면 내가 제대로 무공을 배운 것은 3년에 불과하다. 그 동안 빡세게 배우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그냥 대충 실전에 맞게 주워섬긴 것이고, 무예의 향상이랄만한 건 없었다. 내공만 엄청 늘어난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청룡무관에 가야 한다.
그 곳에 내 스승이 있다.
내가 지금 익힌 무공에 가장 알맞고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스승이!
결론이 도출되었지만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대체 어떻게 하지?"
지금 내가 청룡무관에 들어간다고 하는 건 언어도단의 극치이자 무시무시한 위화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청룡무관의 비전무공과 비전내공을 모두 익히고 있으면서도, 천년설삼의 무시무시한 내공을 한 몸에 보유하고 있는 10대 초반의 어린아이가 뜬금없이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내가 청룡무관주 삼절 이광이면 기겁을 해서 쫓아내거나, 자기 손으로 죽이려 들 것이다. 그 정도로 지금의 나는 기괴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세 번째의 전생(傳生)이지만 고민은 더욱 깊어져있었다. 나는 찝찝한 기분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은 해야할 일부터 해야지."
내가 해야할 일.
아니 - 해야만 하는 일.
그것은 두 가지다.
첫째. 동굴에 가서 천암비서를 얻는다.
둘째. 황산에 가서 천년설삼을 얻는다.
' 둘 다 해내면 한 달 정도 걸리려나? 뭐 아무렴 어때.'
타닷
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촌장네 집을 등지고 동굴을 향해 경공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 힘이라면 촌장일가를 싸그리 죽여버리는 건 여반장(如反掌)이지만, 도리어 너무 쉽다고 생각하니까 당장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 음...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거 같은데... 뭐였지.'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 시점에서는 내가 뭘 잊고있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딴 생각에 골몰해 있었기 때문이리라.
동굴에 도착하는데는 2번째 전생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걸렸다. 뛰는 속도가 적어도 3배는 빨라진데다가 체력도 지치지를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새벽을 지나서 아침 해가 막 떴을 때 쯤에는 동굴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번에 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구리방패를 굳이 사지 않았다. 그 대신에 길가에 있던 큰 돌멩이를 몇 개 들고왔다. 그리고는 천암비서를 지키고 있는 화살 기관장치를 통과하기로 했다.
"굳이 힘들게 막을 필요는 없지. 화살이 어디서 발사되는지는 알아."
나는 중얼거리며 짱돌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먼 거리에서 화살 발사장치가 있는 곳으로 던져버렸다. 막강한 내공이 실린 짱돌은 그 자체로 인간의 몸을 관통할 수 있을 정도의 물리력을 지니고 있었다.
콰앙!
그러자 벽이 부숴지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화살발사장치가 뭉그러지는 게 눈에 보였다. 간편하게 함정을 돌파한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굉음이 나며 발바닥이 떨렸다.
쿠르르르릉
"... 헉! 이런 젠장!!"
나는 이게 동굴이 무너지는 신호라는 걸 알아채고는, 급히 달려들어가서 상자를 품안에 안고 동굴을 뛰쳐나왔다. 경공을 발휘해서 맞은 편 절벽으로 뛰어오르는데 성공했다.
잠시 후 동굴의 입구까지 다 무너져서 돌무더기가 절벽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상자에 들어있는 천암비서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 다행이다. 큰일날 뻔 했네."
이 방법은 앞으로는 쓰면 안될 것 같았다. 귀찮더라도 짱돌이나 구리방패를 써서 화살을 막아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지금도 간발의 차이로 동굴을 빠져나온 셈이니 섣불리 시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천암비서를 얻자 상자를 땅에 묻은 후, 책을 옷의 안주머니에 꽁꽁 싸매어넣었다. 결코 몸에서 떨어뜨려서는 안되는 것이므로 앞으로도 어떻게든 가지고다닐 생각이었다. 나는 곧장 황산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청룡무관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닥치고 천년설삼이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룡무관에서 배울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다가, 그걸로 망설이는 시간에 천년설삼으로 내공부터 얻으면 좋기 때문이다.
"자, 가자!"
즐거운 황산여행은 이제 3번째였다.
터벅 터벅
나는 처음에는 걷다가 도중부터 시간나는대로 뛰기 시작했다. 황산까지 가는 길은 매우 멀고 지루했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도 산중의 동물을 잡아먹고 계곡에서 몸을 씻고 풀뿌리를 캐어먹는 생활은 여전히 해야 했다. 노숙을 하면 허리가 너무 배겨서 싫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황산에서의 산중생활 덕에 이 작업에 매우 익숙해 있는데다가, 내공이 높아져서 사냥능력이 훨씬 좋아졌다는 점이다. 야생동물을 도구없이 사냥해도 10번에 8번은 성공할 정도라서 예전처럼 아사직전의 상태로 산을 헤매고 다니지는 않게 된 것이다.
타다닥...
황산을 도보로 하루거리 정도 앞둔 어떤 산에서 나는 개구리를 구워먹고 있었다. 도보로 하루거리니 서둘러서 뛰기 시작하면 아마 2시진 내에 황산에 도착할 것이고, 천년설삼이 있는 비경(秘景)으로 가는데 3시진이 걸린다. 실질적으로 '내일'이면 다시 천년설삼을 먹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내 옷은 벌써 다 헤져 가고 있었지만 그런 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지금 신경쓰이는 건 이게 독개구리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잡아서 먹긴 먹어야 하니 불로 가열부터 해 보는 중이었다.
침을 꿀꺽 삼킨다.
배가 너무 고프다.
이걸 먹고싶다...
독개구리를 잘못 먹으면 전신의 신경이 마비되고 얼굴이 보랏빛이 되어서 죽을 수도 있다. 예전에 황산에서 살 때 독개구리를 먹는 바람에 죽을 뻔 했었는데, 지나가던 마을사람이 해독초를 먹여서 살려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사람은 약제사라서 내게 필수적인 지식을 알려줬다.
' 독개구리는 불로 가열하면 배가 팽창한다고 했지?'
나는 침착하게 개구리를 지켜봤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뽈록 하고 배가 튀어나왔다. 이건 먹으면 죽을수도 있는 독개구리인 것이다. 나는 실망해서 개구리를 꽂은 꼬챙이를 아무데나 던져 버렸다.
"에이 시부럴."
오늘은 또 굶어야 한다.
뱀이 다가오지 않도록 근처에서 구한 석면을 잠자리 주변에 뿌리고 나서 야숙을 시작하니 밍숭맹숭한 기분이 들었다. 코 끝이 약간 찡했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역행을 한다면 나처럼 온갖 개고생을 하며 살까?
나만 희한하게 병신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인생 편하게 살려고 이 짓을 하는 게 맞긴 한 건가?
...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생각해봤자 답이 안 나오는 일이라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찌르륵 찌르륵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그렇게 3번째 전생, 천년설삼을 2번째 먹기 전 날의 밤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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