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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2화 (2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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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룡출도(雷龍出道)

나는 다음 날부터 쌍문사가에 도전할 준비를 착실하게 시작했다. 우선 점소이에게 들은 정보대로 쌍문사가의 위치를 확인했고, 쌍문사가에 존재하는 명성있는 고수들의 이름도 대충 필기했다. 점소이는 뭐 그리 아는 게 많은지 돈을 주니 마치 십 년은 굴러먹은 무림인처럼 정보를 좔좔 풀어내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

내가 신기해서 그에게 묻자, 그는 킬킬 웃었다.

"거, 살면서 무림인들 얘기는 늘 신기하고 재밌잖습니까. 그리고 쌍문사가는 평판이 나쁘지도 않아서 쌍문사가의 고수를 흠모하는 낙양 사람도 꽤 많습니다. 저도 관심이 있어서 이따금 찾아듣는 정도이죠."

"그러고보니 개방도 낙양에 있는가?"

점소이가 손사래를 쳤다.

"아이구. 사람 사는 곳인데 개방이 없는 곳도 있습니까? 창흠 거리를 지나서 외진 굴다리 밑에 거지들이 돌아다니면 개방고수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외에도 개방고수들은 낙양의 뒷골목을 이따금 돌아다니는 편입죠."

나는 잠시 고민했다. 점소이에게 돈을 주고 얼추 대충의 정보는 얻었지만, 개방을 방문해서 더 자세한 정보를 구입하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정보는 돌고도는 것이기 때문에, 개방을 함부로 이용하다가는 나중에 뒷꼬리가 잡혀서 귀찮아질 수도 있었다.

' 개방은 일단 미뤄두자. 일단 쌍문사가에 한 번쯤 도전해본 다음에 필요한 정보만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밥을 시켜먹고는 시내로 나왔다. 그리고는 무기점을 찾아서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거리는 상권(商圈)이 구분되어 있어서 주루와 유흥가, 그리고 각종 상점이 종류별로 차려져 있었다. 내가 찾는 무기점은 객잔거리에서 대략 3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무기점에 들어가자 제법 휘황한 내부장식이 눈에 띄였다. 한 눈에 봐도 가난뱅이가 들어오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이는 곳이었다. 당연히 무기도 비쌀 게 뻔했기에 내가 슬며시 다시 나가려고 하자, 가게주인이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덥썩

"아이고 손님, 물건이나 한 번 보고 가시죠~"

"... 하하, 그리 돈이 없어서."

"저희가 취급하는 물건은 관(官)에서도 자주 구입해 갑니다. 후회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그 말을 듣자 그냥 구경이나 하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진열된 무기들을 구경했다. 낙양은 무사(武士)와 무문(武門)이 많은데다가 치안이 불안한 곳도 많기 때문에 평민이라고 해도 허가를 받으면 무기를 소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원래는 허락되지 않는 이런 무기점도 융성하고 있는 듯 했다.

' 흠... 창(槍)은 반드시 한 자루 있어야겠지. 그리고 장검의 날이 다 떨어졌으니 한번쯤 갈아야 해. 덤으로 단검도 하나 있으면 편하겠는데.'

하지만 내 생각대로 주문해 보자, 무기점 주인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시면 은자 30냥 하고 50푼 정도가 나오실 겁니다."

"......"

"조금 깎아드리자면 25냥까지 가능합니다."

무기점 주인이 급히 덧붙였지만 나는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표사가 일년 내내 돈을 모아도 사기가 힘든 수준이 분명했다. 좋은 무기가 비싸다지만 무기점 주인이 대충 가격을 후려치는 느낌이 들고 있다는 것도 싫었다. 나는 미련없이 그 무기점을 나와서 다른 곳을 돌아다녔지만 다들 비슷비슷했다.

' 제기랄. 이 놈들, 가격담합을 하고 있군. 어디를 가도 가격이 비슷하다니.'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어차피 좁은 장소에 밀집되어서 같은 업종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면, 무한가격경쟁을 하는 순간 다같이 망해버린다. 무기점 주인들은 그걸 피하기 위해 적당한 선에서 짜고 가격담합을 해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저 가격은 무사들을 충분히 등쳐먹을 정도로 부풀어올린 뻥튀기가격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약간 곤란함을 느꼈다. 나는 지속적으로 여행을 하면서도 한 자루의 장창(長槍)과 검(劍), 단도(短刀)를 늘 기본무장으로 갖고 다녔다. 그러나 망량 밑에서 3년간 공부를 하다보니 장창의 자루가 썩어버려서 임시변통으로 진랑곡의 허접한 나무창을 갖고다니게 되었다.

진랑곡에 사는 대장장이가 만들다 만 걸 대충 나눠준 나무창이었는데, 어찌나 허접한지 위병이 창을 보고도 별일없겠다 싶어서 통과시켜줄 정도였다. 이건 몇 번 쓰다보면 아마 부러질 것이다.

게다가 자주 쓰는 장검도 날이 많이 빠져 있다. 내력을 많이 불어넣어서 싸우다 보면 백발백중 부러질 게 뻔했다. 이렇게 무기상태가 불안해서는 결코 쌍문사가같은 명문(名門)의 일류고수들과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 흠 씨발... 어쩔 수 없군. 그냥 도전하는 김에 그쪽에서 무기를 빌려야겠다.'

사실 이 생각은 그 자체로 무인(武人)이 할만한 생각이 아니다. 자신의 무기를 목숨처럼 아끼고 소중히 다루는 게 기본적인 자세이며, 적지(敵地)에 들어가서 대련용 무기를 빌려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비웃음을 당하기에 충분한 일인 것이다. 하물며 쌍문사가처럼 유서깊은 대문파에서는 어떤 비난을 들을지 몰랐다.

하지만 무기에 너무 많은 돈을 써버리면 앞으로의 운신 자체가 힘들어진다. 약간 치욕스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군자금을 아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정 안되면 낙양에 있는 표국에 가서 표사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가능하면 낙양에 흔적을 많이 남기는 게 나중에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날 쌍문사가 근처를 돌아다니며 점소이에게서 들은 정보가 맞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철혈문(鐵血門)과 태검문(太劍門)을 확인하자 약간 기가 질렸다. 아무리 크더라도 일개문파의 수준일 줄 알았는데, 아예 천여 장에 이르는 장원을 문파의 영지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가(四家)의 경우 저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리 문파의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대략 수십 명이 살 수 있는 수준으로 보였다. 딱 무림세가 다운 규모라고 할 수 있었다.

와글와글

그러나 철혈문 근처에 가니 돌아다니는 하급제자의 숫자만 수백 명이었으며, 와글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마치 시장바닥같았다. 태검문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건 정말로 놀라운 일일 수밖에 없는게, 낙양에서 집을 한 채 갖고있기만 해도 먹고살만하다는 뜻인데 수백 장짜리 영지를 갖고있다는 건 무시무시한 성세를 상징했다. 아마 철혈문주나 태검문주는 낙양 내에서도 손꼽히는 떼부자일 것이다.

' 화산파나 종남파라고 해도 낙양성 내에 손을 댈 수 없다는 게 이해가 가는군...'

철혈문이나 태검문이 저렇게 융성하는 이유는 짐작이 갔다. 다른 사대가문인 장서이한(長徐李韓)은 혈연단위로 이루어진 무림세가이므로 외부출신의 제자를 두기 힘들 것이다. 물론 문하제자로 받아줄 수는 있겠지만 문파의 규모를 늘리기가 힘든 편이다. 섣불리 가전무공을 노출시키게 된다면 배신당했을 때의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혈문이나 태검문은 그저 문주를 정점으로 해서 세를 불리는 걸 목적으로 하는 문파였으므로 별다른 제약 없이 규모를 늘릴 수 있었다. 마치 청룡무관처럼 하급무공을 미끼로 상급무공을 전수한다고 하는 낚시질도 대규모로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낙양무림의 패권을 쌍문사가가 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낙양의 인재들이 마치 벌처럼 몰려들 게 뻔한 것이다.

새삼 나는 내가 하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런 거대문파에서 간부진으로 군림하고 있는 고수들의 실력은 얼마나 높을까? 수백 명이나 되는 문하제자들을 무리없이 통솔하고, 구파일방의 간섭도 물리칠 정도로 굳건하려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불가능했다. 적어도 나같은 어중이떠중이 따위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 몰려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철혈문주나 태검문주를 쓰러뜨려야 하는 게 아냐. 내 실력을 절차탁마하기 위해서 비슷한 수준의 무림인과 싸울 기회를 얻으려는 것 뿐이다.'

그 날의 탐색을 끝내고 돌아와서 객잔에서 조용히 뇌룡일기공을 운용했다. 아주 간만에 제대로 대주천(大周天)을 돌리는 것이라서 긴장되었다. 그 동안은 그저 내공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고 깊은 집중상태가 필요없는 소주천 행공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소주천과 달리 대주천은 그 자체로 내공의 절대치를 늘리고 혈맥에 진기를 퍼지게 하는 수련이었다. 대주천 행공을 할 때는 깊은 집중상태에 들어가므로, 이때 습격을 받는다면 무공의 고하에 관계없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어있기에 함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우우웅

"......"

나는 내단(內丹)이 마치 황금빛으로 들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주천의 기운에 따라 정수리까지 한차례 기운을 올렸다가 내리자, 피부가 잡아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심장 근처에서 기가 요동쳤다. 나는 한참동안 거대한 기운을 통솔하기 위해서 미간을 모으고 집중했는데, 마침내 한참 후에 기운이 벼락처럼 단전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웅!

전신에 둔중한 충격이 밀려왔다. 하지만 고통은 없었고, 나는 지금까지 막혀있던 혈맥 중에서 상당부분이 뚫렸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루하루 진보하는 느낌 때문에 수련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 이제 내 내공은 어느정도 수준일까?'

망량이 말하기를, 자신이 보았을 때 내 내공은 구파일방의 종주(宗主)와 대등한 수준일 거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그는 별다른 무공을 수련하지 않은 일반인의 몸이기 때문에 내 수준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고 자신없게 말했다. 결국 내 실력이 어느정도인가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나와 유사한 경지에 오른 무림인 뿐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 최초로 도전할만한 건 사가(四家)가 아냐. 쌍문(雙門)에 먼저 도전해야 해.'

그 이유는 좀 복잡했다.

만일 장서이한 4대가문에 먼저 도전해서 승리할 경우, 그들은 명예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사실을 묻어버리려고 암계(暗計)를 쓰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나와 싸우는 건 어쨌든 간에 가문의 혈육(血肉)이므로 패배했을 때의 원한이 더욱 클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세가라서 고수의 숫자가 적은 대신에 실력편차가 크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내가 상대할 수 없는 절정고수가 튀어나올 가능성도 크다. 내 실력이 어설픈상태인 지금은 사가와 함부로 비무행을 하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쌍문은 다르다. 숫자가 많은만큼 수준이 골고루 분포되어있을 것이고, 뭐니뭐니해도 이득을 위해서 제자들이 결집된 연합체이므로 어느정도 중립적일 가능성이 크다. 명예에 민감한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이지만, 숫자가 많은만큼 누군가가 질 경우 해당인물을 '패배자'로 치부할 가능성도 컸다. 후환까지 생각하면 쌍문도 만만치 않겠지만 우선적으로는 쌍문과 겨루고싶어진 것이다.

물론 이건 전부 내 머릿속의 생각일 뿐이다. 실전으로 들어가면 어떤 상황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잡념이 미친듯이 솟아오르는 걸 한순간 가라앉히며 다시 뇌룡일기공을 운용했다. 일단 무(武)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상 어떻게든 승부에 이기고싶다는 욕심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새벽에 기상해서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그리고 낙양에서 가장 많은 무관(武官)을 배출한다는 전통의 명문, 철혈문(鐵血門)의 현판 앞으로 갔다. 동이 트기 전에 찾아간 것이라서 무관의 현판 앞에는 철혈문의 제자 두 명이 반쯤 졸린 눈으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넌 누구냐?"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는 백웅(白熊)이다. 철혈문에 비무를 신청하러 왔다."

"... 비무? 크크, 이거 원..."

제자 둘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개 중 한 명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같은 놈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지만, 너는 정말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 같구나. 철혈문에 시비를 걸었다가 병신이 된 낭인무사가 몇 명이나 되는줄 알고 있느냐?"

"비무를 받을지 말지는 니가 결정하는거냐?"

내가 사납게 쏘아붙이자 그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좋아. 잠시 기다려라. 절차에 따라서 맞아줄 테니."

"기다리지."

내 대답을 들은 철혈문의 제자 하나가 불퉁한 목소리로 나를 비웃었다.

"괜히 센 척 하지 마라. 얻어맞고 끝날 게 병신되서 끝난다."

센 척이라.

나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평상시보다 더욱 고양되고 경도되어서 이 자리에 서 있었다. 난생처음 제대로 된 무인의 도전을 해보는 셈이었으므로 긴장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굳어있으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표정을 풀고 웃었다.

"하하."

"......? 미친 놈인가."

"하하하하!!"

나는 그가 황당해하든 말든 웃었다. 그렇게 껄껄 웃고 있으니까 긴장감도 풀리고, 몸의 근육도 긴장상태를 풀고 느긋해졌다. 평상심을 되찾으니 내면에 끓어오르던 내공도 마치 장중한 대하(大河)처럼 흐르면서 내 주먹을 무겁게 해 주었다.

그래. 쉽게 질 리가 없다.

천년설삼까지 그 노력 끝에 찾아먹은 게 아닌가.

여기서 질 정도였다면 그냥 죽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잠시 후 철혈문의 제자가 나와서 말했다.

"어이, 들어와라. 비무장까지 안내해 주마."

나는 그를 따라서 비무장으로 향했다. 과연 외부에서 보던 것처럼 문파의 규모가 엄청났다. 수백 명의 제자들이 숙식하고 있는 기숙사는 물론 대련장에 체력단련장까지 마련되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마치 군사훈련처럼 마련된 훈련장소까지 보인 것이다. 아마 무과시험에 대비해서 훈련하는 자들이 운동하는 곳이리라.

잠시 후 나는 나무바닥에서 향내가 나는 커다란 실내대련장으로 인도되었다. 동트기 전에 찾아온 것인데도, 이미 나를 상대할 고수는 물론 대련을 구경하려는 하급제자들이 나와 있었다. 수십 명의 눈동자가 나를 주시하는 건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어이 - !!

갑자기 철혈문 제자들이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내질렀다. 소리라기보다는 기합으로, 내 기를 죽이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실내에서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과연 소리가 굉장히 크게 울리긴 했다. 아마 어지간한 무림인은 수양이 얕다면 기세에서 압도당할 것 같았다.

' 이 개새끼들이?'

하지만 나는 이런 적지에서 일부러 지고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공을 실어서 마주 소리를 질렀다.

으아 - !!!!!!!!!!!!

쿠르르릉

"으아아악?!"

"커억!!"

갑자기 건물 곳곳에서 삐그덕거리면서 나무장판이 부숴졌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던 철혈문의 하급제자 몇몇이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건물 전체가 진동하더니 문짝이 터지듯이 활짝 열린 것이다.

그러자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백의(白衣)의 사내가 호령을 쳤다.

"갈(喝)!"

우르릉...

그러자 내 외침때문에 소란스럽던 실내가 다시 조용해졌다. 내가 사자후로 내뿜은 기파(氣派)를 눈 앞의 고수가 상쇄시킨 것이다. 그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쓰러진 철혈문 제자들을 둘러보더니 옆에 서 있던 제자에게 성질을 냈다.

"멍청한 것들... 내상(內傷) 입은 녀석들을 빨리 의약전으로 데려 가라. 그리고 사절(四節) 이상 제자만 남고 나머지는 전부 기숙사로 돌려보내!"

"알겠습니다."

"그리고 문주님과 장로님들을 불러와라. 알겠냐."

"넵."

후다닥 하고 고참제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부상자들이 실려나가고 철혈문 하급제자들이 장내에서 사라지자 내부가 꽤 조용해졌다. 사람이 빠지니까 이 장소는 굉장히 넓은 수련장처럼 보였다.

잠잠해지자 백의 사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군. 자네가 어중이떠중이인지 시험해보려고 우리 제자들이 무례(無禮)를 범했네. 이해해 주게, 백웅."

"흔히 있는 일이지요. 그보다 저는 당신과 겨루게 되는 겁니까?"

"그렇네. 나는 철혈문에서 임검당(臨劍堂)을 맡고 있는 임검당주(臨劍堂主) 교준(較俊)이라고 한다네."

스으...

그는 서서히 발을 들어서 땅을 딛었고, 이내 천천히 일어나서 기본자세를 잡았다.

나도 마주 일어나서 검(劍)을 중단세로 잡았다.

나는 임검당주 교준이 철혈당에서 어떤 위치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단순히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진 게 아닌, 상당한 고수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천년설삼을 먹은 내 사자후를 상쇄시켰을 뿐만 아니라 침착하게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무인의 역량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다.

' 빌어먹을... 뭐지? 사자는 토끼에게도 전력을 다한다는 건가?'

수련생 고참 정도가 나올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내심 당혹스러웠다. 어쩐지 눈 앞의 임검당주 교준은 강호에 내놓아도 자기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청수한 이목으로 나를 잠시 훑어보더니 말했다.

"놀랍군... 백웅, 자네같은 내공의 소유자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네. 자네는 어느 문파 출신의 후기지수인가?"

"나는 독학(獨學)으로 공부했소. 스승이나 사문따위 없소."

어쩌면 청룡무관의 무공을 알지도 모르지만, 나는 일단 없다고 밀어붙였다. 괜히 처음부터 인정하는 것보다는 아니라고 잡아떼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직접 청룡무관 사람을 대질시키지 않는 이상 그걸로 나를 겁박할 놈은 없다.

그러자 임검당주 교준이 검을 든 상태로 침음성을 흘렸다.

"음... 나는 도저히 자네를 이길 자신이 없네. 허나 문파의 명예를 떨어뜨릴 생각은 없어. 그러니 잠시 기다려주지 않겠나?"

"무슨 소리요?"

"잠시만 기다려주면 자네를 상대할만한 철혈문의 고수가 도착할 것일세. 자네 수준에 맞는 고수와 싸워야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나는 임검당주 교준과 박터지게 싸울 거라고 생각해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꼬리를 말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고, 교준이 단단히 상황을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상대로 하면 자신이 질거라고 생각했기에 철혈문주와 장로를 불러오라고 한 것이리라.

' 뭐야? 난 아직 내공과 경지가 융화되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나는 교준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에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철혈문은 한입으로 두말하는 자들이오? 잔말 말고 내 칼이나 받으시오."

왠지 지금 마음이 급하다. 내 칼에 날이 빠져있지만, 교준의 말대로 끌려가다가는 왠지 일이 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무리하게라도 승부를 밀어붙이기로 마음먹었다.

"뭐, 뭐라고..."

"비무를 시작하겠소."

까앙!

다음 순간, 내 몸이 크게 돌진하며 임검당주 교준을 덮쳐갔다. 그는 설마 내가 문답무용으로 덮쳐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해서는 검식(劍式)을 펼쳤다. 나는 날이 빠진 검을 들고도 뇌령검법을 운용해서 빠르게 베어나갔다.

임검당주 교준의 검식은 정밀하고 쾌활했다. 또한 자세가 매우 안정되어 있어서, 나는 그가 최소한 일류급 검객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래서 단시간에 결판이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우선 닥치는대로 공격했다.

쉬쉬쉭!

까강

"크헉!"

교준은 내 칼과 한 차례 병기를 부딪히자마자 갑자기 피를 토하며 일 장 밖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리고는 몸을 추스리며 힘겹게 일어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다시 무릎을 꿇었다.

"부, 분하다..."

"......"

겨우 오 초(五招)밖에 겨루지 않았는데?

나는 놀라서 내 칼을 바라보았으나 날이 빠진 장검은 아직까지 부러질 기색이 없었다. 반면에 교준의 검은 반토막나서 벽에 칼날이 박혀 있었다. 내 내공이 압도적으로 교준을 상회했다는 증거였다. 옆에 서 있던 철혈문의 제자가 두려움에 떨며 외쳤다.

"괴, 괴, 괴물이다! 설마 임검당주님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도 어찌된 일인지 몰라서 황망하게 그 자리에 서 있을 때였다.

대련장의 입구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 들리듯이 울려퍼졌다.

"과연 간만에 보는 제대로 된 도전자로군. 이 정도의 실력자는 십 년만인가?"

나는 등을 돌려서 입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패기를 휘감은 채 털옷을 입고 있는 왠 중년남성과, 그를 옆에서 호위하듯이 따르고 있는 6명의 무인들이 보였다. 중년남성의 기운은 내 기감으로 볼 때 눈으로 보일 정도로 유형화(有形化) 되어 있었고, 6명의 무인들도 그만큼은 아니었으나 상당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또다시 임검당주 교준처럼 수실을 매달고 있는 검(劍)을 패용한 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사방에 있던 철혈문 제자들이 외쳤다.

"와아아아!!"

"문주님과 장로님들이 오셨다!!"

"당주님들도 모두 오셨구나!!"

"......"

나는 죽을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 개씨발...'

설마설마 했으나, 낙양무림을 주름잡고 있는 쌍문사가에서도 지도자급 위치에 있는 철혈문의 간부진이 이 자리에 총출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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