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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룡출도(雷龍出道)
낙양은 듣던 대로 굉장히 큰 도시였다. 성문 외곽에서 일 리 밖에서 접근하는데도 시내의 풍광이 언덕에서 크게 비칠 정도였고, 성벽이 매우 높아서 수십 장이나 되었다. 표사의 삶을 살 때는 낙양까지 표행을 할 일이 없었으므로 이번에 처음 와 보는 것이었다.
' 과연 천하에서 가장 큰 도시군... 천자의 성(城)...'
나는 내심 연신 감탄을 하며 위병소를 지났다. 다른 성에서는 그저 한 번의 검문으로 끝이지만, 낙양은 특이하게도 외성에서 한 번, 그리고 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또 한 번의 검문이 있었다. 게다가 내성(內城)으로 들어갈 때 다시 한 번 검문한다고 하니 그 엄청난 규모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위병은 내 짐을 검사하다가 말했다.
"뭐야? 너 역술가(易術家)인가?"
이미 두루마리는 안보이게끔 봇짐의 숨겨진 부분에 재봉해 놓았다. 내가 걸릴 거라고는 황궁의 지도가 그려져있는 두루마리 뿐이니, 기문둔갑서 정도는 수상하게 여겨질 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직 수행 중입니다."
"허... 주현(朱弦)의 거리에 가 보게. 거기엔 자네같은 사람이 많으니."
위병은 혀를 끌끌 차더니 왠지 모를 조언을 해 주었다.
' 주현의 거리라는 곳에서 역술가나 점술가들이 모여서 점을 치나 보군.'
혼자서 좋은 목을 잡아놓고 장사할 수도 있겠지만, 낙양같이 큰 도시에서는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모여서 거리를 형성한 다음 경쟁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성에서는 본 적이 없는 일이므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낙양의 시내거리로 진입하자 약간 입을 벌렸다.
"......!!"
정말 크다!
거리도 상점도 지금까지 봐오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찬란하고 컸다. 내가 보던 건물은 대개 3층으로 끝이었는데, 이 곳에는 5층이나 6층짜리 건물과 누각도 굉장히 많았다. 심지어 마차가 4대나 지나다닐 정도로 가도가 커서 깜짝 놀랐고, 더 놀라운 건 그렇게 넓은 거리에 사람이 꽉꽉 차 있다는 것이다.
"워어 워어 비켜라~"
두구둑 두구둑
왠 마차가 쌩하고 지나갔다. 고관의 마차인 듯 했는데 사람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미리 마차가 지나다닐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쨍알거리면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도시에 가득찰 정도였다.
먹는 것도 많이 팔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진기한 먹거리들이 좌판에 널려 있고,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듯한 음식점도 많이 있었다. 특히 주루(酒樓)의 크기가 무려 8층이나 되는 곳도 있어서 한참 목을 꺾어서 올려봐야 했다. 어디선가 만두나 생선을 튀겨대는 기름소리와 맛있는 냄새도 났다.
보통 성내에 들어오면 객잔이 몇 개 없어서 적당히 고르기가 쉬웠는데, 낙양은 그것도 아니었다. 객잔과 주루가 쫙 몰려있는데 하나의 거리에만 그 숫자가 수십개나 되는 듯 했다. 그것도 낙양 성내에 이런 거리가 한두 개도 아닐테니, 실질적으로는 어디의 어떤 주루가 있는지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게 분명했다.
' 굉장하다...!!'
만일 돈만 있다면, 낙양에서 사는 게 최고라고 하는 표국주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사람 사는데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기에 그 말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나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일단 객잔 하나를 잡아서 들어갔다. 지금은 초저녁이니 적당히 요기를 한 다음 방을 잡아서 투숙할 생각이었다.
"어서 옵쇼."
큰 도시는 주루의 규모도 달랐다. 1층으로 들어가자마자 점소이들이 단정한 옷에 용모를 한 채 다같이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보통 하나의 객잔에 점소이가 셋 정도가 있는 편이었는데, 이 주루는 1층에만 점소이가 10명은 되는 듯 했다. 그만큼 흥성(興成)하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주루라는 것이었다.
나는 점소이 한 명의 안내를 받아서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점소이가 왠 목판을 내게 내밀었다.
"이건?"
"원하시는 음식을 고르시고 불러주십쇼!"
"......!!"
나는 깜짝 놀랐다. 보통의 주루에서는 만두, 소면, 닭요리, 그리고 기껏해야 한두개의 부요리로 끝이었다. 그래서 점소이가 대충 음식종류를 불러주면 그 중에서 선택하면 되는 식이다. 그러나 이 목판에는 무려 20개가 넘는 요리와 마실거리가 적혀있는 게 아닌가? 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주방장이 이 많은 요리를 다 할 수 있단 말이오?"
"하하하! 저희 주방장님은 홍천(紅天) 주사이십니다. 실력은 의심할 여지 없습니다."
"음..."
홍천주사!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요리사에게는 사천주사라고 하여 청(靑)-홍(紅)-흑(黑)-백(白)의 4단계로 나뉘어져 있는 요리사의 자격 중에서도, 청천주사라는 건 황제 앞의 어전요리대회에서 공인받은 최고의 실력자를 의미했다. 홍천주사는 청천주사보다는 아래였으나 적어도 한 성(城)에서 달인급으로 인정받은 요리사인 것이다. 내가 살던 관중지방에서라면 고관대작들이나 찾아다닐 수 있는 대단한 요리사이다.
하지만 가격 또한 비쌌다.
' 헉 씨발 무슨...'
나는 요리 두세 개만 먹어도 은자 한 냥이나 된다는 사실에 약간 기겁을 했다. 비싼 건 요리 하나에 은자 3~4냥씩이나 했다.
"만두 하나 주시오."
"네..."
보통의 객잔보다 가격이 몇 배는 비싼 듯 했다. 나는 나가버리고 싶었으나 눈치가 보여서 만두를 시켰다.
' 이런... 숙식비가 많이 들겠군. 여기서도 일을 하면서 지내야 하는건가?'
망량이 내게 군자금으로 내어준 돈은 총 은자 40냥이었다. 본래라면 적당히 탐색하다가 거사를 치르기에는 차고 넘치는 돈이었다. 보통 다른 지역에서라면 이정도 돈이면 3개월은 놀고먹을 수가 있는데 낙양에서 먹고자다 보면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다 쓸 것 같았다. 물가가 이상하리만치 비쌌는데, 아마 객잔이나 주루를 포함한 유흥비 전반이 모두 비싼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바로 황궁으로 치고들어갈 생각이 아니었다. 당분간은 낙양에서 먹고자면서 내 무공을 다듬어보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후 들어갈 생각이었다. 잡히면 최소 사망인데다가 9족이 멸족당하는데 결코 함부로 덤벼들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어차피 시간은 많다. 나는 우선 낙양에 장기투숙하면서, 여기서도 먹고살만한 잡일을 하면서 지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낙양에 살면서 얻어낸 세세한 정보가 또다시 내 침투작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만두를 먹다가 점소이에게 물었다.
"이보시오. 혹시 낙양에서 무예로 먹고 살 방법이라면 어떤 게 있겠소?"
지금은 아직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은 상태였고, 내가 부른 점소이는 제법 고참 점소이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 점소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빙긋 웃으며 내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손님은 무림인이신가 보군요. 음... 가끔 도장깨기를 하시는 분도 보이긴 하지만, 그런분들은 대개 결과가 안 좋았죠. 정 뭔가 하시겠다면 대문파의 빈객(賓客)으로 들어가시는 게 현실적이겠네요."
"결과가 안 좋다니? 뭔가 보고 들은 일이 있소?"
"하하하..."
점소이는 웃기만 할 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곧 그가 추가로 뒷돈을 달라는 뜻인 걸 눈치채고, 품 속에서 조심스럽게 동전 이십 냥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하지만 점소이가 실망한 표정으로 꿈쩍도 하지 않자 별 수 없이 동전 삼십 냥을 더 얹어주었는데, 그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말투나 억양을 보니 안휘성 분이신 것 같군요. 낙양에는 안휘성과 달리 구파일방 중에서 종남파(終南派)와 화산파(華山派)의 성세가 강렬한데, 그들도 낙양성 내에서는 크게 힘을 못 씁니다. 낙양성내에 그들에 못지않은 달인들이 무술도장을 열고 있기 때문이지요."
"구파일방에 못지 않다고?"
나는 놀랐다. 구파일방의 말석에 있는 황산파만 해도 최소한 4명의 절정고수를 보유하고 있다. 구파일방의 무공은 대개 도교(道敎)의 명문무공과 오랜세월 발달시킨 전투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구파일방에 뒤지지 않는 달인이라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점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낙양에서 가장 크고 강성한 문파를 가리켜서 쌍문사가(雙門四家)라고 부릅니다. 두 개의 거대문파와 4개의 명문세가를 일컫는 말이죠."
"흐음...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시오."
나는 은근슬쩍 말하면서 그에게 은자 한 냥을 추가로 주었다. 상당한 지출이었으나 효과는 직빵이었다. 점소이는 얼른 은자를 받아챙기면서 마치 웅변을 하듯 술술 정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6개의 문파는 매년 황실 어림군 등용이나 금의위, 혹은 무과(武科) 급제를 도맡아서 합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자들은 정말 특출난 실력이 아니면 쌍문사가 출신자를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뇌물이나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쌍문사가 출신은 무공이 출중하기로 이름이 높기 때문입지요.
쌍문이란 철혈문(鐵血門)과 태검문(太劍門)을 일컫습니다. 그리고 사가는 장씨세가(長氏世家), 서씨세가(徐氏世家), 이씨세가(李氏世家), 한씨세가(韓氏世家) 입니다.
낙양 사람들은 보통 철혈태검(鐵血太劍) 장서이한(長徐李韓)라고 줄여서 부르죠."
쌍문사가!
철혈태검 장서이한!
앞으로 내가 낙양에서 활동하면서 반드시 외워둬야 할 문파들이었다. 나는 철혈태검 장서이한, 이라고 입 안에서 잠시 뇌까린 후 추가로 질문했다.
"그렇다면, 낙양에서 도장깨기를 시도했던 무림인들은 모두 쌍문사가에 패배했다는 것이오?"
"화산파의 장로(長老)마저도 쌍문사가 중에서 태검문주에게 100초만에 패배했다는 사실이 유명하지요. 화산파가 낙양성내에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비무행(比武行)을 신청하고 다녔는데 그런 참사가 벌어져서..."
"......"
나는 쌍문사가의 실력이 예상이상이란 걸 깨닫고 침음성을 흘렸다.
태검문주는 쌍문사가의 문주급이고 화산파 장로는 아랫급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화산파의 장로쯤 되면 중원 전역을 오시하는 절정고수이며 수십 년동안 검을 깊게 수련한 달인(達人)이다. 아무리 일문의 지존이라고 하지만 태검문주가 화산파 장로를 100초 만에 꺾었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점소이가 이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 사실은 함부로 말하고 다니시면 안됩니다. 다들 알긴 알지만, 만일 화산파 속가제자에게 들리면 경을 칩니다요."
"알고 있소. 그러니 일단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시오."
내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 쌍문사가라는 곳은 낙양 어디에 있소?"
"에 그러니까..."
나는 점소이가 신이 나서 쌍문사가를 설명하는 동안에 소채 요리를 하나 더 시켰다. 그리고 쌍문사가의 정보를 하나하나 머릿속에 입력하는 동안 생각했다.
' 딱 잘 됐어. 딱 좋은 상대야.'
나는 지난 3년 동안 공부만 하느라 내공수련도 별로 하지 못해서 실력이 정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게 퇴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도리어 뇌정경을 통해서 집중력과 활력이 뛰어나졌으므로, 지금도 계기만 있으면 무공이 급증할 거라는 직감이 있는 것이다.
즉 현재 내게 필요한 것은 막강한 내공을 무공에 접목시키는 과정.
실전경험이 필요한 것이었다.
천년설삼의 내공을 얻고 나서 그럴듯하게 싸워볼만한 상대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 무사수행(武士修行)은 내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밥을 다 먹고 나서 바로 그 객잔에 투숙하기로 했다. 여기서 먹고자고 하다보면 아마 2~3주면 가진 돈이 다 떨어지겠지만, 그 전에 승부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도할 방법은 바로 도장깨기!
천둥벌거숭이처럼 낙양의 거대무문인 쌍문사가에 도전해서 그 곳의 일류고수들과 한 차례씩 겨뤄보고 싶었다. 명목상 비무지만,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전력을 다해서 달려들 게 뻔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목숨을 건 사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쌍문사가의 고수들의 실력을 알 수 있다면 황궁 내부에서 일하고 있는 상급무사들이나 황실어림군, 금의위의 실력도 딱 적절하게 측정해 볼 수가 있었다. 망량이 내게 말했던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 금의위의 실력? 으음... 금의위 열 명이 합공(合功)한다면 설령 대문파의 장로급이라고 해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소. 내궁에는 그런 금의위들이 최소한 서른 명이 우글거리고 있으니 결코 정면대결을 하면 안 되오.]
"......"
나는 속으로 각오를 했다.
쌍문사가에 도전해서 전승(全勝)을 거둘 정도가 아니라면, 황궁침투작전은 시도조차 해서는 안 된다. 만일 무공이 부족할 경우 몇 년이고 숨어서 수련을 해야하는 것 또한 각오해야했다. 쌍문사가, 철혈태검 장서이한과 싸우다가 병신이 되거나 살해당하는 경우도 염두에 둬야 했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천암비서 덕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건 도리어 즐거운 기분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암비서의 정체를 알지 못하면 앞날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황궁에서 무명제사서를 훔쳐내는 계획은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하는 필수조건이다. 귀찮고 위험하다고 피하기만 하다가는 장기적으로 좋지 않았다.
' 조심하면서 나아가자.'
그렇다 해도 가능하면 죽음을 피하면서, 내 실력을 최대한 증진시킨다.
그리고 경지에 이르렀다 싶을 때부터 계획을 시작해도 된다.
나는 낙양에서 10년을 썩기로 각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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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오류 수정했습니다 ㅠㅠ 열심히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