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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9화 (1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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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룡출도(雷龍出道)

나는 망량선사의 말에 의심이 들었다. 확실히 그 정도라면 천문관 출신의 망량선사가 괴어를 해석할 수 없는 이유라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내가 그의 능력을 정확히 신뢰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듯한 말을 그냥 주워섬기고 있는지 알 게 뭔가.

내 얼굴에 떠오른 의혹의 빛을 읽은 듯, 망량선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알 것 같소만... 내 말은 사실이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소."

"어차피 믿어서 손해될 게 있소? 아직까지 당신에게는 괴어를 해석할 아무런 단서도 없지 않소."

"흠..."

망량선사의 말이 사실이긴 하다. 지금 그가 괴어를 해석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아니고, [해석할 수 없는 이유]를 따박따박 말한 것 뿐이다. 지금 그를 의심해서 뭔가 얻을 수 있는 사실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궁금했던 걸 묻기로 했다.

"그래서 당신이 그 모든 사실을 내게 '목숨 걸고' 말해주는 이유는 뭐요? 당신과 나는 오늘 일면식(一面識)을 텄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으며, 심지어 당신은 내가 천암비서로 뭘 하려는지도 모르지 않소."

"그야 내게는 이 만남 자체가 기연(奇然)이기 때문이지."

응?

내가 기연이라고?

약간 어리둥절해하고 있자 망량선사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은 멍청한 놈들 점이나 쳐주며 사는 신세지만 한때는 대륙최고 천문관의 자부심을 갖고 살던 놈이었소. 그런 내가 전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괴어를, 또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오. 황실의 비밀수호의무를 어기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알고싶은 게 학자(學者)의 본성이니."

"학자라... 당신은 스스로 선사라고 칭하는 도사가 아니오?"

"후하하. 기문둔갑(奇門遁甲)이 뭔지 잘 모르시는군."

망량선사가 씁쓸하게 웃더니 부연설명했다.

"기문둔갑은 미신(迷信)이 아니오. 정해진 이치에 따라서 갑(甲)의 정수(精髓)를 배열하면 정해진 결과가 나오는 공식(公式)이라고 할 수 있소. 산술(算術)과 물리(物理)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지.

내가 이 산에 펼쳐놓은 망운진도 마찬가지요. 내가 특별한 신통력(神通力)이 있어서 진법을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정해진 이치에 따라서 만들었을 뿐. 기문둔갑은 그저 학자가 다다를 수 있는 하나의 영역에 불과한 것이오. 진법도 일종의 호신술이랄까?"

"호오... 그렇군."

나는 상당히 귀한 이야기를 들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문둔갑이란 건 그렇다면 내공처럼 수련해서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인간도 그저 두뇌만 잘 굴리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표사인생을 사는 동안에는 전혀 들을 수도 없었고 알 수도 없는 이야기였기에 호기심이 들었다. 기왕 묻는 김에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럼 부적을 사용하는 부신술(符神術)이나 퇴마술(退魔術)같은 것도 신통력이 필요없는 것이오?"

"그건 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신통력이라기보다는 상단전(上丹田)의 힘이오."

"상단전?"

"하하. 귀한 손님께 좀 더 설명을 해 드려야겠군."

망량선사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낄낄거리다가 말했다.

"백웅 당신이 수련해서 쌓은 내공(內功)이란 하단전(下丹田)에 축적되는 힘이오. 단전을 중심으로 기경팔맥 사지백해에 힘을 전파해서 육체를 초인(超人)의 경지에 이르게 하지. 그리고 하단전의 능력이 높아질수록 중단전(中丹田)의 영역에 이르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단전처럼 신체의 특정한 부위에 존재하는 게 아니오."

"그럼 중단전이란 건 어디 있소?"

"중단전은 심장(心藏)이라 알려져 있으나 그렇지 않소. 하단전의 능력이 엄청나게 높아졌을 때 한 단계 통합(統合)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 때 심장에 모든 힘이 모이게 된다고 알고 있소. 즉 무림인 궁극의 영역은 실질적으로 중단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나는 적지 않게 놀라서 말했다.

"그러면 상단전은 혹시 뇌(腦)란 말인가?"

"그렇소."

망량선사가 설명을 많이 해서 목이 마른지 물을 다시 한 잔 떠왔다. 그는 목을 축인 후 말을 이었다.

"단 착각하면 안되는게, 중단전은 하단전이 진화한 것이지만 상단전은 아무런 관계가 없소. 인체의 뇌(腦)에 선천적으로 숨겨져 있던 특이한 능력을 자기 나름대로 발전시켜서 또 다른 차원에 간섭하는 게 상단전의 공능이오. 기본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고, 타고난 자들은 그 능력을 바탕으로 활동해 왔지."

그게 그거 아닌가?

"흠... 그렇게까지 타고난 능력이라면, 신통력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아니오.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나 좌도방문(左道方門)의 술법사들은 상단전과 신통력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오. 상단전의 능력을 사용하는 그 자들에게는 뭔가 분명한 의미가 있는 거겠지."

"그렇군..."

지금 상당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단전의 상,중,하 구분과 기문둔갑 술법의 이해!

이런 건 천금을 줘도 듣기가 힘든 지식인 것이다. 망량선사가 내게 물을 내밀며 말했다.

"물 좀 드시겠소?"

"아니오."

"아무튼 이야기가 옆으로 좀 빠졌지만, 내 요구는 하나요."

타앙

망량선사는 탁상처럼 깎여져 있는 나무판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욕심이 드러나 있었다.

"당신이 누구든 상관하지 않겠으니 내가 이 천암비서(天暗秘書)를 해석할 수 있게 해 주시오."

"......"

역시 그것때문에 지금까지 주절주절 다 말해준 거였군.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얼추 그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입으로 듣게 되자 신선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망량선사. 만일에 내가 당신에게 폭력을 가하고 고문하려 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소?"

"그래서 그렇게 나오기 전에 알아서 다 말해준 거 아니오?"

"세상에는 알아서 기든말든 일단 패고보는 놈들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소. 그런 자였다면 망운진이 뚫렸을 때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겠지. 대화가 통하는 상대 같으니 대화를 하려고 한 것 뿐이오."

망량선사의 언변은 매우 유창하고 매끄러웠다. 그가 굉장한 학식의 소유자라는 건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였다.

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는 걸 깨달았다.

망량선사가 원하는 대로 그에게 해석하도록 천암비서를 줘보는 게 나을까?

아니면 그냥 해석할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떠나는 게 나을까?

"하지만... 내황각을 다 뒤졌을 때도 괴어를 해석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소. 당신에게 천암비서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 같은데."

"음... 그건..."

망량선사는 찔리는 부분이었는지 머뭇거렸다. 확실히, 내황각에서 천문관으로 일할 때도 잘 알 수 없던 신비한 괴어(怪語)를 지금의 그가 해석할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쩌면 해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오."

"어떻게?"

"무명제사서(無名祭事書)가 있으면 가능하오. 아무리 신비한 언어라고 해도 언어의 율격(律格)이 있기 마련이라서, 자료의 표본이 많다면 의미를 대충 알아내는 게 가능하지. 무명제사서는 단권이라서 알 수가 없었지만, 동일한 괴어를 담은 천암비서와 대조하면 무슨 뜻인지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오."

"과연..."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핵심을 찔렀다.

"그럼 내가 무명제사서를 갖고 오면 해석을 해 줄 수 있다는 소리겠군."

"흠... 그렇긴 하지만..."

망량선사는 자기가 말했지만 좀 어이없는 방법이란 걸 깨달았는지 조그맣게 말했다.

"내황각은 황제폐하의 거처인 태룡전(太龍殿)의 바로 옆에 있소. 내궁(內宮)에서도 가장 심처(深處)에 있는 곳인데 거기에서 무명제사서를 빼올 수 있겠소?"

"가능하오."

"허어..."

내가 망설임없이 대답하자 망량선사가 기가 질린 듯 했다. 하긴 내 말은 천하에서 가장 위중한 장소인 황궁의 가장 안쪽에 잠입해서 책을 훔쳐오겠다는 것이니, 숫제 미친 놈처럼 보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천암비서를 이용해서 만일 죽더라도 다시 역행(逆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도 머리를 잘 굴리고 제대로 계획을 짜면 설령 무명제사서라고 하더라도 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기다리시오."

망량선사는 뭔가 고민하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두루마리 몇 장과 책 3권을 가지고 나왔다. 그는 두루마리를 내게 내밀었다.

"이걸 받으시오."

"이건 뭐요?"

"내궁(內宮)의 지도요. 황궁은 총 99궁으로 이루어져 있고 개중에는 추가로 딸린 건물까지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173궁이라고 할 수 있소. 그 곳에서 지도가 없으면 결코 내황각까지 갈 수 없을거요."

"......"

나는 황당한 눈으로 망량선사를 바라보았다.

"설마 당신 황궁에서 나올 때 황궁지도를 갖고 나온거요?"

"내가 만든 거요."

"아니 어쨌든간에 이건 무슨..."

이 물건 자체로 대역죄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었다. 황궁의 지도가 외적에게 유출될 경우 황제와 황족의 피난이 힘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들키면 즉시 참수되고 9족이 멸해질 짓을 태연하게 해버린 망량선사였다. 그러자 망량선사는 당당하게 말했다.

"알게 뭐요. 아무튼 설명을 계속하겠소."

"......"

이 인간도 어지간히 제멋대로 사는 인간이다.

하긴 그러니까 황궁에서 나와서 사이비도사일이나 하고 살고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것은 당신이 꼭 읽어야 할 3권의 책이오. 태극기서(太極奇書)에는 간단한 진법과 술법의 이해가 쓰여져 있고, 역술진본(易術眞本)을 읽어야 태극기서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오. 마지막으로 이 뇌정경(雷精經)을 매일 반 시진 이상 낭독하시오. 당신의 뇌에 활력을 일깨워줄 것이오."

"내가 술법서를 왜 읽어야 하는 것인가?"

"흠... 역시 모르나보군."

망량선사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황궁의 외궁은 보통 건물이지만, 내궁 36궁은 육합진법(六合陣法)을 이용한 기문둔갑으로 지어진 건물이오. 외적이 침입하거나 침입자가 발생하게 되면 천문관이나 금의위가 진법을 발동시키게 되고, 내부의 경비무사들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침입자를 쥐 쫓듯이 몰아붙일 수 있게 되지.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당신 스스로가 반드시 기문둔갑과 진법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오."

"진법이란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이오?"

망량선사가 약간 맥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망운진을 물처럼 돌파해버린 당신이라고 해도, 황궁의 진법은 간과할 수 없소. 그건 최고의 기문둔갑 명인이 만든 진법이라서 지금 당신의 갑절이나 되는 내공이 있어도 사냥당하게 될 것이오."

"흠..."

"직접 겪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오"

그렇게 말한 망량선사가 책 3권을 마치 선물주듯이 내 품에 안겨줬다.

"당신이 태극기서와 역술진본을 왠만큼 이해하고 나면 내가 그걸 기반으로 황궁의 방어를 뚫는 법을 설명해 주겠소. 그 때 찾아오시구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너무 복잡하지 않소?"

"내황각에 침투한다는 건, 바로 옆에 있는 태룡전에도 침투할 수 있다는 뜻이오. 황제의 멱을 딸 수 있는 위치까지 들어가는데 당연히 어려운 일 아니겠소?"

"내가 만일에 실패해서 붙잡힌다면 어쩔 생각이오."

"뭐 그땐 그때 일이겠지. 난 어차피 세상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니, 내 한 몸 빼낼 자신은 있소."

나는 내 품에 안겨있는 3권의 책과 두루마리 지도를 보고나서야 이번 일의 막장스러운 난이도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정도 난이도인 줄 알았다면 좀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서 찾아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계획을 전면수정하기로 했다.

"그러면 그냥 내가 당신에게 기문둔갑을 전수받는 편이 나을 것 같군."

그러자 이번에는 망량선사가 엥?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건 기초중의 기초라서 사서삼경을 떼는 정도만 되어도 다 읽을 수 있는데..."

"나는 사서삼경같은 건 모르오. 까막눈은 아니지만 표사의 지식밖에 없소."

"......"

망량선사는 한 방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당연히 내가 상당한 지식의 소유자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초지식을 비롯해서 온갖 학문을 무식쟁이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내 턱을 괸 채로 찡얼거리기 시작했다.

"에... 근데 나도 별로 가르치는 건 잘 못하오만..."

"누구는 배우는 걸 잘 하는 줄 아시오? 서로의 목적을 이루려면 협력해야하오."

"... 한자는 어느정도 알고 있소?"

잠시 후, 그가 내 지식수준을 간단하게 시험해보고는 절망했다.

"이런 제기랄... 당신이 태극기서를 제대로 읽으려면 최소 3년이 걸리겠군."

"알게 뭐요."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당장 내일부터 시작합시다."

낙양에 가려던 계획은 취소했다.

또 다른 계획이 생겼으니, 이제는 글공부를 함과 동시에 기문둔갑을 배우면 된다.

3년이 뭐가 어때서 그런가.

어차피 내겐 남는 게 시간이니까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달려나갈 뿐이다.

============================ 작품 후기 ============================

내용 일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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