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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룡출도(雷龍出道)
나는 송씨네 포목점에서 평상복을 구입한 후 밖으로 나왔다. 내 머릿속에는 황산파의 과도한 행패를 막을 계획이 세워져 있었고, 이건 특별한 계략이라기 보다는 경험에 근거한 행동이었다. 나는 우선 시내로 향한 다음 야행복(夜行服)을 따로 구입했다.
' 자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나는 먼저 허름한 건물쪽으로 가서 내 내공부터 시험해보기로 했다. 우선 내공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내에는 여기저기 버려진 곳이 많이 있었고, 개중 한 곳에서 음식물쓰레기냄새를 맡으며 서서히 손을 들었다.
쿠드드득
"이야... 되는군."
내 손가락은 돌벽에 완전히 박혀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세 손가락이 마치 두부를 꿰뚫듯이 돌벽을 관통한 상태였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저 혈맥을 따라서 진기(眞氣)를 손가락에 전달해서 경화(硬化)시켰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내 손은 가공할만한 흉기(凶器)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내가 얻은 내공이 원래 천년설삼보다 훨씬 높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천년설삼에다가 흑백련의 내공이 융화되면서 태극(太極)의 조화가 이루어졌기에, 천년설삼만으로 얻을 수 있는 기운을 훨씬 상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서서히 손가락을 움직여서 돌벽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약 세 치의 깊이로 파여들어간 상태로 손가락을 움직일 뿐이지만 무난하게 글씨를 쓸 수 있었다.
불행히도 나는 겨우 생활에 필요한 글자나 초급문서를 읽을 정도의 학식밖에 없다. 글자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보통의 서생(書生)에게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간단한 문장을 쓰는 건 할 수 있기에 이내 자신감있게 써내려갔다.
[ 황산파가 양민들에게 깡패짓을 하고 있다 ]
뭔가 비유하는것도 아니고 은유하는 것도 아니고 적나라하게 사실만 밝혀놓은 글이다. 계략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솔직한 문장이었으나, 나는 제대로 써진 것을 보자 흡족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습이 끝나자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번에는 장력(掌力)을 써 보기로 했다.
청룡무관에서 배운 무공은 창술인 뇌령팔식(雷靈八式)을 정점으로 뇌영검법(雷影劍法), 뇌영보(雷影步)를 주특기로 배웠다. 그러나 치열한 전투를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무기가 손에서 떠나있는 상황도 있는지라, 진소청 사범은 내게 권장법 또한 전수했다.
그 이름은 뇌운장(雷雲掌).
진소청의 말로는 자신의 사부이자 청룡무관주인 삼절 이광의 명성을 뒷받침해준 무공이라고 했다. 물론 뇌령팔식이 가장 강력한 무공인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나 삼절 이광은 창(槍), 검(劍), 권(拳)을 모두 달인(達人)의 수준으로 익혔기에 관중에서 손꼽히는 절정고수가 된 것이다.
원래 내 뇌운장의 성취는 고작해야 삼 성(三成)에 불과했다. 뇌령팔식이나 뇌영검법을 주특기로 하는 나로써는 권장법을 심도있게 수련하기 힘들었고, 그만한 재능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초식을 다 외우고 적당히 응용하는 수준이었기에 잘 쓰지 않았다.
스스스스 -
"으음...!!"
나는 뇌운장의 구결에 따라서 진기를 장심(掌心)에 모았을 뿐인데, 손에서 시퍼런 빛이 뿜어져 나오며 번개가 팔 주변에 파직거리는 걸 보고 놀랐다. 내가 평소에 아무리 집중해도 이런 현상은 없었기에 내심 크게 놀랐다.
' 천년설삼의 기운 때문인가?'
콰앙!
후두두둑...
"......"
나는 잠시 후, 뇌운장을 돌벽에 내리쳤을 뿐인데 어린아이가 통과할만한 구멍이 돌벽에 뚫린 걸 보자 멍해지고 말았다. 원래 내 장법이라는 건 기껏해야 사람에게 유효타를 먹이거나 내상을 줄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이건 차원을 달리하는 위력인 것이다. 이런걸 사람에게 쓴다면 상체의 뼈가 죄다 부숴져서 피떡이 되고 말 게 뻔했다.
나는 돌가루가 흩날리는 걸 멍하니 보고 있다가 급히 정신을 차렸다.
' 아차! 빨리 떠야겠군.'
가만 있으면 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나는 급히 어둠을 틈타서 미끄러지듯이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목격자가 없었으니 다행이지 자칫했으면 위병들과 아웅다웅할 뻔 한 것이다.
' 아무튼 계획은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그럼 내일 새벽부터 시작하자.'
나는 그 날은 저녁 일찍 들어가서 푹 잤다. 그 동안 천년설삼을 찾는다고 산과 강을 뒤지고 다닌 여독(旅毒)을 풀 겸, 객잔 주인에게 비싼 돈을 주고 뜨거운 물을 받아서 목욕까지 했다. 돈이 거의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내 나름대로 큰 사치를 부린 셈이다.
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가 웃고 있는 꿈이라서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 새벽, 나는 해가 뜨기 한 시진 전에 일어나서 야행복을 입고 은밀히 시내로 나왔다. 그리고 낮에 봐 두었던 고급스러운 주택이나 건물을 향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야할 일은 하나다.
그냥 건물 돌벽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파 넣는 것이다.
[ 황산파가 양민들에게 깡패짓을 하고 있다 ]
후두두둑 후둑
돌가루와 석면 냄새가 손가락 끝에서 올라왔다. 아무리 내공이 강해졌다지만 손가락이 조금 시린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대략 20군데 정도에 글자를 써 놓았을 때는 손가락의 통증 때문에 잠시 쉬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 내 목표는 적어도 50군데의 돌벽에 이 글자를 써 넣는 것이다. 건물마다 약 십여 장의 간격을 두고 한번씩 써 넣는데, 지금 내가 돌아다니는 곳은 평소에 인구의 유동이 많으며 관리들도 자주 돌아다니는 거리다. 50군데에 글자를 박아넣으면 사람들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 이크, 위병이군.'
나는 위병 세 명이 뭉쳐서 순찰을 나오는 걸 보자 뜨끔해서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그들은 새벽순찰조라서 그리 무공이 강해보이지 않았기에 내 기척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 흠... 아직 열 번 정도 더 써놓고 싶은데 어쩔까.'
지금 위병들을 습격해서 점혈(點穴)해서 잠재울 수도 있다. 그러면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다.
' 아니 됐어. 여기까지 하자.'
그러나 나는 오늘은 그냥 여기까지 해두기로 하고 그대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공연히 내 흔적을 많이 남기느니 적당한 선에서 끝내는 게 나은 것이다.
"으어어엇!"
"이, 이게 뭐야?!"
"왕일아! 얼른 가서 위사님께 보고해라!"
"넵..."
잠시 후 위병들이 돌벽의 글자를 발견하고 야단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날이 밝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객잔의 침상에 누워 있었다. 어차피 사흘 내내 방을 빌렸으니 주인장이 내게 시비를 걸 일은 없다. 그렇게 앉아서 오전동안은 느긋하게 공력수련을 했다.
우우우 -
나는 대주천을 한두번 돌린 것 뿐인데 화산이 폭발하듯 장중한 내공이 전신을 꿈틀거리며 흐르는 걸 느꼈다. 전율할 정도의 기운이 혈맥을 통과하면서 세맥(細脈)을 툭툭 뚫어대었다. 농담 안하고 대주천 한번 할때마다 내공이 한 겹씩 더 쌓이는 기분이 들 정도로 힘이 넘쳤다.
' 생사현관이 뚫린 후부터 세맥이 다 관통되고 있어...'
이건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내공으로 세맥을 뚫는 일은 강해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었으나, 기와 혈행을 움직여서 길을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내공의 잠력(潛力)이 어지간하지 않으면 보통의 무인들은 평생 걸려서 주요경맥 부분의 세맥만 뚫어두는 게 보통이었다.
세맥이 뚫리면 진기의 전달속도가 빨라진다. 또한 내공으로 몸을 경화시킬 경우 방어력이 훨씬 증강된다.
그 이상을 해내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처럼 생사현관을 타통해서 내공이 펑펑 솟아오르는 물처럼 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경지는 그냥 소문으로만 들었지 내가 실제로 이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대로 내공수련을 하다보면 내 무공은 점차 절정지경에 안착(安着)하게 될 게 분명했다.
오전의 수련을 끝내고 방 바깥으로 나오자, 객잔 주인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구... 큰일났습니다 손님. 오늘은 그냥 방 바깥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오?"
"어떤 미친놈이 저잣거리에 난리를 쳐놔서 위사 위병들이 살기등등하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요... 괜히 시비걸리면 감옥에 갇힐 수도 있으니, 문 꼭 잠그고 나오지 마십시오. 밥은 제가 알아서 갖다드리겠습니다."
"난리라고?"
나는 내가 한 일이었지만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러자 주인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조심스레 말했다.
"누가 황산파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고 하는데... 글쎄 그게 돌벽에 쓰여있었다지 뭡니까!"
"허어... 그건 무림고수 아닙니까?"
아, 낯뜨겁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하고 있으니 객잔주인은 나를 전혀 의심 안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무림고수는 흔하지 않읍죠... 그렇지만 사람들은 내심 좋아하고 있습니다요."
"왜 좋아한답니까?"
"그야 다 사실이니까..."
궁색하게 얼버무리던 객잔주인이 말했다.
"하여간 안에 들어가 계십쇼!"
"알겠소."
객잔주인은 자기 말대로 식사를 손수 만들어서 일부러 내 방에 갖다주었다. 나는 방 안에서 날계란과 찐밥, 닭고기요리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 객잔주인은 신고해서 포상금을 받겠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어. 성가신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생각이 더 강한가보군.'
이치에 맞지 않아보이지만, 이 객잔의 규모가 제법 크다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사고방식이었다. 어쩌면 객잔주인은 나를 범인이라고 의심하고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범인이든 아니든간에 일단 사건에 휘말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한번 위병들이 조사를 한답시고 휩쓸고 지나가면 장사가 안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지역의 관리들이 그다지 신망(信望)이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서민이나 장사치들에게 배려를 안 해주기 때문에 경원시되고 있는 셈이다.
나름대로 내 운도 좋은 것 같았다. 만일 객잔주인이 의심투성이에 포상금부터 받기 원했다면 지금쯤 꽤나 귀찮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은 적중한 건지, 바깥에서 객잔주인과 위병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다가 위병들이 가 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객잔주인이 [수상한 사람 못 봤다]라고 대충 퉁쳐버렸을 확률이 크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대신에 객잔에서 가만히 앉은 채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 이건 틀림없이 먹힐 거야. 황산파는 주춤할 수밖에 없을 걸.'
저잣거리의 돌벽에 익명으로 투고를 날리는 방법.
이건 내가 처음 생각한 게 아니다.
내 수십년간의 기억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점창지란(點槍之亂)이라는 사건에서 그대로 따온 것 뿐이다.
과거, 구파일방 점창파의 속가제자들이 인근주민들에게 상납금을 많이 걷고 지나친 행패를 부려대는 일이 있었다. 너무 행패가 극심해서 속가제자들이 여염집 여인을 강간하고 민간인을 죽이는 일까지 발생했는데도 그게 그대로 묻혀버릴 정도였다.
그러자 어느 날 점창파 일대의 마을에 동시다발적으로 방(訪)이 붙었다. 정확히는 익명의 누군가가 대량으로 방을 적어서 길거리에 붙여대었다. 그 내용이란 지금의 내가 한 것처럼 [점창파는 사람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사파(邪派)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황제의 친동생인 운남성주(雲南城主)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운남성주는 대노(大怒)해서 사실확인을 위해서 황실금의위를 불러들였다. 점창파에서는 아니라고 부인했으나 결국 행패가 밝혀지게 되고 즉시 문파가 해체되어버리고 말았다.
점창파 장문인은 자결(自決)했고 장로들은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야반도주했다. 하루아침에 구파일방 중 하나가 공중분해되어버린 대사건이라서 중원 최남단에서 일어났는데도 몇 년 동안이나 화젯거리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시에 이 사건은 관(官)과 무림(武林)의 관계를 재정립시킨 사건이기도 했다. 그동안 관과 무림은 불가침이라는 원칙이 있었고 불문율로 지켜지고 있었는데, 언제든지 관이 무림을 눌러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내가 한 방법은 점창지란 때와 꽤 많이 다르다.
점창지란 때는 동시다발적으로 수십 개의 마을에 방이 붙었으나, 나는 그냥 황산에서 가장 번화한 마을의 저잣거리에서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나는 방을 따로 써서 붙이지 않고 그냥 손가락으로 돌벽에 새겼다는 점이 다르다.
그렇다 해도 관리들의 눈에, 그리고 빼도박도 못하고 서민과 군중에게 노출된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관리들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림과 동시에 황산파에서 뇌물을 받아먹던 관리들도 한마디씩 하게 되는 것이다.
[ 황산파 적당히 좀 하지?]
그리고 이 한 마디의 압박은, 아무리 천하의 최절정고수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황산파 장문인인 도룡신검(屠龍神劍) 용중일(龍重壹)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내가 내 계획이 성립된 것을 확인한 것은 거사를 저지르고 딱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와아아..."
"왔구나...."
갑작스럽게 저잣거리가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고, 내가 밖으로 나가보니 황의(黃衣)를 입은 무림인들이 단체로 걸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이내 그들의 옷과 문양에서 그들이 구파일방 황산파의 무인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황산파 무인 대열의 맨 앞에는 무공이 특출나 보이는 고수(高手)들이 앞서서 걷고 있었는데, 그들은 황산파의 장로 혹은 장문인인 게 분명했다. 내가 천년설삼의 기운을 흡수한 이후로 나는 상대방의 능력을 감지하는 기감(氣感)이 한층 강해졌는데, 맨 앞에 서 있는 4명의 고수들에게서는 잠재력을 측정할 수 없는 강대한 기운이 뿜어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 4명 모두 기(氣)를 유형화시킬 수 있는 절정고수라는 뜻!
그리고 그런 인물은 최소한 황산파를 지탱하고 있는 장로이거나 장문인일 수밖에 없었다.
' 역시 아직은 저 놈들과 정면으로 싸울 수 없어.'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천하를 오시할 만한 자들이다. 저 자리에 청룡무관주 삼절 이광이 4명 서 있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다.
내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천년설삼을 기반으로 고수로 성장할 시간이.
나는 객잔 2층에서 행렬을 구경하다가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세간에는 소문이 돌았다.
[ 황산파 장문인이 불미스러운 일을 인정하고 지역의 무궁한 번영을 위해 은(銀) 백관을 내놓았다!
또한 황산파 문인들이 치안유지를 위해 관아와 크게 협력하기로 했다!]
덤으로 지부대인은 그 사실을 안타까워했다느니 황산파 장문인은 의협이라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미담(美談)이 덧붙여져 있었다. 당연하지만 전부 개소리였고 요점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았다.
황산파 장문인이 찔려서 지부대인과 상담하러 왔다.
그리고 협의 결과 은 백 관을 내놓기로 했다.
그리고 덤으로 자연스럽게 밀착하기 위해서 '치안'을 핑계로 황산파의 진출을 한층 쉽게 만들었다.
치안유지에 도움을 주겠다는 건 사실이겠지만 그 와중에 서민들은 황산파의 영향력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 황산파에 상당한 책사(策士)가 있나 보군.'
혹은 황산파 장문인이 매우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던가.
일의 전모를 둘러보니 황산파에게 크게 손해될 것은 없어보였다. 은 백 관을 내놓는다고 해 봐야 그 동안 서민들에게서 갈취한 돈을 되돌려줄 뿐이며, 덤으로 황산파의 진출방법으로 응용해 버렸다. 더불어 관아의 지부대인에게 뇌물을 추가로 먹여줬을 테니 결속이 한층 공고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게 세상돌아가는 식이었기에 나는 대충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한 행동 덕분에 당분간은 황산파가 눈치가 보여서 서민들에게 함부로 상납금을 요구할 수 없으리라. 그것만으로도 서민들이 살만할 것 같았기에 나는 내심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객잔을 떠나서 낙양으로 향하는 길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 황산파 저 놈들도 백해무익한 놈들 같군. 너넨 나한테 찍혔어.'
천암비서를 해석하고 내 인생이 궤도에 오르는 날, 황산파는 지금껏 없었던 거대한 횡액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