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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5화 (1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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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설삼(千年雪蔘)

잠시 후, 들뜬 마음이 가라앉자 천년설삼을 복용하는 것 자체가 또다른 문제점으로 다가왔다.  나는 영약을 복용할 때 함부로 처먹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만일 무 베먹듯이 먹어치울 수 있었다면, 천년설삼 쟁탈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겠지...'

천년설삼 같은 영약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니, 근 백 년 내에 발견되거나 제조된 영약 중에서는 기껏해야 소림사의 대환단(大丸丹) 정도나 비교할 수 있는 절세의 영약이다. 영약이란 말은 자연지기를 극(極)으로 머금고 있다는 뜻이며, 방대하게 뭉쳐있는 기 덩어리 그자체라고 볼 수 있다.

만일에 충분한 준비 없이 천년설삼을 처먹을 경우 나는 분명히 태양혈이 부풀어오르고 단전과 엉덩이가 뜨거워지다가 전신의 혈맥이 터져서 죽을 것이다. 천년설삼에 담겨있는 가공할 기(氣)를 감당하기가 힘들 게 뻔했다.

천년설삼에 담겨있는 것은 극한의 음기(陰氣)다. 몇십 년 몇백 년 동안 응축되어있는 음기의 덩어리를 먹기 위해서는, 나 또한 극음(極陰)의 기운을 보유하고 있어야 편하다. 그러나 그런 공력은 북해(北海)에서나 찾아볼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뇌룡일기공은 양강지력(陽强之力)이다.

같은 음기로 순응해서 받아들이는가.

혹은 강렬한 양기로 생명력을 지켜내면서 음기를 융화시키는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후자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공력이 천년설삼을 먹고도 생존가능한 수준인가는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내 내공이 일류급 수준에 이르렀다는 건 아마 확실하겠지만, 천년설삼 쟁탈전에 참여했던 쟁쟁한 고수들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내가 천년설삼을 먹고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 기억을 떠올려 보자. 그 때 천년설삼 쟁탈전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지? 뭔가 단서가 있을 거야...'

천년설삼 쟁탈전의 시작은, 단목세가의 소가주인 단목소가 외유(外愉)를 나간 것으로 시작되었다. 단목소는 도중에 정파의 후기지수인 오룡(五龍)과 만나서 친해졌고 황산을 유람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우연히 천년설삼을 발견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말싸움과 다툼이 벌어졌다.

그 결과 단목소는 오룡을 따돌리고 천년설삼을 가지고 도주했고, 오룡은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근처에 있던 황산파의 고수들이 개입하기 시작했고, 나아가서는 종남파와 화산파의 고수들까지 멀리서 달려와서 천년설삼을 뺏으려 들었다. 심지어 사파와 마도의 고수들도 파리끓듯이 단목소를 잡으려고 날뛴 것이다.

단목소는 운 좋게도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한쪽 팔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살아남게 해 준 정천맹주에게 천년설삼을 헌상했다고 들었다. 결과적으로 다들 죽써서 개준 꼴이 된 것이다.

' 잠깐... 뭔가 이상한데? 여기서 도망을 쳤다고?'

나는 기억에서 이상함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서 있는 설원(雪園)은 계곡에서 이어지는 지형이 아니다. 계곡 폭포 뒤편의 동굴이 십여 장을 이어지다가, 갑자기 낭떠러지가 있는 비경(秘景)이다. 물론 계곡 사이에 조그마한 샛길이 나 있지만 - 오룡같은 정파 후기지수들을 상대로 저기로 도망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한 명만 막아서도 통과할 수 없을 뿐더러 추격하는 자가 등에 칼을 꽂기가 너무 쉬운 지형이다.

나는 단목소와 오룡 사이에 뭔가 내막이 있었다는 걸 짐작했다. 더불어 그 날의 쟁탈전이, 평소 정파라는 낯을 쓰고 있는 자들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추악한 진흙탕 싸움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지금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여기서 바로 천년설삼을 복용하는 일에 도전할지, 그렇지 않으면 천년설삼을 갖고 나가서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해 볼지.

' 천년설삼을 갖고 나간다고? 터무니없는 소리! 그냥 여기서 먹자.'

나는 망설임없이 이 자리에서 먹는 걸 선택했다. 귀한 걸 얻었을 때는 남에게 빼앗기거나 잃어버릴 여지를 둬서는 안 된다. 어차피 이 자리에 오기까지가 생사를 건 도박이었으므로 내 체력과 정신력을 믿고 한 번 더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

이마에 땀이 한 방울 흘렀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천년설삼을 뽑아서 한손에 들었다. 과연 천하의 영약답게 단순히 잡고 있기만 한데도 한기가 손에 스며들어왔다. 더불어 청량한 냄새가 코에 흘러들자 내장이 씻겨내려가는 듯한 기분좋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아... 아냐. 조금만 체력을 회복하자."

나는 고개를 털었다. 막상 먹으려고 보니 두려움이 밀려왔고,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상당한 체력을 소모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체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아남는 데 유리한 게 분명하므로, 지금은 등산으로 지쳐있는 심신을 쉬어줄 때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나는 품 속에서 육포와 콩주머니를 꺼내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술병도 허리춤에 매고 왔지만 일부러 술은 먹지 않았다. 영약을 먹기 전에 술 처먹는 미친 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그래도 좀 배가 고픈데.. 흠.'

나는 입이 아쉬워서 쩝쩝거리다가 연못에 있던 연꽃을 발견했다. 연꽃과 연잎, 연뿌리는 식용(食用)으로 쓰기에 아주 알맞은 식물이었다. 저걸 적당히 데쳐서 먹으면 보양식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환사의 승려들도 저 검은 연꽃을 평소에 먹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건강에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연못가로 가서 연꽃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나는 검은 연꽃과 흰 연꽃을 하나씩 자르고, 연잎과 연뿌리를 따로 잘라내었다. 그리고 간단하게 불을 피운 후 연못의 물을 떠서 물통에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적당히 끓었다 싶자 끓인물을 눈밭에 뿌리고 썩은 부분을 잘라내었다.

적당한 온기가 피어오르는 연꽃과 연잎은 아주 맛있었다. 나는 흰 연꽃과 검은 연꽃의 맛을 비교해보면서 먹었는데 둘 다 적당히 맛있었다.

"배부르군."

나는 만족하고는 살짝 동굴에 기대어서 누웠다. 잠깐만 쉬었다가 천년설삼을 먹어볼 것이다.

"......?"

그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누워있는데 어째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아닌가? 그것도 내 내장이 녹아버릴 것만 같은, 용광로같은 기운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심장이 타버릴 것 같은 격렬한 고통이 밀려왔기에 나는 재빨리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앉았다.

"헉! 헉! 크허헉...!!"

미치겠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나는 급히 뇌룡일기공을 운용하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집중했다. 기를 대주천(大周天)으로 운용하자 정수리까지 솟구쳐 오르던 엄청난 양기(陽氣)가 잠시 진정되며 전신의 격통이 덜어졌다.

부글부글

"크허허헉..."

나는 다음 순간 피를 토했다. 기운을 가라앉혔으나 아직도 엄청난 양기가 뻗쳐서 전신에서 망나니처럼 날뛰고 있었다. 나는 무시무시한 고통속에서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에도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 영약... 영약은 서로 상생(相生)하고... 붙어서 산다... 설마...!!'

나는 기가 막혔다.

백련(白蓮)과 흑련(黑蓮)!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으나, 이 또한 천하의 영약이었던 것이다! 영약은 음기와 양기가 서로 붙어서 사는 습성이 있었으므로, 극음의 기운을 가진 천년설삼 근처에 극양의 기운을 지닌 연꽃이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리라.

' 하... 하지만 흑색연꽃을 먹고 산다는 승려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백련과 흑련을 함께 먹었기 때문인가?!

확실히 내가 한 짓거리는 그 누구도 생각하기 힘든 짓이긴 했다. 시간이 지나서 이 장소를 탐색하러 온 자들도 둘 다 먹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만 먹으면 잠재된 양기가 발현하지 않으나, 두 개를 다 먹는 순간 천년설삼에 못지 않은 양기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빠지직

투두두둑

전신의 혈관이 돋아나는게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뇌룡일기공으로 억누르고는 있으나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아서, 이대로라면 심장부터 터진 후 내장의 혈관이 풍선처럼 터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반 식경도 남지 않았다는 게 직감되었다.

' 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한 손에 있던 천년설삼을 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없이 입을 열어서 씹기 시작했다.

우적

우적

청량한 한기가 식도를 따라서 넘어가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잠시 후 천년설삼의 잔재가 위장까지 이르렀다고 생각되었을 때였다.

쿠콰쾅!!

"으아아아아악!!"

극한의 양기(陽氣)와 음기(陰氣)가 서로 만나서 폭발하듯 충돌했다! 나는 배가 칼에 찔린 것보다 더한 격통이 수시로 찾아오자 눈을 까뒤집고 쌍코피를 터뜨렸다. 피가 줄줄 흘러내리지만 거기에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전신의 살가죽에 침을 박아넣고 하나하나 뒤집어엎는 듯한 고통이었다.

"으악...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을 기어다녔다. 가부좌를 틀어서 기운을 진정시키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동시에 나는 잠깐이지만 속이 편해지면서 등에서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내부에서 천년설삼과 흑백련의 기운이 뒤섞이고 있다. 충돌을 하면서 내장이 터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동시에 영약의 기운이 그걸 땜질해주고 있었다. 나는 개미가 전신을 갉아먹는 고통속에서도 어이가 없었다.

' 자살행위였어... 만일 그냥 천년설삼을 먹을려고 했다면...'

지금과 딱 반대 상황이 펼쳐졌으리라. 극한의 음기가 치솟아오르고, 그걸 뇌룡일기공으로 막으려고 해도 절대 불가능하다. 천년설삼을 먹으려다가 꽁꽁 얼어죽는 미래가 생각나자 등골이 오싹했다.

그리고 내가 기적적으로 올바른 영약의 복용법을 찾아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극음의 천년설삼과, 극양의 흑백련을 동시에 먹는다!

그것 외에는 천년설삼을 먹고도 살아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고통이 점차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정확하게는 음기와 양기가 뒤섞이면서 부피가 커졌고, 내가 그 기운을 단전에 서서히 몰아넣고 있는 중이었다.

"쿨럭... 커윽... 으..."

나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운공법을 시도했다.

나는 명치까지 양기가 내려가자 비로소 심기침정을 행할 수 있었다.

온몸의 긴장을 늦춘 상태에서 혀끝을 윗니 부리에 붙였다. 호흡은 코로 하되, 들이쉴 때는 천천히 숨을 아껴 하단전이 불룩하게 될 때까지 들이쉬었다. 그리고 나서는 륜비분운(輪臂分雲)의 묘리에 따라서 숨을 서서히 내쉬며 양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하고 마보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세 번 정도를 반복하자 마침내 양기가 쑤욱하고 단전까지 내려앉았다.

단전에 양기가 내려앉은 순간, 기본이 되어서 단전에 뭉쳐있던 천년설삼과 흑백련의 기운이 감응하면서 전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통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점차 눈빛에 현기(玄氣)가 어리고 전신에서 땀이 끝없이 배출되었다. 단전에 폭발적인 힘이 맺히면서 주변의 혈도를 때렸다.

타앙!

그 힘은 임맥(任脈)을 따라 계속 올라가더니 결국 하나의 관문(關門)과 마주쳤다. 그 힘이 부드럽게 관문을 밀었으나, 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관자놀이 부근에 미미한 통증이 느껴졌으나, 그것이 내가 실제로 느끼는 통증인지 아니면 그냥 막연히 통증이 있을 거라고 추측한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전신에 퍼져 있는 기운을 단전으로 모았다가 일시에 쏟아내었다.

우르르릉...

나는 한참 후 눈을 떴다. 맑은 정광이 전신을 관통하는 듯 하다.

주변에 피를 됫박이나 토해낸 것이나,

고통때문에 바닥을 박박 긁다보니 손톱이 두 개 뽑혀나간 것이나,

전신에 싯누런 피땀이 칠해져 있는 것이나,

눈에서 피눈물이 말라붙어 있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전신에서 연기처럼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내공을 서서히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전에 기운을 다 밀어넣는 데 성공하게 되었고, 영약의 힘이 사지백해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생사현관(生死玄關)을 타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내공만큼은 확연히 절정고수의 경지에 이른 것!

대문파의 장로에 비교해도 못지 않은 가공할 내공을 지금 손에 넣은 것이다. 이제 내가 펼치는 초식이나 내공수법은 이전보다 최소한 열 배 이상의 위력을 보일 수 있으리라.

"성공했다."

기연을 노력으로 얻어냈다.

지금의 기분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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