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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화 (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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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설삼(千年雪蔘)

나는 그 날 이후로도 계속해서 진소청 사범의 개인지도를 받았다. 한 달으로 끝날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진소청은 나를 열성적으로 가르쳐 줄 생각인 것 같았다. 물론 거기에는 철저한 속셈이 숨겨져 있었으므로 나는 [사제의 연]이란 걸 믿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쿠우우우...

전신의 살갗이 아프다. 나는 단전에 쌓여있던 둥근 알약같은 기운이 새까맣게 타서 녹는 기분이 들었다. 이마와 등에서 땀이 철철 흘러넘쳐서, 내가 앉아있던 곳에는 끈적끈적한 습기가 차 있었다.

이윽고 완전히 기운을 녹였을 때 눈을 떴다.

그러자 진소청이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삼재심법의 내공을 다 녹였구나. 여기까지 딱 두 달인가?"

"네. 두 달 동안 열심히 뇌룡일기공(雷龍一氣功)을 수련했으니까요."

지금까지 두 달동안 내가 배운 것은 뇌룡일기공 운행법 뿐이었다. 무기술이나 경신법은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

진소청은 더 이상 대련을 고집하지 않았고, 그 대신에 밥먹을 시간도 아껴가면서 내가 뇌룡일기공을 수행하게끔 했다. 삼재심법의 기를 빨리 녹이면 녹일수록 이득이 된다는 이유였다. 그 때문에 나는 하루에 일곱 시진동안 미친듯이 좌공과 행공을 반복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삼재심법의 내공이 다 녹으면서 전신의 혈맥에 강대한 힘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힘없는 노새에 타서 비척거리고 있었다면, 준마(駿馬)의 등에 올라타서 힘차게 내달리게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뇌룡일기공 또한 뛰어난 일류기공술이라서 그동안 쌓인 내공도 많았다.

휘리릭!

갑자기 진소청이 손에 들고 있던 목검을 휘둘러서 내 눈 앞에 갖다댔다. 빠른 속도라서 코끝에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물끄러미 검극을 바라보고 있자 진소청 사범이 말했다.

"어떠냐? 내 칼이 조금 보이지 않느냐?"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네. 전보다 명확히 보입니다."

괜히 꾸며낸 게 아니라 사실이었다. 예전에는 진소청이 검을 휘두르면 희뿌연 잔영(殘影)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약간이지만 칼의 윤곽과 방향이 보인 것이다. 잘만 움직이면 피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내공수위가 높아지면서 안력(眼力)이 저절로 상승한 것이다. 안력은 무예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니, 네 무공이 올라갔다 보아도 무방하다."

동체시력을 비롯해서 체력, 완력, 회복력이 전체적으로 증가한 게 느껴졌다. 나는 씨익 웃었다.

"다행이네요."

"오늘부터 네게 무기술을 가르쳐야 할 텐데... 창(槍)을 먼저 가르쳐야겠구나."

"창이라뇨?"

나는 검법을 수십 년이나 배운 적이 있다. 비록 그게 표사의 무공이라서 처음부터 다시 수련해야하겠지만, 그래도 칼 쓰는 법에 있어서 나름대로 도가 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창을 잡으라니!

진소청이 말했다.

"당연히 창이 더 강하니까."

"무슨 소리신지..."

진소청이 자신있게 말했다.

"무림인들은 대개 검(劍)이나 도(刀)를 쓰며 창을 쓰는 자는 소수에 속한다. 그건 왜라고 생각하느냐?"

"......"

"당연히 창이 매우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창을 제대로 익힌 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관아에서도 창을 들고다니는 걸 싫어하기에 어쩔수없이 차선책으로 검이나 도를 택할 뿐, 기본적으로 창은 모든 무기의 기본이자 정점이다."

"그렇군요."

나는 왠지 알 것 같았다.

촌민(村民)들이 아무리 무지렁이에 힘이 없어도, 죽창이나 철창을 장비해서 수십 명씩 몰려다니면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류급 고수가 그런 농민병들에게 당해서 전신이 꼬챙이가 된 일도 본 적이 있었다. 개인대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무공의 격차를 손쉽게 줄일 수 있을 정도로 창이 강력한 무기라는 증거였다.

"하지만 지금 총사범님은 검을 잘 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 검실력은 매우 미천하다. 내가 장기로 삼는 건 창이니 어쩔 수 없지."

휘리리릭

그렇게 말한 진소청은 가볍게 검을 날렸는데, 무려 오 장 밖에 있는 검집에 정확하게 들어가서 꽂혔다. 보통 사람은 흉내도 내기 힘든 일이라서 그가 고수라는 사실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실망하지는 마라. 네가 뇌령팔식(雷靈八式)을 터득하고 나면 검술도 지도해 주겠다."

"뇌령팔식?"

"네게 가르쳐 줄 창술의 이름이다."

스윽

진소청은 내게 연습용 목창을 건네주었다. 창을 잡는 법은 기본만 알고 있어서 엉거주춤하게 따라서 잡아보았다. 그가 말했다.

"백웅아. 네게 별 재능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창술은 근성과 노력이 있다면 무조건 절정에 도달할 수 있는 무술! 네 잠재력을 한계까지 이끌어 주마."

"......"

내가 멍하니 진소청을 바라보고 있자, 그가 의아한 듯 말했다.

"왜 그러냐?"

"아뇨, 그게... 저한테 이렇게까지 투자하실 이유가 있나 싶어서."

나는 아직까지 천년설삼을 집어먹지 못했다. 딱히 영약을 먹은 적도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진소청에게 일대일로 지도받는 이 상황 자체가 기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왠만한 부자가 금덩이를 바쳐도 이런 호사를 누리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진소청이 무슨 생각으로 내게 시간을 쏟는건지 궁금했다.

"정말 솔직하게도 말하는구나."

"이광 관주님이나 총사범님이나 어디 가서 딸리시는 분이 아니잖습니까? 후기지수에 그렇게 집착하실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내가 딱 집어서 지적한 이유는 이제 진소청과 같은 배를 탔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뇌룡일기공만이라면 몰라도 뇌령팔식같은 비전창술을 알려줄 정도라면 완전히 같은 문파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렇기에 한번에 요점을 꿰뚫어서 물어도 진소청이 바로 나를 내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소청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유라... 그건 네가 한 사람 몫을 하게 되면 알려주겠다. 뛰지도 못하는데 날려고 하다니 건방진 놈이구나."

"그렇군요."

"백웅아. 일단 닥치고 배우기나 해라."

이어진 진소청의 말은 내가 평생을 두고 생각하게 되는 격언이 되었다.

"이유같은 건 강해지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시간이 흘렀다.

일 년(一年)은 금방 지나갔다.

돌아갈 곳도 없었기에 이 곳을 집으로 삼아서 매일 먹고자고 수련하는 나날만 반복되었다.

이 년(二年)째에는 약간 외로웠다.

몸이 커서 장골이 되어가는 중이었기에 사춘기(思春期)가 다가온 듯 싶었다.

삼 년(三年)째가 되자, 나는 진소청과의 대련에서 이십 초(二十招)를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까아앙!!

내 철창(鐵槍)이 요란하게 쇳소리를 내며 튕겨나갔다. 진소청은 목검을 가볍게 회수하며 내게 핀잔을 주었다.

"언제쯤 내가 백웅 너를 상대로 창(槍)을 써볼 날이 올까?"

"내 생전에는 안될 것 같습니다."

나는 푸념을 하며 주저앉았다.

청룡무관에서 진소청의 직계제자가 되다시피 해서 가르침받은지도 벌써 삼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진소청의 진짜 실력을 끌어낸 적이 없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나를 상대할 때 목검만 사용했으며 진짜 장기인 창을 사용한 적이 없다.

나도 어린애의 몸에서 꽤 자라서 장골이 되었고 키도 컸다. 그러나 진소청의 실력에는 아직도 까마득하게 모자랐다. 우울해져서 툴툴거리고 있자 진소청이 말했다.

"우리 청룡무관의 뇌령팔식(雷靈八式)에 뇌영검법(雷影劍法), 뇌영보(雷影步)도 다 익혔으면서 무슨 투정이 그리 많으냐?  그 모든 걸 제대로 익혔다면 나를 쓰러뜨릴 수 있는데."

"전 천재가 아니니까요."

나는 알고 있다.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진소청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진소청의 말대로, 3년 동안 청룡무관의 비전절기를 익힐만큼 익혔다. 창술인 뇌령팔식에 뇌영검법도 원없이 익혔고 뇌영보법도 익혔다. 특히 뇌영검법은 적성에 잘 맞아서 무려 오 성(五成)까지 이룬 것이다. 거기에다가 꾸준히 뇌룡일기공을 소화시키면서 내공도 또래 후기지수들에 비해서 절대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3년동안 내가 성장한 것 이상으로 진소청은 더 강해진 것이다. 나는 그의 한계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 과연 미래의 천하십대고수, 중원제일창인가...'

진소청은 목검을 어깨에 앉고 배를 긁적거리다가 말했다.

"네가 우리 무관에 온지도 벌써 3년인가?"

"햇수로 치면 그렇네요."

"고향에 한번 갔다오너라."

뜬금없는 진소청의 제안에 나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네? 고향?"

"그래. 너희 마을에 가서 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기별 정도는 해줘야 할것 아니냐?"

"......"

그런 곳을 고향이라고 불러야 할까?

매일 소똥치우는 일을 하면서 외양간에서 먹고자던 곳.

마을사람들 모두가 나를 천대하고 때때로 또래남자들에게 얻어맞던 곳.

내 편이라고는 한 명도 없어서 결국 표국으로 탈출하듯이 떠나야 했던 곳.

좋은 기억이라고는 눈에 씻고 찾아볼려고 해도 없었다.

"네가 편지도 한 통 띄울 생각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짐작이 간다만, 그래도 고향은 고향이다. 이제부터 더욱 바빠질텐데 마음을 정리할 겸 한번쯤 갔다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일리있는 말이었다.

고향마을에 애정이고 개뿔이고 남아있지 않으나, 마음을 정리해야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물론 그 방식은 내 마음대로일 테지만.

나는 새하얗게 웃었다.

"뭐 그러면 갔다오겠습니다."

"관주님께는 내가 이야기 해뒀으니, 노잣돈과 석 달의 시간을 주마. 그 동안에 원하는 만큼 고향공기를 마시고 와라."

"네."

고향공기라.

그건 어떤 느낌일까?

확실한 건 나는 결코 그 공기를 가만두지 않을 거란 사실이다.

나는 다음 날 아침에 짐을 싸서 청룡무관을 나섰다. 3년간 갇혀살듯이 지냈으니 관중시내조차 새롭게 보였다. 도중에 역참에서 말을 타고 갈까 생각했지만, 역시 돈이 아까웠으므로 그만뒀다.

' 마음을 정리하라는 이유는... 역시 나를 금의위(錦衣位)에 넣고싶은 걸까?'

금의위!

현 황실의 이대세력임과 동시에 뛰어난 고수들이 즐비하다는 무력단체. 이따금 관주 이광과 만나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할 때, 이광은 금의위에 대한 강한 집착심을 보였다. 어림군 사범 출신이자 정파의 고수인 이광이지만 과거 금의위에서 일할 때를 더욱 그리워하는 듯 했다.

그리고 은연중에 진소청 또한 금의위 얘기를 자주 꺼냈다. 그들의 의도가 금의위에 관련되어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멀쩡하게 청룡무관을 운영하면서 잘먹고 잘살고 있는 그들이 금의위와 관계되어서 뭐가 좋다는 말일까? 금의위같은 단체는 전관예우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되려 조직의 기밀과 관련된 자를 곱게 보지 않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쨌든 말하는 양을 봐서는 조만간 나를 이용해서 어떤 일을 꾸미는 게 분명했다.

' 안되면 도망치지 뭐.'

음모가 있어도 연관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는 이틀동안 관도를 따라가며 도중에 여인숙이나 민가가 있으면 쉬어가기를 반복했다. 처음 청룡무관에 왔을 때와는 달리 느긋하고 편하게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크하하하!! 어딜 가시나~?"

산적(山敵)이 길가의 풀숲에서 다섯 명이나 걸어나왔다. 나는 그들의 복장을 확인했는데, 역시 정규 녹림채의 산적들인 것 같았다. 기본적인 무술은 익히고 있을테니 성가신 적이다. 나는 침착하게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 돈이 없습니다. 가진 거 다 드릴테니 물러가 주십쇼."

"어허? 돈이 없다?"

맨 앞에 서 있던 털보산적이 히쭉 웃으며 가래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강한 살기가 울려퍼졌다.

"그럼 니 뱃가죽이나 잘라가야겠다!!"

쉬칵!

두 명의 산적이 거침없이 달려들어서 나를 칼로 베어왔다. 나는 뇌영보를 운용해서 재빨리 피했기에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3년 전이라면 피하기에도 급급했을 테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피하는건 문제도 아니었다.

' 닥치고 행인을 죽이는 강도들이군.'

산적은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그냥 뺏기만 하느냐, 아니면 죽이고 뺏느냐.

사람들은 후자의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반대였다. 사람이 죽고 도적떼의 악명이 커질수록 관아에서 토벌대가 출동하기 쉬웠으므로, 왠만한 녹림채의 도적들은 그냥 재산만 털고 보내주는 게 보통이었다. 표국과 산적들도 그런 불문율의 계약관계로 '상납금'을 바치곤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만난 것은 소수파에 속하는 강도들인 것 같았다. 이른바 닥치고 다 죽여서 뺏은 후 정처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부랑배들이다. 굉장히 질이 안 좋은 부류였으므로 같은 산적들 사이에서도 경원시되는 무리였다.

만일 3년 전에 이놈들을 만났다면 여기가 내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내가 진소청은 못 이겨도."

"어?!"

슈칵!

허리춤에서 칼을 뽑자마자 뇌영일섬(雷影一纖)의 초식이 산적 2명의 목을 뎅겅 베어서 날려버렸다. 나머지 산적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나는 휘돌듯 움직이면서 산적 한 놈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터엉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산적은 가슴이 크게 내려앉으며 피를 토해냈다. 가슴뼈를 뭉그러뜨렸으니 결코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히, 히익."

"저 놈 무림인..."

남은 산적 2명은 일이 잘못된 걸 느꼈는지 급히 등을 돌려서 도망치려 했으나, 나는 등 뒤를 쫓아가서 차례대로 목을 베었다. 썽둥썽둥 고깃덩어리가 잘려나가는 감각은 정말 간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 몇 년만에 살인을 다시 해보니 긴장되는 기분이 있었지만 곧 안정감을 되찾았다.

나는 들고 있던 면포로 칼에서 피를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오겠네."

내 눈이 약간 빛났다.

"어디 한번 촌장님 댁에 놀러 가 볼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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