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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7화 (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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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설삼(千年雪蔘)

다음 날 나는 아침을 먹고 진소청 사범 앞에 가게 되었다.

진소청 사범은 나를 앉혀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청룡무관에서 전수하는 무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무기술(武器術), 심법(心法), 경신술(經身術)이다. 이게 뭔지는 알겠지?"

"네."

무기술은 무기를 쓰는 방법이고 심법은 내공을 쌓는 방법이다. 그리고 경신술은 보법을 포함해서 몸을 날래고 가볍게 하는 모든 재간을 일컬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소청 사범이 말을 이었다.

"셋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심법입니다."

"그 이유는?"

"무기술은 실전에서 터득할수도 있으나 내공심법은 천금을 줘도 얻기 힘듭니다."

"잘 알고 있구나."

진소청 사범이 감탄한 듯 말했다. 표사로 수십년 굴러먹다보면 현실로 깨닫게 되는 것이라서 별거아닌 거 같지만, 실제로는 어린아이들이 깨닫기는 힘든 이치였다. 아이들의 시선에는 화려한 무기술과 경신술이 더 대단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래. 심법이 가장 중요하고 깊은 비밀이기 때문에 우리는 심법을 가장 나중에 가르친다. 만일에 심법의 수련이 잘못된다면 되돌릴 수 없는 내상을 입기 쉽다. 그래서 보통 일선(一線) 문하생이 되고나서 최소한 1년 후에 심법을 전수하게 되어있지."

그러더니 진소청 사범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네게는 심법을 가장 먼저 가르치기로 했다."

"어째서입니까?"

"삼재심법의 내공을 전신의 혈맥에 퍼뜨리기 위해서는 지금이 적기(適期)이기 때문이다."

"......?"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였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진소청이 피식 웃었다.

"네게는 어린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응축된 삼재심법의 내공이 쌓여있다. 그러나 내공이 하단전(下丹田)에 꾹 눌러져 쌓여있기만 한 탓에, 전신에 내공을 전달하는 속도가 느리다. 다른 고수들과 싸울때는 항상 한박자 늦게 되어있지. 삼재심법이 좋지 못한 심법인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으음...!!"

속도가 느리다!

나는 생전 처음 듣는 삼재심법의 치명적인 단점에 경악했다. 표사로 살고 있을 때는 내공심법을 깊게 연구할 일도 없었고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건 생각지도 않았다. 그런데 삼재심법은 알고보니 내공의 전달속도가 느린 심법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네 몸은 아직 아이의 상태이며 화기(火氣)가 깊게 침투하지 않아서 내공의 성질을 바꾸기가 쉽다. 오늘부터 청룡무관의 비전심법인 뇌룡일기공(雷龍一氣功)을 익히기 시작하면 응축되어있던 내공이 녹기 시작할 것이고, 너는 아주 빠른 내공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빠른 내공성취라면 어느정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흠... 전부 녹이는데 성공한다면 최소한 20년의 내공을 빠른시일 내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문파의 후기지수들도 얻기 힘든 성취지."

"......!!"

뇌룡일기공으로 삼재심법의 공력을 녹인다!

그걸 다 녹이면 이십 년의 내공이 보장되며, 그 수위는 대문파 후기지수급!

짧은 순간에 내가 엄청난 기회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전율로 몸이 떨렸다. 전생에 평생동안 하급표사로 살았던 한(恨)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씩 들떴다.

진소청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네게 3가지 수련방법을 가르쳐주겠다. 한 달 동안 3가지 수련법을 반복하면서 수련하도록 할 것이다."

"넵."

"첫 번째는 좌공(坐功)이다. 좌선명상을 통해 내공을 쌓는데, 가장 효율이 좋은 자세이다. 두 번째는 행공(行功)으로, 일상생활에서 가벼운 움직임을 통해서 전신에 내공을 통하게끔 수련한다."

거기까지 말한 진소청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마지막은 대련(對鍊)이다."

"대... 대련이라뇨?"

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다. 심법을 제일먼저 가르친다길래 몸을 많이 움직일 거 같지 않았는데, 대련이라니! 제대로 대련을 시작하면 진소청에게 개터지듯 맞을 게 뻔하므로 내 눈에는 두려움이 떠올랐다.

하지만 진소청은 태연하게 말했다.

"네 육합검법(六合劍法)에는 강렬한 살기(殺氣)가 배여 있다. 마치 실전에서 갈고닦인 듯한 예리함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건 결국 개싸움이자 막 휘두르는 성질을 포함하게 마련이지. 그건 고수의 경지로 갈수록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

진소청이 그럴듯하게 돌려말했지만 어떤 걸 지적하는지 알아챘으므로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렇다.

표사로써 수련한 육합검법은 결국 개싸움용이고 적을 찔러죽이기 위한 용도다.

별로 무공이 높지 않은 표사와 산적들이 얽혀서 칼을 휘두르며 싸우다 보면, 필연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주먹이나 발길질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헛점이 생기면 흙이나 모래를 던져서라도 상대의 시선을 가리고 칼로 찌른다. 정정당당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싸움을 수십 년이나 하다보면 개싸움에 익숙해져서 상대방과 간격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진소청이 준엄하게 말했다.

"고수가 왜 고수인 줄 아느냐? 수가 높은 자(高手)를 고수라고 하는 것이다. 제대로만 싸우면 자신보다 하수에게는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해서는 안되고, 점점 수준을 올리면서 치밀한 간합(間合)을 나누는 것이다. 나는 네가 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에 너를 친히 지도하기로 마음먹었다."

"......"

"하지만 명심해 둬라. 한 달 동안 너와 지속적으로 대련을 하면서 그 버릇을 고쳐보겠지만 만일에 잘 되지 않는다면..."

꿀꺽

내가 침을 삼키자 진소청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백웅 너에게서 뇌룡일기공을 거두고 쫓아낼 것이다. 고수가 될 수 없는 자에게 뇌룡일기공을 주긴 너무 아까우니까."

"......!!"

그제서야 나는 진소청이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챘다.

철저한 계산하에 나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내게 삼재심법의 내공이 있다는 걸 알아채자 나를 후기지수급으로 양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육합검법의 천한 버릇이 방해가 되자, 그걸 최대한 고쳐주려는 동시에 실패할 경우 내 내공을 폐(廢)하고 쫓아내버리려는 마음을 먹고있는 것이다. 심법의 비밀은 문파의 목숨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아서 말했다.

"고수가 될 수 없더라도 문하생으로 있을 수는 없겠습니까? 쫓아내신다는 건 너무 과하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다른 방일 사형을 포함한 문하생들 또한 뇌룡일기공을 익히고 있잖습니까!"

"그 아이들이 익히고 있는 건 뇌룡일기공이 아니다."

"네?"

"뇌룡일기공의 기본심법인 청운심법(淸雲心法)이지. 그 아이들은 삼선문하생이 될 때까지 청운심법을 포함한 무공을 수련하다가 뛰어난 자질을 지닌 몇몇만 뇌룡일기공을 전수받는다."

"......"

나는 뭔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그렇군. 뇌룡일기공이야말로 청룡무관의 진신절학(眞身絶學)인 거다. 그걸 익힌 건 관주와 눈 앞의 총사범, 그리고 두 명의 사범뿐인 것이다.'

문하생을 모아서 세력확장과 금전소득에 쓰는 한편, 섣불리 절학을 건네주지 않고 하위호환인 청운심법을 전수해줘서 간을 보는 게 청룡무관의 실체였다. 어쩌면 수십년동안 청룡무관에서 수련해도 표사와 별다를 거 없는 무공을 지닌 인생도 있을것이다.

나는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한 후 차분하게 말했다.

"제게 청운심법이 아니라 뇌룡일기공을 전수하는 이유는 고급절학일수록 삼재심법의 내공을 녹여내기 쉽기 때문이겠군요?"

"그래. 청운심법을 배운 문하생들도 너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청운심법은 뇌룡일기공과 주천법(周天法)이 비슷해서 훨씬 흡수하기 쉽지만."

"하지만 겨우 한 달의 시간을 주시다니... 한 달이 아니라 년 단위로 수련한다면 나아질수도 있는 걸 왜 그리 서두르십니까?"

내가 강하게 항변하자 진소청 사범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넌 정말 재밌는 녀석이구나. 너와 이야기하다보면 어린아이가 아니라 마치 수십 년 먹은 노회한 자와 이야기하는 것 같다."

"......"

"그건 말이다, 나와 수십수백번을 대련하면서도 안고쳐질 정도라면 처음부터 기재(奇材)가 아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재가 아니라면 가르치지도 않겠다는 듯.

철저한 계산으로 나를 대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스윽

진소청은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서 수련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후,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약 두 시진동안 내게 뇌룡일기공의 심법(心法)과 행공(行功)을 알려준 진소청 사범은 그 직후에 나와 대련을 하기 시작했다. 말이 대련이지, 내가 육합검법을 펼치고 있으면 허술한 부분에 다가와서 목검으로 다리가 부러져라 쳐 대는 폭행(暴行)이었다.

빠악!

"커억."

허벅지에 세게 후려쳐맞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마치 몽둥이찜질을 당하는 듯한 격렬한 고통이 하반신에서 올라온다. 눈 앞이 깜깜해져서 비틀거리자 진소청의 냉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안 차리냐? 어디서 그런 천박한 움직임을 배웠지? 대충 달려들어서 막싸움을 시작하면 운좋게 상대방 목에 칼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퍼억!

"으악!"

진소청의 발길질에 맞아서 일 장이나 날아갔다. 나는 가슴팍이 깨지는 기분이 들고 숨이 턱턱 막혔다. 기가 막힌 것은 이렇게 세게 맞고 있는데도 의식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으며, 그건 내 정신력 때문이 아니라 진소청의 힘조절 때문이다. 내가 기절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아프게 때리고 있는 것이었다.

"쿨럭... 쿨럭..."

"무예를 얕보지 마라. 진짜 고수들은 그런 어설픈 헛점을 결코 용납하지 않아! 대충 운좋게 이기는 일은 만에 하나라도 있을 수가 없다. 절대로!"

뻐억

콰직

콰아앙

나는 정신이 혼미할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얼추 백 대까지는 세 봤지만 이후로는 얼마나 맞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엉망진창이 되어서 수련당 구석에 널부러져 있으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때리는데도 내장에서 출혈이 일어나지도 않고 피멍도 별로 안 들었다.

진소청은 사람 잘 때리는데 도가 튼 인물이었다.

진소청이 목검을 자기 어깨 위에 올리며 빙긋 웃었다.

"그래도 근성은 있는 놈이군. 네 버릇을 고치도록 최선을 다해보마. 내일도 오늘처럼 두 시진동안 공력을 수련하고 대련이다."

차라리 패 죽여줬으면 좋겠다.

그 날 진소청에게 잔뜩 맞고 터덜터덜 내 숙소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윽!"

갑자기 건물 사이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내 멱살을 잡았다. 멱살을 잡혀서 끌려들어간 곳은 좁은 골목이었는데, 거기에는 이미 3명의 소년이 서 있었다.

' 이선(二線) 문하생?'

그들의 도복에 새겨져 있는 두 줄기 수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광대뼈가 튀어나온 이선문하생 하나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너냐? 총사범님께 개인지도 받는다는 놈이?"

한 녀석이 내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 질린 듯 말했다.

"으엑... 이자식 봐. 겁나 두드려맞았잖아."

"사범님이 패셨나 본데?"

푸하하핫

내 구타당한 모습을 보자 이선문하생들이 웃어댔다. 아마도 나를 손봐주려고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미 잔뜩 처맞고 온 상태라서 어이가 없는 것이다. 나는 멱살을 잡힌 채로 놈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 선배들. 나 이럴 시간이 없어. 가서 밥먹고 쉬어야 하는데."

"이 새끼가 분위기 파악 못 하냐?"

"어떤 분위기?"

"니가 처맞을 분위기 말이다...!!"

주먹이 빠르게 날아왔다. 꼴에 최소 2년은 수련했기 때문인지 시정잡배의 주먹보다는 훨씬 빨랐다. 하지만 진소청의 목검에 처맞아서 퉁퉁 부은 눈으로도 그 공격은 똑똑히 보였다.

"그러셔?"

그래서 나는 가볍게 피함과 동시에 멱살을 잡고 있던 놈의 명치에 그대로 무릎을 꽂았다.

퍼억

"끄어억..."

한 놈이 격침하자 나는 무표정하게 나머지 두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 놈들은 내가 반격해오자 욕지기를 내뱉으며 공력을 실어서 발길질과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렇게 좁은 골목에서 주먹과 발길질을 모두 피하는 건 힘든 일이다.

빠악

"어 이 새끼..."

하지만 내가 머리를 막으며 자세를 숙이자 별다른 타격이 오지 않았다. 놈들은 이런 싸움에 익숙하지 못한지 내가 팔뚝으로 막아내자 당황해했다. 나는 그대로 놈들의 옷깃을 강하게 끌어당겨서 자세를 흐트러뜨린 후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제대로 공력이 실린 주먹을 맞자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한 방에 침몰해버렸다.

풀썩하고 두 명이 동시에 쓰러졌다. 나는 힐끔 '선배'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병신들. 내가 뭐 곱게 살아온 도련님인줄 알았나보지?"

하인생활 하다가 표사 최하층에서 구르면서 산적들과 쉴새없이 싸워왔던 나다.

뒷골목 싸움질은 물론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에도 익숙하고, 강이나 늪지나 숲에서 행군하는 법이나 매복하다가 덮치는 방법에도 익숙하다. 표사로 살아남는 건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 뭐 그런 만큼 몸에 배여버려서 진소청이 내 버릇을 고치려고 하는거겠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앞으로도 이런 바보들이 계속 덤벼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정도 실력이라면 열 명씩 덤벼들지 않는 한 내가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남은 한 달동안 뇌룡일기공을 독살맞게 익히면서 진소청이 원하는대로 내 버릇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한차례 싸움박질을 하고도 태연하게 식당에서 밥을 먹자 몇몇 문하생들은 질렸는지 내 근처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사흘이 지나자, 나는 조금씩 몸이 풀리는 걸 느꼈다. 정확히는 몸에 박혀있던 무의식적인 버릇들이 반사적으로 고쳐지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진소청에게 쉴새없이 맞으면서도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했다.

"억!!"

"개새끼! 죽여버려!!"

퍼억

"병신들아 그래서 내가 죽겠냐? 크하하하!!"

나는 발차기 한방으로 맨 앞에 서있던 놈을 거꾸러뜨리며 웃어댔다.

문하생들과 싸우기도 계속 싸웠다. 방일이라는 뚱땡이는 나를 보호해줄 생각이 없는지, 뒷골목에서 문하생들과 피터지게 싸우는데도 못본 체 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막싸움에서 내가 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한 달째 -

"......"

나는 아침부터 진소청과 수련당에서 마주앉아서 가만히 있었다.

진소청 사범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합격이다."

"정말입니까?"

"그래. 네 버릇은 이제 고칠만큼 고친 것 같구나."

나는 얻어맞아서 퉁퉁 부은 얼굴로 피식 웃었다.

"잘 됐군요."

"내일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수련을 시작할 것이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부상을 치료하고 쉬어라."

"네."

이제야 한 단계 넘긴 셈이다.

희한하게도 그 날 숙소로 돌아오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동안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 사실이 약간 껄끄러웠으나, 나는 조용히 드러누워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잠을 청했다. 이제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류무공을 전수받는 것이다.

그 무렵, 진소청 총사범은 청룡무관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건물인 와룡전(臥龍殿)으로 향했다. 와룡전에는 청룡무관의 주인인 삼절(三絶) 이광(李光)이 살고 있었다. 관주의 개인적인 공간이었기에 그 누구도 출입하는 게 허가되지 않았으나 오직 진소청만은 예외였다. 그는 이광의 직계제자이자 친자식처럼 길러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관주님. 제자 진소청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너라."

드르륵

진소청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는 수려한 외모를 지닌 장년인이 탁자의 찻잔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 덩치가 크지도 않았고 언뜻 평범한 문사(文士)처럼 보이는 사내였지만, 사실은 그야말로 관중일대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절정고수인 청룡무관주 삼절 이광이었다.

삼절 이광은 자신의 애제자, 진소청을 보자마자 말했다.

"그 백웅이란 아이를 시험해 본 결과는 어떻더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무재(武材)는 그리 특출나지 않습니다. 그 내공을 어떻게 쌓은건지 의아할 정도로 평범한 수준입니다."

삼절 이광은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러면 무공을 폐하고 내쳤느냐?"

"아닙니다. 몸에 배여있던 나쁜 버릇을 고치더군요. 아직은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흐음... 오성(悟性)이 낮으나 독기(毒氣)가 충만하다라. 그 아이는 사파(邪派)의 소양이 있구나."

삼절 이광은 불쾌한 듯 중얼거렸다.

백웅같은 경우는 그리 특이한 게 아니다. 무공의 재능이 뛰어나진 않지만 타고난 독기로 재능을 따라잡으며 성장하는 유형이 있었다. 주로 사파고수들 중에 그런 식으로 자수성가한 인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삼절 이광은 황실어림군의 사범출신이자 정파(正派)의 고수였기에 백웅같은 재능을 키우기가 꺼림칙했다.

진소청이 말했다.

"하지만 제대로 수련하면 분명 구파일방(九派一邦)의 후기지수 수준까지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공을 전부 녹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게 맞겠지. 앞으로 백웅 그 아이를 잘 키워보도록 하자."

"네, 스승님."

"그리고 아이들을 어설프게 움직이는 건 관두거라."

움찔!

진소청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계셨군요."

"어차피 그런 녀석은 독기가 충만하기 때문에 왠만한 일로는 꺾이지 않는다. 괜히 근성을 시험해 보려다가 뱀머리를 건든 꼴이 될 수 있음이야."

"새겨듣겠습니다."

"그럼 나가 보거라."

"네."

드르륵

진소청은 밖으로 나오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내 생각이 틀렸단 말인가?'

사실 백웅이 진소청과의 수련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문하생들에게 시비가 걸려서 싸움질을 한 것은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니었다. 진소청이 은밀하게 삼선문하생 몇 명에게 명령을 내려서 싸움을 붙게 만든 것이다. 진소청의 생각에는 그렇게 독기를 부추김으로써 백웅이 수련에 더 집중할 수 있을거라고 여겨졌다.

결과적으로 백웅은 진소청의 시험을 통과했다. 하지만 스승은 진소청의 음모를 모두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게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걸 지적했다. 진소청의 행동은 백웅을 괜스레 자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스승 이광은 진소청 이상으로 백웅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의외로 백웅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진소청은 왠지 모를 호기심이 생겨서 웃었다.

"좋다, 백웅. 네가 청룡무관에서 얼마나 배워갈 수 있을지 어디 지켜보마."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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