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화 (6/1,615)

0006 ----------------------------------------------

천년설삼(千年雪蔘)

뚱뚱한 문지기는 당황한 듯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고, 옆에 서 있던 놈은 뻘쭘하게 서 있었다. 그들도 의외의 사태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 듯 했다. 다행인 건 자기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덤벼들지 않은 것이었다.

잠시 후 뚱뚱한 문지기가 나와서 말했다.

"너 잠시 날 따라와라."

"관주님께 가는 겁니까?"

"아니. 사범님을 뵙기 전에 그 더러운 꼬라지를 좀 고쳐야겠다."

나는 처음에는 그가 나를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서 패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와 함께 관중 시내로 나가서 왠 여인숙으로 가고, 거기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하게 되었다. 어리둥절하고 있자 그 뚱뚱한 문지기는 어디에선가 옷을 가져와서 내게 던져줬다.

"깔끔하게 씻어라. 자칫하면 나도 불호령을 맞는다."

옷은 적당히 내 몸에 맞았다. 깡마른 몸이라서 그런지 펄렁펄렁하긴 했으나 입고다닐만한 흰색 옷이었다. 몸을 말리고나서 뚱뚱한 문지기를 따라서 다시 청룡무관으로 가자 이번에는 곳곳에 문하생들이 나와있는게 눈에 띄였다.

문하생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보였다. 나를 힐끔대면서 쳐다보는 건 물론이고 킥킥 웃는 놈들도 있었다. 뚱뚱한 문지기가 힐끔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너는 사범님과 면담을 할 것이다. 만일 불경스러운 짓을 한다면 네 손모가지가 날아갈테니 말과 행동을 조심해라."

"네? 관주님을 뵙는 게 아닙니까?"

"관주님은 바쁘시다. 문하생을 가르치시는 총사범님이 너를 문하생으로 받을지 판단할 것이다."

있을 법한 일이었기에 나는 납득했다. 하긴 청룡무관쯤 되는 거대무관이라면 신입문하생 하나하나를 일일이 총관주가 보고 판단하기 힘들 것이다. 아마 총사범을 통해서 자질을 가진 놈인지를 추려본 후, 나중에 청룡무관주가 정식제자로 받을지를 판단하는 구조이리라.

"사범님. 왔습니다."

"들어오너라."

끼익 -

고즈넉한 향내가 나는 목조건물의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안에는 점잖게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까까머리 청년이 앉아 있었다. 완전 풋내나는 청년은 아니라 딱 20대 중반인상의 사내였다. 그렇다 해도 사범이라는 인물이 이렇게 젊을줄은 몰랐던지라 나는 약간 놀랐다.

'사범'은 나를 보더니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방일이를 팔씨름으로 눕혔다고? 그거 참 대단하구나."

"......"

"이리 와서 앉아라. 편하게 얘기나 해 보자꾸나."

덜컹

방일이라고 불린 뚱뚱한 문지기가 문을 닫고 나가자, 나는 망설임없이 다가가서 사범 앞에 앉았다. 그러자 사범의 눈에 약간 이채가 지나갔다. 아마도 쭈뼛거리는 기색 없이 행동하는 게 특이하게 여겨진 것이리라.

곧이어 사범이 말했다.

"나는 청룡무관의 사범인 진소청(辰蘇淸)이다. 아이야 네 이름은 뭐라 하느냐?"

"......!!"

뭐라고?!

하지만 나는 의연하게 행동하던게 거짓말인 것처럼,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난데없이 뜬금없는 이름이 흘러나오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어? 뭐라고? 진소청?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나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저, 저는 멀리 매화표국 근처마을에 사는 백웅이라고 합니다... 혹시 진소청 사범님은 주특기가 창이십니까?"

내 질문에 진소청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스승님께서는 삼절이라 하여 세가지 무기를 모두 터득하셨지만 나는 재주가 없어서 창술 하나밖에 익히지 못했지."

"......"

나는 진소청의 저 말이 과도한 겸손이란 걸 알고 있다. 저 자는 이미 천하무림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절정고수의 수준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당황한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진소청.

그 이름은 지금부터 30년 후 - 천하십대고수(天下十代高手)로 이름을 날리는 창술(槍術)의 절대자(絶對者)였기 때문이다. 그는 종종 중원제일창(中原第一槍)이라 불렸으며, 천하의 마두들을 무려 100여명이나 추살한 의협(義俠)이었다. 어찌나 명성이 자자한지 천하십대고수 중에서도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절세고수였다.

하급표사로 근근히 먹고살던 미래의 나 따위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인물이 현재 내 앞에 앉아있는 것이다.

진소청은 궁금한 듯 말했다.

"헌데 백웅아. 너는 어째서 내 주무기가 창이라고 생각한 것이냐? 보다시피 이 수련당에는 창을 비롯해서 다양한 무기가 준비되어 있거늘."

뭐라고 대답하지?

나는 약간 생각을 하다가 적당히 둘러대었다.

"손의 굳은살 때문입니다."

"호오?"

내 말에 진소청은 자신의 손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기재(奇材)구나! 방일이가 간만에 멋진 대어를 물고 왔구나."

얼떨결에 둘러댄게 맞아들어간 모양이다. 사실 손의 굳은살을 보면 그 사람의 수련정도를 대충 알 수 있는 게 사실이지만, 내게는 그게 창술로 인한건지 검술로 인한건지 구분할 안목이 없다. 그냥 오랜세월 표사를 하다가 쌓인 상식을 내질러본 것 뿐인데 잘 먹힌 것이다.

내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진소청이 말했다.

"그럼 내력(內歷)을 좀 알아보자. 네게는 상당한 내공이 있는 듯 싶은데 어떻게 하여 얻게 되었느냐? 그리고 어째서 우리 청룡무관에 들어오려 하느냐?"

예상했던 질문이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촌장님 댁에 얹혀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지나가던 표사에게서 육합검법과 삼재심법을 전수받게 되었고, 몇년동안 열심히 수련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은 무예의 길을 탐구하고싶어서, 관중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청룡무관에서 가르침을 받으려 찾아온 것입니다."

지난 여행길동안 계속해서 생각해 왔던 답변이다. 틀린 점이나 꼬투리 잡힐 일은 하나도 없다. 내 말을 들은 진소청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팔을 내밀어 봐라."

"네."

내가 팔을 내밀자, 진소청은 손가락을 팔뚝에 대고서 손을 만지작거렸다. 한참동안 집중하고 있던 진소청이 말했다.

"상당한 내력이구나. 네가 수련한지는 얼마나 되었으냐?"

"4년쯤 되었습니다."

"4년!! 으음... 과연 밤낮없이 용맹정진(勇猛精進)했구나. 기특하다."

"......"

나는 그 순간 약간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 납득해 버리는군...'

내심 나는 나이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내공이라서 의심을 받지 않을까 고민했었다. 지금도 반쯤은 어쩔수없다는 생각으로 내력을 측정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4년이라는 변명을 대자 흔쾌히 납득해 버리는 걸 보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40년동안의 표사생활동안 쌓은 무공은 정말로 별것아닌 수준이었다. 진소청은 4년동안 열심히 수련하면 이 정도 내공은 쌓을 수 있다고 진심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진소청이 말했다.

"다행히 삼재심법은 기본심법이라서 다른 공력을 다시 익혀도 주화입마(周火入魔)에 들 가능성이 없다. 너는 오늘부터 일선(一線) 문하생이며 청룡무관의 무공을 익히게 될 것이다."

"일선이 무엇입니까?"

"본 청룡무관은 총관주님 아래에서 내가 문하생을 총감독하고, 그 밑에 사범 두 명이 있다. 가장 오래된 고참문하생들이 삼선(三線)이며 그 다음이 이선(二線)이다.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진소청의 설명은 간략하게 청룡무관의 서열을 정리하고 있었다.

총관주와 총사범이 정점에 있으며 그 아래에 실력이 뛰어난 사범 2명이 있다. 그 밑으로는 선이 많을수록 고참문하생이며 실력도 좋은 것이다. 왠만한 대문파 못지않은 규모였기에 나는 새삼 청룡무관의 성세를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네 육합검법의 성취를 간단하게 알아보고 면담을 끝내도록 하자."

"넵."

"저기 있는 목검을 들고와서 마주서 보거라."

스으...

잠시 후 나는 수련당 벽에 보관되어있던 큰 목검을 하나 꺼내서 자세를 잡고 섰다. 진소청은 내 자세를 보더니 흥미로운 듯 웃었다.

"하하... 자세는 어디서 배웠느냐?"

"그 표사분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재밌군. 그건 도법(刀法) 자세인데..."

"......"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표사들은 표국주에게서 전체적인 무공을 전수받고, 나머지는 중간대장급인 표위에게서 가르침을 받는다. 내 자세는 표국주가 실전적이라고 지도해준 것이므로 이게 검법용인지 도법용인지 알지도 못했던 셈이다.

"자, 최선을 다해 공격해 보거라."

"하아앗!!"

나는 기합성을 내지르며 육합검법을 구사해서 진소청에게 덤벼들었다. 첫 초식은 육합검법의 가장 기본적인 초식인 태산압정(泰山壓丁)이었고 팔뚝의 근육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이어서 진각을 밟으며 내가 알고 있는 육합검법의 검식을 차례차례로 펼치며 공격했다.

슈슈슈슉!!

육합검법의 초식을 전부 다 한번쯤 펼쳤을 때 쯤일까, 그때까지 여유롭게 피하기만 하던 진소청이 갑자기 내 목검을 손가락으로 잡아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아름드리나무를 세 번 패면 쓰러질 정도로 강력한 검격(劍擊)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버린 것이다!

진소청은 목검을 놔 주며 말했다.

"희한하구나. 이건 상당히 실전(實戰)에서 숙련된 솜씨가 느껴진다. 너는 혹시 사람을 벤 적이 있느냐?"

가슴이 뜨끔했다. 아무리 고수라지만 설마 초식펼치는 것만 보고 전부 다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네. 산적이나 도적에게서 몸을 지키기 위해서 썼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표사로 살 때 산적과 도적들과 무수히 싸운 건 사실이니까.

진소청은 뭔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흐음... 그렇다면..."

잠시 후 진소청이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다.

"방금 일선 문하생으로 받겠다는 말은 취소하겠다. 너는 지금부터 한 달동안 내가 직접 지도해 주마."

"네?!"

"그러나 만일... 제대로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 때는 쫓아내겠다."

고쳐진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지만 진소청은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은 채 말했다.

"방일! 거기 있느냐?"

드르륵하고 문을 열고 뚱뚱한 문지기, 방일이 들어왔다. 잘 보니 그의 도복에는 두 개의 수실이 가로로 새겨져 있어서 이선(二線) 문하생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넵."

"이 아이는 내가 한 달동안 직접 지도할 것이다. 다른 문하생들이 시비를 걸지 않도록 네가 책임지고 분위기를 만들어라."

"......!!"

방일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뭔가 억울한 빛도 눈빛에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표정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너는 오늘은 피곤할테니 숙소에서 푹 쉬고, 내일 묘시에 이 수련당으로 찾아오거라."

"네."

그리고 나는 방일의 안내에 따라서 내 숙소로 향했다. 지금까지 먹고자던 외양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편해보이는 방이었다. 내가 깔끔한 방을 둘러보며 연신 신기해하자 방일이 말했다.

"총사범님의 직접지도라니... 네 놈은 무슨 아부를 한 게냐?"

뒤를 돌아보니 방일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질투심과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과거 50여년간 살아왔던 경험으로 그걸 알아챌 수 있었다. 아마도 진소청 총사범에게 지도를 받는다는 사실이 못내 분한 듯 했다.

하지만 얼떨떨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선문하생에서부터 차분하게 수련하면서 일류무공을 배울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급전개라니. 게다가 앞으로 타 문하생들에게 질투를 사면 청룡무관에서 살아가기 힘들게 뻔했으므로 그리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흥... 됐다!"

카악 퉷

방일은 땅바닥에 가래침을 뱉더니 경고하듯 말했다.

"잘 들어둬라. 여긴 질서가 있다. 무지렁이 때처럼 함부로 나대면 결코 가만 놔두지 않아! 알아듣겠어?!"

나는 기가 막혔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듯, 이런 놈은 어디에서나 한놈씩 있는 것이다. 원래 내 처세술이라면 이런 녀석에게 대충 굽실거리며 넘어가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차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거라면 괜히 쫄아서 가슴도 못펴고 살고싶진 않은 것이다.

그래서 되려 이죽거리며 웃었다.

"하하. 선배다운 선배라면 전 당연히 공경해드리겠죠!"

"......"

"방일 선배님도 피곤하실텐데 들어가서 주무시는게?"

"퉷!"

방일은 땅바닥에 침을 뱉고는 가 버렸다.

나는 싱긋 웃고는 침상에 드러누웠다. 제대로 된 침상과 이불이라서 등이 편하고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이런 곳에서 천년만년 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을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 그나저나 정작 총관주인 삼절(三絶) 이광(李光)은 한번도 보지 못했군. 하긴 대문파와 맞먹는 청룡무관의 관주니 바쁜일도 많을테지...'

나는 잠시 후 밥먹으라고 알리려고 찾아온 일선문하생 한 명을 따라가서 밥을 먹었다. 커다란 식당같은 건물에서 다같이 밥을 먹는 식이었다. 방일이 벌써 소문을 흘렸는지 곳곳에서 웅성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 아이고, 앞으로 좀 괴롭겠구나.'

밥은 맛있지만 걱정이 된다. 나는 이미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려고 하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각오를 했다.

내 청룡무관에서의 생활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일류무공을 터득하기 전에는 이를 악물고 버텨내리라!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려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