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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화 (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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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설삼(千年雪蔘)

천년설삼이 처음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내 나이가 딱 30대 초반이 되었을 때 쯤이었다. 죽기 20년 전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때 표사경력을 순조롭게 쌓아가며 하루하루 먹고사는 도중이었고, 그 때가 제일 평안하고 느긋한 시절이었다.

천년설삼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단목세가(檀木世家)의 소가주(小家主), 단목소(檀木蘇)였다. 젊은 무림인인 단목소는 산천을 유람하기를 좋아했는데, 그러던 중에 황산(黃山)에서 우연히 기이한 장소를 발견한 것이다. 그 장소는 산중인데도 일년내내 얼음이 녹지 않는다고 했고, 단목소는 그 곳에서 천년설삼을 채취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일어났다.

단목소는 혼자서 천년설삼을 발견한 게 아니었고, 같이 동행하던 정파무림의 기재(奇材)인 오룡(五龍)과 동행하던 상황이었다. 뛰어난 무림후기지수인 오룡은 단목소가 얻은 천년설삼을 눈치챘고 이내 소유권을 얻기 위해 쟁탈을 벌이기 시작했다. 서로가 죽고죽이는 사투가 벌어지고, 황산 일대의 무림문파까지 동원되어서 무려 한 달포나 소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천년설삼은 정천맹주(正天盟主)의 소유가 되는 것으로 천년설삼 소동은 막을 내렸다. 어째서 일이 그렇게 된 것인지 자세한 내막은 나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내 한몸 건사하기도 벅찬 하급표사였기 때문이다.

'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지. 황산에는 천년설삼이 있고, 내가 그걸 누구보다도 먼저 찾아낼 수 있다는 것.'

천년설삼을 그 누구보다도 빨리 찾아서 주워먹는다!

그것보다 확실하고 강렬한 기연이 세상에 존재할까?

천년설삼은 무려 이 갑자(二甲子)의 내공을 단숨에 늘여준다고 하며 복용한 사람은 장생불로(長生不老)가 보장된다고 하는 전설의 영약이다.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일류문파에서 수십 년동안 수행한 절정고수 중에서도 일 갑자의 내공을 보유한 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분명히 천년설삼은 목숨을 걸고 얻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물론 영약만 먹는다고 하루아침에 고수가 되는것은 아니다. 뒷받침해주는 절정의 무공(武功)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천년설삼을 먹는다면 고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었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크게 안달이 났다.

' 황산은 멀다. 충분한 노잣돈과 체력이 필요해.'

여기서 황산은 말을 타고 약 보름을 가야하는 거리에 있었다. 십대 어린아이인 이 몸으로는 거기까지 가다가 굶어죽거나 탈진할 가능성이 높았고, 그게 아니라도 황산 전체를 뒤지면서 천년설삼을 찾아내는 강행군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답은 하나다. 충분한 노잣돈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말을 탈 수 있을 것이고, 황산에 도착해서도 배 곯지 않고 영약을 탐색할 수 있으리라. 나는 표사로 지내던 시절의 경험에 비추어서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할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딱 은자 열 냥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상당한 액수의 돈이었다. 이걸 모으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부터 생각하자 골치아파졌다. 왜냐하면 하급표사로 거진 반 년은 일해야 모을 수가 있는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모아야 하는데 뭘 해야할지 감이 안 잡힌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 아냐. 조금 천천히 생각해 보자.'

역사상 단목소가 천년설삼을 발견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20년 가까이 지난 후이다. 즉 그 때까지만 천년설삼을 찾아낼 수 있다면 충분히 독점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서두르던 이유가, 이 거지같은 촌장집 하인생활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란 걸 깨닫고는 쓴웃음을 흘렸다.

"후..."

사실 아직도 얼떨떨하다. 나는 어째서 그 때 가슴에 화살을 맞았는데도 죽지 않고 과거로 되돌아 온 걸까? 금새 현실에 적응해서 계획을 짜고는 있지만,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하나도 아는 바가 없다.

확실한 건 하나다.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돈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게 일어난 역행(逆行)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낼 수 있으리라.

하급표사로 썩을 때처럼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 만족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외양간으로 가서 마저 소똥을 다 치웠다. 다 치우는데는 한 시진이 걸렸고, 다 끝난 후 시냇물로 가서 몸을 씻고 드러누워서 쉬었다. 상당한 중노동이 끝나고 나자 배가 고팠지만 촌장이 밥을 줄 리가 없었으므로 그냥 눈을 감았다.

' 천년설삼으로 바로 가는 건 무리야. 우선은 촌장을 설득하자.'

촌장을 설득한다는 것.

그것은 이 집안의 하인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협상을 한다는 뜻이었다.

기다리고 있자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때쯤 촌장의 아들, 금만재 놈이 학숙에서 어기적어기적 걸어들어왔다. 학숙이란 지방 유력자집안의 자제들이 모여서 과거(科擧) 준비를 하는 것으로, 뛰어난 글공부 선생을 모시는 곳으로 유명했다. 다만 나는 금만재놈이 학숙에서 공부하는 척 매일 농땡이를 까면서 이따금씩 친구들과 함께 술과 고기를 처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이도 어린데 벌써부터 술맛을 아는 걸 보면 정말 앞으로 어떻게 살지 걱정되는 놈이었다.

나는 곰보투성이 얼굴인 금만재를 보자 대뜸 말을 꺼냈다.

"도련님. 큰 어른께 드릴 말이 있는데 어르신께서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나는 외양간 근처에서 나오는 게 금지되어있으므로 촌장식구들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잘 알지 못했다. 물어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 내가 시킨 일은 다 했느냐?"

"네. 외양간 다 치웠습니다."

금만재는 검사를 하듯 외양간을 쓰윽 훑어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별채에 계실 거다. 날 귀찮게 하지 마라."

툭 내뱉고는 자기 방으로 가서 드러눕기부터 하는 금만재였다. 같은 어린나이의 소년또래이긴 하지만 금만재를 보자 왠지 화도 나지 않았다. 결국 부모등골 빼먹다가 매일 주색잡기를 탐하는 한량백수가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촌장이 있는 별채로 향했다.

마침 촌장은 별채 마당에 나와서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나는 촌장을 보자마자 인사하며 말했다.

"어르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음?"

촌장은 염소수염을 기르고 간사한 인상의 중년사내였다. 그는 좁쌀만한 눈을 옴작거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똥아 뭐냐?"

으득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랬다.

표사가 되기 전에 내게 제대로 된 이름은 없었다. 그저 촌장가족들은 나를 '소똥이' 혹은 '소똥'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그리고 멸시하고 하대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잠시 서 있다가 주먹을 쥐고 말했다.

"어르신. 저는 소똥이가 아닙니다. 백웅(白雄)입니다."

표사로 독립하고 나서는 부모님이 주어지는 내 이름으로 살아갔다. 촌장은 내가 당연한 대답을 하자 흠칫했다.

"험! 애칭도 모르느냐? 미련한 새끼... 쯔쯔."

되려 혀를 차면서 나를 노려보는 촌장이었다. 그는 여태 한마디 불만도 말하지 않던 내가 정면으로 의견을 내밀자 불쾌한 듯 했다. 하지만 정말로 불쾌한 건 나였다. 촌장도 내 진짜 이름을 알고 있었을 텐데 하인처럼 지내는 몇 년 동안 한번도 백웅 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멍청한 하인으로 평생 살게 하려고 고의적으로 그랬던 게 틀림없다.

나는 그가 적반하장으로 분노하기 전에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무관(武館)에 시험을 치러 가려고 하는데 내일 시내에 나가도 되겠습니까."

"뭐?"

촌장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너 제정신이냐?"

무관에 시험을 친다!

무관이라는 건 무술(武術)을 지도해주는 무예도장이었다. 이 곳에서는 많은 돈을 받고 무술을 가르쳐줌과 동시에, 뛰어난 무인(武人)을 배출해서 강호의 대문파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 마을은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근처에는 무관이 열개도 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원래 많은 돈이 필요했다. 무관을 운영하는 자들은 무림에서 깨나 이름을 날렸던 일류고수(一流高手), 혹은 구대문파나 오대세가 출신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비싼 돈을 받고 무술을 지도하는 게 보통이었다. 서민나부랭이는 무공을 익히고싶어도 익힐 수 없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딱 하나, 무관에서 별도의 돈을 크게 내지 않아도 무술지도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무관에서 입관시험을 쳐서 뛰어난 무재(武才)를 입증받는 것이었다.

무관사범들이 영리를 추구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뛰어난 제자를 받아서 자신의 문파를 크게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재능만 뛰어나다면 돈이 없어도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제자로 키워주는 게 보통이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안될 거 없지 않습니까?"

"안될 게 많지. 니가 무슨 재능이 있다고 무관의 문을 두드린다고?"

촌장은 되려 웃긴지 껄껄 웃더니 말했다.

"그래 어느 무관에 시험을 치고싶은지 말이나 해 봐라. 재밌으니까 한번은 보내주지."

"관중(關中) 청룡무관(靑龍武館)입니다."

"......!!"

촌장의 좁쌀만한 눈이 약간 크게 떠졌다. 그는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소똥아. 너는 청룡무관이 뭐하는 곳인지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이냐?"

또 나를 소똥이라고 불렀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네."

"뭐하는 곳인데?"

"황실 어림군 사범 출신인 이광(李光)이 차린 무관이죠. 관중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무관입니다."

이광은 관중 일대에서도 절정고수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검술, 창술, 권법을 고루 통달해서 삼절(三絶)이라고도 불렸다. 이광의 무술과 인품을 흠모하는 무림고수들도 적지 않았다.

"잘 아네!"

촌장의 얼굴이 사나운 메기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서 내 이마를 꾹꾹 누르면서 성질을 냈다.

"니, 가, 소똥 치우는 소똥이인데 거기에 시험을 치겠단 말이냐? 거기는 내로라하는 무인들도 들어갈 수 없어서 안달을 내는 곳인데, 니가 거기에 시험을 치겠다고?"

"......"

"니가 웃음거리가 되면 네 부모대신 맡아서 키우고 있는 나도 욕을 먹는다. 괜한 생각하지 말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거라."

나는 촌장의 팔을 잡아챘다.

꽈지직!

"억, 억, 으억!!"

촌장이 난데없이 팔에 닥쳐 온 압력때문에 비명소리를 질렀다. 팔을 부러뜨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제법 세게 쥐었기에 붉은 자국은 남았을 것이다. 내가 팔을 놓자 촌장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니, 니, 니놈이 키워준 사람한테 감히..."

"잘 보십쇼. 제게는 이런 힘이 있습니다."

나는 근처에 있던 나무에 가서 아름드리 나뭇가지를 잡았다. 그리고는 힘을 주어서 팔뚝만한 나뭇가지를 단번에 부러뜨렸다. 왠만한 성인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이었기에 촌장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삼재심법이 구린 삼류무공이라고 해도 반세기 가까이 수련하면 이 정도 위력은 낼 수 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 백웅이 청룡무관에 붙는다면 더 이상 촌장님께 폐를 끼칠 일도 없고, 촌장님의 이름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실패하더라도 촌장님 낯에 먹칠하지는 않을테니 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

촌장은 머리를 굴리는 듯 염소수염을 몇 번 잡아당겼다. 그러더니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대신에 니가 청룡무관의 제자로 들어간다면 반드시 너를 키워준 돈을 갚아라."

"네?"

이게 무슨 소린가.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촌장을 바라보자 그는 뭘 보냐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너를 2년간 맡아키우느라 우리집 살림이 축났으니 당연한거 아니냐? 거기서 한사람몫을 하게 된다면 그 돈을 받아야겠다."

"하아... 얼마를 내란 말씀이십니까."

"은자 오십 냥은 되겠구나."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십대 소년을 외양간에서 먹고자게 하면서 일도 시키고 밥도 제대로 안 줬던 주제에 2년 생활비로 은자 오십 냥을 운운하다니? 이 인간은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나는 속이 부글거리는 걸 꾹 눌러참고는 웃었다.

"하하! 내일 당장 가보겠습니다."

두고보자.

힘을 얻고 나면 네놈과 아들놈 금만재는 반드시 쳐죽여버리겠다.

속으로는 그런 흉악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순수하게 기뻐하는 척 했다.

지금 이 놈들을 칼들고 죽여버릴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삶을 얻은 이상 일단 내 살 길부터 찾고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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