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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그림 속의 연인 (49/96)


49. 그림 속의 연인
202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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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차라도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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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다.”

며칠 전부터 내내 같은 대답이었다.

리얀이 속으로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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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이 부족하면 얼굴이 상하실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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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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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폐하께서 잘생겼다고 하신 얼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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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집무실 카우치에 누워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레스칼이 팔을 치우고 리얀을 노려보았다.

며칠 새 더 날카로워진 금안이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리얀은 꿋꿋하게 버텨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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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 보충은 하십시오. 피부가 거칠어지면 외모도 덜해 보입니다.”

레스칼이 휙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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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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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하셨습니다.”

고작 며칠 굶었다고 저 얼굴이 수척해 보일 리는 없었다. 단지 리얀은 레스칼이 다 떨어진 카펫처럼 축 늘어져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잠시 후 시종이 따듯한 차와 다과, 그리고 물을 준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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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십시오.”

레스칼은 손에 닿는 대로 물잔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목으로 넘길 마음은 영 생기지 않는다는 듯, 물잔을 쥐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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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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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좋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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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너무 직접적인 말에 리얀도 당황했다.

탁.

물잔을 내려놓은 레스칼이 다시 카우치 위로 축 늘어졌다. 좀 전처럼 팔로 눈을 가린 그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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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황후가 나를 거부했던 건 소공작 때문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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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지금 제게 황후 폐하의 의중에 대해 물으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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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려진 얼굴 아래 입매가 비틀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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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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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그게 그러니까 황후 폐하께서는 원래 피엘리온 소공작과 연인 사이셨고……. 음, 하지만 혼인은 피할 수 없었고……. 그랬는데 마음을 정리할 수 없었던 거라면……. 아니, 송구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같은 건 검술에 비하면 너무 복잡했다. 그리고 리얀은 자신은 검술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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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좋아하지 않아.”

레스칼이 툭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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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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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말이야. 지금도 소공작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기억을 잃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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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기억상실이 진짜인지는 아직 모를 일 같은데요.”

빠각.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레스칼이 몸을 일으키며 카우치 손잡이를 잡아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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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의자가 부서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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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이 거짓이라면 왜 황후가 다르게 느껴지겠나.”

사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긴 했다.

황후는 확실히 달라졌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음험하고 악독하던 그 황후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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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지난 사 년간 보아 온 모습이 거짓이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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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랬다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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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폐하께서는 혼인을 거부할 수 없었으니 차선책을 택한 것일 수도 있잖습니까. 폐하의 반감을 사서 이혼을 유도한다거나…….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읍,”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던 리얀이 점점 날카로워져 가는 금안에 뒤늦게 제 입을 막았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리얀은 레스칼의 눈치를 보며 위로의 뜻을 담아 한마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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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억상실 이후에는 소공작을 황후궁으로 부르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폐하. 소공작이 찾아온 적은 한 번 있었지만.”

그 뒤로 소공작은 내내 조용했다.

사 년씩이나 거짓 삶을 살 정도로 애틋한 연인이라고 하자니 그것도 뭔가 좀 아귀가 안 맞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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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가 소공작을 많이 좋아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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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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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를 보는 시선이 어땠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방해했을 때 나를 어떻게 쳐다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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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

다시 보니 레스칼은 리얀에게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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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기억이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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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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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 년간 황후가 뭘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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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관심을 두시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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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어. 내가 황후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에게 황후는 벽에 걸린 그림 정도였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게 전부인.

제 반려라 했지만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뭔가가 느껴진 것은 표식을 확인했던 단 한 순간뿐이었다. 그마저도 황후가 옷을 입어 표식이 가려지자 금방 없던 일이 되었다.

그래서 반려란 그런 것인 줄 알았다.

블루문의 고통을 인내하면서도 황후의 존재가 간절해진 적은 없었다. 표식이 있으니 반려는 반려일 테고, 서른 살 생일이 오기 전에만 접촉을 이루면 되는 일이었다. 그 외에는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피엘리온 소공작의 존재에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임신이라도 한다면 골치가 아파지겠지만 황후는 제 입으로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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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그때는 몰랐다.

지금에 와서 황후가 소공작을 쳐다보던 눈빛 한 조각을 떠올리기 위해 자신이 물 한 모금 넘길 수 없는 지경이 되리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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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몰랐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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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모르셨다는 말씀입니까,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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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가 이런 존재라는 걸.”

리얀이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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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아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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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레스칼의 대답은 아주 작았다. 그래서 역으로 그가 지금 느끼고 있을 후회가 얼마나 큰지 말해 주었다.

리얀이 어렵사리 위로의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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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두 분의 관계가 아주 끝났다고 하기에는 이르지 않을까요. 폐하께 사 년의 시간이 걸렸듯이, 황후 폐하께서도 마음을 여시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슷, 툭.

쌍둥이 기사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데칸이 나타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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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유달리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웠던지 데칸이 멈칫대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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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뭘 알아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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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엘리온 공작가와 대신전 사이에 밀서가 오갔습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하는 중입니다.”

데칸은 보고를 하면서도 어쩐지 평소보다 거칠어 보이는 레스칼의 얼굴을 조심스레 훑었다.

데칸이 그러는 이유를 짐작한 리얀이 입 모양으로 ‘소문’이라고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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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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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황후 폐하께서 재판에 응하겠다고 하셨으니 공작이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밀서가 오간 뒤로 공작가 주변에서 주술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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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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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로 보아 재판과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리얀이 미간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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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재판은 그렇다 치는데 주술사는 왜 불러들여……. 아니, 주술사가 재판에서 뭘 할 수 있다고? 신관놈들이 득시글대는 그곳에서 주술로 뭘 할 수도 없을 텐데. 아니면 뭐, 새로 표식이라도 만들어 드리겠다는 건가? ……엇, 아니, 잠깐만?”

그냥 해 본 말이었는데 엉겁결에 실마리를 쥔 그런 기분이었다.

데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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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같은 생각에서 가정을 해 봤습니다. 고발장의 내용에 따르면 표식은 사 년 전부터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사실이라면 피엘리온 가로서는 큰 문제였을 겁니다. 한 달 전 그에 대한 조치로 주술사를 데려온 게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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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아……!”

리얀이 짤막하게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실마리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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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에서 데려온 주술사가 사라진 표식을 되돌리거나 하는 주술을 걸었고, 그 부작용으로 황후 폐하께 기억상실이 생긴 거라면……. 헛, 뭔가 아귀가 맞고 있는 것 같아.”

데칸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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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가정이지만 주술은 실패했을 겁니다. 그걸 제1시녀였던 파샤드 후작 부인은 모를 수 없었을 테고, 그 얘기를 신전에 흘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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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관놈들이 표식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는 거지. 아니, 그럼 황실 재단사는 뭐야? 고발장이 목적이었다면 증인은 후작 부인 하나로 충분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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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 부인이 입을 다물었습니다. 신전에 가는 길에 사고를 겪고, 그 다음 날 황후 폐하를 독대하고 난 뒤에는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신전과 거래가 틀어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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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니면 황후 폐하께서 입단속을 잘 시키셨든가. 뭐, 그게 그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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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발장을 쓰려면 새로운 증인이 필요했을 겁니다.”

레스칼이 말을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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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황실 재단사를 조종해 황후의 표식을 확인하려고 들었다? 말이 되는데, 말이 되지 않는다. 황실 재단사를 조종할 수 있었다면 후작 부인을 조종해 다시 입을 열게 하는 게 더 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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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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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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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조종하는 그 힘은 마법도, 주술도 아닙니다. 물론 신성력도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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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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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에는 제약이 있는 겁니다. 예를 들면, 그 힘을 쓰는 장소가 꼭 신전 내부여야 하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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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리얀이 저도 모르게 발을 쿵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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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 부인은 이용하려고 해도 이용할 수가 없었을 거란 말이지? 집 밖으로 나오질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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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황실 재단사의 행적을 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입궁하기 전, 그 전날 밤에 제가 알아낼 수 없던 공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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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에 신전에 갔을 거라는 말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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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폐하.”

리얀이 데칸의 어깨를 팡팡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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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 자식. 놀고만 있던 게 아니었네. 평소와는 다르게 하도 소식이 없어서 뭐 하나 싶었는데.”

데칸이 겸연쩍게 어깨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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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만 이번 일이 꽤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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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그렇다고 해 줄게. 그럼 피엘리온 공작가에 다시 주술사가 나타난 이유는 아무래도 표식을……. 아, 가만?”

리얀이 다급히 레스칼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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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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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데칸의 가정은 훌륭했다. 실낱같은 증거와 흔적들을 엮어 만든 가정이었지만 진실과 가까웠다.

단 하나, 맞지 않는 퍼즐 한 조각이 남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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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이 실패했다면…… 어째서 폐하께서는 기억상실 이후 황후 폐하를 반려로 여기시게 된 겁니까?”

 

* * *

시기가 딱 그렇게 맞물렸다.

표식을 되돌리려는 주술이 있었고,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황후에게는 기억의 공백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직후 레스칼에게는 반려를 향한 본능이 생겨났다.

이걸 그저 우연히 시기가 맞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분명히 황후의 기억상실은 두 사람의 관계가 뒤바뀌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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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은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신전이 간 크게 고발장을 날린 것도 그렇고, 피엘리온 가에서 다시 주술사를 부른 것을 봐도 그렇고 일단 표식은 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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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건 동의해. 그럼 표식이 사라진 황후 폐하는 왜 진짜 반려가 된 거지? 그걸 도무지 모르겠어.”

턱을 붙든 채 한참 고민하던 데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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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거기까지는…….”

리얀이 레스칼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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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스칼은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얕게 감고 있었다. 리얀도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저렇게 뭔가를 치열하게 생각하는 레스칼은 본 적이 없었다.

레스칼이 느리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가 데칸을 향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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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이…… 혹시 사람을 바꿔 놓을 수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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