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비행기가 잠시 흔들리더니 안정을 찾으며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였다.
10분 정도를 더 달리던 비행기가 멈추고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자 벨트를 풀고 재빨리 일어났다.
난 일등석이라 남들보다 11시간을 편하게 왔지만 오래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며 허리가 아팠다.
난생처음으로 일등석을 타서 기분이 좋은지 배상도와 희수는 나와는 달리 멀쩡한 것 같았다.
오히려 도착했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희수는 나의 소중한 반려자인데 일반석에 타게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희수만 혼자 일등석을 타게 하면 배상도가 소외감을 느낄 것 같아 두 사람 다 일등석을 예약했었다.
돈도 많은데 아껴서 뭐해?
공항 밖으로 나와 관리인 아저씨의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이며 정원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지만 새삼스레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여기가 내 집이라고 머릿속에 각인된 것 같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내 집이긴 해도 나도 모르게 왔다 갔다 방랑 속에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서영이는 집에 없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내가 온다는 말을 미리 했다면 집에서 기다렸겠지만 말하지 않았다.
탐정 말로는 서영이의 충격이 좀 안정되었는지 요즘은 다시 박서진을 만나고 있다고 하였다.
내가 박서진 형을 만나 박서진 집안에서도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
지금까지 결혼을 반대하던 부모님들이 이제는 거꾸로 반대하지 않고 환영한다고 하니 서영이의 부담이 사라졌으니까.
저녁을 먹고 배상도와 희수는 방에서 쉬고 있었고 난 정원 파라솔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언제 왔어?”
고개를 돌리니 서영이가 놀란 눈을 하고 서 있었다.
“아까.”
“오면 온다고 말이나 해 주지. 이게 뭐야?”
예전의 서영이를 보는 듯하여 다행이었다. 그래 한국 집일은 다 잊고 네 행복을 위해 살아.
“앉아.”
“응.”
서영이가 내 앞에 앉았다.
“어디 갔다가 온 거야?”
“친구 만나고 왔어.”
“남자 친구?”
대답하지 못하였다.
서영이는 자기가 박서진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은아버지한테 들었어. 결혼할 남자가 있다며?”
금세 서영이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언제 결혼할 거야?”
“나도 모르겠어.”
“할 거면 빨리하는 게 좋지.”
“집안은 엉망인데 나 혼자 행복을 누려야 되는지 모르겠어.”
작은아버지가 집안일은 전혀 신경 쓰지 말고 미국에서 결혼하라고 서영이한테 편지를 보낸 것을 알고 있었다.
“집안일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네가 불행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봐. 너라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작은아버지도 힘을 낼 거 아니야.”
“난 지금까지 결혼할 때 엄마, 아빠, 언니, 오빠들의 축복을 받으면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지 먼 이국땅에서 혼자 결혼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어. 난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고 싶어.”
이전 생에서 서영이는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지 못했다고 알고 있었다.
“상황에 맞게 따라야지. 먼저 미국에서 결혼한 다음 나중에 집이 괜찮아지면 한국에서 가족들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해도 되잖아. 남자 너무 기다리게 하면 도망간다. 그 남자 잡고 싶으면 빨리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살다 보면, 사업하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았어. 그럴 때마다 고민을 생각을 많이 해도 결정하기가 힘들더라. 그럴 때는 그냥 지르는 게 정답일 수도 있어.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에서 대학 가지 않고 유학을 결정할 때도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지만 어떤 결정이 최선일지 그 당시에는 몰랐어. 나도 너처럼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냥 질렀어. 지금 보면 결정을 잘했다고 생각해. 그러니 서영이도 그냥 질렀으면 해.”
“알았어.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할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지르라니까. 내가 너 결혼식 선물로 고급 콘도 하나 사 줄게.”
“아니야. 안 그래도 돼.”
“나 돈 많은 거 알잖아. 나 미국에서 10위 부호 안에 들어. 그 정도는 껌값이야. 작은아버지하고 약속했어. 서영이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그러니 부담 가질 필요도 없고 그냥 ‘고맙습니다’ 하며 받아. 그러면 돼.”
서영이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고마워, 오빠.”
“오빠가 그 정도는 당연히 해 주는 거야.”
이제 서영이는 어느 정도 설득한 것 같으니 박서진을 만나 둘이 빨리 결혼하도록 하면 되겠다.
남자가 밀어붙이면 여자는 따라올 테니. 근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난 언제 희수랑 잘되냐?
다음 날 오션으로 출근하여 에릭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시차 적응도 안 되었을 텐데 쉬시지 바로 나오신 겁니까?”
“이상하게도 전 미국이나 한국에 가도 바로 시차가 적응되는 것 같더라고요. 집에 있어 봤자 심심하기만 해요. 수소 자동차 설명회 준비는 잘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이틀 전에 각 언론에 10월 14일 월요일에 특별 발표를 하겠다며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언론들 반응이 어떤가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난리입니다. 초대장을 보내고 나서 무슨 발표인지 문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많이들 궁금하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답변을 해 주지 않으니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합니다.”
“무슨 추측을 해요?”
“가장 많이들 추측하는 게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어떤 제품을 출시할지 많이들 궁금해합니다. 일부에서는 오션 패드 출시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새 제품보다는 다른 이유일 거라고 추측도 합니다. 다만 그 이유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고 혹시 수소 자동차에 관련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을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번에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 개발 발표를 하고 그동안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 한국에서 대유 자동차와 상용 자동차를 인수하여 이제는 구체적으로 사업 방향이 나온 것으로 판단했을 겁니다.”
“일부이지만 제대로 추측하고 있네요. 발표 장소는 오션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근데 말로만 시제품을 개발했다고 발표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를 보여 주는 것이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기는 합니다. 그럼 시제품을 가져와서 전시할까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전시해도 이게 실제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이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구심이 들 거예요. 동양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말 뜻은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보여 주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에요. 직접 보여 주는 퍼포먼스를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이왕 하는 김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제대로 된 광고 효과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 시제품 개발을 발표한 후에 실제로 운행하는 거죠.”
“도로 주행을 하자는 말씀인가요?”
“도로 주행을 하게 되면 제대로 보여 줄 수가 없어요. 보여 주려면 준비도 많이 해야 하고요. 간단하게 해야죠. 주차장이 넓으니 주차장에서 잠시 운행하는 거죠. 그러면 언론사에서 주행하는 것을 제대로 촬영할 수 있고요.”
“좋은 생각 같습니다. 그럼 시제품을 가져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주차장 내를 운행하는 것보다 더 화제성을 키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실제 운행하는 것만으로도 화제성이 충분할 겁니다. 근데 더 화제성을 키우다뇨? 그게 무슨 말입니까?”
“메이저 등 스포츠 경기 시작 전에 스타들을 초청해서 시구 같은 것을 하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거죠.”
“스타에게 운행을 맡기자는 겁니까?”
“아뇨. 제가 생각하는 것은 유명 가수, 배우, 거기다 유명인, 이렇게 3명 정도를 차에 태우고 운행하는 거죠. 그럼 화제성이 충분하지 않을까요?”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스타들도 세계 최초의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에 처음으로 시승하는 거라 요청을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진행할까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미국에 스타가 한둘이 아닌데 누굴 초대할 겁니까?”
내 계획에는 미나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나가 미국에서 스타로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 같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으니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지.
“가수는 미나로 하고 싶어요.”
“고문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럼 배우는 누구로 하실 겁니까?”
“앤젤리나 마타니 어때요?”
피식 웃었다.
“고문님이 젊어서 그런지 예쁜 여성만을 생각하십니다. 구색을 갖추려면 나머지 한 명은 남성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가 좋을까요?”
“나머지 한 명은 연예인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경제계 거물이나 대중에게 신망받는 인물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정치인은 어떨까요?”
“장치인 말입니까?”
“네. 멀리 보자는 거죠. 정치인을 초청해 시승하게 되면 그 정치인도 오션과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신경 쓸 것 같거든요. 정치인이라 초청해도 흔쾌히 응할 것 같기도 하고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다만 누굴 초청하느냐에 따라 남들이 오션의 정치색을 판단할 것 같은 염려가 있기는 합니다.”
시기상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만간에 있으면 대통령 당선될 사람을 초청하면 좋은데 아쉽게도 지금의 대통령이 2009년까지 한다.
버럭 오마마는 2009년부터 임기라 아직도 7년이 남아 지금은 시기상조였다. 좋은 기회인데 아쉽게 되었다.
“공화당이니 민주당이니 상관없이 상징적인 자리에 있는 분을 초청하면 될 것 같아요. 하원 의장 어떠세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제가 세 사람을 초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나는 제가 할 테니까 에릭이 두 명을 담당해 주세요. 그분들한테 비밀유지 부탁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방금 생각난 건데 운전은 누가 하는 겁니까?”
“글쎄요? 운전 경력 많은 직원에게 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고문님이 직접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게 더 화제성이 더 클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았다.
장기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잠시 주차장 내에서 운전하는 거라 괜찮을 것 같았다.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하죠.”
“알겠습니다. 그대로 준비하겠습니다.”
“테스트는 어떤가요?”
“계속 테스트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문제점이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보통은 개발했다고 해도 사소한 문제점들이 많이 발생하여 수정해 나가는 것이 정석인데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는 그런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아 연구원들이 감탄하며 놀랍다고 하답니다. 한마디로 현재까지 완벽한 개발품이라고 합니다. 개발자에게 존경을 표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아빠가 제대로 개발했네.
“다행이네요.”
“이런 걸 보면 천재는 너무 완벽하여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십시오.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저도 무서운가요?”
“무섭기도 하며 존경스럽습니다. 또 고문님이 있어 든든합니다.”
에릭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 소파에 배상도와 희수가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미국 오면 심심하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하는 일도 없이 있으니 심심하겠지. 그렇다고 나 혼자 미국 오기에도 그렇지.
“바쁠 때를 대비해 쉰다고 생각하세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