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아침에 출근해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었다.
주한 미군은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재판권 이양 요청을 거부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어쩌다가 그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해서.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어디가 덧나나? 끝내 책임을 회피하다니?
이런 것도 약소국의 비애겠지. 국가도 마찬가지이지만 기업도 개인도 힘이 없으면 억울한 일을 당하기 마련이다.
난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거다.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제임스 리입니다.)
“안녕하세요?”
(의뢰하신 일 조사가 끝나 연락드렸습니다. 통화 가능합니까?)
“네. 가능해요. 일찍 끝났네요.”
(누구 의뢰인데 시간을 끌겠습니까? 또 알아보니 의외로 일이 쉽게 끝났습니다.)
“둘 사이가 어떤가요?”
(현재 둘 사이는 냉전 상태입니다.)
전혀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설마 서영이 집이 망했다고 남자가 피하고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내가 박서진 그놈 가만 안 둔다.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네. 고문님도 잘 아시겠지만, 서영 양의 집안이 한국에서 망했고 아버지가 구속되어 서영 양이 충격을 무척 크게 받은 상황입니다. 이에 박서진이 서영 양을 위로하고 있지만, 서영 양이 일부러 박서진을 피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림이 아니네. 서영이가 피하고 있다고?
“둘이 결혼하기로 약속했다고 하는데 그 문제는 어떻게 된 건가요?”
(지금 서영 양 상태를 보면 당장 결혼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인들 말로는 박서진은 서영 양 집안이 망했어도 자신은 서영이를 보고 만난 것이기에 상관없다고 합니다. 다만 한국에 있는 박서진 집안에서는 서영 양과의 결혼을 반대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걸 서영 양도 알기에 박서진을 멀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마 최악은 아니라서 다행이네.
박서진 마음이 중요하지 박서진 부모의 마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서영이 마음만 돌리면 되겠다. 지금은 충격이 커서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리지 않을 테니 시간을 잠시 가지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요?”
(그리고 박서진은…….)
한동안 조사한 내용 보고를 받고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보고 내용으로는 박서진의 마음은 확고하기에 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집안에서 계속 반대하면 마음이 흔들릴 수가 있었다.
일단은 박서진 집안부터 반대하는 것을 막아야겠지.
그렇다고 내가 박서진 부모를 만나는 것은 좀 부담되니 박서진 형을 타겟으로 해야겠다. 형이 현도 자동차에 다니니 장 회장을 이용해야겠다.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회장님! 진민재입니다.”
(오 그래! 자네가 먼저 전화도 하고 웬일이야?)
“바쁘세요?”
(왜?)
“지나가다가 잠깐 들르려고 하는데 시간이 어떠신가 해서요.”
(무슨 일 있어?)
“아뇨. 지나가는 길에 들르려고요.”
(지금?)
“네.”
(그럼 와. 자네가 온다는데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만나야지.)
“40분 후에 도착할 거예요.”
(그래.)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현도 자동차 회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장 회장이 일어서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와.”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괜히 온 게 아닌가 싶네요.”
“아니야. 앉아.”
“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를 마시던 장 회장이 물었다.
“그냥 온 건 아닐 테고.”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인데 그게 아니라 미안하네.
“진짜로 그냥 온 거예요. 갑자기 회장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실망하면서도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내 생각이 갑자기 나다니 기분이 나쁘지 않아. 자주 내 생각을 해.”
“그럴게요.”
“상용 자동차 인수는 잘돼 가?”
“네. 협상이 순조로워 조만간에 계약할 것 같아요.”
“잘됐네. 솔직히 상용 자동차를 인수할 만한 곳이 오션밖에 없기는 하지. 그렇다고 외국 기업에 매각하기에는 상용 자동차가 아까워.”
웃으며 말하였다.
“오션도 외국 기업인데요.”
“오션은 전혀 다르지. 창업주가 한국인인데. 다른 외국 회사처럼 먹튀 할 일은 없지. 오히려 더 성장하게 만들 테니까.”
“그렇기는 해요.”
이제 여기 온 용건을 봐야겠지.
“회장님!”
“왜?”
“제 사촌 여동생이 미국에 있는데 곧 결혼한다고 해요. 근데 그 남자형이 현도 자동차에 근무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이런 인연도 다 있네. 누군데?”
“저도 한 번도 보지 못해서 잘 몰라요. 마케팅 본부에서 대리로 근무한다는 것만 알아요. 한번 보고 인사나 했으면 좋겠어요.”
“이름은 알아?”
“네. 박서국이라고 해요.”
“이름도 알면 봐야지. 내가 불러줄게.”
아싸! 내 의도대로 되었다.
장 회장이 인터폰으로 마케팅 본부 박서국 대리를 회장실로 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불렀으니 곧 올 거야.”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여기서 만나면 좀 불편할 텐데 괜찮겠어?”
“오늘은 인사만 하고 나중에 정식으로 따로 만나야죠.”
똑똑.
10분 정도 있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왔나 보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박서진도 그렇더니 형도 훤칠하였다. 유전인가?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인사하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자네가 박서국 대리인가?”
“네. 그렇습니다.”
“와서 앉게.”
“네.”
박서국이 조심스레 소파에 앉았다.
“자네를 왜 불렀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내가 나섰다.
“혹시 제가 누군지 아시나요?”
요즘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자라 모를 리가 없다. 오션의 진민재다.
박서국은 지금 무슨 상황인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먼발치에서나 보는 그룹 회장이 자신을 부른다고 하여 엄청 놀랐다.
혹시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나 싶어 생각을 해 보았지만, 잘못한 것이 없었고 자신을 부르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막상 오니 회장은 용건이 없고 오션의 진민재가 있었고 자신을 아느냐고 물었다.
자신의 동생이 만나는 여자의 집안이 진성 그룹이고 오션의 진민재도 진성 그룹 가의 일원이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이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여 자신을 부른 건가?
“네. 압니다.”
“그럼 동생 박서진이 만나는 여성이 진서영이라는 것도 알고 있나요?”
“네. 압니다.”
“서영이는 제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에요. 서영이가 미국에 살고 있는 집도 제집이거든요. 서영이가 결혼하는 남자의 형이 현도 자동차에 근무한다고 해서 여기 온 김에 인사나 하려고 불렀는데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어요.”
자신의 예상과는 달랐다.
가장 아끼는 동생이라니? 사이가 나쁜 것이 아니었던 건가?
“괜찮습니다.”
“저한테는 항상 어리고 철이 없는 서영이었는데 벌써 결혼을 한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서운하면서 이제 다 큰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서영이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해요. 제가 조만간에 사돈을 찾아가 정식으로 인사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이 정도로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여기서 끝내자.
“바쁘신데 그만 가 보세요. 나중에 식사나 같이해요.”
“네. 알겠습니다.”
일어서 나가려는 박서국에게 장 회장이 한마디 하였다.
“자네 좋은 사돈을 두었네. 부러워.”
타이밍 좋고 누가 보면 서로 짠 줄 알겠다.
“감사합니다.”
박서국은 일어나면서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진민재의 말을 들어보면 결혼을 기정사실로 알고 있는데 문제는 부모님은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부모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면 진민재가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은 오션과 같은 대기업이라면 순식간에 날려 버릴 수 있고 더구나 장서필 회장까지 축하해 주는데 무산되면 눈앞이 깜깜하였다.
망해도 재벌은 재벌인가? 아무래도 부모님을 자신이 설득해야 할 것 같았다.
* * *
현도 자동차에서 나와 커피숍으로 향하였다.
강성중이 할 말이 있다고 시간 되면 오라고 해서 나온 김에 가려는 거다. 오늘은 커피숍에 있다가 퇴근해야겠다.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자 여전히 손님들이 많았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새로 채용한 알바가 애교스럽게 인사하였다.
강성중에게 알바 채용을 맡겼더니 곧 결혼할 놈이 귀엽고 예쁜 알바생만을 채용했다.
나영이가 옆에서 그걸 보고만 있었나?
“안녕! 커피 한 잔 줄래.”
“네. 사장님!”
내 전용석에 앉아 있자 강성중이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커피 여기 있습니다.”
“그래. 할 말이 뭐야?”
강성중이 옆 테이블에서 의자를 가져와 내 앞에 앉았다.
“저 나영이랑 올 11월에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잘됐네. 축하해.”
“감사합니다. 결혼하면 가장으로서 어깨가 매우 무거워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결론입니다.”
“결론이 뭔데?”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영상을 촬영하고 올리기가 힘듭니다. 이왕 너튜버로 나가기로 결정한 만큼 모든 것을 걸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커피숍을 그만두고 법인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너튜버를 할 계획입니다.”
잘 생각했네. 지금은 법인을 세워 너튜브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몇 년만 있으면 많아질 거다.
강성중이 그 생각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나영이 생각이지?”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네가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지가 않아서. 잘 생각했어.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을 먼저 걸으면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남들보다 더 일찍 자리를 잡게 되는 거야.”
“가망이 있겠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볼 때 너보다는 나영이가 현실 감각이 뛰어나. 그러니까 나영이가 하자는 대로 해. 그럼 가망이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커피숍은 언제까지 할 생각이야?”
“새로 채용한 알바들이 적응할 때까지만 할 겁니다.”
“나영이도 그만두는 거지?”
“네. 같이 일해야 하니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고 너랑 나영이도 그만두니까 알바생 오전, 오후 한 명씩 더 채용하고.”
“알겠습니다.”
2명 더 채용하면 오전에 3명, 오후에 3명이 된다.
그전에는 혼자 있어도 손님이 없어서 펑펑 놀았는데 지금은 3명이 있어도 바쁘게 돌아가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다.
“요즘 너튜브 영상은 올리지 못한 거야?”
“네. 그렇습니다. 이틀 전에 미나가 미국에서 영상 하나를 보내줘서 오늘 편집해서 내일 올릴 예정입니다.”
그래도 미나가 기특하네. 영상도 보내주고.
“미나한테 고마워야 해.”
“물론입니다. 미나뿐만 아니라 가끔가다가 홍이나, 송지수도 영상을 보내줍니다.”
“이나랑 지수 잘 지내고 있대?”
“네. 잘 지내고 있고 이나는 곧 새 앨범을 출시할 예정이고 지수는 얼마 전에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 바쁜가 봅니다.”
“다 잘나가고 있네.”
홍이나는 원래 톱스타였지만 지수는 알바생에서 시작하여 요즘 잘나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전부 잘되는 것 같아 더 기분이 좋았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잘나가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면 그렇게 될 거야. 근데 미나는 어떤 영상 보내 준 거야?”
“미국 메이저 리그 경기 시작 전에 미국 국가를 부르는 영상입니다. 미국은 국가 대항 경기도 아닌데 스포츠 경기에 무슨 국가를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스포츠 경기 전에 가수를 불러 국가를 부르는 일이 흔하였다.
미국은 스포츠나 기념행사에 가서 미국 국가만 불러도 돈을 버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미국 국가를 부르는 게 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