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오늘도 역삼동 사무실에 출근하여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저 강성중입니다.)
“오 그래. 잘 지냈어?”
(네. 그렇습니다. 사장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나야 잘 지내지. 커피숍은 여전히 사람들 많이 와?”
(네. 그렇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좀 줄어들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바쁩니다.)
“아직도 많이 온다고?”
(네. 그렇습니다. 인터넷에 이곳이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커피숍이고 이곳에서 사장님이 일했다는 글이 올라와 그걸 보고 성지 방문이라며 계속 옵니다. 와서는 사장님 컴퓨터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거 커피숍을 아예 명소로 만들면 좋을 것 같기도 하였다.
“성중아! 커피숍을 명소로 만들자.”
(네? 지금도 명소이잖습니까?)
“지금보다 더 명소로 만들자는 거지.”
(어떻게 말입니까?)
“예전에 준비한 거 있잖아.”
뭔가 생각난 듯 감탄을 하였다.
“사진 말입니까?”
(그래. 볼 게이트랑 손정우 회장이랑 사진 찍은 거 있잖아. 그거 크게 인하해서 커피숍에 붙여. 볼 게이트랑 손정우 회장이 방문한 곳이라는 것을 알리면 사람들이 더 많이 올 거야.)
“알겠습니다. 당장 사진 인하해서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단순한 놈! 사람들이 많이 오면 자기가 더 바빠질 텐데 좋아하냐?
“너 너튜브 구독자하고 조회 수는 좀 어때?”
(계속 늘기는 하지만 정체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미국 갔을 때 오션에 방문하여 촬영한 영상이 대박이었습니다. 근데 그 이후로 커피숍이 바쁘다 보니 추가 영상을 올리지 못해 정체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강성중을 위해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오션에 대해 촬영하도록 도와주었다.
강성중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사람들에게도 오션을 광고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특히 오션의 구내식당이 너무 좋아 직접 식사를 하면서 촬영하도록 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도와주는 김에 계속 도와주자.
“성중아!”
(네. 사장님!)
“커피숍 카운터 앞이랑 벽에 너 너튜브 채널도 붙여서 광고해. 볼 게이트랑 손정우 회장 커피숍에 방문한 영상 촬영한 거 있다고 하면 구독자하고 조회 수가 많이 늘 거야.”
신이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그렇겠습니다. 그래도 됩니까?)
“당연하지. 이왕이면 손으로 쓰지 말고 그럴듯하게 인쇄해서 붙여. 세계적인 인물들이 분당의 작은 커피숍에 방문했고, 오션 창업자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눈 곳이라고 하면 유명해지는 것은 당연하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닙니까? 진짜 명소가 될 겁니다. 이왕이면 커피숍 밖에 플래카드도 붙여도 되겠습니까?)
“플래카드는 싼 티가 나니까 볼 게이트랑 손정우 회장이랑 나하고 같이 촬영한 사진 크게 인쇄해서 붙여. 그게 효과가 더 좋을 거야.”
(알겠습니다.)
“나중에 어떤지 결과나 알려 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커피를 마시는데 희수가 들어왔다.
“고문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올 사람이 없는데. 약속도 없이 오는 사람을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
“시간 없다고 하세요.”
“저도 약속 없이 온 분이라 안 된다고 말했는데 너무나 간절히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고문님께 한번 여쭤 보는 겁니다.”
“누군데요?”
“진성 그룹 회장 비서실장이라고 합니다.”
비서실장이 왜? 이번 일로 작은아버지가 보냈나? 뭐라고 하는지 잠깐만 만나 보자.
“들어오라고 하세요.”
희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떻게 했길래 희수가 좋아하지?
“네.”
희수가 나가고 6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오더니 인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황도형입니다.”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소파에 앉았다.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도련님! 저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네. 기억이 없어요. 저를 보신 적이 있나요?”
“네. 저는 도련님 어렸을 때 진규촌 회장님댁에서 여러 번 봤습니다. 그때 도련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감정을 자극하냐?
“그렇군요.”
“그때 도련님을 봤을 때 큰 인물이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큰 인물이 되셨습니다. 진규촌 회장님도 무척 좋아하시고 있을 겁니다.”
“지난 과거 회상하려고 오신 것은 아닐 텐데요.”
“그렇습니다. 도련님을 직접 보니 옛 생각이 나서 죄송합니다. 제가 온 목적은 도련님이 회장님을 한번 찾아가 주셨으면 해서입니다. 진동훈 회장님이 도련님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작은아버지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데. 만나 봤자 도와달라는 말을 할 텐데.
“제가 그럴 이유가 없을 것 같네요.”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구질구질하게 말하지 않아서 좋기는 하였다.
“무슨 이유로 만나자고 하는지 짐작이 가요. 만나 봤자 좋은 결과보다는 서로의 감정만 상해 더 나쁜 결과만 있을 거예요. 그런데 굳이 만날 필요가 있을까요?”
“도련님이 생각하시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럼 다른 이유라는 건가?
“글쎄요? 생각해 보고 결정할게요.”
“도련님에게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지난 감정들에 연연하지 말고 진규촌 회장님을 생각해서 한 번만 만나 주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쁘실 텐데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비서실장이 가자 생각에 잠겼다.
지금 진성하고 작은아버지 입장에서는 날 만나자고 하는 이유가 뻔한데 다른 이유로 만나자고?
그게 뭘까? 한번 만나 볼까?
* * *
다음 날 작은 아버지를 만나러 성동구치소에 도착하였다.
면회를 신청하고 면회소에 들어가 잠시 기다리자 작은아버지가 교도관과 함께 들어왔다.
얼굴을 보니 많이 수척한 게 고생이 많은가 보네.
“안녕하세요?”
“와 주었구나. 고맙다.”
“지내시는 건 어떠세요?”
“지낼 만하다.”
“저를 왜 보자고 하셨어요?”
“이번 일 네가 뒤에 있다면서?”
결국은 그 일 때문에 보자고 한 거네. 괜히 왔나 싶었다.
“네. 무너지는 진성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요. 작은아버지가 잘했다면 이런 날은 오지 않았을 거예요.”
“면목이 없구나.”
뭐야? 저 반응은? 화를 내거나 소리칠 줄 알았는데.
“이곳에 들어와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처음부터 시작이 잘못된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난 욕심만 많았지 진성을 이끌어 가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어. 사람은 그릇에 맞는 자리가 있는데 욕심에 눈이 멀었지.”
고해 성사를 들으러 온 것은 아닌데. 나에게 이런 말을 왜 하는 걸까?
“지금이라도 잘못을 깨달았다니 다행이네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시궁창에 빠진 뒤에 알았으니 너무 늦었지. 이제는 제자리로 돌리고 싶구나. 너에게 진성을 넘길게.”
뭐라고?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진성을 넘긴다고?
“정말이세요? 진심이세요?”
“그래. 원래 진성의 주인은 너였어. 내가 무리한 욕심을 부린 대가로 이 모양이지. 다 인과응보인 것 같구나. 이미 망가진 진성이지만 너라면 잘할 거라고 믿는다.”
표정을 보니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진심인 것 같았다. 구치소에 들어와 개과천선한 건가?
이래서 비서실장이 꼭 가 보라고 한 거였구나.
“갑자기 이런 결정을 한 이유가 뭐예요?”
진동훈은 사람이 가장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진심을 알게 된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자신이 구속되자 주변 지인들이 전부 자신을 멀리하고 부인은 한번 면회 온 것이 전부이고 자식들은 면회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자식을 잘못 키운 자신의 업보이다. 다 부질없고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다.
“나도 진성이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서야.”
“작은아버지 뜻이라면 따를게요. 믿고 맡겨 주시니 진성을 예전보다 더욱 성장시킬게요.”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서영이는 미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서영이를 돌봐주어 고마워.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구나. 염치없지만 서영이 앞으로도 잘 부탁해.”
“아니에요. 서영이는 제 동생이기도 하니까요. 앞으로도 잘 돌봐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서영이는 내 소식을 알아?”
“모를 거예요.”
“서영이에게 내 소식은 전하지 마. 잘 지내는데 마음고생 할 테니까.”
“네. 그렇게요.”
한동안 인수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회사로 돌아왔다.
뜻하지 않게 진성 그룹의 남은 계열사를 쉽게 인수하게 되었다.
장 팀장이 들어오면서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진성 진 회장이 정말 매각한다고 했습니까?”
회사로 오면서 장 팀장에게 연락해 들어오라고 하였다.
“앉아서 이야기하죠.”
소파에 앉더니 얼른 말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네. 전화로 말한 것처럼 매각 관련 이야기를 하고 왔어요.
진 회장님이 아무런 조건 없이 무조건 매각하겠다고 해요. 다음 주부터 인수 작업에 들어가면 될 거예요.”
“너무 뜬금없이 진행되다 보니 믿기 힘듭니다. 진 회장님은 왜 매각하려는 겁니까? 구속되더니만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겁니까?”
“우리가 알 바는 아니잖아요. 매각하겠다고 결정한 게 중요하니까요.”
“그렇기는 합니다. 일이 쉽게 진행되겠습니다. 다음 주부터 인수 작업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그리고 이엠스는 인수 작업 어떻게 되고 있나요?”
“거의 끝나갑니다.”
“벌써요?”
“네. 규모가 작은 기업이고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 덕분에 쉽게 끝나게 됐습니다. 이번 주 안으로 이엠스 인수 끝내고 다음 주부터는 진성 계열사 두 곳 인수하면 될 겁니다.”
“아귀가 착착 맞네요.”
“그렇습니다. 하늘이 고문님을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아마도 하늘이 아니라 할아버지나 아빠가 도와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와주면 저야 땡큐죠. 다음 주부터…….”
인수 작업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뭐라고? 다들 미친 거 아니야?”
진성 그룹 회장실 안에서는 전미정이 화가 잔뜩 난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는 전미정 앞에 비서실장은 고개만 숙이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입 다물고만 있지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 봐? 정말 그이가 진성 화장품과 진성 유통을 오션에 매각하겠다고 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이 직접 저에게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다음 주부터 매각을 진행할 겁니다.”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구 마음대로 매각한다는 거야!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임시회장 대행께서 결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이사회를 열어 최종적으로 매각 결정을 할 겁니다.”
어이가 없다는 듯 비아냥거렸다.
“감옥에 들어가더니 정신이 이상해졌나 봐. 제정신으로 한 말이 아닐 거야. 내가 당장 그이 면회 가서 다시 확인할 테니까 이사회고 뭐고 당장 중단해. 당신은 비서실장이 되어서 상사가 잘못된 결정을 하면 충언을 해야지 그걸 그대로 따라?”
“제대로 된 결정입니다. 매각하지 않더라도 조만간에 강제 청산 또는 매각 절차를 진행하게 될 겁니다. 그럴 바에는 지금이라도 매각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당신도 제정신이 아니야.”
“하여튼 전 지시대로 따를 겁니다.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
뒤를 돌아 나가는 비서실장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전미정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