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무슨 일로 저를 만나려고 하는 건가요?”
(아시지 않습니까?)
뉴스를 보고 연락했나 보네. 만나지 말까? 아니다. 어차피 부딪쳐야 하는데 한 번은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좋아요. 오세요.”
(알겠습니다. 30분 후쯤에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집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님이 올 거라고 말 좀 해 주십시오. 불필요한 충돌은 삼가고 싶습니다.)
CIA 요원을 말하나 보네.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잠시 후에 뵈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가자 집 출입구 쪽에 미니밴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차 운전석 쪽으로 가서 창문을 두드리자 창문이 내려졌다.
“CIA에서 나오신 분들인가요?”
정체를 숨겨야 하는지 내 말에 운전석에 있던 젊은 남자가 당황하였다.
조수석에 있던 30대 중반의 남자가 대신 대답하였다.
“네. 맞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온 겁니다.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날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불쾌할 것까지는 없지. 오히려 미안한데. 근데 밤에도 있는 건가?
“전 괜찮아요. 혹시 여기서 밤을 새우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뱀 새우려면 힘드시겠네요. 화장실 가기도 그렇고요. 정원에 야외 화장실이 있는데 새벽에 필요하면 사용하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저를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데 그냥 보내주세요.”
“누굽니까?”
“그게…….”
내가 망설이자 눈치를 채고 물었다.
“한국 정부에서 오는 겁니까?”
“네. 국정원이에요.”
“알겠습니다. 만약 우리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하십시오.”
“그럴게요.”
미국 CIA 요원하면 영화에서나 멋지게 나오지 이걸 보니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손님이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조금 전에 전화 드린 유지철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진민재입니다. 앉으시죠”
정원 파라솔에 앉았다.
“와! 경치가 아주 좋습니다. 이런 곳에 살면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보니 좋겠습니다. 제 꿈이 은퇴 후에 이런 곳에 살며 낚시나 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겁니다.”
“처음 보니 좋지 자주 보면 별 감흥이 없어요.”
“남들이 들으면 욕합니다.”
“이제 오신 용건을 말하시죠.”
“좋습니다. 발표하신 수소 내연 기관 말입니다. 진상규 박사님이 연구 개발한 것이 맞습니까?”
“네. 아빠가 개발한 거예요.”
“어디서 찾으신 겁니까?”
“별장에 있더라고요.”
“별장 어디에 있었던 겁니까?”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요? 우연히 찾았어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코앞에 두고 못 찾았네요. 주인이 따로 있었나 봅니다. 산삼도 아무나 차지 못하는 것처럼 진 박사님도 아드님이 찾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 안기부에서 샅샅이 뒤졌는데도 찾지 못한 것을 보니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한국에서 대유 자동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했다고 하시던데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를 생산할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럼 대유 자동차를 인수해서 일반 내연 차를 생산하나?
“네. 그래서 대유 자동차를 인수하려는 거예요.”
“잘 아시겠지만 진 박사님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수소 내연 기관을 연구 개발한 겁니다.”
“지금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건가요?”
“원칙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겁니다.”
“한국 정부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한국 정부는 자격이 없어요.”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빠가 왜 연구 자료를 숨겼는지 아세요?”
“모릅니다. 고문님은 아십니까?”
“네. 연구 자료와 함께 아빠 편지가 있었어요. 편지 내용이 뭐냐면…….”
설명을 해 주었다.
“아빠가 힘들게 연구 개발한 수소 내연 기관을 일본에 팔아먹으려는 정부를 제가 믿어야 할까요?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연구 자료를 숨겼는지 아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짐작이나 하세요? 믿었던 나라, 조국에 배신당한 그 기분을 아시나요? 누구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도 없고 누구를 믿을 수도 없고 혼자서 끙끙 앓던 아빠만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이런데 소유권을 주장하신다고요?”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것에 정말 죄송할 뿐입니다. 하지만 정권도 바뀌었고 그때는 군부 독재 정권이라 지금의 민주 정부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지난 일을 근거로 지금 정부에 적용하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아빠의 연구 자료가 있으면 지킬 수나 있어요?”
“당연합니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정권이 바뀌었다고 달라질까요? 아직도 나라에는 나라를 좀먹고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놈들이 득실거리고 있어요.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원죄이죠. 아빠의 연구 기술이 있다고 하여도 그놈들은 또 팔아먹을 생각을 할 거예요.”
“비관적인 말씀이 아닙니까?”
비관적이기는 사실인데.
미래에도 여전히 친일파들이 설치고 있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국정원에 계시다니 누구보다 한국 현실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거예요. 그러면서 그런 말을 자신 있게 하실 수 있습니까?”
“그때는 정부에서 그런 일을 꾸몄지만, 지금은 정부에서 보호할 겁니다. 그러니 믿고 기술을 한국 정부에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한 손가락이 열 손가락을 당해 낼 수는 없는 법이에요. 정부에서 기득권들을 전부 감당할 수는 없는 법이거든요. 아빠의 기술은 제가 지킬 거예요. 그러니 그만 가 보세요.”
갑작스러운 내 축객령에 당황하였다.
“아직 이야기가 다 안 끝났습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할 이야기는 해야겠죠. 전 할 이야기를 다 했으니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으면 하세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정부에서도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진 박사님의 연구 자료이고 더구나 아드님인 진민재 고문님이 찾았기에 100%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 정부와 진민재 고문님 공동 소유를 했으면 합니다.”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고문님이 걱정하는 기술을 팔아먹는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난 100% 소유를 주장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그렇다고 해도 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지.
“거절합니다.”
“너무하신 것이 아닙니까? 고문님도 한국인이잖습니까? 나라를 위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나라를 위해서라? 나라를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희생한 분들이 얼마나 많을까?
보상을 원한 것이 아니고 나라를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희생을 하였지만 엉뚱한 놈들이 그 대가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원통하였다.
나이가 지긋한 것이 옛날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구태의연한 전형적인 공무원 스타일이었다.
어디서 씨도 안 먹힐 소리를 하고 있냐?
“나라를 위해 희생하면 나라에서는 무엇을 해 주는데요?”
“나라에 무엇을 바랍니까? 국민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예로부터 나라에 위난이 발생했을 때마다 민초들이 떨쳐 일어나 나라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랬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겁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사람이 없나? 인재가 없나? 왜 저런 사람을 보냈을까? 의지가 없네.
굳이 말싸움할 필요 없이 좋게 보내자.
“저는 애국심이 없나 보네요. 이야기는 잘 들었고 신중하게 생각해 볼 테니 그만 가 보세요.”
“알겠습니다. 애국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지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가세요”
유지철이 가자 고개를 저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관광 나갔던 일행들이 일찍 들어와 저녁을 먹고 정원 파라솔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장님! 정말 수소 내연 자동차가 물로 가는 겁니까?”
“그래.”
“와 그럼 이제 기름이 필요 없는 게 아닙니까?”
“자동차는 그렇지. 기름 넣는 것보다 연료비가 대폭 할인될 거야. 무엇보다 공해가 발생하지 않아 환경에 더 좋지.”
“관광 나갔다가 서영이가 뉴스 보고 하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장난하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사실일 줄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강성중에게 말하려다가 핸드폰이 울려 받았다.
“진민재입니다.”
(나야 손 회장.)
“안녕하세요?”
(아침에 뉴스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정말인가?)
“네.”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네. 그걸 직접 개발한 건가?)
“아뇨. 제가 그럴 능력이 되나요?”
(겸손하지 않아도 돼. 자네 능력이야 다 아는 건데. 그럼 시제품은 언제 나오는 건가? 빨리 보고 싶네.)
“우물가에서 숭늉 찾아요? 실제 시장에 출시되기까지는 1~3년 정도 걸릴 거예요.”
(뭘 꾸물거려? 후딱 출시하지. 그래야 세상에 있는 돈을 다 쓸어 담지. 오션폰처럼 독점이 아닌가?)
“그렇죠.”
(설마 수소 내연 자동차도 2년 후에 공개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글쎄요? 그건 모르죠.”
(모르기 뭘 몰라? 자동차는 절대 공개하지 마. 혼자서 계속 독점해. 내 일은 아니지만 사실 핸드폰 공개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
“알았어요. 공개하지 않을게요.”
(잘 생각했어. 그리고 말이야! 자동차를 생산하면 수출을 할 거 아니야?)
“그렇죠.”
(일본 수입은 내가 독점으로 하면 안 될까?)
“안 될 거는 없죠. 어차피 누군가는 수입해야 할 테니까요.”
(고마워.)
“고맙기는요?”
(볼 게이트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왔었는데 자네하고 게임 사업 같이하기로 했다며?)
“네. 제가 게임 아이디어를 주었거든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볼 게이트가 극찬하더라. 천재라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다고.)
사람 민망하게.
“하실 말씀 더 없으면 그만 끊어요.”
(왜? 오랜만에 통화하는 건데 좀 더 하지.)
“다음에요”
(알았어. 일본에는 언제 올 거야?)
“글쎄요?”
(한국 들어갈 때 들렀다가 가. 가는 중간이잖아.)
“생각해 보고요.”
(그래. 끊자.)
“네”
전화를 끊자 다시 벨이 울렸다.
이제부터 시작인가? 나도 핸드폰 꺼놔야 하나?
“진민재입니다.”
(고문님! 안녕하십니까? 염중섭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고문님 덕분에 안녕하지 못합니다. 한국은 아침부터 고문님 때문에 난리입니다.)
한국에서도 소식이 들어갔나 보네.
“들었어요?”
(네. 신문에도 기사가 나고 TV에서는 고문님이 발표하는 영상도 나왔습니다. 어쩜 저한테 귀띔이라도 해 주시지 뉴스를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미안해요. 보안 때문에 이 일을 아는 사람이 에릭밖에 없었어요.”
(전 괜찮습니다. 본사에서 대유 자동차를 인수하라고 해서 사실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걱정한 게 민망할 정도입니다. 오히려 빨리 인수하고픈 마음까지 듭니다.)
“저번에 통화할 때 제가 그랬잖아요. 오션폰보다 더 센세이션을 일으킬 테고 기대해도 좋다고요.”
(기억합니다. 고문님이 아무 이유 없이 사업을 하지 않을 텐데 제가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채권단 반응이 어떨 것 같아요?”
(당연히 오션으로 기울 겁니다.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를 국내에서 생산하면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어마어마할 겁니다. 근데 그걸 포기하고 GN에 넘기겠습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오션을 선택할 겁니다.)
바보가 아니라서 아니라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놈들이 많아서 걱정인 거지.
이전 생에서 외화 은행 매각할 때도 국익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격도 없는 런스타에 헐값에 넘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