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나서희는 식당을 나와 바로 커피숍을 향하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남녀커플 손님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여자 손님 한 명은 책을 보고 있었다.
역시나 사장을 비롯해 남자 3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뭘 하고 있었다.
저 3명은 올 때마다 항상 있었다.
그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생각해 보니 수상하였다.
한 명은 게임 개발을 한다고 했고 한 명은 알바생 남자였고 한 명은 뭘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장을 입고 항상 하는 일 없이 커피숍에 있었다.
체격이 건장한 것으로 보아 사장의 경호원이나 비서로 보였다. 진짜 저 사장이 오션 창업주인가?
주문대로 가자 여자 알바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게요.”
“바닐라 라떼 하나 주세요.”
“네.”
잠시 후 커피를 건네받고 컴퓨터 하는 사장한테 갔다.
“바쁘세요?”
사장이 뒤를 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서 와요. 오랜만에 왔네요.”
“네. 바빴거든요. 지금 컴퓨터로 뭐하시는 거예요?”
“프로그램 개발하고 있어요.”
“무슨 프로그램인데요?”
“OS 프로그램이에요.”
“그거 개발하는데 어렵지 않아요?”
“그렇기는 해요.”
“바쁘세요?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좋죠. 저쪽에 앉죠.”
“네.”
구석진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요즘 뭐했어요?”
“얼마 전에 대학 졸업해서 취업하려고 하는데 어렵네요.”
“요즘 취업하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마음에 드는 회사는 서류 심사나 면접에서 탈락하고 합격하는 곳은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서 눈높이를 낮춰야 하나? 될 때까지 계속 도전해야 하나? 고민이에요.”
“대기업을 가려고요?”
“네. 대기업이 급여나 직원 복지가 좋잖아요. 중소기업 가면 열정 페이로 일해야 하고 장래성도 안 보이고요.”
오션이나 진성 계열사나 현도 자동차에 취업시켜 줄 수는 있는데. 동생인데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오션이나 네이브, 현도 자동차는 어때요?”
“전부 좋은 곳이죠. 제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에요. 오션이나 네이브는 직원을 잘 채용하지 않고 채용하면 경쟁률이 놓아서 제 실력으로는 힘들어요. 현도 자동차도 힘들고요.”
오션이나 네이브는 공채가 없고 필요할 때마다 소수로 채용하기에 경쟁률이 높기는 하였다.
“제가 알기로 오션에서 곧 채용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지원 한번 해 보세요.”
“경쟁률이 얼마나 빡센데요. 지원 하나마나 떨어질 거예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죠. 합격할 수도 있어요. 용기 있는 자만이 좋은 기회를 얻는 거예요.”
나서희는 점점 확신이 들었다.
취업하려고 취업 정보를 알아보고 있지만 오션에서 채용한다는 계획은 당분간 없다고 하였다.
근데 사장은 곧 채용할 거라며 지원하라고 한다.
나한테 거짓말할 필요는 없을 테고 그 말은 창업자이기에 채용을 지시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오션은 외국 기업이라 토익 점수를 많이 보는데 저는 그 정도 점수가 안 돼요. 서류 심사에서 떨어져요.”
“미리 지레짐작하지 마세요. 지원하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도 손해 보는 건 없잖아요.”
점점 확신이 드니 자신의 성격상 빙빙 돌려 말하는 것보다는 직접적으로 묻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장님!”
“네.”
“혹시 사장님이 오션 창업자 진민재가 맞나요?”
헐! 서희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역시나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
근데 오션의 창업자가 왜 이곳에서 커피숍을 하는 걸까? 설마 진짜 엄마의 아들이라서 엄마를 보려고 근처에 자리를 잡은 건가?
“제 짐작이 맞았네요. 며칠 전에 오션에서 외화 은행을 인수한다는 신문에 기사가 났어요. 거기에 오션 창업자가 진민재라고 나왔는데 사장님 이름도 진민재라서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예요. 근데 왜 여기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거예요? 오션을 운영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올 때마다 제가 일하는 있는 거 봤죠? 여기가 제 일하는 사무실이에요. 남들이 들으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전 여기서 일하는 게 더 집중이 잘되거든요.”
“그럼 서울에도 커피숍 할 곳이 더 많을 텐데 왜 분당에서 하는 거예요?”
“손님이 너무 많아도 문제거든요. 한갓진 곳이 더 좋아서요.”
저 말은 핑계 같았다. 이것도 직설적으로 물어보자. 근데 사실이면서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다그칠 수도 없고. 그래도 묻자.
“또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어요?”
“물어봐요. 제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죠.”
“약속하시는 거예요?”
“네. 약속할게요.”
“혹시 정지희 님이 사장님 엄마세요?”
서희의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 서희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서희가 알고 있다면 엄마도 알고 있다는 건가?
어떻게 알았을까? 신문에 내 이름이 나와서? 나도 기사를 봤지만, 미국인으로 나왔고 사진도 없는데.
아니야. 확신하지 못하니까 물어본 거겠지. 그렇다며 서희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내일 미국으로 떠나는데 골치 아프네.
“어떻게 알았어요?”
“와! 맞았네. 정말 사장님이 우리 엄마 아들이라는 거예요?”
내 말에 크게 놀라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네.”
“그럼 사장님이 제 오빠라는 말이잖아요?”
“친남매는 아니지만, 동복 남매죠.”
“와! 어떻게 이런 일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이야기가 나한테 현실로 나타나다니? 믿기지 않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동생인데 말 편히 해요.”
“그럴게.”
“오빠 만나서 반가워요. 저한테 오빠가 있었다니? 정말 기뻐요. 어렸을 때 자라면서 나도 오빠나 언니가 있었으면 했거든요. 이제야 오빠가 생겼네요. 꿈만 같아요.”
어떻게 알았는지 대답은 하지 않고 엉뚱한 말만 하는 거야?
“이제 말해 줄래? 엄마도 알고 있는 거야?”
“엄마는 확실히 알고 있지는 않아요. 아마도 저처럼 짐작하고는 있을 거예요. 제가 어떻게 알았냐면 여기 오기 전에 제가 식당에 갔다가…….”
아! 이제야 알았다.
그렇다면 엄마도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렇게 추론해서 짐작할 수 있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네.
어떻게 할까?
이미 짐작하고 있다면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겠지. 근데 내일 미국으로 떠나야 해서 지금 엄마한테 말할 수는 없는데.
“서희야! 부탁 하나 할게.”
“네. 말해요. 오빠 부탁인데 무조건 들어줘야죠.”
“사실 내가 내일 미국으로 떠나거든. 미국 갔다가 돌아와서 내가 엄마한테 찾아가 말할 테니 그동안 비밀로 해 줄래?”
“가면 언제 돌아오는데요?”
“그건 아직 몰라. 가 봐야 알거든.”
“오래 걸려요?”
“그럴 수도 있어.”
“미루면 안 돼요?”
“응. 미국에서 약속이 있고 나만 가는 게 아니라 여기 식구들 전부 같이 가거든.”
“전부요?”
“응.”
“일 때문에 가는 거 아니에요?”
“맞는데. 여기 식구들은 따로 관광할 거야.”
“알았어요. 비밀로 해 줄게요. 돌아오면 엄마한테 가서 사실대로 말하세요. 엄마도 기뻐할 거예요.”
“알았어. 나도 예쁜 동생이 생겨 좋아.”
나를 흘겨보았다.
“오빠는 다 알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속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한테 오션팟도 선물로 준 거죠? 그것도 모르고 괜히 설렜잖아요. 잘생긴 사장님이 저한테 관심이 있는 줄 알았잖아요.”
“서운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빠를 만난 것이 더 좋아요. 그것보다 엄마가 오빠를 만나게 되어 그게 더 좋아요. 엄마도 우리한테 말은 안 했지만,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예요.”
“나도 알아.”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 미국 가려면 준비할 것이 많을 텐데 오늘은 그만 가 볼게요. 돌아오면 연락 주세요.”
“그래.”
“다음에 봐요. 오빠.”
서영이한테 오빠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서희한테 오빠라는 말을 자꾸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였다.
서희가 일어났다.
“집으로 갈 거야?”
“아뇨. 식당으로 갈 거예요.”
“바래다줄까?”
“괜찮아요. 밤도 아니고 바로 근처잖아요. 혼자 가면서 생각할 것도 많아요.”
“그래. 돌아오면 자주 와.”
“네.”
서희가 가자 강성중이 놀란 얼굴을 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저놈은 내가 하는 말은 다 들어.
“사장님! 저분이 사장님 여동생입니까?”
“다 들었으면서 뭘 물어? 내 동생에서 수작 부리지 마라.”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럽니까? 그럼 운정 식당 사모님이 사장님 엄마라는 겁니까?”
“그래.”
“아! 그래서 사모님도 사장님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나 보네요. 예전에 사모님이 저한테 사장님에 관해 물어봤었습니다.”
“뭐라고 물어봤는데?”
“오래돼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사장님 나이가 어떻게 되고 부모님은 뭐하시고 그런 거 물어봤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사장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사장님이 미국에서 오셔서 저는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해 주지.”
“제가 그런 사연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단순히 물어보는 줄 알았습니다.”
“알았으니까 그만 가 봐. 나 혼자 있고 싶어.”
“알겠습니다.”
강성중이 가자 생각에 잠겼다.
내가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정식으로 엄마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아니었으면 난 자꾸 엄마 앞에 나서는 것을 미루고 미뤘을 것이다. 속은 시원하였다. 마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들고 있다가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엄마를 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했다고 서운해하시려나? 몰라!
* * *
비행기에서 내린 후부터 강성중이 신기하다는 듯이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본 갈 때도 그러더니.
앞에서 걸어가던 강성중이 되돌아왔다.
“너 지금 어떤지 알아?”
“제가 어떻습니까?”
“서울 구경 처음 온 시골 촌놈 같아.”
“촌놈 맞습니다. 미국 처음 온 한국 촌놈이잖습니까? 일본 갈 때는 주변 사람들이 거의 다 동양인이라 외국 온 기분을 전혀 못 느꼈는데 여기는 거의 다 서양 사람이라 정말 외국 온 기분입니다.”
“그래 온 김에 실컷 느껴라.”
“알겠습니다.”
입국 수속을 무시하 마치고 관리인 아저씨 차를 타고 내 집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성중과 김나영이 소리를 지르며 정원 끝으로 달려갔다.
“와! 진짜 경치 끝내주네. 집 정원에서 바다 풍경이라니?”
그 뒤를 이어 신상철도 갔다.
나와 배상도도 따라갔다.
“좋냐?”
“네. 너무 좋습니다. 상도 형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방에서도 바다 풍경이 보이는 겁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네 방에서는 안 보여.”
“상관없습니다. 여기 나와 보면 됩니다. 파라솔도 있고 의자도 있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그렇게 해. 여기서 마시는 커피도 좋거든.”
“알겠습니다.”
그때 서영이와 미나가 다가왔다.
“오빠!”
“사장님!”
“안녕! 서영이는 학교 안 갔어? 미나는 연습 안 갔고?”
“지금 몇 시인데? 학교 갔다가 왔거든.”
“저도 오전에 연습 끝내고 왔어요.”
“미나야!”
강성중이 미나를 보고 뛰어왔다.
“성중 오빠!”
“와! 미국에서 너를 보니 새롭네. 스타의 아우라가 느껴지네.”
“뭐가 느껴져? 똑같지. 나도 오빠를 여기서 보니 반갑네. 상도 오빠도, 상철 오빠도 나영이도.”
미나와 인사를 나누고 서영이까지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방 구경시켜 줄 테니 들어가자.”
제일 신난 강성중이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런 강성중을 보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