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하지만 그 새벽에 과속하면서 여기를 다시 올 이유가 뭘까? 내 생각으로는 연구자료를 가지러 온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추측하기로는 뭔가 매우 급한 일로 연구자료를 누군가에게 급하게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만큼 안전한 곳이 없는데 굳이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을 테고 여길 올 이유도 없었다.
이유를 알려면 전달받으려는 자를 찾아야 하는데 아무런 단서도 없으니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문제였다.
알 방법도 없는데 신경 써 봤자 나만 손해지. 일단 이 하드 디스크를 가지고 가서 아빠의 연구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근데 하드 디스크가 15년이 넘었는데 잘 작동되려나? 해 보면 알겠지.
별장 밖으로 나가자 배상도가 정원에 앉아 있었다.
“배 대리님 가죠.”
“네? 벌써 말입니까? 구경은 다 하신 겁니까?”
“급한 일이 생겨서요. 다음에 와서 확인하게요.”
“알겠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급한 일이 생겨 지금 가고 다음에 오겠다고 별장 관리인에게 전화하였다.
전화를 끊고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빠의 연구자료를 외국에 팔려고 했던 자가 누구일까? 그 정도 일을 꾸미려면 상당한 권력을 가진 자일 텐데.
전주환일까?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자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직접 개발을 지시한 일인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누구일까? 전주환 말고 그다음 권력자라면 노대우 아니면 장수동일 텐데. 아니면 다른 자일까? 모르겠다.
아빠! 아빠가 지키려던 연구자료 제가 지킬 것이며 아빠가 힘들게 개발한 수소 내연기관 세상에 화려하게 선보일게요.
하늘에서 지켜보세요.
근데 이 기술을 발표하면 소유권 분쟁이 발생하지 않을까?
이 문제도 골치 아프네. 한국 정부에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고 현도 그룹에서도 마찬가지일 테고.
현도 그룹이야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한국 정부는 신경 쓰이는데.
분쟁의 소지를 막기 위해서라도 발표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미국 정부에서 알아서 해 주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어느새 커피숍에 도착하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희수가 책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고문님!”
“책 가져왔네?”
어제부터 희수에게 말 놓기로 하였다.
“네.”
“무슨 책이야?”
“영어 회화책이에요.”
“영어 회화는 책으로 보는 것보다 많이 듣고 말해야 느는데.”
“집에서 테이프 들어요.”
“열심히 하고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네.”
컴퓨터로 가서 본체를 열고 하드 디스크를 연결해 보았다.
다행히도 15년 전 하드 디스크였지만 인터페이스가 IDE 방식이라 파워와 포트를 연결할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부팅되어 얼른 내 컴퓨터를 눌렀지만 연결한 하드 디스크를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전원을 끄고 다시 연결하기를 여러 번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15년 동안 방치되어 문제가 생긴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프로그래머지만 이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쪽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것 같았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내가 아는 사람들은 전부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인데.
열심히 게임 개발하고 있는 신상철을 불렀다.
“상철아!”
“왜?”
“너 하드 디스크 복원할 수 있는 아는 전문가 있어?”
“내 주변에는 없는데. 왜 그래?”
“오래된 하드 디스크가 있는데 인식을 못 하네.”
“하드 디스크 문제라면 용산에 전문가들이 많을 거야. 그쪽에 알아봐.”
“알았어.”
그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용산에 하드웨어 쪽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 믿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션에서 검색하면 될까? 순간 송재영 팀장이 생각났다.
송 팀장이 게임 개발 프로그래머지만 성격이 활동적이라 인맥이 넓어 하드웨어 쪽 전문가도 알 것 같았다.
핸드폰을 들었다.
신호음이 울렸지만, 마음이 급하다 보니 몇 초간의 시간이지만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여보세요.)
“저 진민재예요.”
(고문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지금 통화할 수 있을까요?”
(네. 말씀하십시오.)
“송 팀장님! 혹시 하드 디스크 복원 전문가 아시는 분이 있으세요?”
(알고 있습니다. 하드 디스크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네. 연락처 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연락처가 789-XX00이고 김 사장님 찾으시면 됩니다. 위치가 용산입니다. 제 소개로 전화했다고 하면 됩니다.)
“네. 고마워요. 다음에 한번 찾아갈게요.”
전화를 끊고 번호를 눌렀다.
(세종 컴퓨터입니다.)
“안녕하세요? 김 사장님 부탁드릴게요.”
(접니다.)
“송재영 팀장 소개로 전화 드렸습니다. 제가 15년 된 하드 디스크가 있는데 인식이 되지 않아서 복원하려고요. 가능할까요?”
(제가 직접 본 것이 아니고 오래되어서 확실하게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가능은 합니다. 하드 디스크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지금 가도 될까요?”
(네. 오십시오. 여기가… 입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하드 디스크를 컴퓨터에서 분리해 꺼냈다.
“배 대리님! 나가죠.”
“알겠습니다.”
배상도와 용산에 도착하였다.
전자랜드 건물이 아니라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무사히 찾았다. 작은 점포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30대 후반의 남자 혼자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 드린 사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오션의 고문님이시라고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송 팀장하고 통화했나 보네.
“송 팀장 말로는 전문가라고 하던 데 전문가를 보게 된 제가 영광입니다.”
멋쩍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고문님하고 같겠습니까? 비교조차 안 됩니다. 하드 디스크 가져오셨습니까?”
“네.”
가져온 하드 디스크 두 개를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하드 디스크를 받아 살피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와! 이건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아직도 이게 있다니? 제가 처음 컴퓨터에 입문했을 때 사용하던 하드 디스크입니다.”
“가능할까요?”
“제가 확인 좀 하겠습니다.”
“네.”
하드 디스크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확인하였다.
“인식을 못 하네요.”
“네. 그 안에 들어 있는 자료가 꼭 필요하거든요. 복원할 수 있을까요?”
“먼저 하드 디스크 수리하고 그다음에 데이터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데이터가 이상이 없으면 그대로 사용해도 되지만 언제 다시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다른 하드 디스크로 반드시 백업하셔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하드 디스크는 물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부속을 구해 교체해야 하는데 오래되어 부속품이 없다는 겁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이주 중요한 자료가 있거든요.”
“똑같은 하드 디스크를 구해 부속품을 교체하면 되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만약 다른 하드 디스크를 구하지 못하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이 방법은 시간이 좀 걸립니다.”
예상은 했지만 결국은 지금 당장 복원하기 힘들다는 거네. 한시가 급한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언제쯤 다른 하드 디스크를 구할 수 있을까요?”
“알아보기는 하겠지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비용은 얼마가 들더라도 상관없으니 빠른 시일 안에 구했으면 해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드 디스크 놓고 가시고 수리가 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아뇨. 하드 디스크는 제가 가지고 갈 테니 다른 하드 디스크 구하시면 연락 주세요.”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 * *
커피숍에 출근해 희수랑 커피를 마시는데 신동환이 들어오고 있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것을 보니 외화 은행 인수가 결정 난 것 같았다.
너튜브를 보던 강성중이 신동환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주문대로 달려갔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커피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사장님 얼굴을 보니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것 같네요.”
“티가 납니까?”
“아주 많이요. 앉으세요.”
“네.”
자리에 앉고서는 희수를 바라보더니 누구냐고 눈빛으로 물었다.
“제 수행비서예요.”
“아 그렇습니다.”
희수를 보고서는 인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조만간에 소속이 바뀔 수는 있지만 저는 DS 자산 운용사 신동환 사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정희수입니다.”
희수가 인사하자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지난번에 신동환이 김광석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더니만 강성중이 오션 플레이어에서 김광석 노래를 구매했었다.
“이 노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노래 아닙니까?”
“맞아요. 신 사장님이 김광석을 좋아하신다고 하여 알바가 준비했나 보네요.”
“저 친구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듭니다. 행동도 빠릿빠릿하고 사람 기분도 잘 맞춰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제 의사보다는 알바 의사가 더 중요하겠죠.”
“고문님이 허락하시면 한번 제안은 해 보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하더라도 강성중은 절대 가지 않을 거다. 제 발로 호랑이굴을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리고 별장 건은 잘 해결하신 겁니까?”
“네. 아무 말 없이 넘기던데요. 가격도 시세대로 했고요.”
“원래 구린 곳이 많은 자라 회장님 말씀을 거역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별장 하나에 모든 것을 걸 만큼 어리석은 자도 아닙니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이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누구나 알지만 그게 쉽게 되겠습니까? 고문님이라면 가능하겠지만요.”
“저도 깨끗하게 사는 편은 아니에요.”
“어떤 더러움을 묻히신 겁니까?”
“더러운 것도 묻히지는 않았어요. 길 가다가 묻는 먼지 정도죠.”
“그것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사실 대한민국이나 세계 다른 국가의 재벌들을 보면 깨끗하게 부를 이룩한 자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고문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는 고문님은 정직하게 깨끗하게 부를 이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를 어떻게 알고? 내가 미래를 알고 미래 지식이 있기에 더러움을 묻히지 않았지만 나도 다른 재벌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저를 좋게 보시네요. 입이 근질거릴 텐데 이제 오신 용건을 말씀하시지요.”
말을 해도 되냐는 듯 희수를 힐끔 바라보았다.
“괜찮으니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어제 외환 은행 인수 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며칠 뒤에 정부에서 정식으로 발표하고 계약은 일주일 후에 할 예정입니다.”
“축하해요.”
“축하는 고문님이 받으셔야 하지 않습니까? 고문님도 이제 외화 은행 대주주가 되는 겁니다.”
“그러네요. 인수가격은 얼마인가요?”
“외화 은행 지분 51%에 1조 5000억 원입니다. 더 낮추려고 노력했지만, 워낙 정부의 입장이 강경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런스타가 1조 4000억 원에 인수했지만, 정부에서는 1조 8000억 원을 요구했었는데 1조 5000억 원에 협상한 것은 매우 잘한 거다.
“그래도 3000억 원을 깎았잖아요. 잘하셨어요.”
“그래도 저를 알아봐 주시는 것은 고문님입니다.”
“어르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