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한국에서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드문데. 누구지?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민일보 구자성 기자입니다. 오늘 미나를 보러 왔는데 횡재한 기분입니다. 고문님이 여긴 어떻게 계신 겁니까?”
기자였네. 어떻게 하지? 이제는 숨을 필요가 없기는 한데. 이 기회에 커밍아웃 할까?
“제 얼굴을 아는 기자분이 드문데 용케 알아보셨네요.”
“예전에 미국 신문 기사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기사를 보고서 제가 고문님 팬이 되었습니다. 대학원생이 뛰어난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미국에서 회사를 설립하고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의 강자로 등극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과찬이시네요.”
본격적으로 질문을 하려는지 내 앞에 슬며시 앉았다.
“미국에 계셨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한국에도 있다가 미국에도 있다가 그럽니다.”
내 뒤에 있는 컴퓨터를 보고서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저 컴퓨터는 뭡니까? 여기서 일하시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여기 커피숍을 제가 운영하거든요.”
꽤 놀라는 얼굴이었다. 당연히 놀라겠지.
“네? 여기 커피숍을요?”
“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없어요. 가끔 조용히 있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이해해 주세요.”
“미나가 여기서 알바를 했다고 하던데 그럼 미나가 미국에서 데뷔하는 것을 고문님이 도와주셨던 거였습니까?”
“미나 재능이 뛰어나잖아요. 보기에 아깝더라고요.”
“미나의 가창 실력이 뛰어나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데뷔해도 될 텐데 왜 미국이었습니까?”
“미나의 실력을 펼치기에는 한국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넓은 미국에서 마음껏 펼쳤으면 했거든요. 기대한 대로 잘해 주어 대견해요.”
“데뷔와 동시에 미국에서 톱스타로 거듭난 것이 어떻게 보면 고문님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네요.”
“고문님을 만난 것도 영광인데 인터뷰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실 수 있습니까?”
지금 인터뷰하는 거 아니었어?
“구 기자님은 어느 부 기자세요? 미나를 보러 온 것을 보면 연예부 기자 같은데요.”
“네. 연예부 기자 맞습니다. 제가 지방에 있다가 오늘 올라오는 바람에 늦게 온 겁니다. 그 덕분에 고문님을 보게 되어 더 좋습니다. 고문님은 연예부 면에 실어도 충분합니다. 혹시 사진 촬영을 해도 되겠습니까? 아이돌 뺨치는 외모라 여성분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는 해 드리겠는데 사진은 좀 곤란하네요. 얼굴이 알려지면 다니기가 불편해서요.”
“무슨 말인지 잘 압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인터뷰만 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어 고마워요.”
“지금부터 인터뷰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한동안 질문하고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예부 기자라 그런지 사업적인 질문보다는 내 개인적인 질문을 많이 했다.
“고문님! 정말 감사합니다. 예상하지 않았던 특종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특종까지는 아니지 않나요?”
“아닙니다. 그동안 고문님은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 인터뷰 값어치가 매우 큽니다. 아마도 제가 한국 언론 처음으로 정식으로 인터뷰하는 걸 겁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입니다.”
“기사 잘 부탁해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기 계속 계실 겁니까?”
“기사가 나가고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면 계속 있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해요. 아니라면 당분간은 있을 거예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문님이 여기 커피숍을 운영한다는 내용은 싣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주면 저야 고맙지요.”
“종종 놀러 와도 되겠습니까?”
“바쁘지 않으세요?”
“저도 가끔 조용히 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 말을 따라 하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기사는 모레쯤에 나갈 겁니다.”
“네.”
어제까지만 해도 밖에 줄을 설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짓말처럼 손님들이 뚝 끊겼다.
예전의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자 희수가 심심해하는 것 같았다.
“책 안 가져온 거 후회되죠?”
“네.”
“내일부터는 가져와요. 여기 한가해서 공부하기 좋아요.”
“그럴게요.”
“심심하면 인터넷 해요.”
말을 하고 보니 3명이 전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 남는 컴퓨터가 없었다. 만만한 게 강성중이지.
“성중아! 너 게임 그만하고 일어나라.”
“네. 이 판만 끝내고 일어나겠습니다.”
희수가 미안한지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그만할 때 됐어요.”
“가죠.”
강성중 뒤로 가서 게임 하는 것을 잠시 구경하였다.
역시 강성중은 게임을 잘해.
“게임 해 봤어요?”
“아뇨.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근데 왜 괴물들은 거의 다 녹색이 많아요?”
마침 강성중이 게임을 마치고 일어났다.
“끝났습니다.”
“성중아! 괴물들 대부분이 왜 녹색인 줄 알아?”
잘 모르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고 보니 게임 속 괴물이나 마녀들을 보면 녹색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크 피도 녹색이고요. 디자이너가 초록색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아니야. 괴물들이 녹색인 슬픈 이유가 있어.”
“네? 그게 뭡니까?”
“지금이야 기술이 좋아 물감들 색을 다양하게 만들지만, 옛날에는 색을 내기가 어려웠거든. 그러다가 1700년대에 비소를 이용하여 색을 하나 만들었는데 아주 예쁘고 영롱한 녹색이 나왔어. 그 당시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것처럼 영롱한 녹색을 만들지 못했거든. 그러자 귀족들이 비소로 만든 녹색을 종이며 옷이며 음식이며 여러 곳에 사용했고 집 내부 벽에도 발랐어. 화가들도 녹색을 많이 사용했고.”
“비소는 독극물 아닙니까?”
“그렇지. 처음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그걸 알고 사용을 중지시켰어. 중지하게 된 계기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파티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고 비소로 만든 녹색 벽지가 발라진 손님방에서 손님들이 자다가 엄청 많이 죽은 사건이었어. 그 이후로 서양에서는 녹색이 안 좋은 색으로 통하게 되어 괴물이나 마녀들을 녹색으로 칠하게 된 거야.”
“그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겁니까? 그 전에도 많이들 죽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있었지. 위험하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무시했던 거지. 고대에는 만병통치약으로 비소를 먹기도 했다니까. 수은이나 납도 엄청 사용했어. 무지해서 벌어진 일이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 당시는 어쩔 수 없었지.”
인터넷을 하는 희수를 보다 보니 희수는 핸드폰이 없었다.
연락을 자주 해야 하는데 핸드폰이 없으면 불편하지. 집에 오션폰 새 제품이 있는데 그걸 줘야겠다.
지금 할 것도 없는데 핸드폰 개통하러 가야겠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네. 다녀오십시오.”
다음 날 아침, 배상도와 양평 별장으로 향하였다.
달리는 차 창밖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만약 갔는데 없으면 어떡하지? 없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별장을 되찾았다는 것에 만족해야지.
아니야. 지금까지 찾지 못한 것을 보면 아빠가 남들이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겨 놓았을 거야.
그렇다면 아빠와 나만 알고 있는 그곳이 제일 유력하지.
근데 아빠는 연구 자료를 왜 숨겨야만 했던 걸까? 연구소에다 넘겼으면 되지 않았나? 생각할수록 머리만 복잡하였다.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별장 앞에 도착하였다.
차를 담벼락 옆에 주차하고 내렸다.
대문이 무척 큰데 잠겨 있었다. 어제저녁에 오늘 오전에 간다고 별장 관리인에게 연락했었는데.
관리인에게 전화하려고 핸드폰을 드는데 대문이 열리며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제가 별장 관리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라고 합니다.”
“들어가시죠.”
“네.”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정원이 넓었고 차 여러 대를 주차할 공간도 있었다.
가만히 별장을 바라보았다. 이 층짜리 별장이었고 오래되어 낡아 보였으며 이 층에 작은 테라스도 있었다.
어렸을 때 왔었지만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보물 창고가 기억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만약 그것도 기억 못 했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였다.
어쩌다 올 거라면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겠지만 자주 올 생각이라면 손을 봐야 할 것 같았다.
리노베이션을 할까? 다시 허물고 새로 지을까? 일단 들어가자.
별장 안으로 들어가자 안은 생각보다 깨끗하였다. 관리를 잘했나 보네.
“안은 깨끗하네요.”
“네. 제가 일주일마다 청소합니다.”
“일주일마다요?”
“네. 안 그러면 먼지가 많이 쌓입니다.”
“아저씨도 여기 별장에서 사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집이 있습니다. 일주일마다 와서 집 안 청소며 정원 관리를 합니다.”
“그렇군요. 저 혼자 둘러볼 테니 가서 볼일 보세요.”
“알겠습니다. 가실 때 전화 주시면 됩니다.”
“네.”
관리인이 나갔다.
“배 대리님, 여기 어때요?”
“좋습니다. 오다 보니 요 앞에 꽤 큰 계곡도 있어서 주말에 여기 와서 푹 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원도 넓어서 바비큐 해도 좋을 겁니다.”
“다음에 전부 한번 올까요?”
“저는 좋습니다.”
“날이 따듯한 5월쯤에 오죠.”
“성중이가 제일 좋아할 겁니다.”
“그렇겠죠. 저 먼저 둘러볼 테니 배 대리님은 잠시 앉아서 쉬세요.”
“그럼 저는 밖에서 정원을 구경하겠습니다.”
“그러세요.”
배상도가 나가자 바로 보물 창고로 향하였다.
보물 창고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 있는 계단이었다.
계단이기에 공간이 크지는 않았지만 누가 일일이 계단을 다 확인하지는 않을 테니 작은 물건을 숨기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었다.
근데 어느 계단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일일이 다 확인해야지.
맨 위부터 가져온 얇은 쇠로 된 도구로 틈에 넣고 잡아당겼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 계단도 같은 방식으로 하였다.
5번째 계단을 하는데 움직임이 있었다. 조금 더 힘을 주어 잡아당기자 계단이 서서히 딸려 나왔다.
긴장하며 서서히 다 끌어당기자 서류 봉투가 하나 있었다. 이걸까? 떨리는 손으로 서류 봉투를 집는데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연구 자료는 이렇게 무겁지 않을 텐데. 아닌가? 재빨리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였다.
편지 봉투 하나와 구닥다리 2M 하드 디스크 두 개가 있었다. 하드 디스크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하드 디스크에 아빠 연구 자료가 있는 건가?
이번에는 편지 봉투 안에 있는 편지지를 꺼냈다. 아빠가 나에게 남긴 편지였다.
(사랑하는 민재야! 아빠다. 이걸 네가 언제 볼지? 아니면 영원히 못 볼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언젠가는 보기를 바라며 편지를 쓴다. 서류 봉투 안에 있는 하드 디스크 두 개에는 아빠가 그동안 연구했던 수소 내연기관 연구 자료와 설계도가 들어 있단다. 이걸 여기에 남긴 이유는…….)
아! 이제야 아빠가 왜 연구 자료를 여기에 숨길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알았다.
아빠의 연구가 90% 정도 진행되었을 때 외부에서 온 정체 모를 남자와 연구소장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아빠는 그 대화를 듣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그 대화는 아빠의 연구를 완성하게 되면 그 연구 자료를 외국에 거액의 돈을 받고 넘기겠다는 대화였다.
문제는 둘만의 음모가 아니라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권력층까지 연관되었고 서슬 시퍼런 군부 독재 시대라 누구에게 함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어디 선까지 관련되었는지도 모르고 아빠가 아는 높은 분들이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개발에 성공하고 연구 자료를 여기에 숨겼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