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제대로 소문났나 보네.
나야 상관없지만, 미나는 쉬지도 못하고 고생이네. 괜히 하라고 했나?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라고 해야겠다.
그나저나 내가 커피숍에 들어갈 수는 없고 역삼동에나 가자. 거기도 내 사무실이 있으니까.
사옥으로 가는 길에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박도진입니다. 커피숍으로 지금 가려고 하는데 괜찮습니까?)
“조사가 끝난 거예요?”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커피숍에 없고 역삼동으로 가는 중이거든요, 그쪽으로 오실래요?”
(마침 제가 역삼동 근처에 있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역삼동 사옥에 도착하여 내 사무실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데 비서가 들어왔다.
“고문님! 박도진이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내 사무실은 오션 대표 비서실과 같이 사용한다.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왼쪽은 오션 대표실이고 오른쪽은 내 사무실이었다.
“들어오라고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박도진이 들어왔다.
“오셨어요?”
“안녕하십니까?”
“앉으세요.”
“네.”
소파에 앉은 박도진이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고문님 사무실입니까?”
“네.”
“사무실이 좋습니다.”
“제가 봐도 그래요.”
“이제부터는 여기로 나오시는 겁니까?”
“아뇨.”
“좋은 사무실을 두고 왜 커피숍에 있는 겁니까? 그전부터 궁금했습니다.”
미나가 미국으로 가면 좀 나아지겠지만 이제 커피숍이 널리 알려지게 되어 앞으로 커피숍에 나가기가 힘들 것 같기는 하였다.
조만간에 커피숍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 아쉬웠다. 정리하지 말고 계속 운영할까?
가끔가다 들리면 되고. 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보자.
“머지않아 여기 사무실로 나올 거예요. 정희수는 찾았어요?”
“아직 현재 소재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정희수 양의 현재 주소지는 춘천으로 되어 있는데 그곳은 얼마 전까지 살던 원룸이었습니다.
만기가 되어 방을 빼고 이사 갔는데 전입 신고를 아직 하지 않아 현재 어디에 거주하는지는 더 찾아봐야 합니다.”
“언제 이사 갔는데요?”
“작년 11월 30일에 이사 갔습니다.”
아! 11월에 방이 만기가 되어 이전 생에서 희수가 12월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온 거였구나.
그럼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오지 않았는데 어디 간 거지? 국내로 이사 갔다면 전입 신고를 했을 텐데.
다른 국가로 어학연수를 간 건가?
“이사 가면 전입 신고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전입 신고를 해야 하는 게 원칙이기는 하지만 안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시원 같은 경우나 월세인 곳은 전입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 소재지 찾기가 힘듭니다.”
“찾을 방법이 없는 건가요?”
“시간이 걸리지만 찾을 수는 있습니다. 정희수 양은 이번에 대학을 졸업했기에 취업하게 되면 직장에서 의료보험이나 연금에 가입하기에 다니는 직장을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확인해 보셨어요?”
“네. 확인했지만 아직 취업하지 않았는지 자료가 없었습니다.”
“핸드폰은 확인해 봤어요?”
“네. 핸드폰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알바만 할 경우 찾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국내에 기록이 없다면 외국으로 나간 건가?
“혹시 출국 기록 확인할 수는 없나요?”
“할 수는 있습니다. 외국으로 나간 겁니까?”
“저도 모르죠. 혹시나 해서요.”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만 외국으로 나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가 정희수 양이 있던 보육원에 갔더니 그곳 원장님은 희수 양이 서울로 올라갔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연락처는 모른다고 하나요?”
“네. 자주 오는 편은 아니라고 합니다. 작년 시월에 곧 서울로 직장 알아보러 간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 생각으로는 현재 서울에 있으며 알바를 하면서 직장을 알아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취업하면 소재지는 금세 알아낼 수 있습니다.”
하긴 어학연수를 갈 거였다면 어학연수를 간다고 말했을 것이다. 근데 이전 생과 같이 어학연수는 왜 가지 않은 걸까?
희수야! 어디 있는 거니?
“출국 기록은 언제까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내일까지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부탁해요.”
탁자에 서류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건 박서진 자료입니다.”
봉투를 들어 자료를 꺼내 보았다.
박서진의 부모는 화성에 있는 직원 20여 명의 작은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었고 직원들의 평판을 들어보니 나쁘지는 않았다.
인성은 나쁘지 않나 보네.
집은 용인이었고 가족 관계는 결혼한 형이 한 명 있었다. 형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현도 자동차에 다니고 있었다.
자식들이 다 공부를 잘하네. 자식 농사도 잘 지었네.
근데 난 현도랑 왜 자꾸 엮기냐? 장서필 회장에게 박서진 형이 어떤지 물어볼까? 아니다.
박서진의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보면 인성도 나쁘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서영이를 맡겨도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이전 생에서는 부모 때문에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여 불행했는데 이번 생에서는 서영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테니 행복하겠지.
만약 서영이를 울리면 내가 가만 안 둔다.
“자료는 마음에 드십니까?”
“네. 근데 여자관계는 없네요?”
“확인해 보니 대학 다닐 때 특별히 만난 여자가 없다고 합니다. 동기들한테 확인한 거니 확실할 겁니다.”
대학 다니면서 연애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좀 특이하네.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주로 공부만 했다고 하며 동기 여자들이나 여자 후배들하고도 잘 지냈다고 합니다.”
하긴 문제가 있다면 서영이하고 만나지 않았겠지.
“수고하셨어요.”
“정희수 양 소재지는 빨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박도진이 나가고 자료를 좀 더 보다가 일어났다.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며 염중섭 대표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고문님!”
“안녕하세요?”
“손님이 방금 가셨다고 해서 온 겁니다. 어디 나가시는 중이었습니까?”
“네. 오션폰에 가려고요.”
“요즘 오션폰 인기가 장난이 아니라는데 오션폰은 좋겠습니다.”
“오션도 잘나가잖아요.”
“요즘 네이브가 선전하는 바람에 골치 아픕니다. 어차피 오션의 자회사라 상관은 없지만 제가 오션의 대표라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오션이 압도적이잖아요. 네이브 이주희 대표는 오션이 부러울걸요.”
“그렇다고 합니다. 다녀오십시오.”
“용건이 있는 거예요?”
“그건 아닙니다. 고문님이 오셨다고 해서 온 겁니다.”
“앞으로는 일부러 오시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오랜만에 오셨는데 모른 척을 어떻게 합니까?”
“앞으로는 사무실에 자주 올 것 같아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자주 오십시오.”
“그럴게요.”
* * *
오션폰으로 와서 백종식 사장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요즘 오션폰 매출은 어떤가요?”
“시간이 갈수록 매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벌써 세계 핸드폰 시장 점유율이 17%가 넘었습니다. 아마도 올해 12월까지 세계 핸드폰 시장 점유율이 35% 가까이 될 것으로 예상하며 1위를 할 것 같습니다. 저한테 이런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아직 1위를 한 것은 아니잖아요. 미리 샴페인을 터트리지는 말죠. 계속 긴장해야 해요. 다른 핸드폰 회사들 반응은 어떤가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성이나 국내 핸드폰 회사들은 지금 초상집 분위기라고 합니다. 기존 핸드폰 수요가 아직은 많아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올해 하반기나 내년부터는 수요가 많이 줄어들게 되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OS 공개 시기에 맞춰 자신들도 스마트 폰을 출시하기 위해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빨리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릴 겁니다.”
“그렇겠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무기력함이 제일 고통일 거예요.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사업은 경쟁이니까요.”
“맞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인수 협상 중단했던 창원 한신 공장 곧 인수할 것 같습니다.”
“오 그래요? 인수가가 서로 맞지 않아 중단한 거잖아요. 근데 인수한다고요?”
“네. 일주일 전에 한신에서 다시 협상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한신 그룹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던데 아마도 창원 공장을 매각하여 현금을 확보하려는 것 같습니다.”
“인수가는 그대로고요?”
미소를 지었다.
“작년에는 서로 대등한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갑입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인수가 또한 달라져야겠지요. 한신도 알면서 우리에게 협상을 제의한 겁니다. 현재 우리 아니면 인수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난 이전 생에서 사업을 한 적도 없고 지금 사업을 하지만 내가 직접 경영하기보다는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고 있어 사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곪고 썩은 부위는 빨리 잘라내어 나머지라도 살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진성도 그렇고 한신도 보면 곪은 곳을 도려내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끌고 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시간만 끌어 다른 멀쩡한 부위까지 전염되어 더 큰 희생이 필요하게 된다.
냉정할지 몰라도 난 문제가 있으면 바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자업자득이네요. 그때 매각했으면 지금의 유동성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럴 수도 있었을 겁니다. 누구든지 미래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곧이라면 언제 인수하는 건가요?”
“한신 측에서는 한시가 급하기에 빨리 매각하기를 원합니다. 늦어도 20일 안에는 인수할 것 같습니다.”
“직원들은 고용 승계 조건인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작년에 한신 창원 공장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감행하여 직원이 많지는 않습니다. 인수하면 오히려 직원을 더 충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직원이 많이 필요하죠. 인수하면 오션패드 생산할 수 있겠네요?”
“저도 그것 때문에 서두르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여유를 부리면서 인수가를 더 낮췄을 겁니다. 인수하고 생산시설 설치하는 시간도 필요하니 3개월 후인 6월부터는 생산할 수 있을 겁니다.”
6월부터 3개월 정도 생산하여 재고를 확보하면 9월부터는 판매해도 되겠네.
“그럼 9월 출시를 목표로 하죠.”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두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고 다른 것은 없나요?”
“네. 없습니다.”
오션폰에서 나와 사무실로 가려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구내식당으로 향하였다.
음식을 식판에 담고 어디 앉아서 먹을까? 식당 안을 둘러보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혹시 잘못 봤나? 눈을 비비고 봐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어찌 내가 희수의 젊었을 적 모습을 잊을까? 여전히 예쁜 모습이었다.
근데 희수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토록 찾았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여기서 보다니? 희수가 우리 회사에 다니는 건가? 아니면 다른 회사?
이전 생하고는 전혀 다른 식의 만남이었지만 희수랑 난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만날 운명이었던 건가?
그래서 이렇게 만나게 되는 건가?
꿈속에서도 보고 싶었던 희수를 보게 되어 기쁨도 컸지만 이렇게 만나니까 안달했던 내 마음이 허무하게 느껴져 허탈한 마음도 컸다.
문제는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보고도 모른 척할 수도 없고.
희수가 직원으로 보이는 여직원 한 명과 같이 식사를 하는 맞은편에 앉았다.
식사하면서 희수를 힐끔 보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며 식사하는 희수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