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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221화 (221/261)

221화

나가면 끝이 날 수도 있겠지만 글을 지우지 않으면 글을 본 사람들이 계속 올 거다.

물론 가봤는데 미나가 없다는 글이 올라오면 많이들 안 오겠지만 그래도 오는 사람들도 있다.

막상 왔는데 미나가 없으면 실망할 텐데 차라리 이걸 기회로 삼아 미나의 팬서비스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나가 주문받고 커피를 내려 판매하면 팬들에게 즐겁고 좋은 추억이 될 테니까. 또 강성중은 그걸 촬영하여 너튜브에 올리면 대박일 테고.

내가 언제까지 커피숍에 머물 수도 없고 이제 슬슬 커피숍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고개를 저었다.

“스타는 공인이야. 널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팬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 계속 있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팬서비스하자. 네가 주문 받고 커피 만들어 줘. 아마 팬들도 소중한 추억이 될 거야.”

“그래도 돼요? 사장님 불편하지 않으세요?”

“난 곧 나갈 거야. 약속이 있거든.”

“알았어요. 오늘만 할게요.”

“아니! 네가 원하면 며칠 동안 더해도 괜찮아. 그동안 난 역삼동 사무실에 가 있을 테니까.”

“죄송해요. 사장님!”

“아니야. 네가 인기가 많을수록 나한테도 도움이 되는 거야.”

“알았어요. 열심히 팬서비스할게요.”

“그래. 나 나갈게.”

혹시 일이 생길 수 있기에 배상도는 커피숍에 남게 하고 나 혼자 나왔다.

* * *

“어서 오세요.”

몇 번 여기 왔다고 아줌마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서재에 계세요?”

“네.”

“커피 드릴까요?”

“차 있으면 주세요.”

“네.”

어르신과 서재에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요즘 핸드폰 사업 잘되고 있다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라며?”

“네. 없어서 못 팔 정도예요.”

“내가 봐도 아주 잘 만들었어.”

“감사합니다.”

“규희는 손에서 핸드폰을 안 내려놓더라. 그전에는 핸드폰은 항상 내려놓았는데 말이지. 요즘 젊은 애들은 다 그렇다며?”

“네. 핸드폰으로 인터넷도 하고 사진도 찍고 너튜브도 보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많이들 해요.”

“세상 참 좋아졌어. 앞으로는 얼마나 좋아질지 궁금해. 다 못 보고 죽는 게 아쉬워.”

“오래 사셔서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손녀가 어떻게 은행을 잘 경영하는지 오래오래 보셔야죠.”

“그게 내 뜻대로 되나? 인명은 재천이지.”

어르신의 얼굴에서 장 회장의 얼굴이 겹쳐졌다.

더 오래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번민들이 보였다. 나이 들면 누구나 다 그렇고 나도 그러겠지.

“천수를 누리실 거예요.”

“자네 꿈은 무엇인가?”

뜬금없는 질문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저의가 뭘까? 무난한 대답을 하자.

“별거 없어요. 죽는 날까지 열심히 사는 거죠. 죽기 전에 제 인생을 되돌아볼 때 후회 없는 삶이 되었으면 해요. 세상을 떠나는데 아쉬움,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거든요. 떠날 땐 쿨하게 가야죠.”

내 말에 잠시 눈을 감고 회상에 잠기는 어르신이었다. 가만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입을 열었다.

“자네 말이 내 폐부를 찔러. 가만히 내 삶을 뒤돌아보니 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아쉬움도 미련도 후회도 많아. 미련하게 열심히만 산 것 같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아쉬움이나 미련,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죠.”

“날 보자고 한 용건이 뭔가?”

뻔히 알면서 왜 물어? 어제 내가 전화할 때는 몰랐겠지만 그 이후에 신동환이 보고했을 텐데.

“어르신께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어서요. 제가 진성 소유였던 별장을 다시 매입하려고 하는데 소유주가… 그래서 매입할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해서요.”

“내가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나?”

당연하지. 외화 은행도 같이 투자하는 사이인데.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않나?

“네.”

순간 황규천은 당연하게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대답하는 놈이 괘씸하였다.

물론 부탁을 들어줄 것이고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일은 모르는 법. 들어주더라도 생색은 내어야지.

“자네는 쉽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야.

신 사장 말처럼 내가 그자를 꽉 잡고 있지만 자네 부탁을 들어주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패 하나를 버리는 결과이거든. 내가 부탁을 들어주면 자네는 무엇을 주겠는가?”

와! 너무하네. 이것 같고 나랑 딜을 하자는 건가? 그 정도는 아무 말 없이 들어줄 정도는 아닌가?

괜히 사채업자가 아니네.

근데 패를 하나 버려야 할 정도면 아깝기는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패가 그자에게 하나만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르신! 조금 전에 말씀하신 아쉬움이나 미련, 후회를 하나 또 만드시려는 겁니까? 지금은 새로 만들기보다는 줄여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요놈 봐라! 하는 표정으로 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별장만 매입하면 되는 건가?”

“네. 시세대로 매입입니다.”

“알겠네. 부탁 들어주지. 다만 이 일이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게.”

“물론입니다.”

“용건 다 봤으면 가 봐.”

“네.”

부탁을 들어주어 다행이었다. 어르신이 나서면 잘 해결되겠지.

황규천은 진민재가 나가자 전화기를 들었다.

(한상현 부장 검사입니다.)

“여기 성북동이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잘 지내네.”

(자주 전화도 드리고 찾아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오늘 저녁에 와.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할 말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저녁때 뵙겠습니다.)

* * *

한상현 부장 검사는 퇴근하자마자 성북동으로 왔다.

담벼락 옆에 차를 주차하고 내렸다.

대문으로 가 손을 들어 초인종을 누르려다 다시 내렸다.

자신에게 황규천은 매우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될 수 있으면 멀리하고픈 마음에 그동안 거리를 두었고 어르신도 자신에게 볼일이 없었기에 한동안 뜸했었다.

그런데 자신을 부른 것을 보면 분명 어떤 목적이 있을 텐데 그게 뭘까? 생각해 보았다.

요즘 어르신이 외화 은행을 인수한다고 협상을 하던데 그것 때문에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건가?

자신의 분야가 아니기에 특별히 도움을 줄 수도 없는데. 그럼 뭘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르겠다.

황규천은 자신이 사법 고시에 합격하고 연수원에 들어가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자신은 경상도 강촌에서 태어나 자랐고 집안이 매우 어려워 가진 것이 없었기에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공부밖에 없었다.

죽어라 공부하여 사법 고시에 합격했지만, 연수원 시절 급여만으로는 생활고에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때 자신에게 손을 내민 자가 황규천이었다.

황규천의 도움으로 연수원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돈을 생각하면 변호사가 되어야겠지만 그 시절 군부 독재 시대라 권력이 최고였고 검사가 되어도 돈을 벌 수 있어 검사를 선택하였다.

검사가 되면서 각종 비리를 저지르며 돈을 모았고 그런데도 검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황규천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하였다.

반대로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황규천이었다. 무서울 게 없는 자신이지만 황규천만은 예외였다.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딩동.

초인종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대문이 열리자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황규천 앞에 공손히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르신! 요즘 들리는 소문으로는 외화 은행을 인수하시려고 한다던데 협상은 잘 진행되고 있는 겁니까?”

“그럭저럭 잘되고 있어.”

“어르신이 외화 은행을 인수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역시 어르신은 다른 분들과 다르다는 것을 진작 알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거의 확정적이기는 하지만 축하 인사받기에는 일러.”

“그 정도로 진행된 겁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공식적으로 발표할 거야.”

“저는 어르신을 볼 때마다 놀라곤 합니다. 누가 어르신이 은행의 주인이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아무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겁니다.”

황규천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은행의 주인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그놈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자네도 좋은 소식이 들리던데?”

“네. 이번 정기 인사에서 차장 검사로 승진할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입방아에 오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거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몸조심하고 있습니다.”

“자네가 소유 중인 별장이 두 개 있지 않아?”

아마도 자신보다 어르신이 자신의 재산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네. 그렇습니다.”

“양평 별장은 거의 사용하지 않다고 하던데. 공직자가 두 개나 소유하고 있으면 문제가 될 거야. 이번 기회에 파는 것은 어떻겠나?”

오늘 부른 용건이 뭔지 알았다. 양평 별정을 팔라는 말이었다.

아! 얼마 전에 자신에게 양평 별장을 팔라고 한 자가 오션 창업주고 어르신이 외화 은행을 오션과 합작하여 인수하니 그자를 알고 있는 거였다.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나? 하긴 사용하지 않는 낡은 별장이기는 하여 아깝지는 않았다.

“제가 생각해도 매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임자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팔 생각이 있으면 임자는 있게 마련이지. 다만 욕심은 부리지 말고 시세대로 팔게.”

한상현은 속으로 인상을 구겼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자가 제안했을 때 팔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튕기다 보면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것 같아 튕겼는데 이제는 꼼짝없이 시세대로 팔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생각했어. 무리한 욕심은 꼭 화를 부르는 법이거든. 자네도 이제는 가질 만큼 가졌으니 욕심을 좀 내려놓게.”

“조언 깊게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저녁 식사라도 했으면 하는데 자네도 바쁜 몸이니 다음에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다음에 제가 한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그래. 가 보게.”

“네.”

한상현이 나가자 전화기를 들다가 전화가 옆에 있는 오션 핸드폰이 보이자 전화기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었다.

‘이것도 자주 사용해야 늘지.’

* * *

어르신 댁에서 나와서 커피숍에 갔더니만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루어 들어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왔었다.

항상 어두울 때 집에 들어오다가 오랜만에 환한 대낮에 집에 일찍 들어오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동안 밀렸던 빨래며 집 대청소를 하였다.

집안일을 다 끝내고 중국집에서 시킨 짬뽕을 먹고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TV도 오랜만에 보네.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나야.)

낮에 봤는데 왜 전화했지?

“네. 어르신!”

(조만간에 한상현이 연락할 거야.)

“벌써 해결하신 거예요?”

(시간 끌면 뭐해? 빨리 해결하는 게 자네도 좋지.)

“그렇죠. 감사합니다.”

(끊어.)

“네.”

전화를 끊었다.

오전에 부탁했는데 벌써 해결했다고? 행동 하나는 빠르네. 너무 쉽게 해결되자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한상현은 언제 연락하려나? 이왕이면 빨리 연락했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어르신의 부탁이라 시간을 오래 끌지는 못할 거다. 며칠 기다리면 연락이 오겠지.

다음 날 아침 커피숍에 도착했다가 그 자리에 멈췄다.

커피숍 안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고 밖에도 줄이 길게 서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모이는 바람에 더욱 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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