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한상현 부장 검사를 만나러 강남에 있는 고급 일식집에 왔다.
여기는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한상현이 자기가 자주 가는 곳이 있다면 이곳으로 정하였다.
보기에도 나 비싸요! 하는 곳인데 검사 월급도 많지 않으면서 이런 곳에 자주 온다니? 안 봐도 뻔하지.
시계를 보니 7시 25분이었다. 곧 오겠지. 처음 보는 건데 설마 늦지는 않겠지?
생각이 무색하게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얼른 일어섰다.
“한상현 부장 검사님?”
“네. 맞습니다. 진민재 고문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앉으시죠.”
자리에 앉아 한상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50대 초반으로 보였고 목소리가 내시 같더니만 생긴 것도 정말 내시처럼 생겼고 간신배 같았다.
아마도 전생에 내시가 아닐까 싶었다. 관상은 과학이라더니 비리 검사로 정말 잘 어울렸다.
“오션의 창업주이자 고문이 이렇게 젊은 분인 줄 몰랐습니다.”
모르기는 아마도 나에 대한 조사를 다 하고 나왔으면서.
“사업은 나이로 하는 것은 아니죠.”
“그렇기는 합니다. 젊으니까 생각도 참신하고 새롭기에 오션폰 같은 걸작이 탄생하는 거겠죠. 저도 오션폰을 보고서는 무척 놀랐습니다. 이런 핸드폰이 있을 거라고는 진짜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핸드폰입니다.”
나를 과하게 띄우는 것이 수상하게 보였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겠지.
“과찬의 말씀입니다.”
“저를 만나자고 한 용건이 있겠지만 용건은 식사하고 하도록 합시다. 식사는 편하게 먹어야 맛있는 겁니다.”
자기는 급한 게 없다는 건가?
“그러죠. 뭐로 시킬까요?”
“제가 자주 먹는 것이 있습니다. 들어오면서 그걸로 주문하겠습니다. 괜찮습니까?”
말도 없이 자기 멋대로 주문해 놓고서는 괜찮냐고 물으면 어떡해?
“네.”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고급 집이라 횟감도 싱싱하고 음식들이 맛있었다. 여기도 아이노가 오면 좋아할 것 같았다.
말없이 차를 여유롭게 마시던 한상현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제 말씀하시죠. 오션의 고문이 저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부장 검사님께서 양평에 별장을 소유하고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양평 별장을 매입하고 싶습니다.”
한상현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라 잠시 당황하였다.
자신과 전혀 일면식이 없는 오션의 창업주이자 고문에게 전화가 와 알아보니 젊은 청년이라는 것을 알고 여자 문제로 사고치고 무마해 달라는 청탁을 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근데 뜬금없이 자신의 별장을 매입하겠다고 하니? 순간 자신에게 별장을 넘겼던 최창권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원래 이 별장이 진성 그룹 소유였는데 얼마 전에 국정원에서 뭔가를 찾는다고 한동안 들쑤셨다며 무슨 일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국정원이 움직였다고 하여 자신도 궁금하여 알아봤는데 철저하게 비밀 유지가 되어 그 이유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 별장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가? 그래서 저 젊은 사업가도 별장에 관심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쉽게 넘길 수는 없지.
“제가 무척 아끼는 별장입니다. 공무로 지칠 때마다 가끔 가서 휴식을 취하는 저한테는 소중한 장소입니다. 죄송하지만 팔 수 없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박도진이 조사한 바로는 별장 관리인이 말하기를 소유주가 별장에 온 적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진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네.
“안 되겠습니까?”
“별장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많은데 그 별장을 원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원래 그 별장 소유주가 진성 그룹이었습니다. 제가 오션의 고문이지만 진성 그룹 식구입니다. 그래서 다시 찾으려는 겁니다.”
저자가 진성 그룹가의 일원이었다고? 그래서 되찾고 싶다고? 하지만 지금 진성 그룹은 망해 가고 있는 그룹인데 왜 별장을 찾으려는 걸까?
별장 소유자가 진성 그룹이었어도 오래되고 낡은 별장이라 특별한 이유도 없을 텐데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다른 별장을 매입하는 게 더 좋지. 그렇다면 그 별장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말인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에게는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잘하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는 특별히 필요한 별장이 아니라서 파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팔더라도 제대로 값을 받고 넘겨야지. 좀 애먹이다 보면 매입 금액이 점점 올라갈 거다.
“다시 찾고자 하는 그 마음 잘 알겠지만, 저에게도 소중한 별장이라 팔 수가 없습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라면 더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바로 일어나더니 나가는 한상현이었다.
이렇게 말도 몇 번 하지 못하고 단숨에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최소한 흥정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황당하여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해야 하나? 태도를 보니 워낙 강경하여 무의미할 것 같은데.
결국은 비리 조사를 해서 압박해야 하나? 이런 방법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
누구에게 비리 조사를 맡기지? 박도진이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나? 그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
믿을 수 있으니까 소개해 준다고 하겠지. 순간 왠지 신동환이 떠올랐다.
신동환이 이런 일도 잘할 것 같은데. 직접 하지는 않더라도 그쪽 계통에 아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 신동환에게 부탁해 보자. 핸드폰을 들었다.
(신동환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고문님께서 저한테 전화까지 주시고 영광입니다. 미국에 장기간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는데 일정이 변경되어 며칠 전에 왔어요.”
(그렇군요. 외화 은행 협상이 궁금해서 전화하신 겁니까? 협상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좋은 소식이 곧 있을 거라니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나 보네.
“정말요?”
(제가 누굽니까? 한다면 하는 놈입니다. 며칠 전에 어려운 고지를 힘겹게 넘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좋은 소식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신 사장님을 빨리 보고 싶네요.”
(저 남자 안 좋아합니다.)
“저도요. 그래도 신 사장님은 보고 싶네요.”
(그렇다면 빨리 찾아뵙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요. 제가 전화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예요.”
(말씀하십시오.)
막상 말하려니 말이 잘 안 나왔다.
“저기 비리 검사가 한 명 있는데 그자가 저지른 비리를 조사했으면 해서요.”
(검사랑 원한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건 아니고 제가 진성 그룹이 소유했던 별정을 다시 찾고자 하는데…….”
상황 설명을 하였다.
(한상현 검사가 그 별장의 소유주라는 겁니까?)
“네. 그자를 아세요?”
(압니다. 우리는 정직한 검사보다는 비리 검사를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채업을 하다 보면 서로 악어와 악어새 같은 존재입니다. 비리를 조사해서 압박하는 것보다는 회장님께 부탁해서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더 좋을 겁니다. 그자가 회장님한테는 꼼짝 못 합니다. 회장님이 말씀하시면 거역하지 못할 겁니다.)
나야 그렇게 하면 더 좋지. 찜찜하게 남의 비리를 조사해서 협박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자가 어르신의 말씀을 따를까요? 거역하면 어떡해요?”
(따를 겁니다. 회장님이 그자의 목줄을 잡고 계십니다. 거역하면 바로 죽음인데 그깟 별장 하나에 목숨을 걸겠습니까? 그런 자들은 자기 목숨을 무척이나 아끼는 부류입니다.)
“알았어요. 어르신께 부탁해 볼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번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이런 일에도 전문가입니다.)
“네.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신동환에게 전화하기를 잘했네.
어르신과 통화하려고 핸드폰을 들었다.
어르신집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성북동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진민재라고 하는데 어르신 계신가요?”
(잠시만요. 바꿔드릴게요.)
“네.”
잠시 후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목소리는 정정하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진민재입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외화 은행 협상 잘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 들었어요.”
(안 될 거는 없지. 잘 끝날 거야.)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어르신을 찾아뵈려고 하는데 언제 괜찮으세요?”
(뭐 때문에?)
“찾아뵙고 말씀드릴게요.”
(그럼 내일 와.)
“몇 시쯤 갈까요?”
(내일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거니까 아침 일찍이나 밤늦게만 오지 않으면 돼.)
“알았어요.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다정하게 받아주면 안 되나? 나한테는 유난히 무뚝뚝하게 받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라 싶었다.
* * *
아침에 커피숍에 출근하자 미나가 미리 와 있다가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안녕!”
“커피 드릴까요?”
“좋지. 미나가 내려주는 커피 정말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가끔은 여기서 일할 때가 그립기는 해요. 저한테는 인생의 좋은 추억이자 소중한 기억이에요.”
“나도 그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항상 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이에요. 갖다 드릴게요.”
“그래.”
자리에 와 컴퓨터 부팅을 하는데 미나가 커피를 들고 왔다.
“여기 있어요.”
“고마워. 근데 곧 미국 가는데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오후에 들어가면 돼요. 사장님도 상도, 상철, 성중 오빠도 저한테는 가족이거든요.”
“알았어.”
“그리고…….”
망설이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게 어제 손님이 왔었는데 저를 알아봤어요. 게임하고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사인해 주었어요.”
“소문 퍼지겠네.”
“여기서 저를 봤다고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부탁은 했어요. 알았다고 했는데.”
“그럼 말하지 않겠지. 쉬어.”
“네.”
손님 두 명이 들어오자 강성중이 일어나 주문대로 갔다.
주문하고 커피를 들은 손님이 테이블에 앉더니만 게임하는 미나 뒷모습을 보면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나 옆으로 간 남자가 미나에게 물었다.
“혹시 미나 님이신가요?”
게임하던 미나가 고개를 돌리자 남자가 미나가 맞는 것을 보고 무척 좋아하였다.
“미나 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도 그 옆으로 다가왔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미나가 여기에 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남자 두 명이 오고 나서 한 시간도 안 되어 젊은 남자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평소 오전 시간에는 픽업해 가는 단골손님 몇 분만 있었는데 지금은 작은 매장에 손님들이 테이블을 꽉 채우고 있었다.
커피숍 오픈 이래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미나가 손님에게 여길 어떻게 알고 왔냐고 하니 오션 게시판에 여기서 미나가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고 하였다.
글을 확인해 보니 어제 미나에게 사인을 받은 사람이 아니고 다른 손님이 미나를 알아보고 글을 올렸던 거였다.
손님들이 많이 밀려오자 미나가 울상을 지으며 나를 보기를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죄송해요.”
내가 손님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니까.
“어쩔 수 없지. 네 잘못이 아니잖아.”
“제가 바로 갈게요. 그럼 제가 없는 것을 보면 손님들이 금세 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