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학교는 서영이와 같은 UC 버클리 대학원에 다니고 있고 전공은 경영이었다. 한국에서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공부는 잘했나 보네.
주변인들 평가를 보면 성격도 좋고 대인 관계도 원만하다고 하였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다만 미국에서의 조사라 박서진의 부모는 누구고 어떤지는 모른다. 그건 한국 가서 조사해 봐야지.
둘 사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서로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이왕이면 결혼까지 했으면 좋겠다.
“오빠 뭐해?”
고개를 돌리니 서영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보던 서류를 얼른 봉투에 넣었다.
“일찍 왔네?”
“응. 오늘은 오전 수업만 있거든.”
대답하며 내 앞에 앉았다.
“오빠는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
“곧 갈 거야. 너도 한국에 가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고 싶지 않아. 엄마 아빠는 나한테 관심도 없어. 여기가 편하고 좋아.”
이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회사 사정이 더욱 안 좋아져 이전보다 작은 집 분위기가 더욱 안 좋아졌다.
그러니 집에 가 봤자 좋은 꼴을 못 보겠지.
올해는 남은 진성 화장품과 진성 유통을 인수하여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래! 뭐든지 마음이 편해야 하는 법이지. 여기가 네 집이라 생각하든가 푹 쉬러 오는 별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내.”
“알았어. 고마워.”
“고맙기는.”
“여기 처음 왔을 때 난 여기가 별장같이 느껴졌어. 어렸을 때 집을 떠나 별장에 놀러 갔던 기분을 느꼈거든. 여기가 풍경이 좋아 집이 아닌 별장 같은 분위기잖아. 근데 지금은 집처럼 편안하고 좋아.”
“그래. 여긴 네 집이기도 하니 편안하게 지내.”
“알았어. 오빠도 별장에 가 봤나?”
내가 8살 때인가? 아빠랑 한번 가 본 기억이 있었다.
“어렸을 때 한번 가봤어.”
“어디 별장 갔는데? 청평? 양평?”
뭐? 별장이 두 개였어? 그것도 양평에 있었다고? 혹시 아빠가 사고당했을 때 양평 별장에 가던 길이 아니었을까?
아닐 수도 있겠지만 연고지가 전혀 없는 양평에 갈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근데 국정원이나 CIA나 경찰에서는 그걸 몰랐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빠가 연고지가 전혀 없는 양평에 간 이유를 궁금해한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국정원이나 CIA에서 아빠가 양평에 왜 갔는지에 대한 질문을 나한테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의문을 품고 있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국정원이나 CIA에서는 양평에 별장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빠가 별장에 가던 길이라 생각했던 거였다.
나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말을 안 해 준 건가?
“양평에 별장이 있다고?”
“응. 지금은 아니야. 팔았다고 들었어. 그래서 난 양평 별장은 가 보지 못했거든.”
“언제 팔았는데?”
“글쎄? 나도 잘 모르는데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였던 것 같아.”
서영이가 국민학생 때라면 아빠가 사고를 당한 이후일 가능성이 큰데.
순간 기억 속에서 잠자고 있던 아빠랑 별장에 갔었을 때 아빠가 한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민재야! 여기는 아빠만 알고 있는 비밀 공간이거든. 우리 민재 나중에 보물을 숨기고 싶을 때 이곳에 숨기면 아무도 모를 거야. 여기는 아빠하고 민재만 아는 거야. 누구한테 말하면 안 돼.”
“할아버지한테도?”
“그래. 아빠하고 민재 둘만의 비밀이야.”
“알았어.”
설마! 그때 말한 그 장소에 아빠의 연구 자료가 있을까? 아빠가 나한테만 알려 준 장소이기에 그곳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만약 있다면 대박인데. 그곳에 있기에 천하의 CIA나 국정원에서도 찾지 못했을 것 같았다.
진짜 있는지 아닌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서영아!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씻어.”
“알았어.”
서영이가 집에 들어가자 생각에 잠겼다.
별장이 양평에 있었다는 것을 먼저 확인해봐야 하는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CIA?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양평 별장에 대해 물어보는 순간 CIA에서 무슨 눈치를 채고 나를 감시할 수도 있었다. 그건 국정원도 마찬가지겠네.
비밀리에 조사하려면 박도진이 제격이겠지?
근데 의뢰할 게 희수 행방도 알아봐 달라고 해야 하고 서영이 남자 친구 박서진 집안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하는데.
그래도 이게 가장 중요하니까 이 건부터 의뢰하자.
저녁을 먹고 내 방에 올라와 핸드폰을 들었다.
(박도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예요.”
(안녕하십니까? 한국에 돌아오신 겁니까?)
“아뇨. 미국이에요. 의뢰 하나 하려고요.”
(말씀하십시오.)
“진성 그룹에서 80년대에 소유했던 양평 별장이 있어요. 그 별장 주소하고 현재 소유자가 누군지 알아봐 주셨으면 해요.”
(언제까지 알아보면 되는 겁니까?)
“최대한 빨리요.”
(알겠습니다. 알아내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 * *
미국에 간 지 한 달 조금 넘어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인천 공항에서 바로 커피숍으로 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강성중과 김나영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잘들 있었어?”
강성중이 얼른 인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잘 갔다 오신 겁니까?”
“그래.”
김나영이 물었다.
“사장님! 몇 개월 있다고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는데 일정이 바뀌었어. 잘 지냈지?”
“그럼요. 저희는 잘 지냈어요. 커피 드릴까요?”
“응. 미국에서 우리 커피숍 커피 맛이 그리웠거든.”
“앉아 계세요. 바로 드릴게요.”
“고마워.”
“상도 오빠도 드릴까요?”
“부탁해.”
자리에 앉자 신상철이 물었다.
“볼일은 다 보고 온 거야?”
이렇게 금세 올 줄 알았다면 가기 전에 힘들게 신상철에게 알려 주지 않아도 되었는데.
“응. 게임 개발은 잘돼?”
“이제 시작한 건데.”
강성중이 커피를 들고 내 앞에 앉았다.
“드십시오.”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잊고 있던 맛이 입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 맛이야. 얼마나 그리웠는지.”
“미국 가실 때 커피 가지고 가시면 되잖아요.”
“그러게. 그 생각을 못 했네. 다음에 말 좀 해 줘.”
“언제 또 가시는데요?”
“예정 없어. 너튜브는 잘하고 있는 거야?”
강성중이 얼굴이 환해졌다.
“네. 그렇습니다. 나영이랑 같이 몰래카메라를 하는데 아직 몰카를 하는 채널이 없어서인지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영상 올리면 그날 조회수가 기본적으로 5만입니다. 일주일이 지나면 30만이 되고 한 달이 되면 50만이 됩니다. 이것도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사장님이 말씀하실 때는 그게 될까? 하는 의심이 있었는데 실제 해 보니 되고 반응도 좋았습니다. 3월이 되면 야외에 나가서도 해 볼 생각입니다.”
내가 이야기해 준 것은 이전 생에서 봤던 것으로 커피숍에서 여러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손님으로 온 여성이 따라 할까? 하는 유튜브 몰래카메라였다.
나도 그걸 보면서 정말로 따라 하는 여성을 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내 말대로 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니까. 인원이 부족했을 텐데 그건 어떻게 해결했어?”
“친구한테 부탁했습니다.”
“잘했네. 앞으로도 잘해 봐.”
“그럴 겁니다. 몰래카메라로 가능성을 봤습니다. 제가 올린 영상 안 보셨습니까?”
가끔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보면 신경 쓸 것 같아서 일부러 보지 않았다. 이제는 강성중 혼자 힘으로 일어서야 하니까.
“내가 무지하게 바빴거든.”
“지금 보시겠습니까?”
“좋지.”
핸드폰을 꺼내 보려는데 문이 열리고 박도진이 들어왔다.
내가 의뢰한 자료 조사가 끝났다고 연락이 와서 내가 한국에 들어가니 오늘 오후에 커피숍으로 오라고 했었다.
“손님이 왔네. 조금 이따가 볼게. 커피 한 잔 부탁해.”
“네.”
박도진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네.”
자리에 앉고서는 서류 봉투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겁니다.”
“일찍 끝났네요.”
“오래 걸릴 일은 아닙니다.”
서류 봉투를 열어 자료를 보았다.
양평 별장을 89년도에 최창권이라는 사람에게 매도했고 최창권은 99년도에 매도하여 현재 주인은 한상현이라는 자였다.
다음 장을 보니 별장 주인인 한상현이라는 자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별장 주인이 검사네요?”
“네. 그렇습니다. 현재 동부지검 부장 검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자료를 보시면 99년도에 한상현 검사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는데 전 소유주인 최창권이 사건 무마 대가로 넘긴 것 같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이러니 대한민국이 개판이지.
어떻게 법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집행해야 할 검사가 뇌물을 받고 사건을 덮을 수가 있나? 짜증이 몰려왔다.
“보아하니 한상현 검사는 비리 검사겠네요.”
“제가 봐도 그럴 것 같습니다. 검사라 자세히 조사는 하지 않았지만, 자세히 파보면 이건 말고도 여러 건에 대한 비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경찰에 오랫동안 근무했기에 잘 압니다. 원래 비리는 처음이 어렵지 한번 하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비리를 저지릅니다. 아이러니한 게 이런 비리 검사가 조만간에 차장 검사로 승진할 것 같다는 겁니다.”
욕이 나왔다.
검사가 죄를 지으면 그건 누가 단죄를 하나? 같은 검사라고 있는 죄도 덮어주는 게 검사들인데.
그놈이 그놈이지.
“어이가 없네요.”
“세상이 그렇습니다.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한국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나저나 그 양평 별장을 내가 다시 매입해야 하는데 상대가 현직 부장 검사이고 곧 차장 검사로 승진한다고 하니 만약 팔지 않겠다고 하면 골치가 아플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비리 검사니까 약점을 잡아서 협박해야 하나?
“한상현 검사 비리를 조사할 수 있을까요?”
“저는 검사 뒷조사는 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긴 검사 뒷조사하다가 걸리면 피해를 많이 보겠지. 그래서 내가 유아영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했을 때도 거절하기는 했지.
아직 별장을 팔지 않겠다고 한 것은 아니고 팔 수도 있으니까 미리 조사할 필요는 없었다.
“알았어요. 수고하셨어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오랫동안 나랑 거래했는데 자기도 미안한지 이유를 묻는 것 같았다.
“그 별장 제가 다시 구매하려고요. 원래 진성 그룹 별장이잖아요. 팔면 다행인데 만약 안 판다고 하면 골치 아프거든요. 제가 진성 계열사를 인수하는 것처럼 전 그 별장을 꼭 매입하고 싶거든요.”
“저는 아니더라도 검사 뒷조사도 하는 친구를 압니다. 소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안 판다고 하면 그때 부탁할게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리고 두 개 더 의뢰할 게 있어요.”
“검사 뒷조사만 아니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웬만하면 할 텐데도 검사 뒷조사만은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박도진이 경찰을 그만둔 이유가 검사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미소를 지었다.
“검사하고 안 좋은 기억이 있나 보네요. 이해해요. 이번 의뢰는 사람 한 명 소재지 찾는 것과 한 사람에 대해 자세히 조사 좀 해 주었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하면 됩니까?”
“두 건 다 빨리하면 좋아요. 두 건 중에서 사람 찾는 것이 최우선이고요. 근데 주민등록 번호는 모르고 생년월일과 대학만 알아도 찾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다행이다.
미리 준비한 자료를 건넸다.
“여기 두 사람이에요. 정희수는 소재지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아봐 주시고 박서진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안까지 자세히 조사 좀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