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세상일이 다 그렇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렇기는 하지만 채권단에서도 자기들이 부채를 탕감해 주었다는 명분을 챙기려는 겁니다. 현재 진성 건설 매출도 나아지고 점차 경영 정상화를 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명분도 챙기려는 겁니다. 즉, 두 가지 명분을 챙겨 매각하려는 겁니다. 뻔한 거지만 알면서 받아들이는 겁니다. 다만 추가 협상에서 좀 더 부채를 탕감받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채권단에서도 빨리 털어내고 싶기에 무리는 없을 겁니다.”
하긴 진성 건설을 인수하겠다는 곳도 없고 경영 정상화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부채를 상환하기까지 기간도 길고 그전에 다시 어려움에 처할 수 있기에 매각할 수 있으면 빨리 매각하는 것이 더 이익일 것이다.
법정 관리를 받는 기업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인수자가 나왔을 때 얼른 매각해야겠지.
“어느 정도 더 탕감받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협상을 해 봐야 알겠지만 200억 원을 더 탕감받아 1500억 원에 인수하는 것을 목표로 해 보겠습니다.”
“그 이상은 안 될까요?”
“진성 건설이 현재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점차 매출이 증가하는 추세라 더는 힘들 겁니다.”
“알았어요. 마지막까지 잘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장기호 팀장이 가자 다이어리를 들춰 진성 건설에서 일했던 분을 찾았다.
명단에 두 분이 일하다가 쫓겨났고 한 분은 김중기 상무 이사 한 분은 채민곤 부장이었다.
김중기 상무를 사장으로 임명하고 채민곤 부장은 이사로 승진시키면 될 것 같았다. 전화하려고 핸드폰을 들었다.
* * *
“사장님! 커피 드릴까요?”
저녁을 먹고 돌아오자 송지수가 살갑게 물었다.
미나는 좀 무뚝뚝한 편이었는데 송지수는 애교가 많고 다정스러웠다.
배우 지망생이라 그런지 알바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금세 적응하였고 강성중하고도 친하게 지내는 것은 물론 무뚝뚝한 배상도나 신상철에게도 애교스럽게 굴어 그들의 마음을 벌써 녹여 놨다.
아이노의 빈자리를 빠르게 채웠고 커피숍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아이노가 가고 우울했던 분위기가 언제 있었다는 듯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하였고 다들 활기가 넘쳤다.
제일 신난 것은 강성중이었다.
송지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비디오로 촬영하였고 송지수 또한 배우 지망생이라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강성중은 송지수가 배우 지망생이라 머지않아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할 테니 그때를 위해 촬영해 두려는 것이고 송지수도 너튜브에 자신의 영상이 올라가면 그만큼 더 노출이 되기에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다시 예전의 커피숍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커피 말고 귤차로 줄래.”
“네. 그럴게요.”
말을 하고서는 뒤를 돌아 다른 사람에게도 물었다.
“상도 오빠도 커피 드릴까요?”
“좋지.”
“상철 오빠는요?”
“응.”
송지수가 준 귤차를 마시는데 중년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
내가 전화한 김중기 상무와 채민곤 부장이었다. 둘 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서 퇴근 후에 같이 왔다.
좋은 곳에 다니면 굳이 오라고 하지 않을 텐데 별 볼 일 없는 중소기업이라 오라고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네.”
내 앞에 앉았다.
“피곤하실 텐데 오시라고 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저희를 잊지 않고 연락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니시는 회사는 좀 어때요?”
내 질문에 둘 다 표정이 구겨졌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지못해 다니는 겁니다. 애들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때려치웠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다니고 있습니다.”
“회사가 안 좋은가요?”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갔지만,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작은 소규모 회사입니다. 업무에 규정도 절차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그런 곳입니다.”
둘 다 다른 회사에 다니는데 상황이 같은가 보네.
“고생들 하시네요.”
“진규촌 회장님과 같이 일할 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제가 대학 졸업하고 처음 진성 건설에 입사하여 젊은 시절을 다 바치면 열심히 일한 곳인데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하늘에 계신 회장님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저희들이 죄인입니다. 끝까지 진성 건설을 지켰어야 했는데요.”
“그런 정신이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할 수 있다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멀어진 진성 건설입니다.”
아직도 진성 건설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어요. 이분들이라면 믿고 맡겨도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제 내가 진성 건설을 곧 인수한다는 사실을 말해야겠지.
“사실 제가…….”
설명을 하였다.
“그래서 인수하면 진성 건설을 두 분께 맡기려고 부른 거예요.”
놀라 두 눈이 커졌다.
“정말 진성 건설을 도련님이 인수하시는 겁니까?”
“네. 제가 진성 어페럴과 진성 리조트, 진성 무역, 진성 금속 인수했다는 소식 못 들으셨어요?”
“듣기는 했지만, 자금을 다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까? 진성 건설 인수 금액이 다른 곳보다는 더 높을 겁니다.”
“맞습니다. 저도 자금을 다 사용하여 더는 인수하지 못할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진성 건설도 인수하신다니 꿈만 같습니다.”
“자금은 충분해요. 생각 같아서는 당장 진성 유통과 진성 화장품도 인수하고 싶은데 기회를 보는 중이에요.”
“그 두 곳만 인수하면 예전의 진성 그룹을 다시 찾게 되는 겁니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머지않았어요. 길어야 3년 안에 진성 그룹이 다시 태어날 거예요. 그동안 두 분이 진성 건설을 하루빨리 원래의 진성 건설로 만들어야겠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희를 믿고 맡겨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련님!”
이왕 선물 주는 김에 다 말하자. 그래야 의욕이 더 솟을 테니까.
“그리고 오션에서 내년 초쯤에 태국에 대단위 공장을 건설할 예정인데 인수 후에 진성 건설에서 오션 공장 건설을 맡을 거예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하자 없이 튼튼하게 건설하는 대신 적당한 마진을 챙기면 진성 건설에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한동안 진성 건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 * *
오늘은 네이브가 코스피 시장에 상장하는 첫날이라 아침 일찍 네이브로 가고 있었다.
출근길이라 차가 막혀 느리게 가고 있었다. 일찍 나왔는데도 이렇게 막히네.
평소에는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다녔기에 출근길 교통지옥이라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는데 오늘 제대로 경험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네이브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네이브 오늘 상장, 고평가 논란 속에 주가 향방 주목
네이브 공모가가 높다 보니 시장에서는 고평가로 판단하는 모양이다. 실제 앞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면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닌데.
네이브는 역대금 증거금이 몰리며 최종 공모가가 39000원으로 결정되었다.
국내 포털 사이트 점유율이 22%로 오션에 이어 2위를 기록하였고 게임 매출도 나날이 상승하여 많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제목을 눌렀다.
(고평가 논란에도 이를 비웃듯이 공모주 청약에서 2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오늘 네이브 주식이 코스피에 상장됨에 따라 시초가와 향후 주가 움직임에 투자자들의 촉각이 쏠려 있다. 버블 붕괴로 주식 시장이 침체한 가운데 네이브가 주식 시장의 활력을 줄지 또한 귀추가 되고 있다. 네이브의 시초가는 이날 개장 전 동시호가(오전 8시 30분에서 9시)에서 공모가 39000원의 90~200% 범위에서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가 합치되는 호가 일치 방식으로 결정된다. 만약 시초가가 공모가의 50% 높은 가격에 형성되고 이후 상한가(15%)까지 오르는 따상(시초가 58500원 + 8770원)을 기록하면 단숨에 67270원이 된다. 향후 네이브의 주가 향방은 전문가들마다 서로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 일부는 네이브의 성장성이나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기대감들이 이미 공모가에 상당히 반영되어 향후 주가 상승에 걸림돌이 될 거라고 판단하였다. 반면 일부에서는 포털 사이트 점유율이 계속 향상되고 있고 또한 게임 매출도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라 추가적으로 주가 상승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면서 단기 네이브 목표 주가를 8만 원으로 책정하였다. 또한…….)
보던 기사를 닫았다.
전문가들이라고 다 맞는 것은 아니다.
가끔 전문가들이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것을 보면 전부 다 다르다.
전문가들이라면 여러 경제 지표를 보면 예측이 전부 같아야 하는데 자신들의 이해관계 또는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가기에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현명한 투자자들이라면 전문가의 말에 무조건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15분이 더 걸려 도착하여 이주희 대표와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기분이 어떠세요?”
내 물음에 이주희 대표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쏟아내어 온몸에 힘이 빠지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기진맥진하지만, 마음만은 당장 백두산도 오를 만큼 힘이 넘치는 상반되는 기분이에요.”
시계를 보니 8시 55분이었다. 곧 장이 열리면서 네이브가 거래소에서 거래가 된다.
“5분 후면 시초가가 결정되고 그동안 이 대표님이 노력했던 평가가 나오게 되네요.”
“저는 할 만큼 했고 공모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그 이상을 원하면 욕심이겠죠.”
내가 이전 생에서 네이브의 주가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IT 기업들은 10분의 1로 주식 액면 분할을 거의 하고 일부는 거기서 또 5분의 1로 한다.
그렇기에 네이브나 온씨 소프트도 액별 분할을 했기에 실제 주가는 꽤 높을 것이다.
이전 생과는 네이브는 다르게 게임 사업도 진행하기에 네이브 더하기 온씨 소프트 주가의 합 이상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 주가가 많이 상승할 여력이 충분하고 시초가 또한 높게 결정될 수도 있었다.
“욕심이 아니고 그건 네이브를 과소평가하는 거예요. 전 장기적으로 대략 20년이 되면 네이브 주가가 1000만 원 정도 될 거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놀란 두 눈을 하였다.
“네? 1000만 원이나 된다고요?”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당연하죠. 어떻게 네이브 주가가 1000만 원이나 돼요?”
“가능해요. 지금 당장 그걸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예측은 아니에요.”
“다른 사람이 말하면 전혀 믿지 않겠지만 고문님이 말씀하시니 믿음이 생기며 믿고 싶어지네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꿈은 이루어지는 거예요. 향후 네이브 주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고 어느 정도 금액이 되면 10주 액면 분할을 하고 그 후 또 상승하면 5주 액면 분할을 하면 주가가 1000만 원이 될 수 있어요. 주가 금액이 높으면 매수하기를 꺼리지만, 액면 분할 하여 주가가 낮아지면 접근성이 좋아져 주가가 상승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그렇게 되는 행복한 상상을 하는지 이 대표의 눈이 몽롱해졌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이 대표님이 하시는 거에 따라 1500만 원도 될 수 있어요. 열심히 해 보세요.”
“네. 그럴게요. 지금 9시가 넘은 것 같은데 주식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확인할게요.”
핸드폰을 들어 네이브 주가를 확인하였다.
시초가가 75000원이었고 현재 10% 상승하여 82500원이었다. 이 정도면 대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