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손 회장 얼굴을 보니 진짜로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안 봐도 그 광경이 눈에 선하였다.
갑의 입장이라고 거들먹거렸는데 을이 바짝 엎드려야 하는데 고개를 뻣뻣이 쳐드는 예상 밖의 일이 발생하자 아차 싶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핸드폰을 이동 통신 회사에서 받아줘야 매출을 올릴 수 있는데 누가 갑이고 을인지 똥오줌 못 가리는 놈이었다.
“어떻게 태세 전환했는데요?”
“가방에서 신제품 카탈로그를 꺼내면서 이번 핸드폰은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핸드폰이라 인기가 많을 거래. 그래서 물량이 미리 많이 확보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올 수가 있으니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는 거야. 조금 전까지 취했던 고압적인 자세는 사라지고 애원하는 표정으로 말이야. 처음부터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어?”
“영업 초짜인가 보네요.”
고개를 저었다.
“초짜라면 그러려니 하고 이해나 하지. 전무야. 그러니 어이가 없지. 자기들 핸드폰이 잘나가고 우리 소프트 뱅코 이동 통신이 출범한 지 얼마 안 되고 점유율이 낮으니까 무시한 거지. 그런데 내가 필요 없다고 강하게 나오니까 한발 뒤로 물러난 거지. 우리가 점유율이 낮아도 우리가 샤프 핸드폰을 취급하지 않고 다른 경쟁사 핸드폰을 취급하면 자기들 점유율이 조금이라도 낮아지는 거니까.”
“소프트 뱅코 이동 통신 시장 점유율이 얼마인데요?”
“현재 7% 정도야. 보다폰을 인수한 그대로지.”
“보다폰 점유율이 낮았네요.”
“그러니 내가 인수할 수 있었지. 점유율이 높았으면 인수하기 힘들었을 거야. 나로서는 다행이지.”
“가격도 저렴하게 인수하셨고요.”
“저렴하게 인수하기는 했지만 1조 엔이 들었어. 큰돈이지.”
1조 엔이면 원호로 10조 원이다.
원래는 17조에 인수했는데 버블 붕괴 때 보다폰 주식을 저렴하게 매수하고 인수한 덕에 무려 7조 원이나 절약한 셈이다.
손 회장은 그걸 모르니 큰돈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저렴하게 인수한 거예요.”
“그런 평가도 있어. 근데 알아? 내가 보다폰을 인수하니까 주변에서 미쳤다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 사람들은 오션폰 존재를 모르니까 하는 소리겠지. 하지만 10월이 되면 더는 그 소리를 하지 못할 거야. 만약 오션폰을 출시하게 되면 일본에서 점유율이 어느 정도 될까? 오션폰 점유율이 곧 소프트 뱅코 이동 통신 점유율이 되거든.”
이전 생에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본 시장에서 아이폰이 거의 50% 가까이했던 것 같았다.
10월에 출시하면 다른 회사 스마트 폰이 없기에 독점이지만 곧바로 수직적인 상승은 힘들다.
바로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에 단시간 안에 점유율이 상승하지는 않고 시간을 두고 점차 상승할 것이다.
“너무 극적인 반응을 원하지는 마세요. 물론 인기는 많겠지만 스마트폰이 기존 핸드폰보다 고가이고 익숙지 않아서 젊은 층부터 서서히 증가할 거예요.”
“회사 내부에서도 그런 분석이 나왔어. 일본 국민들이 보수적인 부분이 많아 극적인 점유율 향상은 힘들겠지만, 단일 핸드폰에서는 1위를 할 거라고 해. 그것만 해도 어디야? 핸드폰 회사도 종류도 많잖아.”
“그렇죠.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죠.”
“그래도 빨리 스마트폰을 출시했으면 좋겠어.”
“시간은 막아도 흘러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알았어.”
* * *
아이노 광고 촬영은 강행군 그 자체였다.
아침 일찍부터 사진 촬영을 3시간 가까이했고 지금은 TV CF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사진과 CF 촬영 장소가 같은 실내라 이동하는 시간은 없었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먹고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광고 내용은 지진이 많은 일본답게 지진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평화로운 사무실에 지진이 나면서 책상이 흔들리고 사무 집기들이 바닥에 떨어졌고 잠시 후 지진이 멈추자 몸을 웅크렸던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너도 나도 핸드폰을 들고 집에다가 전화한다.
다른 사람들은 지진으로 인해 통화가 되지 않지만 아이노는 남들 보라는 듯이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소프트 뱅코 이동 통신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 생겨도 통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게 뭐야? 내용 좀 참신하게 하지.
와! 정장을 입은 아이노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난 정장 입은 것을 처음 봤고 잘 어울렸다.
엘프 전사에서 커리우먼으로의 화려한 변신이었다.
광고 촬영하는 것을 찍던 강성중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아이노 정장도 잘 어울립니다.”
“그러게.”
“이렇게 보니 강인한 엘프 전사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능력 있는 미모의 커리우먼으로 보입니다. 오늘따라 색다르게 보입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습니다.”
“저기에 안경까지 쓰면 더 지적으로 보이겠지.”
“그런 거 같습니다.”
지진이 나서 겁을 먹는 표정이나 지진이 멈추고 전화하면서 안도하는 아이노의 표정을 보면 정말 사실처럼 연기하고 있었다.
대사는 없지만,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촬영하는 감독도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고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모델이 아니라 배우를 해야 하나?
“컷.”
컷을 외친 감독이 뭐라고 하자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통역인 여성이 아이노에게 다가가 뭐라고 말하였다.
눈치를 보니 촬영이 끝난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4분이었다. 아침에 오늘 저녁 11시까지 촬영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일찍 끝나네.
아이노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끝난 거야?”
“응. 진 어땠어?”
손을 들어 엄지척을 하였다.
“아주 잘했어. 노련한 배우가 연기하는 줄 알았다니까.”
“설마?”
“진짜야. 그러니까 일찍 끝난 거지.”
“그럼 이제 가도 되는 거겠지?”
“그렇지. 내가 물어볼게.”
“응.”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손병수를 보고 그 앞으로 갔다.
내가 오는 것을 본 손병수가 감독하고 인사를 나누고 나를 바라보았다.
“감독이 뭐라고 해요?”
“아주 만족스럽답니다. 모델이 연기를 너무 잘하여 일찍 끝냈다고 합니다.”
“다행이네요.”
“제가 봐도 모델이 연기를 잘하는 것 같습니다.”
“손 회장님은 어떻게 한다고 하나요?”
“숙소에서 같이 저녁 식사하자고 하십니다.”
원래는 일이 있어서 손 회장이 오후 7~8시쯤에 오기로 했는데 일찍 끝났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지금 가죠.”
“알겠습니다.”
* * *
커피숍에 출근해 커피를 마시며 커피숍 안을 둘러보았다.
배상도는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고 신상철은 게임 개발을 강성중은 너튜브를 보고 있어 평상시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들 힘이 없이 어깨가 축 처져있었고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노는 일본에서 광고 촬영을 다 끝내고 다음 날 핀란드로 떠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아이노 한 명이 없을 뿐인데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여기에만 있을 수 없고 아이노도 집으로 가야지. 지금이야 그래도 며칠 지나면 점차 나아질 것이다.
나까지 축 처져 있으면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나라도 힘을 내자. 아자! 아자!
나도 오션패드에 사용할 OS를 수정하기 위해 컴퓨터를 부팅하려는데 바다 기획 오찬식이 들어왔다.
오늘 아이노 광고 촬영 영상 편집이 끝나서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일찍 왔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네.”
자리에 앉았다.
“일본에서의 광고 촬영은 잘 끝난 겁니까?”
“네. 잘 끝났어요. 일본에서도 아이노가 잘했는지 금세 끝났어요.”
“그 모델 정말 앞이 창창한 모델입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작품을 같이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기회가 생기면 부탁드립니다.”
“도울 수 있으면 도와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일본은 어떤 내용으로 촬영한 겁니까? 제가 광고쟁이라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뭐냐면…….”
설명을 하였다.
“그런 내용인데 참신한 면은 없는 것 같아요.”
“일본은 모험하기를 꺼리는 면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래도 가끔가다가 모험적이고 놀랄 만한 광고가 하나씩 튀어나오기는 합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모험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으로 가는 것이 좋기는 합니다.”
“그렇죠. 하지만 뭐든지 모험하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다양해지고 발전하는 것 같아요. 정체되어 있으면 발전이 없죠.”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션폰 광고는 모험적인 면이 아주 큽니다. 게임 속 장면을 배경으로 할 생각을 누가 하겠습니까? 반응이 어떨지 저도 기대가 많이 됩니다.”
“반응이 좋아야죠.”
“맞습니다.”
“이제 광고 영상 볼까요?”
“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영상은 잘 나왔나요?”
“직접 보시고 판단하십시오.”
“그러죠.”
오찬식이 동영상을 실행하였다.
아이노가 검을 들고 벌판을 달리는 모습부터 나왔다.
벌판을 달려 던전 안으로 들어가 어두워지자 핸드폰을 꺼내 플래시를 켜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몬스터가 보이자 몬스터에게 달려가는 장면.
쓰러진 몬스터 위에 발을 올려놓고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모습.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화하는 장면서부터 내레이션으로 스마트폰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나중에 이 부분만 각 나라 언어로 바꾸면 된다.
내가 보기에 매우 만족스럽고 좋았다.
아이노도 강인한 미모의 엘프 전사처럼 잘 나왔다. 예쁘고 몸매가 좋으니 그림도 잘 나왔다.
“좋네요.”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이 광고를 보면 사람들 머리에 확 박힐 겁니다. 이건 광고를 보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내레이션이 없다면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네요.”
“그렇습니다. 이런 게 진정한 광고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모험은 보통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많이들 끝납니다.”
스마트폰은 초창기에는 주로 젊은 층 위주로 구매를 많이 할 것이기에 대박일 것 같았다.
기성세대는 이런 광고를 접해 보지 않아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 같은 분위기라 반응이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당연히 대박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바다 기획을 선택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오찬식이 광고 동영상이 담긴 CD를 주고 갔다.
강성중이 다가왔다.
“사장님! 아이노 광고 영상 나온 겁니까?”
다 들어 놓고서 왜 물어?
“응.”
“저도 봐도 됩니까?”
“당연히 봐야지.”
CD를 건넸다.
“여기 있어.”
“네.”
CD를 받은 강성중이 얼른 컴퓨터로 가서 CD를 넣고 실행하였고 배상도와 신상철도 궁금한지 고개를 강성중 모니터로 돌렸다.
짧은 영상이 끝나자 다시 실행하는 강성중이었다.
3번이나 더 보고서는 CD를 나에게 건넸다.
“어떠냐?”
“제가 촬영 현장에 있었는데 이런 장면이 나오다니 놀랍습니다. 저도 영상을 촬영하지만 이런 영상을 촬영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난 광고에 대한 소감을 말하라니까 엉뚱하게 영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
“당연하지. 카메라부터 다르고 촬영하는 것도 기술이지. 이거로 밥 먹고 사는데 아마추어랑 똑같으면 어떡하겠어?”
“이 영상을 보고 저도 비디오 촬영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튜버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그건 알아서 하고 광고 소감은 어때?”
“한마디로 대박입니다. 보면서 팔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아이노도 정말 예쁘게 잘 나왔습니다.”